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현당 치유 격려를 온 이정희 대표와 김승교 변호사의 따뜻한 담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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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양현당에 들기까지
전남 화순에 있는 양현당(민족생활교육원)에 들어 단식하면서 해관 장두석 선생님으로부터 스스로 병을 치유하고 예방하는 길을 배워온지 오늘로 꼭 31일이 되었습니다. 길지 않은 기간이지만 그사이 몸도 마음도 새로 태어나고 있다고 느낄 정도로 나 자신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지난해 10월 중순에 받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건강검진(꽃마을한방병원) 결과 2차 검진(간 부위)을 받으라는 통보가 왔고, 미루다가 12월초에야 상계백병원에서 간정밀검사를 받아 12월 11일 그 결과를 들으러 갔다가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간암이라는, 종양크기가 11cm 정도 된다는, 하여 이대로는 수술이 어렵고 색전술을 통해 크기를 줄여놓은 후 수술하자는 담당의사의 소견이었습니다.
그 다음날 고대안암병원으로 옮겨 상계백병원에서의 검사결과를 전달하고 그 소견을 들은 후, 다시 검사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14일 난생 처음 입원이란 걸 했고, 15-16일 이틀에 걸쳐 X-ray, 피검사, CT, MRI, 전신 PET-CT 등등 상태와 수술가능여부를 판단할 여러 검사를 받았습니다. 검사 결과는 같았습니다. 다만, 색전술의 효과가 미미할 것 같고 종양의 진행속도가 빨라 이미 문맥을 침범하기 시작했으니 바로 다음날(17일) 절제수술을 하자는 소견이었습니다. 또한, 다른 부분에 전이가 아직 안되었고, 간기능도 현재론 정상이며, 다른 모든 기능도 정상이므로 현상태에서도 수술이 가능하고 최선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대로 두면 6-11개월 생존하고, 수술하더라도 임상경험상 80%이상 재발하며 그러면 짧게는 1년에서 길면 2년 산다는, 그래도 현상태에서 수술이 최선이라는 솔직한 소견도 들었습니다.
처와 지인 극소수 외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한채(심지어 부모형제와 아들·딸에게도) 바로 수술할 수는 없어, 수술 날짜를 22일(월)로 늦추고서 처와 동지들과 상의한 결과 16일 오후 퇴원하고 바로 전남 화순 양현당으로 향했습니다. 때마침 내린 폭설로 길이 험해져 도중에 하룻밤을 묵고 17일 오전에 도착해 장두석 선생님을 뵙고, 병원에서의 수술과 치료를 포기하는 대신 양현당에서 스스로 치유·치료하는 길을 택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런 결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결단할 수 있었던 것은 과거 장두석 선생님이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라는 통일운동단체의 설립시(2000년) 상임공동대표를 맡으셔 활동하셨기에 그 인연으로 평소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믿음이 컸고, 나를 이곳으로 이끈 벗들에 대한 신뢰가 있었으며, 스스로도 나에게 이렇게 빨리 닥치리라고는 전혀 예상을 못했지만 ‘내가 만약 그 언젠가 불치의 중병이 걸린다면 여생 동안만이라도 할 일을 다하며 즐거이 인간답게 살다 가지 병원의 쇠사슬에 매여 그 그늘 아래에서 생명만을 연명한 채 몸도 마음도 시름시름 꺼져 가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평소 다져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수술이 대성공한다고 해도 길어야 2년 생존이라는데 그 2년도 수술후유증으로 거의 요양원 신세를 면할 수 없는 게 병원치료였습니다.
어쨌든 예기치 않은 일로 느닷없이 양현당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2. 양현당에서 1개월을 보내며
양현당에 들어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나 스스로 치유·치료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여기의 치유법이, 나의 생명과 운명을 남모르는 타인에게 의지한채 그 처분만을 바라보기보다 ‘내 몸안의 의사(醫師)인 자연치유력(自然治癒力)’을 일으켜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자신의 병을 스스로 고치고 예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몸의 각종 독소와 장기(臟器)를 대청소하고 기능을 강화시키며, 본래의 피부기능을 되살리고, 체질과 체형을 개선하며, 몸의 자연치유력을 높이면 내몸 스스로가 병을 예방하고 치유할 수 있다는 이치입니다. 선생님도 한달여 사이에 ‘자기 병은 자기가 고치는 것이여’, ‘자기 말고는 아무도 고칠 수가 없어, 의사나 약은 절대로 고칠 수가 없어’, ‘자기 병을 고칠 사람은 자기밖에 없어, 달리 의사나 약이 없어’라는 말씀을 수십회나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늘상 강조하셨습니다. ‘내가 하기 나름이다’, ‘나의 의지와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라는 것은 참으로 매력적이며 삶에 대한 새로운 의욕과 투지를 불러일으키는 데 더 없이 좋은 방법이 아닐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양현당에서의 생활은 그 어느 하나도 쉬운게 없었습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는 것도 버거운 일이었지만, 단식이라는 것도 시국으로 길거리에서 길게는 10여일까지 몇차례 해본적은 있지만 이렇게 한달여 장기간이나 그것도 매일 관장과 규칙적인 생활 및 운동을 겸하며 한다는 것은 해본 적도 생각해 본적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냉온욕(7냉6온)도 평생 한번 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고, 풍욕(창문열고 알몸으로 각1-2분내외 12번 이불덮고 11번 이불벗은채 각종 운동하는 것)은 아예 들어본 적조차 없는 일이었으며, 심지어 소금(볶은소금)으로 이닦기뿐만 아니라 관장(灌腸)이란 것도 난생 처음 해보는 일이었습니다. 20분이상 뜨거운 물에 발을 담그는 족욕(발물)도 처음해보는 일이었습니다. 하루 6-7회 이상 대변을 위해 화장실을 들락날락해야 하는 일은 고역 중에 고역이었습니다. ‘40분 합장’도 해보았고, ‘기초적인 뜸’도 배웠습니다. 매일 오전 선생님으로부터 배우는 내용도 생소하고 놀랄만한 것 투성이였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낯설고 생소한 것들이었지만, 새로 태어나야겠다는 투지로 하루하루를 적응했고, 그 결과 불과 며칠만에 추위에 대한 내성이 매우 강해질뿐만 아니라 몸도 마음도 매우 편해지고 가뿐해짐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초경부터 간부위에서 빈도와 강도가 점차 높아져온 결림증상(통증)과 이질감 또한 단 며칠만에 현격히 줄고 얼마안가서는 그 마저 거의 못느낄 정도로 좋아졌습니다. 하여, 한달여 장기단식을 하면서도 이전과 달리 이번에는 이상하리만치 한번도 배고프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한채 바삐 지낼 수 있었습니다. 짧지만 한달여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 귀하고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또 하나 큰 기쁨은, 양현당에 든지 사흘째 되던 날 엄마를 따라 면회온 둘째아들(초등5학년 12살)이 선생님에 의해 눌러 앉혀져 같이 지내게 된 것이었습니다. 한달여를 한이불아래 같이 잠자고 생활하므로 인해 서로 정(情)도 쌓고 많은 위안이 되었지만, 생후 1-2년경부터 10여년을 고생해온 아들의 아토피를 치유하게 된 것이 무엇보다 큰 기쁨이었습니다. 때마침 아토피가 가장 심해져 있어 온몸이 긁은 상처자욱으로 발부터 얼굴과 머리까지 성한 곳이 거의 없을 정도였는데, 9일 단식과 최상의 회복식 및 오곡생채식으로 아토피가 거의 말끔히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잠자리에 누웠을 때 몸을 긁어주지 않으면 잠들지를 못하던 10여년의 고질적 가려움도 불과 며칠만에 없어졌고, 7-10여일이 지나자 밤에 무의식적으로 온몸을 긁어대는 버릇도 거의 없어져 잠을 편안하게 잘자게 되었고, 밤마다 이부자리에 수북히 쌓이던 각질도 없어져 갔습니다. 심해졌을 때 가끔씩 먹어왔던 약도 한알 먹지 않고, 매일 아침과 취침시에 바르던 보습제조차 전혀 바르지 않고 지냈지만, 팔·다리부터 점차 몸안쪽으로 좋아져 온몸 대부분이 또래 아이들의 피부를 되찾고 있습니다. 참으로 고맙고 다행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병원은 10년을 가도 못고쳤고 방법이 없다던 것을, 양현당은 단 한달만에 체질을 바꾸며 근본적인 치유의 길을 열어놓은 것입니다. 이것만으로도 민족생활의학과 양현당의 치유법이 얼마나 올바르며 위력적인지를 백분 실감하고 남는 일이었습니다.
양현당을 찾는 사람들 대부분은 온갖 병마에 시달려온 중환자들이었습니다. 특별한 병명은 없지만 고질적인 이상증세를 느껴 건강차원에서 찾은 분들도 가끔 계셨지만, 대부분은 중증환자들이었습니다. 예컨대, 어느날 3명이 함께 한방에서 알몸으로 나란히 앉아 풍욕하다가 생각해보니 모두가 각각 병원이 붙여놓은 병명으론 소위 폐암말기, 담낭암말기, 간암말기 환자들이었습니다. 그 중에는 수차례의 절제수술과 항암치료를 받다가 병원이 포기하여 뒤늦게 찾은 분들이 많았고, 저와 같이 수술도 항암치료도 전혀 받지 않은채로 오는 경우는 오히려 적어 보였습니다. 나이도 남녀노소 십대초반에서 70대까지, 직업도 다종다양, 병의 이름과 진행정도도 각양각색, 거주지역도 국내 전국각지는 말할 것 없고 미국·중국에서 오신 분들까지로 정말로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함께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수술을 받은 이후든지 이전이든지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온갖 질환으로 시달려온 중환자들이었지만, 선생님께서는 개의치 않고 받아들여 ‘병은 없다’, ‘병은 병원이 붙인 딱지일뿐 본래 병은 없는 것이다’, ‘병은 잘못된 식·의·주 생활과 반자연적 생활 및 햇빛·산소·물·소금·비타민C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다’, ‘병은 몸의 균형과 조화가 깨어져 몸이 알려주는 경고일 뿐이다’, ‘스스로 고치지 못할 병은 없다’는 지론과 소신을 거듭거듭 일깨워 주시려 애쓰셨습니다. 저는 자신의 변화(증세의 호전)와 아들의 변화(아토피 치유)뿐만 아니라, 정기교육에서 스스로 병을 고친 여러 체험사례를 당사자본인으로부터 직접 듣거나, 병원이 선고한 소위 ‘시한부 불치의 병’을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고치고 이겨낸 분들이 감사인사를 드리러 찾아오는 경우 등을 자주 지켜보면서 이를 더더욱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양현당은 자기치유의 기초를 닦고 준비를 시켜 내보내는 곳이니, 결국 자기 병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지는 온전히 자신에게 맡겨져 있는 것으로, 양현당을 나선 후가 오히려 문제이고, 평생에 걸친 자기관리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에, 선생님이 틈나는 대로 늘상 수회에서 수십회 강조하시던 <바른생활 건강수칙>을 기억나는 대로 정리해 둡니다. 이후, 병마를 끝내 이겨낼지, 또 얼마나 건강하게 더 오래살지는 이 가운데 얼마나 실천하며 살 수 있을지에 달려 있겠지요.
O 식(食) 생활 -백미·고기 대신 현미오곡밥(현미·보리·콩·조·수수·기장·밀 등)과 채식 위주로 식사하기 -발효식품(김치, 간장, 된장, 고추장, 젓갈류, 장아찌, 식초 등)을 먹기 -집에서 직접 만든 간장, 된장, 고추장을 사용하기 -열성이 강하고 살균력이 좋은 무, 생강, 마늘, 고추, 양파, 파 등을 먹기 -내 고장에서 나는 제철음식 먹기 -좋은 소금(죽염, 볶은소금 등)으로 짜고, 맵고, 시고, 달고, 쓰게 먹기 -물 많이 마시기(생수 하루 2.5리터 이상) -좋은 소금(볶은소금)으로 양치질하기 -적게 먹고, 아침을 안먹기(매일 단식 효과) -화학조미료·첨가물이 든 음식 안먹기 -양식어류, 사료먹여 키운 육류 안먹기(항생제, 방부제, 부신피질호르몬제 등 범벅) -각종 가공식(즉석식품), 과자류, 청량음료류 안먹기 -기름에 튀긴 음식 안먹기 -설탕 안먹기 -치약(계면활성제 등 화학성분)과 화학세제(주방용·세제용) 사용 안하기 -탈나면 관장하고 단식하기
O 의(衣) 생활 -통풍이 잘되는 옷 입기(산소공급, 피부기능 및 혈액순환) -천연섬유·면소재로 된 옷 입기 -밝은색 위주로 옷 입기 -바닥이 부드러운 신발신기(굽 높은 신발 안신기) -허리띠 졸라매기(대맥 자극) -남녀불문하고 삼각팬티 안입기(혈액순환 저해) -특별한 경우 외 브라자 안차기(혈액순환 저해) -몸에 꽉끼는 레깅스 등 안입기(혈액순환 저해) -머리염색 안하기 -비누·샴푸·스프레이·젤 사용 안하기 -먹을 수 없는 것(화장품)은 피부에 쓰지 말 것
O 주(住) 생활 -햇빛이 잘드는 남향집에서 거주하기(햇볕받기) -땅기운을 받을 수 있는 낮은 층에서 거주하기(예컨대, 단독주택 1-2층) -항상 통풍이 잘되게 하기(산소공급) -방바닥에 앉는 생활을 습관들이기 -딱딱한 바닥에서 살기(오동나무평상 등) -머리베게 대신 목에 경침베고 자기 -쇼파·식탁 등에서의 생활을 최소화하기
O 기타 -아침마다 냉온욕하기 -매일 풍욕(바람냉온욕)하기 -하루 30분이상 햇볕 쬐기 -운동을 많이 할 것 -병원의 수술 안받고, 약(화학합성물질·석유찌꺼기) 안먹기 -출산시 자연분만하기 -분만후 100분이상 알몸으로 두기 -2년간(최소1년) 모유 수유하기 -각종 예방접종 안맞히기 등등
3.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단식은 꼭 한달로 끝났고, 회복식을 얼마간 한 후 1월말경에는 이제 저 역시 양현당을 나섭니다. 정작 양현당을 나설 시간이 다가오니 걱정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마침 국가는 변호사자격정지를 시켜 앞으로도 4년여 동안이나 자유(?)로운 시간을 주었고, 동료들도 병치료에 전념하라며 1년의 휴가(?)를 주었기에, 좀 나은 처지이지만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적으론, 의(衣)생활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특히 식(食)생활 문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주(住)생활도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저 혼자 결단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가족들의 협조와 동참이 없이는 될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온 사회가 식의주(食衣住)는 말할 것 없고 생활 전반을 바꾸어야 될 일이고, 의료체계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될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여, 결국엔 온 국민의 사회적 문제이고, 국가가 나서서 책임져야 할 국가적 문제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생님께서 늘상 강조하시듯이 ‘간염 하나도, 피부병(아토피) 하나도 고치지 못하는 병원’, ‘고혈압, 당뇨병, 갑상선질환마저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는 병원’에만 온 국민을 붙들어 매놓고,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전통이 담겨있는 민족생활의학, 대체의학, 민간의학을 불온시·불법시하고 고사시켜가는 국가정책이 그대로인 한 개인의 건강도 국민들의 건강도 날로 악화될 것임은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저의 경우만을 놓고 보더라도 국내 굴지의 종합병원들이 ‘수술하더라도 시한부’라는 사실상의 사형선고를 내린 셈이지만, 그러한 병원의 판단과 달리 기적으로 치부되는 숱한 사례들이 이미 존재하거니와, 만에 하나 제가 이런 민족생활의학으로 병마를 극복하고 온전해진다면 병원의 존재의미와 역할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심각하게 회의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살 수 있는 사람’을 ‘병원이 붙들어 매어 결국 죽여 놓는’ 합법적 살인면허를 부여받고 합법적 살인을 자행하는 셈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하여, 오늘의 민족생활의학과 이를 온 사회에 전국화·대중화하려는 생명살림운동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고 소중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하여, 저 역시 저 자신을 위해서라도 선생님의 가르침을 평생토록 새기며 실천하려 노력하는 한편, 이제 한달여 아직 아는 것도 경험도 일천하지만 이러한 생명살림운동에도 힘 닫는대로 함께 참여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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