발가벗겨진 서구문명의 제국주의와 미국의 식민정책
[연재152] 제3세계의 눈으로 식민지 한국을 파헤친다
유태영 목사
기사입력: 2014/09/08 [00:06] 최종편집: ⓒ 자주민보
▲ 광주항쟁, 천안함사건, 세월호사건 등 현대사의 수많은 의문의 사건의 배후로 늘 미국이 지목되어 왔지만 한국정부는 그런 주장자체를 원천봉쇄해왔다. 미국 개입과 배후조종을 밝히려다가 수없이 많이 감옥에 끌려갔고 미제침략사를 교지에 보도했다가 체포된 이철규 대학생의 경우 고문으로 죽기까지 했다. 지금도 세월호사건과 미군잠수함 충돌설을 거론만 해도 종북으로 매도당하거나 검거되기 십상이다. 왜 미국의 본질을 파헤치려고만 하면 한국정부는 이렇게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까. © 자주민보
식민지의 원어는 로마어로 콜로니아(colonia)이다. 이 말의 뚯은 외부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토지를 경작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주하여 토지를 경작하는 사람들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동거하는 관계가 된다. 이와 같은 평화로운 식민지의 원형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시대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서구문명의 제국주의적 식민지는 고대의 그리스와 로마시대의 식민지의 원형과는 완전히 다르다. 서구문명권 하에서의 제국주의적 식민주의는 다음의 네 가지 형태로 변형된 모습으로 나타났다.
첫째, 서구문명권 하에서의 식민주의는 자본의 축적을 위하여 귀금속을 착취하고 노예사냥 등을 통하여 미개한 외국에서 자본주의적 거점을 확보했다.
둘째, 서구문명권의 식민주의는 산업자본주의를 육성하여 부족한 자원을 회득하고 또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후진국들을 마구 침략했다. 뿐만 아니라 미개한 피식민지 나라들은 종주국들이 공업제품을 판매하는 시장이 된다. 그리하여 피식민지 나라들은 자주적이며 정상적인 발전의 길을 원천적으로 봉쇄당했다.
셋째, 2차세계대전후 서구 제국주의는 새로운 방법으로 후진국들을 식민지로 삼고 지배했다. 이것을 신식민주 (neo-colonialism)라고 부른다. 이 신식민주의 정책에 의하면 제국주의가 침략한 나라들에 대하여 형식적으로는 독립국가라고 하는 명칭을 허용한다. 하지만 내용으로는 경제적으로 다국적 기업을 통하여 착취하고 군사적으로 강압적인 통치력을 장악하고 지배한다. 이러한 신식민주의는 논리적으로 <경제협력>과 <안보>라는 말로서 제국주의적 침략행태를 은폐하고 있다.
네째, 서구문명의 신식민주의는 동화주의를 주장하면서 가옥한 민족말살정책을 기본적 정책으로 삼고 있다. 신식민지 종주국은 피식민지국의 고유한 풍습과 사회적 제도를 말살하거나 아니면 재편성하여 종주국의 것으로 대체한다.
이와 같은 신식민주의 원조는 물론 영국의 식민주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포르투갈-스페인의 식민주의 그리고 프랑스의 식민주의가 서구문명권에서 역사적으로 대표적인 식민지 종주국들이 되고 있었다.
한국 식민지의 시작은 미국과 일본이 결탁한 가쓰라-테프트 조약으로 시작됐다.
이 가쓰라-테프트 조약 때문에 미국이 한국을 식민지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아태 지역에서 미국의 식민지의 길을 활짝 열어 놓았다. 미국은 미국의 식민지정책을 한국 사회에 설득시키기 위하여 기독교 선교사들을 통하여 민주주의의 가치를 주장했다.
미국 선교사들은 가장된 민주주의를 설득하여 한국인들이 독립을 원하는데 대하 여 미국정부의 정책을 지지하고 있었다. <예수 믿고 천당에 가는 것이 인생의 최고 가치추구의 길이다>라고 한국인들을 설득시킴으로서 일본의 침략에 대하여는 정치적으로 무관심하도록 선교를 했다.
그런데 일본의 36년간의 가혹한 식민통치는 제2차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함으로서 끝났다. 하지만 전승국 미극은 한국에서 친일세력을 그대로 활용하면서 계속하여 이번에는 미국이 직접 주도하는 신민지 정책을 오히려 국제적으로 확대하고 공고히 하여 70년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냉전시대에 있어서 미국을 비롯한 서구 식민지 종주국들은 제국주의적 신식민지 통치이념을 종교적으로 미화하여 유신론-무신론의 대결을 정당화하는 이원론적 정치적 대립을 수단과 무기로 삼고 있었다.
이러한 이원론적 정치적 대립은 한국에서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진짜로 무신론적 정치적 수단과 방법은 오히려 오늘 미국의 신식민지 정책에서 밝히 나타나 있다.
서구 문명권이 어떻게 오늘의 역사 속에서 신식민지 이념을 진행하고 있으며 기독교의 역할이 무엇 이었는가를 냉철히 분석하여 강대국의 역사적 외곡과 신식민지 종주국들의 침략의 벽을 완전히 허물어야 하겠다.
1. 식민지로 세계를 지배한 서구의 패권의 논리
서구 문명의 역사는 사실 식민주의 패권의 역사이다. 서구 문명사회가 형성된 이후부터 끊임없이 아프리카를 비롯하여 중동과 동남아시아 그리고 태평양을 넘어 라틴아메리카에 이르기 까지 정복과 통치로 서구 식민지를 환대하고 확립했다.
서구의 식민주의를 통해서 비 백인 나라들의 민족문화는 말살되기도 하고 서로 융화되기도 했다. 하지만 서구 문화의 식민지 통치에 대항하여 배척하고 민족의 고유한 전통을 유지하기 위하여 투쟁하면서 현대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서구의 식민지 패권은 육체적 고통에만 국한된 것뿐만 아니었다. 프랑츠 파농은 정신과 의사로서 그의 유명한 <검은 피부, 하얀가면>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그의 연구 발표에 의하면 유럽인들의 식민통치의 죄악에 대하여 진실을 밝히고 있다.
흑인들과 유색인들은 자신들의 피부가 유색인데 대하여 부끄러워하면서 심지어는 저주함으로 스스로 인간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고 폭로했다. 프랑츠 파농은 진짜 부끄러워해야할 것은 피식민지 흑인들과 유색인들이 아니라 서구 문명권의 백인들의 종교적 제국주의라고 폭로했다.
서구 제국주의적 식민지 팽창에 있어서 백인들의 기독교가 제국주의적 정권에 편승하여 정치적 침략의 테두리에 밀착되어 있었다. 정치적으로 식민지 침략자들은 종교적인 명분을 주장하면서 자신들의 침략 행위를 정당화했다.
서구 기독교 문명국들은 식민지의 확보를 바로 종교적 선교의 최선의 기회로 삼고 있었다. 구약 성경의 <출애굽 사건>을 이용하여 서구 문명국들의 식민지 통치의 망령을 정당화 하고 있었던 것이다.
1492년에 콜럼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후에 로마 교황 알렉산더 6세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에게 아메리카 신대륙에서 식민지를 개척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그 이유는 이슬람세력을 약화시키고 라틴 아메리카 신대륙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의 식민지를 확대함으로 세계를 지배하려는 욕망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라틴 아메리카의 동쪽은 주로 포르투갈의 식민지가 됐고 서쪽은 스페인의 식민지가 됐다. 나중에야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네덜란드가 남미에서 뒤를 따라 식민지를 획득했다.
그런데 라틴 아메리카에서 식민지 건설의 권한을 허락한 로마 가톨릭 교황 알렉산더 6세는 도대체 어떤 교황이었나? 그는 스페인에서 대주교의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사생아로서 그의 이름은 <로드리고> 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스페인의 대주교로서 성물매매로 이룩한 막대한 재산을 사생아인 <로드리고> 에게 유산으로 넘겨주었다.
<로드리고>는 교황에 출마하었는데 그를 반대한 한명의 수도사에게 5,000 크라운의 돈과 자기 딸을 그 수도사와 결혼을 허락하는 조건으로 매수하여 드디어 그는 교황이되어 이노센트 8세 교황의 후임으로 알렉산더 6세 교황(1492-1503)이 되여 11년간 로마 가톨릭 교회를 통치했다.
알렉산더 6세교황의 사생활에 대한 기록들은 지면상 제한으로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으나 그는 돈과 절세미인 귤리아와의 불륜의 관계로 인하여 부패한 교황으로 대표적인 사례를 남겨 놓았다.
어쨌든 이렇게 됨으로서 라틴 아메리카에서 서구 유럽의 포르투갈, 스페인,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그리고 미국 등 백인 국가들의 전무후무한 황당한 식민지 쟁탈전이 시작되어 수 세기 동안 계속되었으며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1497년에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경쟁적으로 식민지 쟁탈전을 시작하고 있었는데 로마 교황 알렉산더 6세가 식민지 개척권한을 승인함으로서 서구 기독교 문명국들이 라틴 아메리카에서 식민지 건설하는데 있어서 합법화가 되었던 것은 역사적인 사실임으로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유럽의 제국주의 역사 속에는 부끄러워해야할 것은 피식민지 나라들이 아니라 그것은 바로 로마 가톨릭 교회이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라틴 아메리카 식민주의 정치적 세속 세력과 함께 결탁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북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또 어떠했는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북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처음부터 주로 영국이 선두로 하여 유럽의 개신교 기독교 국가들이 경쟁적으로 북아메리카에서 식민지 탈취를 시작했다.
유럽의 기독교 국가들은 북아메리카에서 제국주의적 식민지 팽창세력에 편승하여 식민주의와 결합한 선교정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정치적인 세력이 교회를 이용하기까지 했다.
영국은 븍미 대륙에서 제국주의적 식민지 건설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1792년에 이른바
을 발표했다.
영국이 역사적으로 침략한 식민지 국가들의 목록은 광대하다.
아프리카에서 이집트를 비롯해 22개 국가들이 영국의 식민지가 됐으며 아시아에서는 인도 식민지를 비롯해 21개의 국가들이 수 세기 동안 영국의 식민지 통치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영국은 태평양 오세아니아와 중남미에서 20여개의 지역을 식민지화하여 지배했다. 사실에 있어서 미국과 캐나다도 본래는 역시 영국의 식민지였다는 사실을 밝혀야 하겠다.
이와 같은 영국의 식민주의적 망령은 물론 현대에 이르러서도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현대 21세기에 있어서 제3세계 침략으로 변형된 신식민주의는 영국을 중심한 EU 조직은 가장 잔인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오늘도 아프리카와 중동의 팔레스타인, 시리아와 이란과 이락 등지에서 그리고 동유럽 우크라이나에서 계속되고 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원인을 처음 제공한 나라가 바로 영국이었다. 미국이 EU의 조직을 주도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에 있어서 미국은 영국의 관여와 동의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2. 미국의 사악한 식민주의
세계 식민지 역사에 변화가 생겼다. 그 변화는 식민지에 대한 <영국의 주도>가 <미국의 주도>로 옮겨졌다는 사실이다.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그리고 라티 아메리카에서 식민지 통치의 연장이 미국의 관여 없이 진행된 곳은 전혀 없다.
프랑스가 식민지화했던 베트남도 미국이 주도하는 전쟁에 빠졌으며 쿠바와 남미의 여러 나라들이 스페인의 식민지이었지만 이제는 미국의 신식민지 지배를 받고 있다. 중동에서 볼 수 있는 것도 역시 이락 전쟁과 시리아와 이란 문제 등에 있어서 일련의 세계적인 식민지 통치들이 미국의 주도하에서 자행되고 있다.
미국의 신식민주의가 극성을 부리고 있는 오늘에 있어서 아프리카 출신의 소설가 쿳시(J. Coetzee)가 2004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에서 미국의 식민주의 지배의 사악한 모습들을 밝히 볼 수 있다.
쿳시는 미국유학생활, 영주권자, 교수생활 그리고 베트남 반전운동참가 등 다양한 경험을 통하여 미국에 대한 담론을 미국의 식민주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쿳시는 아프리카의 역사가 비극적인 침략으로 얼룩진 사실에만 한정지우지 않고 미국의 세계적인 식민지 야망에 대하여 미국을 <사탄의 계곡>이라고 혹평을 했다.
미국의 식민주의는 자기들의 야망에 맞지 않으면 세계를 <침몰시키려한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비극적인 역사로 얼룩진 미국의 아프라카에 대한 사악한 식민지 통치를 감안한다면 쿳시의 소설에 나타난 분노를 감히 이해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식 후 냉전시대에서 소련은 미국과 경쟁을 이기는 방법으로서 오히려 식민지 해방과 독립한 신생국들을 옹호했다. 하지만 미국은 독립한 신생국들에 대하여 민족 분열을 부추기고 종족들 사이에 반목과 갈등을 야기함으로써 미국식 식민주의를 새로 형성했다. 미극은 옛 신민지 세대에서 기득권을 소유했던 지주들과 관리들 그리고 군인들에게 특권을 부여하여 민주주의 정착을 방해했다.
미국은 라틴 아메리카에 엄습한 외채위기를 더욱 더 심화시키고 세계은행과 IMF 같은 기구들을 앞세워 시장개방과 금융개방을 강요함으로서 이들 나라들의 주권을 제한하고 경제적 예속을 강요했다. 이것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뿐만 아니라 제3세계 어디에서나 마찬가지다. 이것은 바로 미국 제국주의 하에서 식민주의는 아직 계속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것은 대한민국에서 조금도 다를 바 없는 현실이다. 한국의 제도권 언론들과 TV화면을 장식하는 화려한 선전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미국 신식민주의에 예속된 허상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신식민주의 실체를 똑 바로 보아야 하겠다.
미국의 사악한 식민주의는 언제부터 시작됐나? 스페인, 영국, 프랑스 등 유럽의 세계적 식민지 강국들에 비하여 미국은 오직 북아메리카를 점령한 것 외에 다른 나라를 침략할 힘이 없었다.
하지만 미국이 제국주의 침략국으로 변모한 것은 1898년 스페인-미국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함으로서 스페인 소유의 식민지들을 미국이 소유하게 됨으로부터 시작됐다. 스페인뿐만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의 강대국들이 몰락하면서 미국은 제국주의 국가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은 냉전시대 이후에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계 어느 곳에서나 <친미국가>를 세우기 위하여 혈안이 되여 제3세계 국가들의 분쟁에 개입하여 확대하여 미국제국주의를 화장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UN을 이용하여 마치 <평화의 사도>처럼 행동하면 종교적 위선으로 식민주의를 더욱 견고히 하고 있다.
오늘 미국은 지구상에 130개의 국가들에 759개 이상의 미군 군사기지를 설치해놓고 제국주의 식민통치를 유지하면서 정당화하고 있다. 미국의 전 CIA 테러대책 담당자였던 마이클 쇼위가 2004년에 출판한 책 <제국의 오만>에서 이러한 미국 제국주의적 식민정책의 허상을 밝히 폭로했다.
냉전시대의 종말이 곧 미국 제국주의가 세계를 독점한 것처럼 생각했다. 하지만 근년에 중국의 부상과 소련의 재기가 미국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특히 조선의 미국에 대한 <핵선제공격정책>이 세계적으로 공인되고 있다. 미국 제국주의에 의한 세계 단독지배 시대는 무너졌다.
3. 미국 식민지하에서 한국의 민주화와 통일의 미래
미국이 한국에서 입만 열면 민주주의를 주장한다. 하지만 미국은 겉 다르고 속 다른 위선적 방법으로 한국의 식민주의를 고착시켰다. 제2차세계대전 종식 후 미국은 한국전쟁을 이용하여 소련 공산주의를 방어한다는 맥락에서 보다 높은 방어선으로 38선을 고정시켰다.
미국은 일본이 필리핀을 넘겨보지 못하도록 가쓰라-테프트조약을 체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을 이용하여 한국을 통제하는데 활용했다.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은 야당을 탄압하고 민주주의를 반대하는 박정희 대통령을 응진한다는 공약으로 1977년에 집권했다. 하지만 그의 공약은 오히려 박정희 대통령의 반공주의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줄 뿐이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독재보다 공산주의가 더 나쁘다>라고 주장하면서 전두환 정권을 용인했다. 전두환이 김대중에게 사형을 선고했을 때 레이건 정권의 외교정책팀은 전두환 대통령을 설득시켜 가택연금으로 바꿨으며 결국은 석방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것은 미국의 마음대로 못할 것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제2차세계대전 후 혼란기를 통하여 미국이 주장하는 민주주의는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을 통하여 미국의 국가이익을 충족시키는 방법으로 식민지 통치를 정착시켰다. 그리고 한국에서 미국의 식민지를 정착시킨 것은 아시아 전체에서 모법적인 선례가 되고 있었다.
서구의 식민지 지배를 받은 대부분의 나라들에게 식민통치의 여파가 오랜 동안 남고 있음으로 유령처럼 서구문명의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으며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웬일인가? 한국의 우익 보수주의 학자들은 일본과 미국의 식민지 정책을 <한국의 근대화를 촉진시킨 좋은 계기가 됐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의 식민지 36년과 미국 식민지 70년이 한국의 근대화를 촉진시킨 좋은 결과가 됐다고 미화하는 기막힌 주장이다. 이러한 정신 나간 이른바 보수주의 학자들의 대표적인 사람은 <한국 식민지 근대화>를 주장하는 안병직과 같은 어용학자들이다. 이러한 친미적인 어용학자들은 식민주의 반대와 민족주의를 주장하면 <종북>이라고 매도하여 어처구니없는 노쟁을 일으키고 있다.
이명박근혜 정권의 주장도 역시 마찬가지다. <잘 살기만 하면 일본과 미국의 식민지 아무 문제가 없다>라고 주장한다. 이명박근혜 정권은 이러한 천박한 사고방식과 망국적인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미국의 식민지 정책을 한국의 통치수단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 한국에서 외세의 식민주의가 작용하는 것은 지나간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그것은 현재 한국에서 현 정권 하에서 지속되고 있는 우리 민족 오늘의 악몽이다. 미국의 식민정책이 한국을 지배하고 있는 한 이명박근혜 정권하에서 <되는 일 안 되는 일 없다>는 것이다. 민족통일을 주장하면 절대로 안 되고 외세를 의존하는 행동은 그 무엇이든지 가능한 것은 한국의 국가적 재앙이다.
역사의식에 민감한 50대 이하의 젊은 세대들이 결사적으로 이명박근혜 정권을 규탄하면서 반미와 반정부 시위를 하며 그리고 세월호 침몰사건의 <진짜 원인>에 대한 진상규명을 위하여 투쟁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박근혜 정권이 세월호 침몰의 <진짜 원인>을 감추는 이유는 식민지 군사연습과 무관하지 않다는 의혹이 다음 아고라 등에 끊이지 않고 있다.
<전두환 광주사태> <김현희 kAL기 푝파> <천안함침몰> 음모사건을 비롯한 수 없이 많은 의혹투성이 현대사 사건들 배후엔 항상 미국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런 치욕의 역사가 70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
<국가안보>는 말뿐이고 사실은 <식민지안보>를 위하여 봉사하고 있는 것 아닌가 통탄이 절로 나오는 현실이다.
그럼으로 이번 세월호 침몰도 한국의 민중들이 제아무리 <새월호 수상한 의혹>들에 대하여 물증을 제시하면서 수백 가지 의혹에 대한 증언과 추궁을 할지라도 한국 정부와 박근혜 대통령은 매사에 있어서 동문서답의 애매한 태도만을 취하고 있을 뿐이다. 미국과 관계된 사건이어서 그러는 것 아니겠라는 의혹을 품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서 이런 광경을 찾아 볼 수 있겠는가?
<허겁지겁 빠져 도망간 선장의 숨겨진 행각> < 정체불명의 항해사와 선원들의 뺑소니행각> < 근거 없는 내부폭발설> <세월호 침몰에 대한 보고 시점과 보고의 내용과 보고대상자에 대한 의혹> <무슨 이유로 승객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했나> 너무나 당연히 해결되어야 할 이런 초보적 질문에 대해 왜 정부는 해명은 하지 않고 위협과 협박으로 공포정치만 자행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세계 제3세계, 포스트-식민국가 그 어느 나라에서도 일국의 대통령을 마음대로 세우고 주무르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서슴지 않고 살해도 해왔다. 박근혜는 그와 같은 사건을 목격한 경험자라는 증언들이 많았다.
그럼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일본과 중국에 대하여 이랬다 저랬다하는 발언과 행태들은 자기 자신의 결단이 절대로 아니라 그것은 미국의 암시와 지시에 따라서 좌우되고 있기 때문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특별히 박근혜 대통령의 <남북관계>에 있어서 맥락이 혼돈되는 강온발언을 연속하고 있는 것은 그 이유가 100% 전적으로 미국의 지시와 암시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떠들썩한 로마 교황의 한국 방문은 세계 유일한 분단국 한국을 방문한다고 선전해대던 말과는 아무 보람 없이 4박5일의 방한은 끝나고 말았다. 교황의 여러 번 미사발언 중에 남북화해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으며 남과 북을 위한 공정한 축복의 말도 없었다. 로마 교황도 역시 식민지 종주국 미국의 눈치를 보고 있는 듯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방문을 열열히 환영하면서 세월호 참사사건의 희생자 가족들은 진상규명에 대하여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희생자 가족들의 교황에 대한 요구와 바람은 두 가지이다. 첫째, 세월호는 어째서 왜 어떻게 침몰했는가? 둘째, 박근혜 대통령은 그 날 7시간 동안 어디서 무엇을 했으며 도대체 어떤 보고를 받았나?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이에 대한 답변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희생자 가족들은 교황으로 부터 풍성한 위로와 축복의 말만 계속하여 들을 수 있었을 뿐이고 교황에게서 문제의 해결를 위한 답변의 실마리를 전여 찾을 수 없었다.
로마 가톨릭 교황이 재3세계 나라들을 방문하는 것은 제3세계 나라 민중들의 심정 속에 잊혀져가고 있는 과거의 사대주의적 관습을 또 다시 순간적 군중심리를 일으키는 방문의 효과를 보는 듯 했다. 미국은 이러한 효과를 은근히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생각해 보면 이번 프란체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은 역시 미국의 고차원적 식민지 외교수단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프란체스코 교황이 한국방문 기간 중 대전에서 세월호 참사 가족들로부터 받은 <노란색 리본>을 내내 착용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교황은 보수주의 쓰레기 기자의 왜 노란색 리본을 착용했는가라는 정치적 질문에 대하여 교황은 <인간적 고통 앞에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고 단호히 대답했다.
프란체스코 교황은 자신이 아르헨티나에서 추기경이었던 시절에 탄압을 받는 민중을 위하여 반제국주의 성향의 활동을 직접 하고 있었던 것을 상징적로 표현한 발언이었다고 생각된다.
이번 로마 가톨릭 교황의 한국 방문을 통하여 나타난 한국 제도권 언론들이 보도하는 행태들은 갈수록 극우 보수주의 형태를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었다. 파산으로 치닫고 있는 박근혜 정권의 반북반통일적 심각한 상황을 조중동을 비롯한 제도권 언론과 TV 방송들은 프란체스코 교황의 한국방문을 이용하여 최고의 기회로 삼고 민중의 보수주의 물결을 선동하느라 극성을 부리고 있었다.
프란체스코 교황은 8월 18일 서울 명동 성당에서 4박5일 방한의 마지막 미사를 집전했다. 교황은 미사 강론에서 <예수님의 용서야말로 화해로 이르게 하는 문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교황이 말하는 화해가 <분단된 한국의 남과북의 화해>에 대하여 구체적 언급은 <일언반구>도 없이 그저 성서의 문구들을 인용하는 것으로서 강론을 끝냈다.
세게 유일한 분단국인 한국을 방문한다고 언론들이 요란스럽게 선전한 기대와 분위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떠들석한 흥행적 행사위주의 방문이 되고 말았다.
이 글을 끝 맺으며...
프란체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으로 인하여 한국이 떠들썩하고 있을 때 조선 여자 20세미만 월드컵축구에서 4강 진출을 위한 대결이 캐나다에서 조선-미국사이에 벌어지고 있었다. 2014년 8월 16일 오후 5시에 진행된 조선-미국 대전에서 1:1 열전과 30분 연장전에서도 역시 1:1 무승부로 끝났다.
할 수 없이 패널티킥으로 승패를 가릴 수밖에 없게 됐다. 조선 여자팀은 패널티킥으로 강적 미국을 3;1로 당당히 격파하고 4강 진출권을 쟁취했다.
체격이 미국 선수들보다 훨씬 작은 조선 여자선수들이 아니 미국을 격파 했다니? 참으로 놀랍고 감격스러운 승리의 순간이었다. 그 누가 조선이 미국을 3;1로 격파하여 미국을 참패하게 할 줄을 예측이나 했겠는가?
조선이 미국을 격파했다는 뉴스에 전 세계 축구계가 이구동성 놀라움을 표하고 있다. 어찌 축구계에서 뿐이겠는가? 국력이 약하면 자연이 강대국에게 승리를 빼앗기고 수모를 당하는 것이 오늘의 냉철한 국제정세이다.
2012년 8월 25일에 조선에서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참석하여 선군절 축하연회를 개최했다. 그러면서 김정은 제1위원장은 <미국이 우리를 군사적으로 압살하려고 핵전쟁연습을 하면 우리도 미국에 대처하기 위하여 핵으로 년례화와 정례화하여 앞으로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보다 높은 단계를 취하여 미국을 참패하게 할 것이다>라고 했다.
작은 조선의 여자축구선수들이 강적 미국을 격파한 것을 보니 북의 당당한 선포가 그저 빈말로만 보이지 않는다.
(유태영, 8/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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