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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18일 일요일

편집실의 창

편집실의 창

김종대 2015. 01. 19
조회수 1494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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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안한 기자회견 풍경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은 여러모로 인상적입니다. 대통령 주변 좌석에 비서실 참모들을 앞줄에 앉히고 뒤쪽에는 총리와 장관을 배석시켰습니다. 우리 헌법과 정부조직법은 대통령이 총리를 통해 각 부 장관을 통할하면서 정부가 유지되는 대통령중심제입니다. 대통령이 신년 국정구상을 밝히는 자리라면 대통령과 총리, 장관들이 함께 기자회견을 하는 자리여야 합니다. 그런데 김기춘 비서실장, 김관진 안보실장과 수석들이 앞자리를 채우고 그 뒷줄에 국무위원들이 꿔다 논 보리자루같이 앉아있는 모습은 우리 정치권력의 비정상적인 단면을 드러냅니다. 본래 대통령 비서실은 대통령과 장관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말 그대로 비서들입니다. 자체적인 정책수립 기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공공기관으로서 위상을 갖추지 못한 일종의 기능직 스탭들입니다. 그런데 한국적 정치 현실에서는 어찌된 일인지 부처 장관 위에 비서실 수석들이 군림하는 현상, 즉 문고리 권력이 말을 하는 권력의 초집중화 현상이 두드러져 왔습니다. 이에 비하면 들러리 선 장관도 초라해 보입니다. 이렇게 기자회견을 하려면 장관들을 부르지 말았어야 합니다. 이날 한 장관은 기자회견에 참석하느라고 기관 창설 이후 첫 국회 업무보고에도 참석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냥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만의 기자회견으로 하는 게 차라리 낳았을 법 합니다.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서 왜곡되고 뒤틀어진 우리 권력구조에 대한 국민의 불안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문고리 권력을 비호하는 대통령의 "마이 웨이(my way)"만 메아리쳤습니다. 여전히 소통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느낌입니다. 정치행정에서 말하는 원래 의미의 '소통(communication)'이란 국민의 요구(demand)에 정부가 응답(supply)하는 메커니즘을 말하는 것입니다. 반면 정치지도자를 대통령이 자주 만나 밥을 먹고 국민들과 접촉면을 넓히는 것이 소통으로 오인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스킨십(skin-ship)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런 스킨십이라면 익명성을 요구하는 청와대 참모들의 속성상 오히려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청와대 실장, 수석이 여러 사람 만나고 다니면 익명성이 훼손되어 국정에 오히려 혼선이 가중될 수 있습니다. 반면 국민 대다수가 원하고 합의된 여론이라면 정치권력에 이에 부응하는 것이 소통의 본질입니다. 작년 말 터진 정윤회 문건 파동에서 보수-진보 지 할 것 없이 언론은 강력한 인적 쇄신과 국정 스타일의 변화를 요구했다면 마땅히 대통령은 이에 화답하는 형태로 답을 내놓는 것을 일컬어 소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론에 밀려서 누구를 내보내지 않겠다며 이를 거부하면 소통이 안 되는 것입니다. 또한 국민이 이해하기 어려운 국정의 난맥 현상에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다면 이 역시 소통이 안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라진 국정비전

  이런 관점에서 이번 신년 기자회견은 실패작입니다. 그동안 이제껏 대통령이 말한 통일대박도, 규제 철폐도, 민생이나 복지도 이번 기자회견에서는 거의 나오지 않고 오직 신자유주의의 전도사처럼 국가의 외형적 성장만 말하는 것으로는 국민에게 행복을 줄 수 없습니다. 대통령선거 당시 구호였던 경제민주화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아예 입에 올리지도 않았고 비정규직이나 반값 등록금 문제, 가계 부채 등 시한폭탄과 같은 사회 현안에 대한 언급도 회피했습니다. 작년 기자회견 때 말한 통일대박론도 이제는 벌써 구호로 끝나 대통령 자신마저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정말 걱정스러운 것은 올해 대한민국이 갑자기 새로운 활력으로 채워질 것 같은 낙관적인 느낌보다 더 나빠지지만 않으면 다행일 것이라는 불안감이 커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런 느낌마저도 청와대에 대통령이 듣기 좋은 말만 녹음기처럼 되풀이하는 참모들에게 둘러싸여 전달될 것 같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사퇴하는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이 “재임기간 7개월 동안 단 한 번도 대통령에게 대면보고를 해보지 못했다”며 자조와 탄식의 메시지를 남기고 청와대를 떠난다는 소식은 청와대 내의 정보유통에 얼마나 심각한 동맥경화증이 있는가를 미루어 짐작케 합니다. 심지어 국회 운영위에 출석한 김기춘 비서실장이 “모든 보고를 대통령에게 다 올리는 것이 아니고 중요한 것만 추려서 보고한다”며 대통령이 시중 여론은 물론 정보도 다 보는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어떤 정보는 보고 어떤 정보는 무시하는 것인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문고리 권력에 대한 국정의 의존도가 우리 상상을 초월한다는 우려를 갖게 합니다.
  작금의 동북아 정세를 보면 미국과 중국 간의 지역패권(regional hegemony) 경쟁이 격화되고 있고 대만과 인도가 한국경제를 맹추격하고 있으며 신냉전적 질서로 지역질서가 재편되고 있습니다. 국가 간 사활을 건 생존경쟁이 격화되면서 장차 한국의 생존과 번영에도 새로운 비전과 추진력이 요구되는 엄중한 시기입니다. 이 거센 도전을 헤치고 위대한 항해를 시작해야 하는 대한민국 호는 국가의 지혜와 역량을 결집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배의 선장이 보이지 않습니다. 국민의 에너지가 쏟아져 나와야 할 광장에는 서슬 퍼런 감시와 처벌의 공권력만 있고 대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 보이지 않습니다. 여러 공허한 비전이 지나가고 나니 이제 지도자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경제 살리기’ 외엔 더 남아있는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국민의 질문에는 아~, 그~, 저~를 남발하는 더듬거리는 대통령에게서 국가 최고지도자로서의 당당함과 자신감이 보이지 않습니다. 단지 종갓집 맏며느리의 단아한 이미지만으로 어찌 이 거친 세파를 이길 수 있겠습니까? “무언가 잘 되고 있다”는 달콤한 착각만으로 이 엄혹한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는 분별력은 더 흐려지고 현실의 문제를 애써 외면하려는 자기도피의 증상마저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까?

  위험한 구조물이 된 권력

  박근혜 정부는 성공해야 합니다. 그것은 대통령 개인의 성공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국가의 성공을 말하는 것입니다.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오직 국가만 생각한다”는 권력의 나르시시즘은 국민보고 자신만 잘 따라오라는 잘못된 명령으로 연결됩니다. 대통령도 실수할 수 있고 자신 만의 사생활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실수나 사생활이 자신의 확장된 육신이기 때문에 모욕이나 비판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일종의 특권적 사고방식일 뿐만 아니라 문제의 본질도 아닙니다. 국민이 이런 문제를 걱정하는 이유는 유연하게 소통하고 자유롭게 교류하는 열린 국정을 바라기 때문입니다. 청와대는 국민 모두의 집이지 대통령의 구중궁궐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떤 권력이 사유화되고 독점되면서 정작 주인인 국민이 소외되기 때문에 우리는 보다 투명하고 열린 자세를 촉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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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청와대는 마치 안전진단 다 등급을 받은 위험한 구조물과 같습니다. 빨리 개보수를 하던지 철거하지 않으면 더 위험해집니다. 언제 항명, 기강문란, 문건유출 사건이 또 일어날지 알 수 없습니다. 대통령이 이런 여론을 무시한다는 것은 참으로 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경제혁신이라는 것도 대통령 혼자서 하는 일은 아니고 국민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재벌 대기업에 유리한 감세와 규제완화를 추진하면서 국민의 동의를 구하지 않습니다. 이런 혁신을 꼭 해야 하는 것인지도 의문입니다. 국가가 이렇다면 국민은 스스로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작년에 세월호 사건을 비롯한 유난히 많았던 죽음들에 정부는 저 멀리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스스로 안위를 챙기고 알아서 자신을 지키지 않는다면 누가 우리를 보호하겠습니까? 도망친 선장처럼 공허한 이 국가에 과연 주인은 누구란 말입니까?
김종대 디펜스21 플러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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