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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23일 금요일

'피켓 알바'하는 60대 여성 이야기...

"강남 한복판에서 서서 밥 먹고... 며느리는 몰라"

15.01.24 09:46l최종 업데이트 15.01.24 09:46l


강순임(가명·61)씨는 두 달 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지인의 소개로 시작한 '피켓 알바'였다. 하는 일은 간단했다. 기다란 봉으로 연결된 광고판을 들고 서 있기만 하면 된다. 전단지를 나눠줄 필요도, 소리를 지르며 호객행위를 할 필요도 없다. 순임씨의 임무는 지정된 구역에 발을 붙이고 정해진 시간 동안 서 있는 일이다.

피켓 알바는 일종의 '꼼수' 광고다. 인도 한복판에 입간판을 놓으면 제재를 받지만, 사람이 들고 있는 경우 단속반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구청 도시계획과는 "집회나 시위가 아닌 광고물의 경우 구청이 압수까지도 할 수 있어 이를 피하기 위해 사람을 고용한다"며 "하루 두 번 단속을 나가지만 통행에 지장을 주는 정도가 아니면 주로 경고를 주는 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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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역 근처에서 한 여성이 홍보용 피켓을 들고 '피켓 알바' 중이다. 순임(가명,61)씨와 상관 없는 사진입니다.
ⓒ 이유진

유동 인구가 많은 강남역과 신촌, 종로 부근이 피켓 알바가 가장 많은 곳이다. 광고 업종은 주로 학원, 음식점 등이다. '피켓 알바생'도 청·장년, 남녀를 가리지 않고 다양하다. 순임씨는 하루에 네 시간을 일하고 3만6000원을 받는다. 시간당 9000원 꼴이다. 

대개 피켓 아르바이트의 시급은 7000~10000원 선이다. 최저임금을 웃도는 시급이지만, 수천만 원에 달하는 옥외광고비나 최대 500만 원의 불법 옥외광고물 과태료에 비하면 훨씬 저렴하다. 고용주 입장에서는 광고 효과로 보나 과태료로 보나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 더 이익인 셈이다.

시급이 높은 만큼 감수해야 하는 일도 많다. 어떤 곳은 휴대폰 사용 자체를 금하기도 한다. 순임씨는 첫째로 추운 게 가장 힘들다고 했다. 그는 무릎까지 오는 패딩 점퍼를 입고 부츠를 신고 있었다. '피켓 알바'에겐 털모자와 목도리를 비롯한 방한용품이 필수다. 그는 가끔 스키 장갑을 낀 손으로 답답한 듯 마스크를 벗기도 했다.

순임씨가 거리로 나온 이유는 "집에서 놀고만 있을 수 없어서"였다. 그의 남편은 도배 일을 하는데, 겨울이라 일이 많이 없다고 했다. 작은 아들의 대학 등록금을 내기 위해서는 그와 남편 둘 중 누구라도 일을 해야 했다.

"소일거리 삼아서 일을 시작하게 됐지. 막내아들이 군대 갔다 와서 아직 대학생이라 대학 등록금 내야 하거든. 아들 졸업할 때까지만 해야지."

"한쪽 팔에 피켓 끼고 밥 서서 먹을 때가 제일 서글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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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임(가명, 61)씨가 저녁밥을 담아 왔던 도시락통을 흔들며 보여 주고 있다.
ⓒ 이유진

순임씨는 일하는 동안 끊임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다.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는 일은 이미 적응했지만, 아직도 적응되지 않은 일이 하나 있다. 끼니를 때우는 일이 그랬다. 식사 때와 겹친 근무 시간 때문에 그는 일을 하며 밥을 먹는다고 했다. 그는 가방을 여니 도시락 두 통과 우비가 들어 있었다. 

"밥 서서 먹을 때가 사실 제일 서글퍼. 시간이 애매해서 안 먹으면 또 배가 고프잖아. 피켓 한 팔에 끼고, 다른 손으로 한 입 넣고 씹고, 한 입 넣고 씹고... 사람들이 이렇게 내가 밥 먹는 걸 쳐다보면서 지나가면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서럽기도 하고. 비 오는 날은 우산을 피켓에 끼워 놓고 비를 피하면서 밥을 먹어. 참... 서글프지. 그럴 때."

그가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는 이유는 아들 덕분이다. 아무리 춥고 힘든 하루였어도 집에 들어와 아들을 보면 힘든 게 눈 녹듯 없어진다고 했다. "엄마가 고생하는 걸 알아서 아들이 집안일을 다 한다"며 그는 길게 아들 자랑을 했다.

"좀 힘들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다녀. 작은 아들은 나를 되게 안타까워 해. 집에 가면 아들이 '엄마 고생했지'하고 그럼 나도 '엄마 추웠어, 안아줘'하면서 애교를 부리게 되더라고. 그 때 추운 거고 뭐고 싹 잊는 거야. 그게 내 낙이야. 돈 버는 건 힘 하나도 안 들어."

돈 벌기 위해 길거리로 내몰리는 60대 

비가 온다고 쉴 수도 없다. 피켓 아르바이트 일은 365일 내내 휴무가 없다. 비가 오면 우비를 입고 우산을 쓴다. 그는 한 손에 피켓, 한 손에 우산을 들고 있으면 팔이 많이 저리다고 했다. 비가 오지 않는 날도 서 있는 일이 힘든 건 매한가지다. 그는 발바닥에 굳은 살이 박이고 염증이 생기는 족저근막염을 앓고 있다고 했다. 일반인에게도 힘든, 오래 서 있는 일을 그는 아픈 몸으로 버티고 있었다. 이 일이 그가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찜닭집에서 설거지를 했어. 마트에서 바나나를 팔기도 하고, 빌딩 청소도 해봤고 전단지도 돌려 봤지. 그런데 나이 먹으니까 할 일이 없어. 60살 넘은 여자 잘 안 쓰거든, 체력도 달리고 느리니까. 60살 넘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전단지 돌리는 일이나 청소, 식당 뒤에서 설거지 하고 이런 일들뿐이야. 식당에서도 서빙으로는 안 써줘."

실제로 60대 여성의 일자리 수요는 늘어나는 반면, 이들에게 공급되는 일자리는 질 낮은 시간제 일자리인 경우가 많다. 지난해 7월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기준 비정규직은 591만1000명으로 1년 새 17만9000명이 증가했다. 이들 중 절반이 넘는 11만3000명(63.1%)이 55세 이상 여성이었다. 

고용노동부는 '2013~2023 중장기 인력수급전망 및 시사점'에서 여성과 장년층의 경제활동참가율이 2013년 대비 2023년에는 각각 56.2%(6%p↑), 55.4%(7.9%p↑)로 오를 것이라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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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1월 넷째주 강남역 거리.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 이유진

"자식들한테 짐이나 안 되고 싶은 마음"

둘째 아들과 달리 첫째 아들은 그가 이 일을 하는 것을 모른다. 순임씨가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혹시 당신 탓에 아이들이 자신감이라도 떨어질까 봐 걱정이 된다고 했다. 첫째 아들의 사돈이나 며느리가 알게 되면 혹시 흉이 되진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원래 엄마들은 자식한테 제일 부끄러운 거야. 초라하잖아. 첫째는 서른이 훨씬 넘었고 결혼도 했어. 서른이 넘고, 아들이고 하니까 좀 어려운 부분이 있지. 혹시 엄마를 부끄러워하진 않을까 해서 일 하는 걸 말을 안 했어. 내가 이렇게 스키장갑까지 끼고, 안 메던 백팩 메고 나가면 아들이 그래, '엄마 대체 맨날 어딜 가는 거야? 등산이라도 가?' 그러면 '비밀이야' 하지. 큰아들은 아직도 내가 이 일 하는 줄 몰라."

그는 "계획 없이 살아온 죗값"이라며 한숨을 쉬기도 했다. "한 가지 기술이라도 배워놨으면 이러고 있지는 않았을 텐데"라며 자조 섞인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그는 이 일이 좋다고 했다. 할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매일 매일 출근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며 말이다. 그는 앞으로도 일은 계속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집에만 있으면 그것도 참 심심해. 매일 갈 곳이 있고 할 일이 있고 그런 게 필요해. 앞으로도 그래서 일은 계속 할 거야. 나는 그냥 자식들한테 짐 안 되고 싶은 마음이지. 문제는 뭘 하고 살아야 되나 그거야. 잘 살지는 못해도 나는 내가 책임져야 할 텐데..."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21기 인턴기자 이유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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