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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이슬람에 대한 풍자 만평을 이유로 테러를 당한 ‘샤를로 엡도’사건에 대한 위로전문을 프랑스에 보냈다고 한다. 북한 체제를 풍자한 영화 ‘인터뷰’를 제작한 소니영화사를 해킹한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북한이 테러의 맥락에서 도매금으로 비난받는 것을 우려한 조치라는 게 언론들의 분석이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해온 조총련 기관지인 ‘조선신보’도 이런 맥락에서 북한의 위로전문 소식을 전했다.
종교와 이념에 상관없이 21세기 지구촌에서 절대적 권위나 국가권력에 대한 미디어의 풍자나 비판이 말이나 논리가 아닌 물리적 위력으로 탄압받거나 제거돼선 안 된다는 ‘표현의 자유’의 가치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소식이다.
섹스와 코미디 코드가 잡탕처럼 버무려진 ‘쓰레기’ 영화라는 평가도 받지만, 영화 ‘디 인터뷰’는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담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현실적으로 잔인한 독재 권력자다. 고모부인 장성택을 체포 직후 전격 처형한 것만 보더라도, 그는 신랄한 풍자의 대상이 될 만한 젊은 독재자다. 오사마 빈라덴 사망 이후 최고의 ‘악당’을 찾아다니는 미국 헐리우드 자본에게 김 위원장은 최고의 소재가 아닐 수 없다.
물론 북한학 학자들의 연구들을 참고해보면, 영화에서와는 달리 김정은 위원장의 개인 장악력은 오히려 선대인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위원장에 비해 상당히 약해졌다고 보는 게 객관적 분석이다. 그도 그럴 것이 별다른 정치적 업적도 없이 28살 나이에 단지 ‘백두혈통’이라는 이유로 무임승차한 젊은 지도자가 선대처럼 절대적 권위를 갖고 권력을 장악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을 것이다. 권력의 분산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래서 김정은 체제의 권력은 내각과 당 관료체제로 상당히 분산되고 있다고 한다. 또한 김정일 체제에서는 소위 고난의 행군시대라는 체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군을 전면에 앞세우면서 ‘선군사상’이란 말이 생길정도로 군의 위상이 커졌지만, 김정은 체제에서는 ‘군’과 ‘경제’를 병행하는 노선을 천명하며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인민생활개선이란 명분아래 경제를 살리기 위해, 군에게 쏠렸던 권력 또한 내각과 당으로 힘을 분산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북한체제 내 권력구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 변화가 북한 주민들 삶의 향상과 남북 및 국제 관계 개선의 성과로 나타나지 않는 이상, 개인숭배와 1당 독재체제로서 북한체제는 헐리우드 등에서 풍자와 조롱의 소재가 계속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러나 이 B급 헐리우드 영화가 신년 초에 기자의 관심사로 떠오른 이유는 북한 김정은 체제를 풍자하고 조롱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한국의 지도자인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신년기자회견을 예정하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난해인 2014년 박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은 '각본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청와대 출입 기자들이 사전에 질문 내용을 청와대에 통보하고 그에 따라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바람에 ‘짜고치는 고스톱’, ‘각본’에 따른 기자회견이란 비난을 받았다. 각본에 따라 질문연기를 한 배우로 전락했던 청와대 출입 기자들은 언론계 안팎에서 큰 곤혹을 치렀다.
영화 ‘인터뷰’에서도 유사한 장면이 나온다. 인터뷰어(인터뷰하는 언론인)인 인터뷰쇼의 진향자는 인터뷰이(인터뷰 대상자)인 극중 김정은 측의 요청대로 인터뷰 질문을 미리 조율한 것이다. 언론이 독자들이나 시청자들을 대신해 진실을 이끌어내려는 인터뷰를 하지 않고, 인터뷰 대상자의 홍보 창구로 전락하는 것이다. 물론 영화에서는 극적 반전이 나타난다. 전 세계로 생방송되는 상황에서 진행자가 약속한 질문을 던지지 않고, ‘돌직구’ 질문을 날리면서 인터뷰이의 진면목을 드러나게 한다는 것이다.
12일 예정된 청와대 기자회견 역시 지난해 ‘각본’논란을 의식했는지 질문내용을 청와대에 사전 통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대통령이 기자들에게 어떤 질문을 받을지 모른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기자들 사이에서는 질문 유출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질문의 중복 문제 등으로 기자들 사이에서 질문이 사전 조율이 되다 보니, 공식적으로는 사전 통보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청와대측이 사전에 친분있는 기자들로부터 파악해 낼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결과적으로 내용상으로 ‘각본기자’회견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12일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에게 질문을 던질, 선발된 9명의 기자들 각자에게 이런 주문을 해본다. 영화 ‘인터뷰’의 진행자 처럼 사전에 조율된 질문 말고, 대통령의 진솔한 답변을 이끌어 낼 돌직구 질문을 준비해 볼 것을 말이다. 영화처럼 적진에서 질문하는 것도 아닌데 목숨을 걸 정도는 아니지 않은가. 12일 오전 국민들을 대신해 예상치 못한 돌직구 질문으로 대통령으로부터 준비되지 않는 진솔한 답변을 이끌어 내는 용감한 ‘영웅’ 기자의 탄생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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