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1.21 10:27
최종 업데이트 15.01.21 10:46
▲ 한 검찰관계자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을 오가고 있다(자료사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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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아래 민변) 회원들이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검찰의 과거사 사건 수임 수사가 민변을 표적으로 하는 것은 분명한데, 수사 대상 수임행위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과거사 사건 수임 비리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부장 배종혁)가 21일부터 나와 조사를 받으라고 통보한 변호사 7명 중 6명은 민변 소속이다. '수사 대상 중에 민변 소속도 있다'가 아니라 민변이 주 수사대상인 셈이다. 과거사 관련 위원회 활동과 재심·배상소송에 발 벗고 나선 이들이 주로 민변 소속이었기 때문인 점이 크다.
검찰은 수사대상 변호사들이 '공무원·조정위원 또는 중재인으로서 직무상 취급하거나 취급하게 된 사건'에 대해서는 변호사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한 변호사법 31조를 위반했다고 간주하고 있다.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등 과거사 관련 국가위원회 위원은 공무원 신분이고, 이때 맡은 사건을 변호사로서 다시 맡아 재심·국가배상소송을 진행한 건 명백한 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민변 "권력 이용한 표적·보복·정치탄압"
이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민변은 즉각 "민변 소속 변호사들에 대한 징계개시신청에 이은 검찰의 과거사 관련 수사 또한 합법적 권력을 이용한 표적∙보복∙정치 탄압에 불과하다"라고 반발했다.
그러나 이런 사건 수임행위는 '공무원 재직 때 입수한 정보를 사건 수임에 활용해서는 안 된다'는 변호사법 취지를 위배했다는 게 변호사들의 중론이다. 과거사 관련 위원회에서 상임위원으로 활동한 민변 소속 A 변호사는 "변호사법 상 수임금지 대상이 된다고 생각한다"라면서 "위원회 활동을 마친 뒤 내가 맡았던 사건을 소송을 진행해달라는 요청도 있었지만 수임금지 조항을 의식해 맡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형사처벌하거나 도덕적으로 비난할 일은 아니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민변 소속 B 변호사는 해당 변호사들이 수임료를 과다하게 받지 않았다는 전제 아래 "국가에 피해를 당한 사람의 권리구제 후속조치로 사건을 맡아서 진행한 공익 목적의 수임으로 봐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했다. 또 "피해자들도 과거사 사건에 적극적인 변호사들이 별로 없어 결국 사건을 잘 알고 도와주려는 변호사에게 맡기려는 게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민변 소속이 아닌 C 변호사는 "과거사 관련 위원회 때 직접 심의한 사건을 수임했다면 분명히 위법이고 법적 처벌은 물론 도덕적인 비난도 피할 수 없다"라면서 "수임료를 받지 않았다 해도 위법으로 보인다"는 의견이다.
표적수사 아니라지만... 까마귀 날자 배 떨어졌나
변호사법을 위반한 과거사 사건 수임에 관해서는 민변이 명분면에서 밀리는 상황이지만, 이를 처벌하겠다고 나선 검찰을 보는 시선도 곱지 않다. 일단 표적수사라는 의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민변 소속이 아닌 D 변호사는 "검찰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대한변협에 민변 변호사들을 징계 요청한 것과 같은 맥락에 있는 걸로 보인다"라고 평했다. 민변 변호사들이 유우성씨 간첩사건이나 보위사 직파간첩(홍아무개) 사건에서 무죄를 받아낸 데에 검찰이 보복으로 민변을 털어 먼지를 찾아낸 게 아니냐는 것이다.
검찰은 "2014년 9월 서울고검에서 수임규정 위반으로 변호사 1명을 수사의뢰했고 이후 비슷한 사례가 추가 확인돼 12월 16일 법조비리전담 부서로 재배당했다"라면서 "11월 3일 (민변) 변호사 7명에 대한 징계신청 이전부터 조사가 진행됐으므로 특정 변호사 단체를 공격한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는 해명이다. 하지만 선후관계와 상관없이 간첩사건 무죄 뒤 진행됐다는 공통점은 확인된다.
2000년 10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활동을 개시한 이래, 과거사 관련 위원회 결정에 이은 재심·국가배상소송 판결이 나온 지는 10여 년이 넘었다. 이제야 검찰이 수임규정 위반 문제를 처벌하겠다고 나선 것도 석연치 않다.
"과거사 사건 배상청구 위축시키려는 움직임"
대법원이 지난 2011년 1월 과거사 피해자의 손해배상 지연이자의 계산 기준일을 불법행위 시점에서 민사 항소심 변론종결일로 바꾼 이후, 정부는 과거사 소송당사자들의 계좌 가압류 등 지연이자 초과지급액을 돌려받기 위한 조치를 강화해왔다.
박근혜 정부는 과거사 피해자들에게 부당이익금 반환 소송을 적극 제기해 승소하고 있다. 그 한 예가 지난해 4월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 유족들이 배상금과 지연이자로 이미 지급받은 금액 절반가량을 국가에 돌려줘야 한다는 판결이다.
이에 더해 이번에는 검찰이 과거사 사건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에 적극 나섰던 변호사들의 수임규정 위반을 들춰낸 것이다. B 변호사는 "검찰이 10년 넘게 전혀 문제삼지 않다가 지금 위법이라고 나선 상황을 보면, 민변을 표적으로 하는 동시에 과거사 사건에 대한 재심이나 배상청구를 위축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하다"라고 평가했다. A 변호사도 "박근혜 정권이 국가의 과거 잘못에 대한 배상청구를 축소시키려고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독재정권 탄압 피해자들의 모임인 과거사 단체들의 시각도 이와 비슷하다. 검찰의 이번 수사를 비롯한 일련의 흐름이 과거사 청산 성과를 무력화하고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다.
민청학련계승사업회,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희생자 전국유족회,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등의 회원 30여 명은 20일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과거사 관련 위원회의 결정에도 정부가 아무런 배상을 하지 않아 변호사들과 함께 길고 긴 소송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라면서 "이 변호사들에 대한 수사는 피해자들로부터 최소한의 법적 조력을 받을 권리마저 빼앗아 벼랑 끝으로 내몰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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