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항공촬영사 4인방. 왼쪽부터 고미숙 중사, 권형, 김경률, 편보현 상사. 체감온도 영하10도를 오르내리는 활주로에서 이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 한 이호준 상사(부사관164기)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2014년 12월 5일 공군 청주 비행장에서 ‘항공촬영사’란 특이한 직책을 가진 공군 부사관 네 명을 만났다. 김경률(부사관 155기, 공군본부 공보과), 편보현(부사관168기, 공군53특수비행전대), 권형(부사관179기, 공군본부 공보과) 상사와 고미숙(부사관198기, 공군본부 홍보과) 중사. 이들이 하는 일은 단순히 항공기를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항공기에 탑승하여’ 다른 항공기를 촬영하는 것이다. 탑승하는 항공기의 종류도 헬리콥터, 수송기, 훈련기는 물론 전투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비행시간도 웬만한 조종사 부럽지 않다. 흔치 않은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이들 4인의 일과 삶에 대해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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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이호준 상사 (17전투비행단 정훈공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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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이호준 상사 (17전투비행단 정훈공보실)
“저는 저의 일이 즐겁습니다. 저의 임무를 즐기죠.”
항공촬영사라는 자신의 임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김경률 상사가 한 말이다. 공군에는 현재 김 상사를 포함하여 네 명의 항공촬영사가 공군본부 공보과(2명), 홍보과(1명), 53특수비행전대(블랙이글. 1명)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들은 공군의 홍보와 기록을 목적으로 한 사진 촬영 및 영상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전투기에 탑승해 전투기를 찍다
이들의 임무가 특이한 것은 이들 네 명이 단순히 항공기를 피사체로 한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항공기에 직접 탑승하여 옆에 날아가는 항공기를 찍는다는 점이다. 탑승하는 항공기도 헬기나 수송기, 훈련기는 물론 전투기도 포함된다. 전투기 후방석에 앉아 중력가속도(G-force)를 직접 받으며 편대 비행하는 전투기를 촬영하는 것이다.
공군이 체계적으로 사진촬영사를 양성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 4월 정훈부사관 64명을 선발하면서부터다. 그전에도 물론 사진촬영을 하여 왔다. 하지만 ‘사진을 잘 찍는’ 부사관이나 병사들이 단순히 행사 사진촬영을 지원하는 형식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무장이나 정비 특기였기 때문이 사진촬영이 끝나면 다시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갔고, 따라서 사진촬영의 경험이나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이들에 대한 체계적 관리 역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홍보 및 기록에 대한 수요가 계속해서 늘어나자 공군은 사진 촬영 및 영상 제작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정훈부사관 특기를 신설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하였다. 이들 정훈부사관들은 공군본부는 물론 각 사령부, 비행단 등에 배치되어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이후 2년여의 시간이 지난 2013년 8월 드디어 항공촬영사라는 보직이 정식으로 생긴 것이다.
항공촬영사가 된 계기를 묻자 김 상사는 순전히 운이 좋았음을 강조하고 자신의 실력과 노력은 애써 숨겼다.
“운이 좋았던거죠! 공군이 군내 사진촬영사를 전투기에 태우기 시작한 것이 4, 5년 전이었습니다. 항공촬영에 대한 수요가 늘었던거죠. 중요 항공사진 촬영은 공군본부에서 담당했는데, 그때 마침 저와 편보현 상사가 공군본부 공보과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몇 번 전투기 후방석에 앉아 항공사진을 찍다보니 나름 경험과 노하우가 쌓이더군요. 공군의 입장에서도 항공촬영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가 있는 우리에게 계속해서 항공촬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입니다.”
하지만 공군 내 항공촬영사라는 보직이 김 상사 말처럼 운 좋게 쉽게 생긴 것은 아니었다. 김 상사 같은 실무자들의 의지와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하였다. 권형 상사는 이런 과정을 애써 숨기려 하지 않았다.
“항공촬영사 자리를 만드는데 2년여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김 상사나 편 상사 같은 실무자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겠죠. 작전부서나 인사부서를 찾아다니며 설득을 했습니다. KT-1, T-50 같은 국산 항공기가 계속 생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공군에 공중촬영 전문가가 없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죠. 그리고 결국 지휘부의 결심을 얻어냈습니다.”
항공촬영사 보직이 생기기 전에도 정훈부사관들이 전투기에 탑승하여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공중근무자 자격이 없었기에 전투기에 탑승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절차를 밟아야 했다. 한 번 전투기에 탑승하기 위해서는 항공우주의료원에서 항공생리 적성검사를 받아야 했고, 소장급 이상 지휘관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또한 항공촬영을 위한 예산도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우리 항공기는 우리가 찍자
하지만 이런 절차상 까다로움이나 예산 문제 외에 이들이 항공촬영사 보직 신설에 노력한 것은 애국심도 크게 작용하였다. 편 상사의 이야기다.
하지만 이런 절차상 까다로움이나 예산 문제 외에 이들이 항공촬영사 보직 신설에 노력한 것은 애국심도 크게 작용하였다. 편 상사의 이야기다.
“우리 정훈부사관들이 항공사진을 찍기 전에도 물론 공군에서는 항공사진을 찍어왔습니다. 그때 사진을 보면 멋진 사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당시 공군 내에는 항공사진 전문촬영사가 없었으므로 외부에 의뢰하여 찍었던거죠. 일본의 유명한 항공사진작가의 사진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편 상사는 우리 항공기 사진촬영을 외국인에게 맡긴다는 점에 자존심이 상했다고 한다.
“T-50 초음속 훈련기 개발이 큰 자극제가 되었습니다. 초음속 항공기를 개발하고 수출까지 하는 우리나라에서 항공사진을 외국인에게 찍게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불만이 많았습니다. 그래 우리 자체적으로 한번 해보자, 지금 당장은 좀 어설프더라도 계속하다 보면 체계도 잡히고 노하우도 쌓일 것 아니냐는 주장이 많았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일이 잘 풀려나간 것은 아니었다. 전투기 후방석에 전투기 탑승 경험이 거의 없는 사진사들을 태우는 것에 대한 우려와 걱정의 목소리가 높았다. 안전문제가 대두된 것이었다. 전투기는 급기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후방석 탑승자일지라도 조종사에 준하는 훈련이 필요한데, 정훈부사관의 경우 아직 그런 훈련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걱정은 기우임이 곧 밝혀졌다. 김 상사는 사진촬영을 위해 첫 비행 전 정말 철저하게 준비하였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후방석 탑승자를 위한 교육을 철저히 받았습니다. 그리고 비행을 하기 오래 전부터 체력관리를 시작했습니다. 술은 아예 마시지 않고 몸에 좋은 음식만 먹었죠. 혹시 실수라도 할까 무서워 비행 전날부터는 커피는 물론 물이 많은 음식도 자제했습니다.”
커피와 물이 많은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은 생리현상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김 상사는 첫 비행 때나 지금이나 비행이 걱정되는 건 매한가지라고 한다.
“한 번 촬영을 위해 전투기가 이륙을 하면 두세 시간 비행을 합니다. 그리고 이륙 50분전에 전투기에 탑승합니다. 따라서 비행을 하게 되면 서너 시간은 화장실에 갈 수 없는거죠. 이뇨작용을 하는 음식은 정말 피합니다.”
하지만 김 상사에게 이러한 생리작용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진촬영 실수라고 한다.
“사진 좀 찍는다고 하늘에 올려놓았는데, 제대로 된 사진 한장 찍지 못하고 내려올 수도 있다는 압박감이 심합니다. 그건 첫 비행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남들은 저 정도 항공사진을 찍었으면 가벼운 마음으로 전투기에 올라 셔터 몇 번 누르고 내려오면 되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항공촬영의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하늘에서 전투기를 타고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더 느낍니다.”
고속으로 기동하는 전투기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 김 상사의 설명이다. 항공 촬영사들은 비행 며칠 전 촬영브리핑을 조종사들과 갖는다. 이 브리핑에서 항공 촬영사들은 조종사들에게 자신이 어떤 사진을 원하는지를 설명하고 이를 위해서는 전투기들이 어떤 대형을 유지하고 어떻게 기동해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이러한 설명을 보다 구체화, 시각화하기 위해 항공 촬영사들은 기동장면 하나하나, 편대 대형 하나하나를 종이에 그려 조종사들에게 이미지화 시켜준다. 그리고 다시 비행브리핑에 참석해 조종사들이 숙지하고 있는지 확인한다.
“항공촬영을 위해서는 준비가 철저해야죠. 항공사진촬영의 80%는 지상에서 하는 준비 과정을 통해 이뤄진다고 생각합니다. 고속으로 기동하는 전투기에서 한 순간을 놓치면 다시 기회가 오지 않습니다.”
미사일은 어디에
이렇게 말한 편 상사는 첫 비행을 회상했다. 편 상사가 찍은 첫 항공사진은 A-50 항공기의 공대공 미사일 실무장 사격 장면이었다. 우리가 개발한 항공기에서의 첫 공대공 미사일 실무장 사격이었으므로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순간이었다. 편 상사는 안전추적기 역할을 하는 KF-16에 앉아 사진촬영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비행 경험이 없었던 편 상사에게 헤드셋을 통해 들려오는 수많은 교신음성은 무슨 외계인들의 언어 같았고, 첫 비행이라 잔뜩 긴장한 편 상사를 더욱 위축시켰다.
“조종사들 간 통신, 관제탑과의 통신, 미사일 발사 통제관련 통신 등 정말 알아들을 수 없는 수많은 교신음 속에서 미사일 발사 순간을 알아내기란 정말 힘들었습니다. 미사일 발사 순간 얼떨결에 셔터를 눌렀고 몇 장을 찍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하지만 편 상사가 더욱 당황한 것은 카메라 액정화면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아무리 사진을 넘겨봐도 미사일이 걸린 사진을 찾을 수 없었다. 지상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사진을 기다리고 있고, 미사일은 이미 발사되어 보이지 않는데, 다시 미사일을 발사해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다행히 뒤에 미사일 발사 장면이 찍힌 사진을 몇 장 발견하였다. 이 때 느낀 안도감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조종사들 정말 대단합니다. 비행절차는 정말 복잡하거든요. 이를 훈련과 노력으로 몸에 익혀야 합니다. 자신의 항공기와 한 몸이 되어야 하죠. 그뿐 아니라 전투기 조종사들은 9G를 견디는 훈련을 합니다. 한 번 기동훈련을 하고 나면 실핏줄이 터져 온 몸에 피멍이 듭니다.”
공군 항공촬영사의 최선임 김 상사의 말이다. 김 상사는 최선임답게 다양한 항공기와 많은 조종사들을 만났다. 많은 항공기 중에서도 특히 지난 가을 탑승한 F-5 전투기는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그날 좀 더웠습니다. F-5는 이륙 직전까지 캐노피를 닫지 않더군요. 착륙 후에는 바로 열고요.”
김 상사는 F-5 탑승경험을 이야기하며 우리 조종사들의 어려움을 에둘러 이야기했다. 공군 전투기 중 노후기종인 F-4와 F-5는 조종석에 에어컨이 없어 더운 날이면 이륙 직전에서야 캐노피를 닫고 착륙하면 바로 연다. 너무 더운 날이면 조종사들은 마스크도 벗고 이륙을 준비한다.
“이륙 직전에 전방석 조종사가 저에게 후방석 캐노피를 직접 닫으라고 하더군요. 좀 당황했죠. 옆에 보니 캐노피를 닫는 손잡이가 있었습니다. 너무 낡아 보여 ‘이거 부러지지 않습니까?’라고 조종사에게 물으니, 웃으면서 하는 말이 ‘너무 세게 당기면 부러지죠. 조심하세요’였습니다. 농담이었지만 공군인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저며 왔습니다. 하루 빨리 한국형 전투기가 개발돼 일선 대대에 배치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고 조종사가 최고 항공촬영사 만든다
항공촬영사 4인의 조종사 칭찬은 모두 하나같다. 민간항공사로 이직하면 보다 높은 봉급과 좋은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음에도 굳이 어려운 공군 조종사로 남는 이유는 애국심과 공군 조종사라는 강한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편 상사는 우리 조종사들의 이러한 강한 자부심은 혹독한 훈련을 통해 만들어 진다고 강조한다. 혹독한 훈련을 받으며 우리 공군 조종사들이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블랙이글 전담 사진사인 편 상사는 실제 우리 조종사들이 세계 최고 수준임을 직접 목격하였다. 2012년 영국 에어쇼에서 우리 에어쇼 전문팀인 블랙이글이 최우수상을 수상한 것이다. 우리 조종사들의 수준이 세계 정상급임이 증명된 것이다. 편 상사는 당시 있었던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했다.
“영국에서는 에어쇼 항공기의 후방석 탑승을 금지합니다. 안전 때문이죠. 하지만 우리 블랙이글에게는 예외로 했습니다. 에어쇼 전 사전 심사에서 심사관들이 우리 블랙이글의 세계 정상급 고난도 기동을 본 후 안전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덕분에 저는 T-50B 후방석에 앉아 영국 하늘을 마음껏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항공촬영사로서 우리 공군 최초의 해외 에어쇼 참가 순간을 기록하는 영광을 얻은 것이죠.”
역사적 순간을 기록하는 영광
편 상사의 말처럼 항공 촬영사들에게는 공군의 역사적 순간을 기록하는 영광이 주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영광은 공군 항공촬영사라는 자긍심으로 이어진다. 작년 ‘레드 플래그 알라스카(Red Flag Alaska)'에 참가했던 권 상사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2013년에 우리 공군 F-15K가 ‘레드 플래그 알라스카'에 참가했습니다. 공군 최초로 우리 조종사들이 우리 전투기를 직접 조종해 태평양을 횡단했던 것이죠. 공중급유를 받으면서요. 그리고 그 훈련의 순간순간을 제가 사진으로 기록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영광이었고 항공촬영사로서 자긍심을 갖게 됐습니다.”
이러한 영광과 자긍심은 저절로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이들 항공 촬영사들의 끊임없는 준비와 노력이 없었다면 이들은 결코 이런 영광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2013년에 항공촬영을 시작한 고미숙 중사는 선배 항공 촬영사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 본인이 이 자리에 설 수 없었을 것이라 강조한다.
“첫 여군 항공촬영사라는 이유로 언론의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첫 비행 전 정말 부담스럽고 걱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선배들의 가르침과 격려 덕분에 무사히 비행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실력 있는 선배들이 닦아놓은 길을 따라 가기만 하면 되는거죠. 정말 선배들에게 감사합니다.”
하지만 고 중사의 평가와 달리 선배 항공 촬영사들은 자신들의 실력이 아직 부족하여 갈 길이 멀기만 하다고 자평한다. 그리고 김 상사는 앞으로 들어오는 후배들이 시행착오를 되도록 적게 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이야기 한다.
“공군 항공 촬영사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수준입니다. 해야 할 일들이 많죠. 우선 개개인의 실력을 늘려야 합니다. 많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항공촬영이라는 영역을 보다 체계화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우리 경험에 바탕하여 항공촬영 교범을 만들 생각입니다. 세밀한 교범일수록 좋겠죠. 그래야 후배들이 우리가 한 실수를 하지 않고 보다 빠른 시간에 훌륭한 항공촬영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교범을 가지고 항공촬영사 양성과정을 만들어 나갈 생각입니다.”
공군은 2015년 올해 1월 1일부터 항공 촬영사들에 대한 공중 근무수당 및 비행용 장비 지급 등과 관련된 예산을 집행하기 시작했다. 공군과 국민을 잇는 항공 촬영사들의 보다 활발한 역할이 기대된다.
원승종 디펜스21+ 기자 wonseungjo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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