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국정 개입 의혹 문건’ 내용을 첫 보도한 세계일보에 대해 검찰이 압수수색을 할지 주목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2월 5일 오후 서울 신문로2가 세계일보사 사옥 정문 셔터가 내려진 채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국세청, 통일교 관계사 세무조사…‘정윤회 문건’ 보복? 통일교 내부 문건 “청와대 맞설 핵폭탄 7~8개 더 있다” 세계일보 간부 “특급 정보는 근거 없이 하는 얘기” 부인
[김의겸의 우충좌돌] ⑩
청와대의 보복이 시작된 것인가?
국세청이 최근 통일교 관련 회사들에 대한 세무조사에 들어갔다. 통일교 재단은 지난해 11월 ‘정윤회 문건 의혹’을 처음 보도한 <세계일보>의 주인이다.
통일교에 대한 세무조사는 애초 2013년 10월 시작됐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해 초 경기를 살리기 위해 세무조사를 최소화한다는 방침이 정해지면서 세무조사는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가 최근 갑자기 다시 세무조사가 시작됐으니 ‘표적 조사’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해 11월28일 온 나라를 뒤흔든 세계일보 보도의 제목은 간략했다. “정윤회 ‘국정 개입’은 사실.” 세계일보가 6개월 전 이미 청와대 문서를 입수하고도 뒤늦게 보도한 것을 두고는 여러 가지 말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통일교 쪽과 사전교감 없이 나온 것만은 사실로 보인다. 통일교 내부 문건의 한 대목이 이를 입증한다. “우리 종단과 재단이 사주한 사건도 아니고 우리로서는 잠을 자다가 아닌 밤중에 벼락을 맞은 격이지만 세계일보의 자체적인 판단으로 일은 벌어졌고 우리 통일교가 청와대의 눈 밖에 나서 피해를 입을까 두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한학자 총재, 사태의 심각성 알고 손대오 회장 급파
그 두려움 때문일까? 통일교와 통일그룹의 창시자인 고 문선명 총재의 부인인 한학자 총재는 느닷없이 손대오 선문대 부총장을 세계일보 회장에 임명한다. 정윤회 보도로 인해 빚어진 정권과의 긴장 관계가 혹시나 교회로 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손대오 회장에게 대정부 관계 개선을 요구한 것이다.
손 회장은 이리저리 방법을 찾던 중 세계일보의 조민호 당시 심의인권위원을 만나게 되고 그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조민호 위원이 1월20일 세계일보 사원들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은 이렇다.
‘정윤회 국정 개입 의혹 문건’ 내용을 첫 보도한 세계일보에 대해 검찰이 압수수색을 할지 주목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2월 5일 오후 서울 신문로2가 세계일보사 사옥 정문 셔터가 내려진 채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손 회장과 참으로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유력한 채널을 가동해 통일교 관련 많은 정보를 얻어내고 이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분석하는 것이 나의 1차 임무였습니다. 공개하긴 좀 그렇지만 통일교는 내부에 상당한 고민거리를 안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한학자 총재가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손 회장을 급파한 배경이 이와 무관치 않다고 봅니다. 정치 권력이 바보가 아닌 한 ‘정윤회 문건’ 파동으로 언론 탄압이나 종교 탄압을 할 리 만무합니다. 다름 아닌 형법으로 다스릴 폭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편지의 문맥을 살펴보면 조 위원이 현 정부의 유력 인사와 접촉해 기류를 탐지해본 결과 세계일보에 대한 보복이 임박했고, 그 수단으로는 ‘형법으로 다스릴 폭탄’까지 있다는 내용이다. 조 위원은 경북 청송 출신으로 정치부 기자 등을 거치며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유력 인사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기감을 느낀 손 회장은 12월26일 저녁 급하게 미국 라스베이거스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그곳에 머물고 있던 한학자 총재를 찾아가 사장을 조한규에서 조민호로 교체하겠다고 건의하고 수락을 받는다. 그리고 “29일 오전 6시쯤 귀국한 손 회장이 급히 나를 찾았고 그날 휴가를 낸 탓에 겨우 연락이 된 나에게 ‘한 총재님이 조민호씨를 신임 사장으로 명하셨다’고 1차 통보를 했습니다.”(조민호 편지) 한학자 총재의 대리인 격이었던 손 회장이 조민호 위원을 사장으로 임명해 난국을 돌파하려고 한 것이다. 통일교 안에서 ‘주화파’가 우세했던 국면이다.
통일교 신도대책위, ‘일전 불사론’ 내세워
그러나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새해 첫날인 1월1일 한학자 총재의 비서실장이 미국에서 급거 귀국해 모든 인사를 보류시킨 것이다. 이날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는 통일교 주요 간부들이 모여 손대호 회장의 정보가 믿을 수 있는 것인지 등을 놓고 집중 토의를 벌였고, 그 결과 기류가 완전히 뒤집혔다고 한다.
같은 시각 조민호 사장 내정자는 자신이 사장직에 취임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통신사를 포함한 일부 언론사에 배포했다. 하지만 세계일보 기자들이 이를 ‘경영권 탈취 시도 및 허위사실 유포’라고 규정하고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더 결정적으로는 통일교의 정부 대응 전략이 바뀌면서 조민호 사장 체제는 ‘1일 천하’도 누려보지 못하고 유산되고 말았다. 더 나아가 1월19일에는 손대오 회장이 50여일 만에 전격 교체돼 버린다. 김민하 평화대사협의회중앙회 명예회장이 신임 회장으로 들어왔다. 결국 정윤회 문건을 보도했던 조한규 사장 체제가 지속된 것이다.
이런 번복 과정의 구체적인 배경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통일교 내부 ‘주전파’의 입장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인 게 통일교 신도대책위원회의 ‘일전 불사론’이다. 통일교 내부 관계자들에게 배포된 이 대책위원회의 문건을 살펴보면 그 기류를 엿볼 수 있다.
“청와대가 감동해 우리를 살려준다고 믿는다면 어리석은 일”
“세계일보가 아직도 공개하지 않은 7~8개의 청와대 특급 정보가 공개된다면 대통령이 하야해야 하는 사태가 발생 할 수 있다는 것을 청와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어차피 이번 사건으로 정권 말기 때 나타나는 현상이 벌써 벌어지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2015년을 지나고 나서 집권 4년 차가 되어 사실상 집권 말기 현상으로 청와대가 통일교를 상대로 보복할 여유가 없습니다. 설령 보복을 하겠다고 대든다고 하여도 국민 여론과 야당이 용서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다. 청와대의 압박에 밀려 세계일보 사장과 기자들을 해임한다면 청와대와 맞설 핵무기 7~8개는 무용지물이 되고 청와대 고양이 앞에 쥐가 되어 버립니다. 약육강식의 정글 같은 권력 속성과 현실에서 우리 스스로 발가벗는 격이 됩니다. 인사 조치 한다고 해서 청와대가 감동하여 우리를 살려준다고 믿는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라 여겨집니다.”
세계일보가 처음 보도한 ‘청와대 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 측근(정윤회) 동향’ 감찰보고서. 세계일보 제공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까지 거론하며 최후까지 싸워보자는 강경한 태도이다. 더 나아가 신도대책위는 이 시점에서 이미 정부의 세무조사까지 미리 내다보고 있다.
“2015년 신년도에 계열사가 한곳이라도 특별 세무조사를 받게 된다면 보복성 조사라 하여 온 나라가 시끄럽고 청와대는 곤경에 처할 것인데 청와대는 매우 현명한 판단을 할 겁니다.”
그러면서 그 싸움이 결코 불리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린다.
“청와대가 노골적으로 우리 통일교를 치면 오히려 우리 통일교를 국민의 종교로 만들어 주는 격이 되어버립니다. 진실을 바로 잡으려던 세계일보의 대주주를 핍박한다면 국민적인 여론은 우리편이 됩니다. 사건 이후 대주주 우리 통일교에 대한 비난은 전혀 없고 오히려 국민 여론이 매우 좋을 것 확실합니다. 재물을 잃어버려도 국민의 마음을 얻는다면 이보다 남는 장사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국민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세계일보 한 간부는 “신도대책위가 거론한 핵무기나 특급 정보란 근거도 없이 하는 얘기로서 의미를 둘 내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의 흐름으로만 보면 세계일보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태도이다. 하지만 통일교 안에서 그 자체로 법으로 통하는 한학자 총재의 태도는 오락가락하고 있다. 애초에는 정부와 관계 개선을 위해 손 회장을 세계일보에 보내고 조한규 사장까지 교체하려고 하다가 내부 반발이 일자 흐름을 일거에 뒤집어엎고 전투 태세를 갖춘 것이다.
‘정윤회 문건 파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실제로 한 총재는 지난해 12월1일 열린 훈독회에서 ‘주화파’인 손 회장을 지명하면서도 현 정부와의 정면 대결을 암시하는 듯한 발언을 해 양면적인 태도를 보인다. 손대오 회장과 조한규 사장도 참석했고, 500명 가량의 목회자가 함께한 것으로 알려진 이 훈독회에서 한 총재는 “(세계일보가) 이 정부를 교육하는 신문이 되는 것이 맞아”라고 말하면서 “(그것이) 정의사회 구현”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정부나 외적인 기관들은 공적(公的)이 아니다”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한 총재는 “우리는 두려울 것 없어” “세계일보도 마찬가지야, 두려울 게 없어” “우리의 진실을 밝히면 돼”라고 독려했다. 그러면서 한 총재는 “통일교회의 신문? 괜찮아. 무지에는 완성이 없다고 했어. 알아야 현명한 판단을 하는 거야. 이 백성이, 이 정치인들이 현명한 판단을 하려면 배워야 해. 우리밖에는 배워줄 사람이 없어. 사실 아닌가? 그러니까 한방 더 강하게 나가야겠다고, 알겠습니까?”라고 말한다.(<신동아> 2월호 참조) 한 총재가 말하는 ‘한방’이 무엇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신도대책위원회가 언급한 ‘핵무기’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정윤회 문건 파동에서 비롯된 청와대와 세계일보의 긴장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지금까지는 양쪽 모두 조심스러운 모습으로 탐색전을 펼치고 있다. 국세청이 세무조사에 착수한 청심그룹은 통일교의 중심은 아니고 방계회사쯤 되는 곳이라고 한다. 통일교에 치명상을 가할 수 있는 핵심은 아직 건드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통일교 쪽도 애써 세무조사의 의미를 축소하며 청와대의 기류를 살피고 있다.
하지만 국세청 세무조사가 어디까지 확대되느냐에 따라 통일교 쪽의 대응 수위는 달라질 것이다. 또 지난 1월5일 검찰 수사 결과 발표가 있었지만 세계일보 기자들의 명예훼손 혐의는 계속 수사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검찰의 수사 강도에 따라 세계일보의 대응도 정해질 것이다. 잠복돼 있는 뇌관이 언제든지 터질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정윤회 문건 파동’은 아직 끝나지 않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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