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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31일 금요일

“잊지 못할 세월”.. 세월호 200일 추모 영상제


‘동혁 엄마’ 김성실 씨 “미디어, 소리 없이 퍼지는 진실의 알림장 되길” 강주희 기자 | balnews21@gmail.com 하얀 스크린 속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며 달리고 있었다. 계절은 4월이었고, 교정은 분홍빛 벚꽃으로 물들었다. 봄 햇살을 맞으며 걷는 도언이와 예진이, 예은이, 시연이, 주이, 예슬이, 영은이 일곱 명의 여고생은 코끝을 스치는 바람에도 꺄르르 웃음을 참지 못했다. 나비를 보면 나비 춤을 추고, 꽃을 보면 꽃춤을 추었다. 스크린 밖 엄마는 그런 딸의 모습에 두툼한 검은 점퍼를 추스리며 눈물을 닦았다. 10월의 마지막 날인 31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는 ‘시민과 함께 하는 세월호 추모 영상제’가 열렸다. 이날 자리에는 세월호 유가족을 비롯해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정지영 감독, 영화배우 문성근 씨 등이 참여했다. 퇴근길 시민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광장에 하나 둘 모여들었다. 한 두방울 떨어지던 가을비는 영상제가 시작할 무렵 신기하게 그쳤다. 영상제 사회를 맡은 백재호 감독은 “오늘 저녁에 비가 내린다고 했는데, 비가 오지 않고 날씨가 생각보다 따뜻해서 다행이다”라며 “한 어르신께서 ‘우리 아이들이 영상제 잘 치르라고 도와주는 거다’라고 하셨다. 정말 그런 것 같다”라고 말했다. © 강주희 이날 영상제에는 본선에 진출한 10개의 작품이 상영됐다. 김은택 감독의 ‘유리창’을 시작으로 ‘그 날 그 때 그곳에’(감독 이승준), ‘잊지 않을게’(감독 김인영), ‘꿈’(감독 김홍경), ‘미안해 내가 못난 어른이어서’(감독 하헌기), ‘2반의 빠삐용들’(감독 박동국), ‘잊지 못할 세월’(감독 문지은), ‘The Striker vol.2’(감독 김인영), ‘유가족 직접 행동에 나서다’(감독 안경낀화원), ‘화인’(감독 김철민) 등이다. 시민들은 단원고 학생들의 생전 모습, 유가족의 오열과 눈물이 스크린에 나올 때 마다 숨을 죽이고 지켜봤다. 일부 시민들은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기도 했다. 공모작 상영에 이어 416 영화인 단편프로젝트를 통해 만들어진 작품 6편도 상영됐다. 민병훈 감독의 ‘생명의 노래’, 김홍익 감독의 ‘잊지 말아줘요’, 백승우 감독의 ‘기도’, 이정황 감독의 ‘다녀오겠습니다’, 유성엽 감독의 ‘주홍조끼를 입은 소녀’, 김경형 감독의 ‘같이 타기는 싫어’ 등이 스크린을 물들였다. ▲ ©강주희 특히 백승우의 감독의 ‘기도’는 지난 7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46일간 단식 농성을 했던 ‘유민아빠’ 김영오씨를 연상시켰다. 세월호 천막을 지키며 점점 야위어가는 아빠와 그런 아빠를 만나러 지상에 내려온 딸의 짧은 대화는 이내 광화문 광장을 숙연케 했다. 퇴근길에 영상제를 찾았다는 직장인 신지현씨는 “영상을 보는 내내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 몰랐다”고 말했다. 신씨는 “광화문 광장을 매일 지나지만 이 곳을 지키는 유가족과 많은 시민 봉사자들을 가까이서 보긴 오늘이 처음이었다. 내가 먼저 그 분들을 잊고 있는 것 같아 죄송스러웠다”고 밝혔다. 총 21편의 모든 영상이 상영된 후에는 시상식이 열렸다. 등수가 없는 모두가 1등인 시상식이었다. 유가족들과 영상제에 출품한 감독들은 함께 단상에 나가 영상제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유가족들은 감독들에게 직접 꽃을 달아주며 인사를 나눴다. 고 김동혁군의 어머니 김성실씨는 “추모 영상제에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시고 재능있는 분들이 많아서 깜짝 놀랬고, 울음을 참으면서 봤다”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 ©강주희 김씨는 “아이들을 허망하게 보내놓고 정말 많은 일을 겪는 것 같다. 우리 부모들은 익숙치 않는 옷을 입고 맞지 않는 자리에 있는 것처럼 많이 어색하다”며 “하지만 아이들이 남겨놓은 사명이 있고, 미디어라는 것이 소리 없이 퍼질 수 있는 알림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유가족이 드릴 게 많이 없다. 알다시피 (유가족들이) 그리 뛰어난 사람들도 아니고 미리 준비해놓은 것도 없다. 하지만 끝까지 엄마, 아빠의 역할을 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며 “여기 출품하신 모든 분들을 잊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SNS] 세월호 295번째 희생자 황지현 양 최종 확인유가족 “시정연설에 세월호 언급 없어 실망”수색완료 구역서 잇따라 실종자 발견.. 부실수색 우려“밤새 기다렸지만, 대통령이 웃어준 사람 따로 있었다”[SNS] ‘세월호 유가족이 거지?’.. “세상 참 잔인하다”이미 수색한 곳서 실종자 추가 수습.. ‘교차 수색’에 초점[시론/서해성] 안중근이 남긴 총알 한발[포토] “지현아, 늦게라도 돌아와줘 고맙고.. 고마워” 강주희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가리왕산 보전, 아직 늦지 않았다


보내기 인쇄 조홍섭 2014. 10. 31조회수 1500 추천수 0 활강경기장 30% 벌목했지만 토양, 지하수, 미기후 등 생태계 본격 교란은 이제부터 공사 마치면 허가조건인 복원 불가능, 중단하고 생태계 복원 장기연구 장소로 활용해야 05159190_R_0_s.jpg » 평창동계올림픽의 활강경기장 건설을 위해 가리왕산 하봉 일대를 벌채한 모습. 사진=강재훈 기자 훤칠한 키에 북슬북슬한 은빛 수피가 멋진 왕사스레나무가 땅바닥에 누웠다. 능선의 모진 찬바람을 이기며 느릿느릿 100년 가까이 자란 신갈나무도 그 옆에 누웠다. 장발을 단속하려고 바리캉으로 민 것처럼, 가리왕산 하봉은 벌목공사로 볼품없는 모습이 됐다. 공사 편의를 이유로 산 정상의 보호가치가 큰 나무부터 잘랐다. 공사 예정지의 나무가 30%쯤 베어졌으니 이제 숲을 보전하자는 얘기는 쑥 들어갈 것인가.   왕사스레나무2.jpg » 지난 겨울 하봉 일대에 늠름하게 서 있던 왕사스레나무. 사진=조홍섭 기자 앞으로 벌어질 환경파괴에 견주면 지금까지의 벌목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주장이 나온다. 늦은 것처럼 보이는 지금이 원상 복원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기 전에 공사를 멈추고 대안을 모색할 마지막 기회라는 것이다.   천연림으로 덮인 가파른 산을 시속 100㎞가 넘는 속도로 내달릴 스키장으로 만들려면 많은 공사가 필요하다. 슬로프를 만들기 위해 운영도로와 작업도로를 낸 뒤 각종 시설물을 짓고 곤돌라와 리프트를 세울 지주를 수십개 박아야 한다. 05160701_R_0_s.jpg » 벌목을 하기 위한 작업도로. 스키장을 조성하려면 더 가파른 곳에 작업과 운영을 위한 도로를 만들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터파기와 돋우기, 다지기 등이 불가피하다. 사진=강재훈 기자 이를 위해 발파, 흙깎기, 흙쌓기 공사와 땅 다지기가 필수적이다. 인공눈을 만들기 위해 하천에 댐을 만들고 그 물을 스키 슬로프로 끌어올릴 관을 묻는다.   스키장이 완성되면 인공눈이 잘 만들어지도록 화학물질을 물에 첨가하고 만든 눈 표면을 다지기 위해 또 소금기 있는 화학물질을 살포한다. 나무를 모두 베어낸 뒤에도 산의 토양과 하천, 나아가 스키 슬로프 인근의 보호지역 전반에 영향을 끼칠 교란이 계속되는 것이다.   Wongm_Snowmaking-mount-hotham.jpg » 인공설을 만드는 장치인 스노건. 가리왕산에 스키장이 들어서면 하천수를 품어올려 인공눈을 만드는 이런 스노건이 다수 설치될 것이다. 사진=Wongm, 위키미디어 코먼스 가리왕산에는 금강제비꽃, 땃두릅나무, 만년석송 등 희귀한 북방계 식물이 많다. 한라산과 설악산 등 1700m 이상 고산에 사는 만년석송이 가리왕산에선 1300m 고도에 분포한다. 내륙에서 유일하게 주목이 번식하는 곳이기도 한다. 그 이유는 이 산에 널리 분포하는 풍혈이라는 독특한 지형 때문이다. 밀양 얼음골에서 보듯 풍혈은 여름철 고온 충격을 완화하고 산의 습도를 높여주는 구실을 한다. 빙하기가 끝나 이곳으로 피난해 온 북방계 식물이 살아남은 까닭이다. imgThumb.jpg » 희귀한 고산식물인 만년석송. 사진=박찬호, 한반도생물자원포털 05160703_R_0_s.jpg » 활강경기장 인근의 유전자원보호구역인 장구목이에서 이병천 박사가 풍혈 지역의 특성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강재훈 기자   토양과 풍혈, 나무들이 얽혀 구축한 가리왕산의 독특한 생태계에서 한 곳에서 무너지면 그 파급효과는 연쇄적으로 이웃한 산림 유전자원 보호구역에 미칠 것으로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애초 산림당국이 가리왕산 유전자원 보호구역의 일부를 해제해 주며 내건 조건은 공사 뒤 보호구역으로 환원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규모 스키장 조성공사를 마친 뒤 가리왕산이 원래 상태로 돌아간다고 믿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원주지방환경청도 환경영향평가를 협의해 주면서 “복원보다는 복구 개념이 적절하다”라고 밝혔을 정도다. 05159195_R_0_s.jpg » 가리왕산 하봉의 나무들은 안타깝게 벌채됐지만 아직 이곳 생태계가 돌이킬 수 없게 파괴된 것은 아니다. 사진=강재훈 기자   그렇다면 이미 벌목한 곳은 어떻게 할까.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천연림의 복원과정을 알아보는 장기 생태연구 장소로 쓸 것을 제안한다. 이병천 박사(우이령사람들 회장)는 “아직 토양이 훼손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리왕산의 풍혈, 전석지, 육산 지점의 식물이 어떻게 복원돼 나가는지 비교 연구하는 소중한 장소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토양구조와 지하수, 산의 미세기후까지 뒤흔든 뒤 복원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벌채는 안타깝기는 해도 자연적인 산불처럼 치유할 수 있는 교란이기 때문이다.   들메나무 120.jpg » 아직 벌채되지 않은 하봉 아래에 위치한 지름 120㎝인 들메나무 거목. 공사가 중단돼 이 거목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가리왕산 스키장 건설에는 1095억원이 든다. 복원에는 다시 1000억원이 필요하지만 복원 효과는 물론 예산 조달방안도 막막한 상태다. 적자 우려가 큰 평창 동계올림픽의 재정 부담을 덜기 위해서라도 여기서 공사를 멈춰야 한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관련글 안에선 환경보호 역설하며…밖에선 가리왕산 ‘전기톱질’ 환경파괴 특별법, 500년 원시림 싹둑 자연의 가치 연 40조 달러, 그보다 더한 가치 평창올림픽 '제물' 가리왕산 살 길 있다 공사 앞둔 가리왕산, 600살 주목의 '마지막 겨울' 목록 트위터 페이스북 싸이월드 공감 추천 인쇄 메일 태그 : 가리왕산, 활강경기장, 평창동계올림픽, 벌목, 왕사스레나무, 신갈나무, 유전자원보호구역, 풍혈, 복원, 장기 생태연구, 물바람숲, 조홍섭 조홍섭 한겨레신문 환경전문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로서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2014.10.31가리왕산 보전, 아직 늦지 않았다 2014.10.28수천킬로 밖 비 냄새 맡는 사막 물새의 ‘초능력’ 2014.10.27독충 먹고 암컷 유혹…처절하게, 민망하게 2014.10.23암사자 무리의 평화, 세계 야생동물 사진전 최우수작 2014.10.22초식동물 사라지면 아카시아도 가시 버린다

경제 기사만 26년 “재벌과 어울리되 비판 주저마라”


[한국의 전문기자들 ①] 곽정수 한겨레 경제부 선임기자 입력 : 2014-10-31 15:03:29 노출 : 2014.11.01 09:48:10 미디어오늘이 ‘한국의 전문기자들’ 기획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저널리즘의 가치가 추락하고 선정적인 이슈 경쟁과 가십성 낚시 기사가 범람하는 시대, 격동의 취재 현장에서 전문 영역을 개척하면서 뉴스의 사각지대와 이면을 파고들고 저널리즘의 본질을 추구하는 ‘진짜 기자’들을 찾아 나서는 기획입니다. <편집자 주> 1988년 창간한 한겨레 공채 1기로 입사한 곽정수(53) 기자는 한국 언론 최초의 대기업 전문기자였다. 올해로 경제부 기자만 24년차다. 기자를 제너럴리스트(Genaralist)로 키워왔던 한국 언론에서 드문 경력이다. 지난달 29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만난 곽 기자는 기자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기자의 부서를 자주 바꿔버리는 언론사의 인사 관행을 바꾸는 것과 함께 언론의 독립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 기자는 “기자가 꼭 써야 한다고 보는 사안에 대해 회사 방침과 맞지 않다거나 광고주와의 관계를 내세워 기사를 못 쓰게 한다면 전문성을 살릴 수 없다”고 지적했다. ▲ 곽정수 한겨레 경제부 선임기자. 사진제공=곽정수 기자 곽 기자는 한겨레가 2009년 이건희 삼성 회장의 사면·복권 문제를 제대로 지적하지 못하자 대기업 전문 기자를 반납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곽 기자의 관심은 ‘재벌’이다. 곽 기자는 재벌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한국 재벌의 가족소유 경영체제에서도 노동자, 협력업체, 지역사회와 글로벌 사회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는 재벌개혁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곽 기자는 “독일의 가족 경영 기업들이 경제와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져서 경계의 대상이 아니라 박수의 대상인 이유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곽 기자와의 일문일답이다. -‘대기업 전문기자’ 타이틀을 처음 달았던 시기는 언젠가. “2001년 봄 당시 편집국장의 지시로 동료들과 함께 전문기자 시스템에 대해 연구했고 그해 도입됐다. 한겨레 첫 전문기자는 조홍섭 환경 전문기지다. 나는 연수가 끝난 2002년 대기업 전문기자로 임명됐다. 전문기자가 되기 전부터 경제 분야를 계속 다뤄왔다. 처음에는 재벌 전문기자를 하려고 했는데 편집국장이 재벌이라는 용어보다는 대기업이 낫다고 했다.” -입사 이후에 계속 경제부에 있었던 건가. “한겨레 공채 1기로 입사했는데 사회부와 편집부를 3년 정도 거친 것을 제외하고는 27년 동안 경제부에만 있었다. 나와 함께 입사한 동기들 중에는 매년 소속 부서가 바뀐 경우도 있었다. 부서가 자주 바뀌면 전문성을 갖기 굉장히 힘들다. 난 회사가 의도했다고 보진 않는데 인사 면에선 결과적으로 혜택은 입은 셈이다.” -기자가 전문성을 갖추려면 인사 문제 외에 어떤 조건이 필요하다고 보나. “기자가 꼭 써야 한다고 보는 사안에 대해 회사 방침과 맞지 않다거나 광고주와의 관계를 내세워 기사를 못 쓰게 한다면 전문성 살릴 수 있겠나. 기자의 전문성은 권력과 자본, 광고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언론의 독립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난 한겨레가 어느 언론보다 독립성을 구현하는 언론사이기 때문에 전문기자로 성장할 수 있었다. 특히 재벌 문제기 때문에 그랬다.” -언론사가 기자의 전문성을 중요시한다면서도 다른 부서로 자주 발령되는 이유는 뭘까. “과거엔 기자는 스페셜리스트보다는 제너럴리스트여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제너럴리스트여서는 신문 경쟁력을 높일 수 없다. 일부는 제너럴리스트고, 나머지는 전부 스페셜리스트가 돼야 한다. 나이 70,80세에도 현장에서 뛰는 해외 기자들의 사례를 전설처럼 이야기하지만 우리라고 불가능하지 않다.” -출입처가 정해져 있나. “재벌 정책을 주로 담당하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상시 출입처이고 삼성이나 현대차 등 재벌들도 두루 맡는다. 한겨레에는 ‘출입처에 얽매이지 말자’는 전통이 있다. 꼭 재벌문제가 아니더라도 재벌과 관련된 금융이나 정책 기사로 자유롭게 쓴다. 이건 다른 경제부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폐쇄적인 대기업에 내부 취재원을 만들기가 수월치는 않을 것 같다. “주 취재원이 사람이다 보니 정확한 정보를 가진 내부 사람과 접촉해야 하고, 신뢰가 쌓여야 고급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러면서도 비판 기사를 쓴다. 기자는 ‘관계맺기’와 ‘비판’이라는 일상적 모순 속에서 산다. 재벌을 취재하는 후배 기자들에게는 ‘어울리는 걸 주저하지 말고, 비판하는 것도 주저하지 말라’고 말한다. 어울리지 않으면 취재가 안 되고, 어울렸다고 비판하지 않으면 언론의 역할을 할 수 없다.” ▲ 지난해 8월28일 박근혜 대통령과 재벌 총수들은 청와대에서 오찬을 가졌다. (MBC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대기업에 대해 많이 비판하니 당하는 쪽에서는 곽 기자를 많이 관리하려고 했을 것 같다. “아무리 술을 많이 사줘도 비판 기사를 쓰니 본의 아니게 ‘저 사람, 인간성 안 좋다’는 말도 들었다. 술 먹을 때는 다 이해한다는 듯 하다가 기사는 정반대로 쓰니까. 기자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취재원들에게 잘 보이려고 언론의 역할을 포기하는 순간 나의 존재 이유는 없어진다. 어디라고 말하지 않겠지만 어떤 기업은 아예 가까워지려는 노력 자체를 안 하더라. 무시하는 거다. ‘저 기자와 이야기해봤자 기업 정보만 나가지 득 될 게 없다’는 식이다.” -대기업을 오래 취재했으니 궁금한 걸 물어보겠다. 이건희 회장은 어떤 상탠가. “이건희 회장이 죽고 사는 문제는 의사가 아니고서는 말할 수 없다. 경제 기자의 관점에서 보면 경영자로서의 수명은 끝났다. 건강을 회복하더라도 경영복귀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삼성에 있는 사람들도 부정하지 않는다. 정확한 워딩이 ‘상식적으로 보면 그렇겠죠?’였다.” ▲ 한겨레 9월20일자 머리기사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의 인터뷰 기사가 인상적이었다. 박 회장의 말처럼 탈세나 매임 등 고질적인 병폐가 있는 재벌이 변화하고 있다고 보나. “재벌에 대한 나의 문제의식은 ‘재벌이 잘 돼야 한국사회가 잘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적의 문제가 아니라 긍정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 내부도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고 본다. 최근에는 재벌 개혁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더 커졌다. 박용만 의장은 변화에는 시간이 필요하니 인내심을 가져달라고 말한 것이고, 언론과 사회의 입장에서 보자면 좀 더 빠르게 변화해달라는 바람이 있을 것이다.” -가족소유 경영체제에서 변화가 가능한가. “한국사회에는 재벌에 대한 두 가지 편견이 있다. 한국 경제가 가족 소유경영을 바탕으로 한 재벌에 의해 발전했으니 공격하는 건 잘못됐다는 주장과 재벌 체제로는 한국 경제의 미래가 없다는 주장이다. 난 둘 다 잘못됐다고 본다. 독일이 세계 경제 위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히든 챔피언’이 있기 때문인데 이 기업들의 출발은 모두 가족소유기업이었다. 이 지배구조는 안정된 리더십이라는 장점이 있다.” -독일의 기업들은 삼성공화국이란 말이 나올 만큼 사회 곳곳에 부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독일의 기업들이 경제와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져도 경계의 대상이 아니라 박수의 대상인 이유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 재벌의 과제다. 경제민주화가 이슈가 됐을 땐 탈세나 배임을 저지른 총수들에게 법적인 책임을 묻자고 목소리 높이지만 벌써부터 사면 복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독일에서 이런 분위기가 없다.” -가장 개혁가능성이 높은 재벌은 어디라고 보나. “재벌개혁 과제 중 소유 지배 구조와 관련해서는 지주회사로 전환한 LG가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문제가 없는 기업은 아니지만 몇 년간 총수 관련 문제로 비판받은 일은 거의 없었다.” -언론계에는 한겨레가 일간지 중 삼성 광고 비중이 제일 높다는 말이 있다. “삼성 뿐 아니라 대기업 광고 의존도가 높다. 재벌과 광고로부터 독립하는 언론을 추구하는 한겨레의 한계이며 지속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광고 의존도가 높으면 기자들의 자기검열 분위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고를 아예 받지 말자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불가능할 뿐더러 그럴 필요도 없다. 광고에 종속되지만 않으면 된다.” -지난해 삼성이 백혈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올림에 협상을 제안했다고 쓴 기사에 대해 반올림 측은 오보라고 주장했다. 재벌을 비판해온 기자도 결국 재벌의 논리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삼성이 제안한 적이 없어야 오보가 된다. 반올림은 내가 삼성을 비판하더니 삼성의 언론플레이에 협조했다고 하더라. 하지만 기자라면 사실을 쓰는 게 맞다. 언론플레이라고 해서 쓰지 않아야 하나. 그렇다고 기사를 쓰지 않는다면 기자가 아니라 운동가다. 그리고 반올림과 관계하는 믿을만한 소식통을 통해 반올림의 반응에 대해 다 취재했다.” ▲ 한겨레 2013년 1월9일자 1면 기사 -삼성을 출입하던 한겨레 기자가 삼성으로 옮겨갔다. “원론적으로는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다지만 어제까지 동료였던 기자가 오늘은 출입처였던 기업의 홍보실 간부로 가서 ‘기자님’이라고 하면 옮겨간 친구도 얼마나 힘이 들 것이며, 동료 기자도 얼마나 당혹스럽겠나. 이건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왜 기자들을 데려가는 지에 대해 기업들에 묻고 싶다. 좋게 말하면 기업이 사회 여론에 둔감하니 여론을 중시하는 기자를 데려다가 자기 변화의 촉매제로 쓰려는 목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여론의 압력을 교묘하게 빠져나가기 위해 데려간다. 기자를 속해 있었던 언론사 로비용으로 쓰려는 목적이라면 정말 바람직하지 않고 옮겨간 기자도 불행하다.” -대기업을 오래 취재했는데 이직 제안 받은 적 있나. “고민할 일이 없었다. 한번 쯤 있었을 법도 한데 왜 없었는지 나도 궁금하다.”(웃음) -다시 대기업 전문기자로 되고 싶은 생각이 있나. “당연히 있다. 전문기자와 선임기자는 다르다. 전자는 전문성이 있는 기자로 임명한 것이고, 후자는 데스크 경험 등 일정 조건을 갖춘 시니어 기자들에 대해 붙여준 이름이다. 하지만 한겨레가 최근 몇 년 동안 전문기자를 뽑지 않았다.” -한겨레가 전문기자를 뽑지 않는 이유는. “부담스러워 그러지 않나 싶다. 예를 들어 임명한 전문기자가 자기 발전 측면에서 정체돼 있거나 그 분야에서 더 잘하는 후배 기자가 나타난다면 언론사는 전문기자를 바꿀 수도 있어야 한다. 쉽지 않은문제지만 전문기자 제도를 정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행정적인 어려움을 이유로 전문기자 제도를 제대로 시행하지 않는다면 기자의 전문성을 포기한 것이다. 전문기자들도 내부 경쟁을 용인해야 한다.” 조수경 기자의 트위터를 팔로우 하세요. @ mysoo27

여군 "적은 아군 남자였다"


여군 “적은 아군 남자였다” 등록 : 2014.10.31 18:37수정 : 2014.11.01 10:41툴바메뉴 스크랩 오류신고 프린트기사공유하기facebook63twitter95보내기 남성 직속상관의 지속적인 성추행과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자살한 오아무개 대위의 안장식과 하관식이 열린 4월8일 오후 대전 유성구 대전현충원에서 오 대위의 어머니가 동료 여군을 안은 채 오열하고 있다. 대전/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토요판] 정문태의 제3의 눈 (33) 여군의 신화와 현실 ▶ 정문태 1990년부터 타이를 베이스 삼아 일해온 국제분쟁 전문기자. 23년간 아프가니스탄·이라크·코소보를 비롯한 40여개 전선을 뛰며 압둘라흐만 와히드 인도네시아 대통령, 훈센 캄보디아 총리 등 최고위급 정치인 50여명을 인터뷰했다. 저서로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2004년), <현장은 역사다>(2010년)가 있다. 격주로 국제뉴스의 이면을 한겨레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지금껏 미군에서 성폭행이나 성추행 경험을 보고한 여군 가운데 장군이 된 이는 아무도 없다. 여군 79%가 성학대를 경험했다는 미군에서 7.1%에 이르는 여성 장군 가운데 단 한명도 피해 경험이 없다는 사실을 기적으로 볼 것까진 없다. ‘용감한 쿠르드 여전사…이슬람국가(IS)에 자살폭탄 맞서’ ‘노르웨이 2016년부터 여성 징병제 실시’ ‘현역 육군 중령 부하 여군 성폭행 혐의 구속’ ‘잠수함에도 여군 탄다. 이르면 2017년부터’ ‘여군 1만명 시대에 산부인과 군의관은 전원 남자’…. 요즘 우리 언론이 여군한테 부쩍 눈길을 주는 모양이다. 10월 들어서는 신문과 방송 가릴 것 없이 모든 언론사가 거의 날마다 여군 뉴스를 퍼 날랐다. 여군이 갑자기 나타난 것도 아니고 여군 성학대 같은 고질적인 문제들이 10월에만 터진 것도 아닐 텐데, 무슨 유행인가 싶기도 하다. 여군에 대한 관심이야 굳이 나무랄 일도 아니지만, 심사가 좀 복잡하다. 어제는 여군 성학대 문제를 애처롭게 다루며 핏대를 올리더니 오늘은 은근히 여군을 내세워 군사주의를 부추기는 언론사들 태도가 그렇다는 말이다. 동정심과 군사주의, 이런 건 여군을 대하는 본질이 아닐뿐더러 그 둘은 상극이기도 하다. 이슈타르에서 녹주부인까지 그러고 보니 우리 언론사들이 여군을 아주 ‘귀하게’ 다뤄 온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여군 이야기만 떴다 하면 눈을 부라린 채 지면과 화면으로 대접해 왔다. 여군이면 가십거리도 곧잘 뉴스로 둔갑했다. 그사이 여군은 조건 없이 예쁜 얼굴 잘빠진 몸매여야 한다는 게 언론사들 선택이었다. 여군, 즉 돈 되는 상품으로 여겼다는 뜻이다. 그러니 언론사들은 여군 성학대를 놓고 불같이 화를 내다가도 어느 틈엔가 비키니 입고 총 든 금발 여군 사진을 떡하니 올릴 만큼 간도 커졌다. 요즘 우리 언론사들 인터넷판을 한번 보시라. 예컨대 10월10일 부하 여군을 성추행한 혐의로 체포당한 육군 17사단장 뉴스판이다. <동아일보> 10월10일치 ‘육군 현역 17사단장 긴급체포, 성추행 피해 여군 위로해준다며 껴안고…’, <서울신문> 10월11일치 ‘육군 현역 사단장 긴급체포, 17사단장 집무실서 여군 성추행 행위 보니 경악’, <한국경제티브이> 10월12일치 ‘성추행으로 징역 6개월 수감 사례 보고도… 육군 17사단장 긴급체포’ 같은 기사들은 머리, 꼬리, 옆구리 할 것 없이 모조리 벌거벗은 여성 사진들에 포위당했다. <조선일보> 10월10일치 ‘육군 현역 17사단장 긴급체포, 부하 여군 성추행 혐의… 군 기강 비상’이란 기사 옆구리에는 ‘우리는 누구보다 강한 대한민국 특전사’란 사진에다가 ‘탄성 자아내는 허벅지’란 제목을 단 여성 연예인 사진을 붙여놓았다. 어쩌자는 건가? 뭘 말하고 싶은 건가? 이게 여군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비난해 온 대한민국 언론사들 얼굴이다. 하기야 남근중심주의 역사관을 바탕에 깐 신화나 전설에서도 어김없이 여전사들이 등장하는 걸 보면 여군은 꽤 오래된 상품이 아닌가 싶다. 메소포타미아의 이슈타르(야슈타르), 이집트의 아누케트, 힌두의 두르가, 아즈텍의 이츠파파로틀, 아마존의 펜테실레이아 같은 이들이 신화 속 여전사라면 삼한을 정벌했다는 일본판 진구황후나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을 거들었다는 녹주부인은 전설 속 여전사들이다. 역사시대로 넘어와서도 7세기 중동의 카울라 빈트 알아즈와르, 10세기 키예프의 올가, 11세기 고려의 설죽화, 13세기 몽골의 쿠툴룬, 15세기 프랑스의 잔 다르크, 16세기 타이의 수리요타이 같은 구국 여전사들이 대를 이었다. 20세기로 넘어오면 영국 식민지배에 맞섰던 가나의 야아 아산테와아, 농지를 요구하며 브라질 정부군에 맞섰던 15살 소녀 마리아 로자, 김원봉의 민족혁명당에 참여해 조선의용대 부녀대 대장을 지낸 이화림처럼 해방혁명전쟁에 앞장섰던 여전사들이 등장했다. 그런가 하면 발틱지역에서는 1980년대 러시아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1990년대 체첸전쟁에 이어 올해 우크라이나 분쟁에서도 흰옷 입은 여성 저격수가 러시아군을 쏘아 죽였다는 화이트 타이츠 같은 현대판 전설도 나돈다. 시대와 장소 가림 없이 등장하는 이 여전사들 이야기는 모두 정사를 벗어나 부풀려졌고 거의 모두가 남장을 한 채 적을 무찔렀다는 극적 공통점을 지녔다. 이건 인류사에서 전쟁은 모조리 남자의 일이었다는 증거다. 그 남자들의 사업에는 초월적인 힘이 필요했고, 그 남자들은 숭배 대상인 어머니를 투영시킨 여전사라는 상품을 만들어냈던 셈이다. 역사 속의 여전사들 이야기 대부분 정사 벗어나 부풀려져 전쟁은 남자의 일이었다는 증거 그 일엔 초월적 힘이 필요했고 숭배 대상인 어머니를 투영시켜 노르웨이를 한국과 비교하며 여성징병제 언급하는 건 어색 노르웨이 양성평등 지수 3위 117위 국가 한국이 흉내내는 건 여성박해이자 집단자해 행위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여군들이 성폭행 범죄에 노출돼 있다. 징병제 실시로 전체 군인 중에서 33%를 차지하는 이스라엘 여군의 모습. AP 연합뉴스 성폭행 경험 밝히고 장군 된 경우 없어 이제 현실 속의 여군을 보자. ‘2012년 현역 여군 1만2100명이 성폭행이나 성추행 경험’ ‘퇴역 여군 37%가 두 차례 이상 성폭행 경험’ ‘퇴역 여군 14%가 집단 성폭행 경험’ ‘성폭행 피해를 보고한 여군 15% 미만’ ‘여군 79%가 성학대 경험’ ‘성폭행 가해자 40%가 상급 장교’ ‘성폭행 피해 고발자 62%가 보복 경험’ ‘성폭행 가해자로 고발당한 군인 80%가 명예제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참전 여군 4만8100명이 성적 외상 고통 호소’…. 이게 우리 군이 신줏단지처럼 떠받들어 온 미국 군대의 여군 현실이다. 미국 국방부 2011년 통계에는 140만 미군 가운데 여군이 14.5%인 20만3천명으로 나와 있다. 장군 697명 가운데 7.1%인 69명과 장교 16.6%인 3만6천명이 여군이다. 미국은 공식적으로 여군의 전투 참여를 금지해 왔지만 2012년까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여군은 전사자 100명과 부상자 900명을 냈다. 이건 미국 군사 체계에서 이미 중대한 역할을 떠맡은 여군이 성적으로는 여전히 피해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오죽했으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참전 여군들이 “적은 (아군) 남자였다”고 입을 모았을까. 지난 4월 말 미국 국방부는 2013년 성폭행과 성학대가 1년 전보다 50% 늘었다고 밝히면서 성범죄 5061건 가운데 484건을 재판에 부쳐 376건에 유죄 판결을 내렸다고 덧붙였다. 재판 회부도 유죄 판결도 모두 10%가 채 되지 않는다. 미국 국방부는 85% 웃도는 성폭행 범죄가 보고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했다. 공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미국 국방부 2012년 비밀조사보고서는 성범죄가 2만6천건에 이른 것으로 추정했고 그 가운데 보고된 사례가 3374건에 지나지 않았다. 그 결과 지난 25년 동안 미국 군대 안에서 성범죄에 노출된 군인만도 남녀를 통틀어 50만명에 이르렀다. 미국 군대만 그런 것도 아니다. 1948년 독립 때부터 여군 징병제를 실시해 온 이스라엘에서는 여군 여덟 가운데 하나꼴로 성폭행과 성학대를 당해 왔다. 2014년 이스라엘 군 발표에 따르면 현역 군인 17만6500명 가운데 여군이 33%인 5만8천여명이다. 말하자면 적어도 하루에 여군 1명 이상이 성폭행이나 성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뜻이다. 영국 군대도 마찬가지다. 영국군의 9.5%를 차지하는 여군 1만8천여명 가운데 10%가 성적 학대를 당했다고 올해 영국군 태도조사 보고서가 밝힌 바 있다. 이처럼 조금씩 차이가 날 뿐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여군들이 성폭행과 성학대를 당해 왔다. 이게 여군 현실이다. 우리 여군을 보자. 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 8월 여자의용군 교육대 491명으로 출발한 우리 여군은 올 6월 말 현재 9228명으로 늘어났고 장교와 부사관의 4.7%를 차지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2012년 여군인권상황 실태조사 보고서는 여군 43%가 성차별을 경험했고 11.9%는 최근 1년간 성희롱을 당했다고 밝혔다. 올 10월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3년 6월까지 여군 성범죄 피해가 61건이라고 한다. 그 가운데 가해자가 실형을 받은 경우는 단 3건(4.92%)뿐이고 기소유예, 선고유예, 공소권 없음, 무죄가 39건(63.9%)이었다. 얼핏 보면 우리 여군의 성범죄 피해나 성학대 경험이 교범으로 여겨온 미국 여군보다 낮다. 그렇다고 한국군이 미군보다 더 도덕적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보다는 우리 군대의 성범죄 기소와 유죄 판결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대목을 눈여겨볼 만하다. 이건 우리 여군 성범죄 피해자들이 보고하기 힘든 환경이라는 뜻이다. 지금껏 미군에서 성폭행이나 성추행 경험을 보고한 여군 가운데 장군이 된 이는 아무도 없다. 여군 79%가 성학대를 경험했다는 미군에서 7.1%에 이르는 여성 장군 가운데 단 한명도 피해 경험이 없다는 사실을 기적으로 볼 것까진 없다. 성폭행이나 성추행을 당한 여군 가운데 15% 미만이 보고했을 뿐이니까. 과연 우리 여군은 어떨까? 당신들의 딸을 군대 보내고 싶은가 문제는 우리 사회다. 군대만 죽으라고 두들긴들 여군 사정이 나아질 수 없다. 군사주의 무장철학에 물든 사회가 여군 현실을 바로잡을 수 없다는 뜻이다. 좋은 본보기가 바로 노르웨이의 여성징병제를 대하는 눈길 아닌가 싶다. 10월20일 모든 언론이 노르웨이의 여성징병제 실시계획을 마치 세계적인 흐름이라도 되는 양 떠들어대자 또 여기저기서 여성징병제를 들고나온 모양이다. 여성징병제는 군가산제 같은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강골 남성들이 빼들었던 단골 메뉴다. 노르웨이와 한국을 견줘보자. 노르웨이가 현역 2만5천명에다 예비군 4만5천명을 지녔다면 한국은 현역 64만명에 예비군 430만명을 거느렸다. 인구로 따지면 5천만명인 한국이 500만명인 노르웨이에 10배지만 군사 규모로 따지면 70배가 넘는다. 이런 노르웨이를 한국에 맞대 놓고 여성징병제를 입에 올리는 건 너무 어색하지 않은가. 노르웨이를 본보기 삼아 한국의 여성징병제를 말해서 안 되는 까닭이 또 있다. 2014년 세계경제포럼(WEF)이 경제, 정치, 교육, 보건을 분야별로 조사해서 밝힌 ‘세계 성별차 보고서’에 따르면 노르웨이는 양성평등 지수가 142개국 가운데 3위였고 대한민국은 117위였다. 이처럼 여성 차별이 심각한 사회에서 여성을 모두 군대에 보내자는 건 한마디로 여성박해다. 집단자해 행위다. 우리보다 양성평등 지수에서 훨씬 앞선 영국(18위), 미국(23위), 이스라엘(53위)에서도 여군은 성범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실정이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21세기 세계시민사회의 화두는 군비 축소와 무장해제를 바탕에 깐 반전운동이다. 여성의 섬세함과 전문성을 보태 군대를 현대화시키자는 입에 발린 소리도, 여성을 징집해서 군대를 키우자는 희한한 소리도 모조리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짓이다. 지금 우리한테 시급한 건 1만 여군을 성폭행과 성추행과 성학대로부터 보호하는 일이다. 그래도 당신들의 딸과 누이를 모두 군대에 보내고 싶은가?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지현이 덕분에 희망 생겼지만, 남은 우린..."


[현장] 참사 200일 하루 앞둔 진도체육관... "수색 계속돼야 할 텐데" 14.11.01 09:24l최종 업데이트 14.11.01 09:24l소중한(extremes88) 기사 관련 사진 ▲ 고 황지현양의 가족이 떠난 다음날이자, 세월호 참사 200일을 하루 앞둔 31일, 진도실내체육관은 평소보다 더 어두웠다. 궂은 날씨만큼, 남은 실종자 가족의 얼굴도 어두웠다. 체육관 우측 중앙 부근엔 아직 지현양 가족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입던 옷가지, 덥던 이불, 먹던 간식이 잘 정리돼 놓여 있었다. 다만 자리 곳곳에 놓여 있던 지현양의 사진, 그림은 찾아볼 수 없었다 ⓒ 소중한 관련사진보기 10월의 마지막 날, 진도에는 장대비가 쏟아졌다. 고 황지현양의 가족이 떠난 다음날이자, 세월호 참사 200일을 하루 앞둔 10월 31일, 진도실내체육관은 평소보다 더 어두웠다. 궂은 날씨만큼, 남은 실종자 가족의 얼굴도 어두웠다. 얼마전부터 틀기 시작한 온풍기 소리가 '우우우웅' 하며 진도실내체육관의 빈공간을 채웠다. 체육관 우측 중앙 부근엔 아직 지현양 가족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입던 옷가지, 덥던 이불, 먹던 간식이 잘 정리돼 놓여 있었다. 다만 자리 곳곳에 놓여 있던 지현양의 사진, 그림은 찾아볼 수 없었다(관련기사 : 6개월 전 떠난 외동딸, 생일에 돌아오다). 월요일까지 수색 어려울 듯... "왜 이렇게 비가" 기사 관련 사진 ▲ 고 황지현양의 가족이 떠난 다음날이자, 세월호 참사 200일을 하루 앞둔 31일, 진도실내체육관 앞에 장대비가 내리고 있다. ⓒ 소중한 관련사진보기 지난 10월 30일 갑작스러운 기상악화로 중단된 세월호 수색은 이날도 진행되지 못했다. 현장 바지선 두 척은 궂은 날씨를 피해 팽목항에 돌아와있다. 구조 당국은 월요일(11월 3일)까지 수색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떠난 이는 한 명이지만 빈 공간은 훨씬 커 보였다. 오후 5시, 실종자 허다윤(단원고 2학년)양의 어머니 박은미씨와 실종자 양승진(단원고 교사)씨의 아내 유백형씨는 한 이불을 덮고 꼭 붙어 앉았다. 지현양 가족이 떠나 허전해진 가슴의 한 구석을 채우려는 듯, 박씨와 유씨는 나란히 앉아 서로를 위로했다. 앞서 진도실내체육관에 마련된 물리치료 부스에서 유씨를 만났다. 침대에 걸터앉아 멍하니 바닥을 바라보던 유씨는 기자와 눈이 마주치자 옅은 미소를 내보였다. 연신 "미안하다"라던 지현양 아버지를 꼬옥 안으며 "지현이 덕분에 희망이 생겼다"고 말한 실종자 가족들이지만 슬픈 표정을 감추진 못했다. "(수색에) 탄력이 붙었을 때 계속해야 하는데. 비가 이렇게 쏟아지니까…. 지현이 찾은 건 정말 좋은 일이야. 근데 어쨌든 (남은) 우린 너무 슬프지." 가수 김장훈씨, 진도문화예술제 공연... 팽목항 문화제도 예정 기사 관련 사진 ▲ 고 황지현양의 가족이 떠난 다음날이자, 세월호 참사 200일을 하루 앞둔 31일, 진도실내체육관은 평소보다 더 어두웠다. 궂은 날씨만큼, 남은 실종자 가족의 얼굴도 어두웠다. 실종자 양승진(단원고 교사)씨의 아내 유백형씨가 물리치료실 부스의 침대에 걸터앉아 생각에 잠겨 있다. ⓒ 소중한 관련사진보기 실종자 권재근·혁규 부자를 기다리는 권오복씨는 뒷짐을 진 채, 체육관 이곳저곳을 거닐었다. 체육관 모니터에서 나오는 세월호 특별법 관련 보도를 보며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던 권씨는 "지현이가 발견돼 놓았던 끈을 다시 잡았다"라고 말했다. 지현양이 발견된 4층 중앙 여자화장실은 구조 당국이 13차례 수색한 뒤, 수색 완료 선언을 했던 곳이다. 때문에 실종자 가족들은 "13차례 수색하는 동안 왜 찾지 못했나"라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내 가족도 선내 어딘가에 있겠구나" 하는 희망을 품고 있다. 유백형씨는 "제발, 11월엔 철저히 수색작업을 진행했으면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지현양이 발견된 다음날인 10월 29일 기자회견을 열어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11월 수색방안을 전면 재검토한 뒤, 선내 전 구역을 대상으로 주도면밀한 수색계획을 조속히 수립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관련기사 : "'수색 완료' 지점서 실종자 발견... 수색계획 재검토해야"). 한편, 세월호 참사 200일째 되는 날인 11월 첫날, '기억을 새기다'라는 제목의 추모 문화제가 진도에서 열릴 예정이다. 세월호참사 가족대책위, 투게더광산 나눔문화재단, 세월호 3년상을 치르는 광주시민상주모임이 기획한 이번 문화제는 1일 오전 2시 팽목항에서 열린다. 이들은 문화제에 앞서 5m 높이의 노란리본 조형물을 팽목항 방파제에 설치하기도 했다. 조형물은 투게더광산 나눔문화재단의 후원금과 국민들의 성금을 모아 제작했다. 추석에 진도를 찾았던(관련기사 : '13번째 진도행' 김장훈 "올 추석은 진도가 큰집") 가수 김장훈씨는 1일부터 이틀 동안 진도에 머물며 실종자 가족을 위로하고, 제39회 진도문화예술제에 힘을 보탠다. 김씨는 1일 오후 7시 진도군청 앞 철마공원에서 열리는 '군민의 날 축하의 밤' 행사와 2일 낮 12시 진도읍장에서 열리는 '진도장터 음악회'에서 공연을 할 예정이다. 10월 20일 김씨는 진도군청을 찾아 이동진 진도군수와 행사 관련 논의를 했으며, 같은 날 페이스북에 "진도에 가서 (실종자) 가족, 진도군민들과 사랑을 나누면 좀 평안해지겠죠"라고 쓰기도 했다. 기사 관련 사진 ▲ 세월호 참사 200일을 맞아 가수 김장훈씨는 1일부터 이틀 동안 진도에 머물며 실종자 가족을 위로하고 제39회 진도문화예술제에 힘을 보탠다. 김씨는 1일 오후 7시 진도군청 앞 철마공원에서 열리는 '군민의 날 축하의 밤' 행사와 2일 낮 12시 진도읍장에서 열리는 '진도장터 음악회'에서 공연을 할 예정이다. 김씨와 이동진 진도군수가 20일 진도군청 군수실에서 행사 관련 논의를 하고 있다. ⓒ 진도투데이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세월호 참사 200일째 되는 날인 11월 첫날, '기억을 새기다'라는 제목의 추모 문화제가 열릴 예정이다. 세월호참사 가족대책위, 투게더광산 나눔문화재단, 세월호 3년상을 치르는 광주시민상주모임이 기획한 문화제는 1일 오전 2시 팽목항에서 열린다. 이들은 문화제에 앞서 5m 높이의 노란리본 조형물을 팽목항 방파제에 설치하기도 했다. 조형물은 투게더광산 나눔문화재단의 후원금과 국민들의 성금을 모아 제작했다. ⓒ 소중한 관련사진보기

사람답게 살만한 세상위해 다시 뭉쳤다


전국 58개 대학 민주동문회 전민동 결성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4/11/01 [13:20]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새로선출 된 각 지역 대표들이 회의를 거쳐 선출 되었다. ©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다 이루어진 것 같았던 민주세상은 뒷걸음질 쳤고 자주. 민주, 통일의 함성 속에 피흘렸던 오월은 아직도 현재 진행 중임을 각성한 민주화 세대들이 다시 뭉쳤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이화여대 등을 비롯한 전국 58개 대학 민주동문회(동우회)는 1일(토) 오후 1시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 2층 조에홀에서 ‘전국대학민주동문회협의회’(이하 ‘전민동) 결성식을 갖고 각 대학 민주동문회의 발전과 세월호 참사 등 사회민주화 현안에 적극 나설 것을 결의 했다. 대학 민주동문회는 지난 87년 6월항쟁 이후 이한열 열사의 죽음을 계기로 출범한 연세민주동문회를 시작으로 전국 100여 개 대학에서 각 대학별로 기존 총동창회(동문회)가 갖는 한계를 극복하고 당시 시국 현안에 적극 결합하고자 하는 취지로 결성되었었다. 전민동 측은 "1990년에 전국대학민주동문회협의회를 결성하여 공동으로 사회민주화운동을 벌여온 바 있으나나 2000년대 이후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취임 등 우리 사회의 정치 민주화가 일정한 성과를 거두면서 상대적으로 활동이 미약해지고 일부 대학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해체되었으며, 전민동 역시 사실상 해산상태에 있었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그러나 최근 이명박, 박근혜 보수 수구정권의 연속된 집권에 이은 민주화의 심각한 퇴보, 파행을 맞아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낀 과거 학생운동 출신들을 중심으로 각 대학마다 민주동문회 부활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며 "그간 전국적으로 약 80여 개 대학에서 재결성되거나 결성 논의가 진행 중에 있으며, 학교별로 회원들간의 친목, 복지사업 등과 함께 공동으로 국정원 불법선거개입 규탄시위, 세월호 참사 특별법 요구집회 등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전민동 결성에 뜻을 모은 58개 대학이 세월호 참사 200일을 맞는 11월 1일 사실상의 전민동 재결성식을 개최하기에 이른 것"이라고 결성 취지를 설명했다. 이날 결성식은 함세웅 신부,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송주명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상임의장 등 내빈들과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회원들이 참여한 가운데 상임공동대표단 선출 및 회칙 제정에 이어 세월호 진상규명 투쟁 및 민주주의 수호 투쟁에 관한 건, 광역별로 분기마다 민동포럼 개최 건, 5∙18 광주순례 등 사업계획을 논의 결정하고 (재)결성 선언문을 채택하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이날 임원진 선출은 서울시립대민주동문회 황인상 회장이 상임대표로 선출 되었으며, 사무처장에 이창희, 감사에 송명희씨가 선임 되었다. 2부 순서는 축하공연에 이어 오후5시부터 청계광장에서 열리는 세월호 참사 200일 촛불집회에 참가할 계획이다. ▲ 전민동 결성식에 참석한 인사들이 '님을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투쟁 결의를 다지고 있다. ©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전민동 결성 선언문 전문을 게재한다. 전국 대학민주동문회 협의회 결성 선언문 우리에겐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말을 가슴 깊이 되새기며 살아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당시 민주화세대는 사랑하는 조국과 역사의 부름에 응답하기 위해서 기꺼이 젊음과 열정을 바치고자 했습니다. 온갖 억압과 불평등에 맞서서 함께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자고 다짐했습니다. 언제까지나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 곁에 있고자 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87년 6월민주항쟁에서 승리하고 이후에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데 기여했다는 자부심이 우리 세대의 심장에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광풍에 휩쓸리면서 참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길을 잃어버린 채 또다시 불의와 불평등을 강요하는 세력에게 사회 변화의 주도권을 넘겨주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세월호 참사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말만 믿고 기다리다가 죽어간 아이들은 이제 우리에게 깊이 생각하고 행동하고 변화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 민주화세대는 전국 대학민주동문회 협의회를 결성하여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를 건설할 때까지 끈질기게 한걸음 한걸음 내딛겠습니다. 이 땅의 민중들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산화해간 열사들의 뜻을 되살려 나가겠습니다. 일상 속에서 사회 시스템을 바꾸고 이웃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세상을 멋지고 아름답게 물들이겠다는 젊은 날의 꿈을 기필코 실현해낼 것입니다. 2014년 11월 1일 전국 대학민주동문회 협의회 이번 전민동 결성에 참여하는 전국 각 대학 민주동문회(동우회)는 다음과 같다(가나다 순, [ ]는 참관단체) -서울지역(23) 건국대, 경희대, 고려대, 국민대, 단국대, 동국대, 서강대, 서울대, 성균관대, 시립대, 연세대, 이화여대, 중앙대[+경기대(서울), 서울과기대, 숙명여대, 총신대, 한국외대, 한성대, 한양대, 재경대구경북민동, 재경원광대민동, 재경충북민주향우회] -부산경남지역(10) 경남대, 경성대, 동아대, 동의대, 마산대, 부경대, 부산대, 부산외대, 육지희정신계승사업회(부산지역전문대민주동문협의체), 인제대 -대구경북지역(6) 경일대, 계명대, 대구대, 영남대[+대구가톨릭대, 대구한의대] -전북지역(1) 원광대 -전남지역(4) 동신대, 전남대(준), 조선대, 호남대 -대전충남지역(4) 단국대(천안), 충남대[+한남대, 호서대] -충북지역(1) 충북대 -강원지역(4) 강릉대, 강원대, 상지대, 한림대 -경기인천지역(5) 경기대(수원), 경희대(수원), 명지대(용인), 인천대[+한신대]

2014년 10월 30일 목요일

북한 ‘희토류’, 결국 러시아로 넘어가나


북한 ‘희토류’, 결국 러시아로 넘어가나 MB 정권, 해외 자원개발사업 실패로 수십조 날려 정운현 | 2014-10-31 10:48:0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MB 정권, 해외 자원개발사업 실패로 수십조 날려 ‘희토류’를 아십니까? 용어사전 풀이에 따르면, ‘희토류’(稀土類; Rare Earth Elements)는 원소기호 57번부터 71번까지의 란타넘(란탄)계 원소 15개와, 21번인 스칸듐(Sc), 그리고 39번인 이트륨(Y) 등 총 17개 원소를 총칭하는 말이다. 희토류는 물질의 지구화학적 특성상 경제성이 있을 정도로 농축된 형태로는 산출되지 않고 광물 형태로는 희귀하므로 ‘자연계에 매우 드물게 존재하는 금속원소’라는 의미에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희토류는 흔히 ‘21세기 산업계의 비타민’으로 불린다. 희토류는 화학적으로 매우 안정되고 건조한 공기에서도 잘 견디며, 열을 잘 전도하는 특징이 있다. 희토류는 전기 및 하이브리드 자동차, 풍력발전, 태양열 발전 등 21세기 저탄소 녹색성장에 필수적인 영구자석 제작에 필수불가결한 물질이다. 또한 LCD·LED·스마트폰 등의 IT산업, 카메라·컴퓨터 등의 전자제품, CRT·형광램프 등의 형광체 및 광섬유 등에 필수적일 뿐만 아니라 방사성 차폐효과가 뛰어나기 때문에 원자로 제어제로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21세기 산업의 비타민’으로 불리는 희토류 산업계에서 주로 회자되던 희토류가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지난 2010년 9월 동중국해 일부 섬들을 둘러싸고 중국과 일본이 벌인 영유권 분쟁 때였다. 일본 당국이 중국 선원을 불법조업 혐의로 구금시키자 중국은 일본에 대한 희토류 수출금지라는 경제적 조치로 맞섰다. 그러자 일본은 구금시켰던 중국 선원을 곧장 석방하였다. 이로써 영토분쟁을 둘러싼 중일간의 분쟁은 중국은 일방적인 승리로 막을 내렸다. 바로 희토류 때문이었는데, 외교전이 자원전쟁으로 판가름 난 셈이다. 세계 최대의 희토류 매장국은 중국으로 매장량은 약 5,500만 톤에 이르는데 중국희토류협회는 미확인 희토류를 포함해 얼추 1억t으로 추정하고 있다. 두 번째 최대 매장국은 독립국가연합(CIS)으로 매장량은 1,900만t이며, 3위는 미국으로 1,300만t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희토류 생산량을 보면 얘기는 또 다르다. 최대 생산국은 중국으로 2010년 생산량은 130,000t으로, 이는 전 세계 생산량의 97%를 차지한다. 사실상 희토류 시장은 중국이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희토류는 채굴, 분리, 정련, 합금화 과정을 거쳐 상품화가 이뤄지는데 이 과정에서 고도의 기술력이 요구되고 있다. 특히 가공 과정에서 엄청난 공해물질이 발생해 후진국형 산업으로도 불린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가공비용과 환경오염 문제 등을 이유로 희토류 생산에 적극적이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첨단소재산업이나 IT·자동차산업 등에 필수불가결한 소재여서 외면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일본의 경우 희토류 가공기술이 우수해 생산국인 중국보다 알짜 재미를 보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2013년 1월 7일, 빌 리처드슨 전 뉴멕시코 주지사와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 일행이 3박4일간 북한을 방문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북한에 억류 중인 케네스 배(한국명 배준호) 석방 교섭이라는 인도주의적 목적이었다. 그런데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이 인터넷 불모지인 북한을 방문한 것을 두고는 다른 분석이 제기됐다. 속셈은 북한과 자원개발 문제를 협의하려는 것이었으며, 그 대상은 북한의 희토류라는 것이었다. 혹자는 슈미트 회장이 미국 대기업을 대신해 방문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지난 연말 희토류 관련 빅뉴스 하나가 관련업계를 깜짝 놀라게 한 바 있다. <미국의 소리(VOA)>(2013.12.07.)는 “국제 사모펀드 SRE 미네랄스는 평안북도 정주(定州)에서 희토류를 개발하기 위해 북한 조선천연자원무역회사와 합작투자 계약을 체결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소재 합작회사 퍼시픽센추리는 향후 25년간 정주의 모든 희토류 개발권을 갖게 된다. SRE 미네랄스는 정주에 매장된 희토류의 가치를 약 65조 달러, 한화로 무려 6경8700조 원대로 추산했다. SRE 미네랄스는 북한 정주가 단일지역으로는 세계 최대 희토류 매장지역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망했다. 앞서 일본의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지난 2011년, 북한에서 확인된 희토류 매장량이 약 2천만t에 달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러나 현재 북한의 희토류 가공기술 수준은 매우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북한이 일본 등 가공기술이 우수한 국가들과 손잡고 희토류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설 경우 북한 경제에 엄청난 효과를 가져 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지난 29일자 국내 언론에 실린 북한 희토류 얘기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번에는 대상국이 러시아다. 러시아가 북한철도 현대화 사업에 나선 대가로 북한 희토류 금속을 채굴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러시아의 소리> 방송은 지난 29일(현지시간) “북한 철도 현대화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될 러시아 산학협동체인 ‘모스토빅’이 그 대가로 천연자원인 희토류 금속을 비롯해, 티타늄, 탄탈(희유금속원소), 금, 석탄 등을 채굴할 예정”이라 보도했다. 이 방송은 알렉산드르 갈루쉬카 러시아 극동개발부 장관이 “북한의 경우 희토류 금속이 이웃국가인 중국보다 7배가량 많다”며 “이는 6조억원에 달하는 수치”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모스토빅’은 총 7000㎞에 달하는 북한의 철도망 가운데 우선적으로 3200㎞를 현대화 할 계획이며, 대략 7년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알려졌다. 20~24일 평양을 방문한 갈루쉬카 장관은 21일 프로젝트의 시작인 ‘재동~강동~남포역 구간 철도 개건 착공식’에 참석했다. 북한 희토류 광산에서 채굴된 원석 상태의 희토류 모습 지난해 연말 ‘장성택 처형사건’ 이후로 중국과 소원해진 북한은 최근 러시아와 손잡고 다각적인 교류협력에 나서고 있다. 북한 리수용 외무상이 9월 말 러시아를 방문해 10일간 체류한 바 있는데, 일국의 외무장관이 타국에 11일간 체류하는 경우는 드문 일이다. 리 외무상은 방러 기간 중에 라브로프 러시아 외상과 회담을 갖고 나진-하산 철로 및 나진항 이용방안을 비롯해 양국간 경제협력 방안을 모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러시아와 북한이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다. 연초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은 대박’이라고 밝힌 바 있다. 통일은 말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남북 간에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하며 그 위에서 인적·물적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 통일은 그런 노력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며, 남북통일은 실로 ‘대박’이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혹자는 그 근거로 남한의 자본과 우수한 기술, 북한의 풍부한 지하자원과 값싼 노동력을 들기도 한다. 실지로 통일이 이뤄진다면 한반도의 위상은 일본을 뛰어넘어 세계 5~6대 강국이 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북한은 당장 형편이 어렵다는 이유로 북한 내 희토류 등 각종 지하자원을 닥치는 대로 외국에 방매(放賣)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북한은 광물 가공기술 수준이 낮다보니 원석 상태로 매각하고 있는 실정인데 그렇다 보니 실질적인 이득은 북한과 채굴계약을 맺은 선진국들이 챙겨갈 가능성이 크다. 북한 철도망 현대화 프로젝트 비용으로 250억 달러(약 26조1850억원)가 소요될 전망인데 러시아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20년 만기 계약 대가로 북한의 희토류 등 광물자원을 받기로 했다.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 해외자원 개발 명분으로 수 십 조원을 날린 것을 두고 말들이 많다. 어쩌면 이 정권 하에서 법적 문제로 비화돼 관련자들이 법적 책임을 지게 될지도 모른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우리 정부가 북한과 손잡고 북한의 희토류 등 지하자원 개발에 나섰더라면 남북 모두 윈-윈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MB 정권에서 ‘5.24 조치’를 통해 빗장을 걸어 잠그면서 교류마저 발이 끊겼다. ‘통일은 대박’은커녕 그 꿈도 못 꾸게 됐으니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는 노릇이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1&table=wh_jung&uid=65

‘박정희의 엽색행각’ 기사 펌질만 해도 유죄?


재판부 “사실확인노력 안 했다”… 전직 방통위원 책 “궁정동 드나는 여인 100명도 넘어”도 거짓? 입력 : 2014-10-30 17:56:56 노출 : 2014.10.31 10:45:35 조현호 기자 | chh@mediatoday.co.kr 박근혜 대통령을 명예훼손하거나 모욕했다는 이유로 고발장과 검찰 수사가 빈발하면서 박 대통령을 비롯해 동생 박지만씨,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혹을 제기했던 일반인들의 처벌이 속전속결로 이뤄져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모두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 취임 직후 기소당한 뒤 유죄확정 판결(대법원)을 받았거나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는 등 수난을 겪고 있다. 창원지법 형사4부(재판장 차영민 부장판사)는 지난 7월 3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박정규씨에 대해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앞서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도 지난 5월 16일 같은 혐의로 기소된 고창규씨에 대해 벌금 500만 원을 확정 판결했다. 이들의 선거법 위반 혐의는 대선을 석달 앞둔 2012년 9월 미주한인신문 ‘한겨레저널’에 실린 ‘[김현철 칼럼] 박정희의 승은 입은 200여 여인들’이라는 글을 퍼와 다음 아고라(박정규)와 트위터(고창규, 트위터 닉네임 ‘노루귀’)에 옮겼다는 것이다. 원로언론인으로 알려진 김현철씨가 쓴 칼럼의 주요 내용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부녀를 포함한 여성 200여 명을 일회용품 내지 소모품으로 취급해 성노리개로 삼았다”는 취지의 글이었다. 문제의 여성은 김삼화라는 영화배우로 갓 결혼해 애도 있는 여성이라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를 옮긴 고씨와 박씨는 박근혜 당시 대선후보가 아버지의 이런 행위에 대해 왜 사과하지 않느냐고 비판했다고 재판부는 설명했다. ▲ 영화 '그 때 그 사람들'의 한 장면. 재판부는 이 글의 내용과 이 글을 퍼나른 이들의 행태를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유포로 판단했다. 그러나 이런 의혹이 어떤 이유로 사실무근인지에 대해서는 재판부 스스로도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고창규씨와 박정규씨는 법정에 △원글 작성자인 김현철씨로부터 본래 한겨레저널에 기고한 칼럼 △‘김삼화가 박정희와의 관계 자세히 고백. 노이로제 걸려있어’라고 기재된 김현철의 메모 △김현철씨가 직접 문제의 여성에 대해 진술한 게 담긴 동영상 △김씨가 지난해 11월 11일 작성한 사실확인서 △김삼화에 대한 영화데이터베이스 자료화면 출력 자료 등을 제출했다. ▲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연합뉴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문제의 여성이 언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불려갔는지, 언제 미국으로 이민가게 됐는지 구체적 일시가 나타나 있지 않고, 메모에도 문제 여성과 박 전 대통령이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은 것인지 알 수 없다”며 “동영상에서도 김씨가 문제여성에 대해 프라이버시 때문에 인적사항 공개를 못한다고 진술할 뿐 칼럼 이상의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사실확인서 역시 김삼화의 실명이 직접 언급된 것을 제외하고는 위 동영상 내용과 대동소이하다”며 “이 자료들 외에 별도의 구체성 있는 소명 자료를 제출하고 있지 않는 이상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로서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판결했다. 또한 재판부는 고창규씨와 박정규씨가 모두 의혹의 진실여부를 확인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으며, 플로리다 지역 한인신문 한겨레저널에만 게재됐을 뿐 국내 언론에 보도된 적이 없어 칼럼 내용이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의문을 충분히 품을 만한 점이 있었는데도 사실확인에 소홀했다며 미필적 허위사실 공표의 고의가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한마디로 이번 판결은 두 피고인이 박정희의 여인들의 실체에 대해 사실확인 노력을 한 뒤 그런 언론의 칼럼도 옮겨야 한다는 취지를 보인다. 이를 두고 피고들은 정치재판이라고 반발하며 재심을 청구하거나 미국 법원을 통해 재판의 틀을 바꾸겠다며 반발했다. 고창규씨는 30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법원은 글쓴이인 김현철씨의 자료도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전형적인 권력 눈치보기식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고씨는 “정권이 바뀌면 무조건 재심을 청구할 것”이라며 “박정희가 성문란했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이 얘기를 한 사람에게 ‘이것을 봤느냐’는 식의 질문을 하는 썩은 재판부에 맡길 수 없다”고 말했다. 박정규씨도 이날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검찰이 한 질문은 ‘당신이 직접 봤느냐’는 것이었다”며 “언론 보도 스크랩 조차 위조로 본다면 언론자유도 침해받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씨는 “더구나 해당 언론에 대해서는 정작 조치하지 않았다”며 “그 이유는 김현철씨가 미국 시민권자이며 김현철씨에 대해 제재 조치를 취하려면 반드시 미국을 거쳐야 하고, 이 과정에서 우리 검찰이 언론자유를 침해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날테니 그런 글을 옮긴 사람만 처벌하려는 것 아니겠느냐”고 비판했다. 박씨는 특히 “칼럼이 허위사실이라면, 정확히 어느 대목이 거짓인지 짚어야 하나 모조리 다 허위라고 주장하는 것”이라며 “허위사실이라는 증거를 밝히지 못한채 허위로 단정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재판 아니겠느냐. 아부하기 위한 재판”이라고 성토했다. 재판부의 판단처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여인들이 정말 허위의 사실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의 여지가 있다. 동아일보 기자 출신인 김충식 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이 22년 전인 1992년 집필한 저서 <남산의 부장들>에 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궁정동에서 연예인 여성들과 몰래 술자리를 자주 가졌다는 증언이 나와있다. ▲ 지난 2012년 11월 27일 출간된 '남산의 부장들' 개정증보판. 김 전 위원은 저서에서 1980년 1월 25일 육군고등군법회의 김재규(8대 중앙정보부장) 재판에서 박선호(80년 5월 사형집행)가 증언한 내용이라며 이렇게 전했다. “궁정동 식당을 가리켜 어느 검찰관이 ‘그 집은 사람 죽이는 곳이냐’고 질문아닌 질문을 했다. 그 집은 그런 집이 아니다. 대통령이 오시는 곳이다. 그곳에는 수십 명의 연예인이 드나든다. 그 명단을 밝히면 시끄러워질 것이다. 거기에서 있었던 일을 폭로하게 되면 세상이 깜짝 놀랄 것이다. 박 대통령은 한달이면 열 번이나 그곳에 왔다” 김 전 위원은 “당시 박선호는 예비역 대령으로 중정 의전과장이나 역할은 각하를 위한 채홍사였다”며 “또한 김재규는 80년 1월 15일 강신옥 변호사에게 박정희 사생활 몇가지를 얘기했다”고 다음과 같이 전했다. “궁정동 안가를 다녀간 연예인은 100명 정도 된다. 임신해서 낙태한 사람도 있고…. 징징 울고 불응하겠다고 해서 배우 K모, H모 양은 오지 않은 일도 있었지만 간호여성이 임신해서 애먹기도 하고…” 김 전 위원은 박선호에 대한 변호인 접견 메모 일부라며 이렇게 제시하기도 했다. “부장님(김재규)에게 도저히 더 하기 힘드니 그만 두겠다고 했다. (다녀간) 여자들에게도 보안상(좋지 않으니) 물러나야겠다고 했다. 1년 동안 하느라고 했습니다마는 더는 못한다고 했다. 그러나 부장님은 ‘궁정동 일을 자네가 없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리면서 조금만 더 고생하자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이 저격당한 당일에는 가수 심수봉씨가 현장에 있었다. 이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 명예훼손 고발 또는 검찰 수사 및 재판을 받는 사건도 모두 유죄판결로 이어지는 것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의 한 장면. 벌금형이 확정된 고창규는 인터뷰에서 “이 정권의 간보기는 끝났다. 1년차 2년차 들어와 인터넷 감시와 탄압이 상시화하는 것을 넘어 이젠 공인들이나 외신기자도 고발과 기소의 대상이 되고 있다”며 “이들까지 고발당하면 일반인은 글을 못쓴다. 숨죽이고 몇 년 지나고 쓰면 되지 하는 생각으로 위축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고씨는 “이는 온라인 상에서의 ‘공안’ 탄압으로 사람을 주눅들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온라인에서 벌어진 일을 오프로 끌어내 처벌하는 것이 독재정권보다 더 심하다”고 평가했다. 1심에서 벌금형을 받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중인 박정규씨는 “대통령을 욕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국민에게 맡겨야 한다”며 “이 세상에 욕 안먹는 대통령이 어디있느냐”고 반문했다. 박씨는 “대통령이 국민을 위해 일을 하니 당연히 욕을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며 “그런데도 대통령 욕한다고 검찰이 수사한다는 것은 국민이 아닌 대통령을 위한 수사라고밖엔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박씨는 “그런데 법원마저 그에 영합하는 것 아닌지 걱정”이라며 “결국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이어지지 않을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조현호 기자의 트위터를 팔로우 하세요. @ mediacho

'세월호 추모영상제' 심사위원장 맡은 정지영 감독


"영화인들이 왜 정치투쟁 하냐고? '이명박근혜' 거치며 많이 참았다" [인터뷰] '세월호 추모영상제' 심사위원장 맡은 정지영 감독 14.10.31 11:28l최종 업데이트 14.10.31 12:07l하성태(woodyh) 기사 관련 사진 ▲ <남영동 1985> 당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갖는 정지영 감독. ⓒ 이정민 관련사진보기 정지영 감독은 "<다이빙벨>은 시작일 뿐"이라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는데 다큐멘터리 영화가 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는 마음에서다. 그가 심사위원장을 맡은 '세월호 추모 영상제'의 취지도 다르지 않다. 접근하기 쉬운 영상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고, 기억하자는 취지다. 그 '세월호 추모 영상제'가 세월호 참사 200일 하루 전인 31일 오후 7시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다. 그에 앞서 심사위원장을 맡은 정지영 감독을 최근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추모 영상제에는 30여 편의 작품이 응모해 본선 진출작 10편을 가려냈다. 극영화부터 다큐, 뮤직비디오까지 망라됐고, 고등학생부터 4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참여했다. 한편 영화인들은 광화문 광장에서 80일 넘게 릴레이 동조 단식을 이어 가고 있다. 정지영 감독은 가수 김장훈의 단식에 동참하며 그 선두에 선 바 있다. 할리우드 영화 직배(직접 배급) 투쟁은 물론 스크린쿼터 투쟁까지 앞장섰던 그는 이번 세월호 참사와 단식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또 영화인들은 왜 광화문광장을 지켜야만 했을까. 다음은 그 물음에 답을 던져 줄 정지영 감독과의 일문일답이다. <다이빙벨>, 세월호 진실규명 신호탄 될 것 기사 관련 사진 ▲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영화인 모임에서 공모하는 '세월호 추모 영상제' 포스터. ⓒ 세월호특별법제정촉구영화인모임 관련사진보기 - <다이빙벨> 상영 금지 논란이 10월을 휩쓸었다. "어처구니가 없다. 대한민국 정치인들의 문화 마인드가 그 정도 수준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태경 의원은 바보가 아닌가 싶다.(웃음) 영화도 보지 않고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나. 상식적으로도 말이 안 된다." (관련기사 : BIFF <다이빙벨> 상영 놓고 공방 이어져) - 국회의원들은 국감장에서 부산국제영화제를 쥐고 흔들었는데. "서병수 부산시장 경우, 자기 집권당이 세월호 문제를 가리고 싶어 하니까 개인의 의견을 세게 말하면서 면피하려고 했던 것 같다.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정작 압력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하는 데 말이다. 영화제 논란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간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지난 2013년 10월) 부산에 내려갔고, 영상 단지도 부산에 있는데. 부산시가 지금까지 쌓아온 걸 다 무너뜨리겠다는 것도 아니고." - 그래서 더 일찍 <다이빙벨>이 뚜껑을 열었다. "<다이빙벨> 개봉이 진실을 규명하는데 일종의 신호탄 역할을 했으면 한다. 세월호 참사는 밝혀진 게 아무것도 없지 않나. 영화를 통해 부분이지만 발언을 함으로써 다른 측면으로 조사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유가족 중에 한 분은 보고 나서 자신도 모르는 사실을 많이 알게 됐다고 하더라. 국민들은 더 모를 것 아닌가. 거기서부터 출발했으면 좋겠다. 내가 제작자였다면 공짜로라도 다 보여 드리고 싶은 심정이다.(웃음)" - 이번 '세월호 추모 영상제'도 연장 선상에서 의미를 둘 수 있겠다. "일단 추모 영상제가 단지 추모만 하는 의미가 아니라, 진실규명에 한 걸음 다가가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또 유가족이 원하는 특별법 제정을 바라는 마음들을 공유하고... 어떤 작품이 진정성을 가지고 우리 가슴을 때리는가에 포커스를 뒀다. 혹시 세월호 문제를 잠시 잊은 사람에게도 '내가 왜 이걸 놓치고 있었나'하고 계속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말이다." - 이제 곧 참사 200일이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으면 하는가. "어차피 세월호 문제는 국가 근간, 시스템의 문제니까 어떻게든 해결이 되는 방식으로 진행될 거다. 끈질기게 협의와 토론을 거쳐서 기본 시스템을 정착시켜 나가고 법을 제정시켜야겠지. 다르게 생각해 보면, (이번 영상제의 후원인이기도 한)외환은행 노조는 세월호 참사 문제를 계속 공유하고 있다고 하더라. 세월호 문제를 자기들의 문제로 인식하는 거다. 그런데 '론스타 먹튀'를 떠올려 봐라. 그건 말하자면, 세월호 참사가 사회 안전망 붕괴 속에서 온 것처럼 대한민국 안전망에 구멍이 뚫린 걸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거다. 대한민국 금융시스템 문제도 마찬가지였고. 비단 재난뿐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분야에서 안전을 성찰할 때다. 이게 내일, 모레, 1년 안에 끝나는 게 아니다. 깊고 넓게 국민과 토론해서 나가야 한다." 영화인들이 왜 정치투쟁에 나섰냐고? - 동조 단식이 80일이 넘었다. 영화인들만 또 나섰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는데. "처음엔 이렇게 오래할지 몰랐지.(웃음) 영화인 서명자가 1132명(10월 초)이 될지도 몰랐고. 사실, '이명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영화인들이 침묵했던 거다. 다 자기들 문제이고, 독립영화도 그런 취급을 당하는데 가만있고. 생각해 봤더니, 그동안 많이 참은 거 같다. 스크린쿼터 싸움 때는 조직이 움직였고, 단위별 조직도 있고 했는데, 그런 움직임을 선도하지 못했다. 조직이 안 움직이니까 개개인만 목말라 했던 거지." - 스타 배우들이 좀 더 나서야 하지 않느냐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배우들에게 무조건 단식을 요구하면 안 된다. 그들은 몸과 얼굴로 배우하고 사는 거니까.(웃음) 반면 생각보다 (일부 배우들 가운데) 큰 울림이 있었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고, 고맙고 그렇다." - 영화인들은 '추모 영상제'를 이끌어냈지만, 특별법 제정 전체로 보면 동력이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 세월호 가족대책위 지도부가 교체된 사건도 그렇고. "안타깝다. 대한민국의 보수 언론과 종편들이 부추기는 한 국민이 속을 수밖에 없을 거 같다. 또 (이에 따른) 피로감도 있으니까. 유병언도 그랬고. 그래도 나는 한쪽을 믿는 마음은 쌓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피로보다 미진한 진실이 쌓이는 거다. 국정원 대선 개입도 그렇고. 집권당은 다른 사건이 나오면 그쪽으로 쏠리게 만드는 거 같은데, 착각이다. (진실은) 잊히는 게 아니라 쌓이고 있다." - 영화인들이 정치투쟁에 동참한다는 비난 여론도 있다. "일종의 운동이라고 봐야 하는데... 어떤 목표를 설정하고 반드시 쟁취하는 운동도 있지만, 국민의 정서를 환기하는 것도 운동의 하나다. 피로감을 이야기하는 국민이 있다면, 이번에 출품된 영상을 보면서 가슴에서 우러난 감정으로 '내가 잠시 외면했었구나' 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거다. 그런 감정을 환기하는 작업이 진짜 운동아닐까. 이걸 정치투쟁으로 만드는 건 여당이고. 우리는 정치투쟁이 아니잖나. 세월호 문제가 어떻게 정치 문제일 수 있나. 사람이 죽었으니 추모하고 진실을 규명하자는 건데. 영화인들이 정치 참여한다는 식으로 만드는 건 여당이나 보수 쪽이다." 선동이 아니라 '설득' 기사 관련 사진 ▲ 가수 김장훈에 이어 정지영 감독, 배우 문성근 등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영화인들이 9일 오전 서울 광화문 농성장에서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세월호 특별법에 제정되어야 한다'며 유가족 단식에 동참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 영화인들의 릴레이 동조 단식은 광화문을 찾은 이들에게 귀감이 된 게 사실이다. "감동이랄까. 시작할 때 과연 얼마나 동참할까 싶었는데 자발적으로 공유도 되고 많은 분이 지지하고 응원을 해줬다. 사실 영화인들이 현장이든 술자리든 사회적 의제에 대해 다 이야기를 한다. 각자 영화 현장에서 사회적 발언도 하고. 이런 동력이 필요할 때 나와줘야 한다. 영화를 통해 발언하는 게 너무 멀고 급할 땐 이렇게 서로 공유하는 것처럼." - 사회고발형 다큐가 많이 개봉하는 이유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게 다 방송이 죽었기 때문이다. 방송이 순치되는 바람에 영화가 떠맡은 거다. 방송보다 파급력이 부족하고, 마케팅도 그렇고 돈이 많이 드니 작은 규모의 영화관에서만 볼 수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빨리 방송이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 <제보자>에 이어 <카트>까지 극영화들도 현 한국 사회를 이야기하고 있다. "장악할 분야는 권력 시스템이 모두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그 통제에서 벗어난 분야에서 그런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비교적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영화인들이나 독립영화, 저예산 영화 쪽에서 나온다. 대기업 멀티플렉스 자본에선 그런 영화가 나올 수 없고. 당분간 이런 추세가 이어질 거라 본다. 세월호를 다룬 <다이빙벨>도 그 시발점이고. 세월호 관련 작업들의 서막을 올리는 거다." - 한편으로 정지영 감독 본인의 이미지는 역시 '투쟁'으로 굳어지는 거 아닌가.(웃음) "그런 이미지 때문에 단식 시작할 때도 내가 먼저는 안 하겠다고 했다. 내가 시작하면 당연히 선동한다고 할까 봐.(웃음) 엄격히 말하면 설득하는 거지. 선동할 거면 정치를 하지 왜 영화를 하나(웃음)." - 그런데도 포털에서 정지영을 검색하면 '종북' 등의 단어들이 연관돼서 뜬다. "정지영을 검색하면, '종북주의자 정지영 감독을 구속하라' 이런 게 뜬다.(웃음) 코미디 한국이다. 언젠가 프랑스 우파학자 기소르망하고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사람 말을 다 왜곡했더라. 자기 견해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북한이 잘 유지하고 있느냐고 물어 봐서, 오케이라고 했다. 해방 직후 한국은 미국 문화를 급속도로 받아들였지만, 북한은 민족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근데 주로 내가 북한을 찬양하는 듯한 발언을 만들어 놨더라. 정지영을 비난하기 위해서 그렇게 몰아가는 게 좋다, 라고 생각할 뿐이지. 실제로 내가 무슨 간첩을 키웠나?(웃음)" - 내공이 깊고 세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 것 같은데. 내성이 생긴 걸까. "원래 낙천적인 사람이다. 낙천적이지 않았다면, 살기 싫어서 죽었을지도 모른다.(웃음) 그런 문제에 대해서 남보다 충격을 덜 받는다. 내성도 물론 있고. 충격을 덜 받는 만큼, 문제를 파악하는데 남보다 빠르고 이성적인 거 같긴 하다." "세월호 추모 영상제, 눈물과 진심만 가지고 오세요" 기사 관련 사진 ▲ 정지영 영화감독이 6일 오전 부산 해운대 우동 CGV센텀시티점에서 열린 초청작 <다이빙벨> 상영회 및 관객과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다. ⓒ 이정민 관련사진보기 - 직접 세월호 문제를 영화화할 생각은 없나? "언젠가 영화화되어야 한다. 지금은 미스터리한 부분도 많아서 <천안함 프로젝트>처럼 질문밖에 못 한다. 대신 계속해서 감추는 게 있다면, 밝혀진 걸 토대로 정곡을 찌르는 영화가 나와야 줘야 한다. 준비하고 있는 몇 작품이 있는데, 그것만 다 만들어도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다. 지금 같은 영화 산업 구조 속에서 영화를 신 나게 하기도 힘들고. 사실 지금까지 대기업과 한 번도 작업을 안 해봤다. 스스로 대중 영화감독이라고 생각하는데, 대기업과의 마찰도 정상적인 토론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자본의 힘을 가지고 누른다면 못 참긴 하겠지만." - 영상제에 올 시민에게 당부의 말이 있다면.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자세만 가지고 오시면 된다. 다만 그 울음으로 그치지 말았으면 싶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학생들이나 유가족을 위로하는 걸로 그치지 말고,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길이야말로 진실을 규명하고, 다시는 우리 사회에 이런 일이 반복돼선 안된다는 마음이면 될 것 같다." - 너무 무거운 것 아닌가. "대신 작품들은 재밌을 거다.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 그 작품들을 영상제 끝나고 SNS든 동영상 사이트든 다 공유할 수 있게 할 거다. SNS로 퍼트려서 대국민심사를 하면 더 재밌을 거 같은데.(웃음)"

<北TV> '탈북자 北인권 날조'...연일 반박 폭로


<北TV> '탈북자 北인권 날조'...연일 반박 폭로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4.10.30 18:17:55 트위터 페이스북 지난 25일 국방위원회 성명을 통해 최근 유엔총회 등에서 다뤄지는 북한인권 문제는 '미국과 추종세력의 침략공조'라며 '무자비하게 짓뭉개겠다'고 천명한 북한이 탈북자들의 주장이 '날조'됐다며 연속적으로 영상자료를 내보내고 있다. ▲ 북한의 <우리민족TV>는 최근 "미국을 비롯한 적대세력들은 유엔무대에서 벌이는 비열한 반공화국 인권책동을 당장 걷어치우고 허황하기 그지없는 날조행위에 영원히 종지부를 찍어야 하며, 세계여론은 더는 반공화국 인권소동에 귀기울이지 말아야 할 것"이라며, 탈북자 가족 등이 내세워 그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폭로를 계속하고 있다. [사진-우리민족TV 화면 캡쳐] 북한의 <우리민족TV>는 지난 25일 유엔인권위원회 공청회에서 증언에 나선 '신동혁'에 대해 '거짓과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2회에 걸쳐 보도한 후 30일에는 탈북자 출신인 조명철 새누리당 의원의 동생 조동철(51살)을 내세워 '조명철이 남조선으로 도망간 후 생활'과 '집에 있을 때 조명철의 생활에서 표나는 점', 그리고 '조명철이 반공화국 인권소동에 앞장서고 있는데 대한 가족으로서의 의견' 등을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보도했다. TV는 "지금 미국을 비롯한 반공화국 적대세력들은 유엔무대에서 우리 공화국의 있지도 않은 인권침해문제를 여론화하기 위하여 별의별 유치한 놀음을 다 벌이고 있다. 특히 그들은 우리 공화국에서 죄를 짓고 도망간 악질탈북자들을 내세워 터무니없는 자료로 우리의 인권실상을 날조하고 있다"며, 이들 탈북자들을 중심으로 폭로가 계속될 것임을 시사했다. TV는 30일 '금수도 제 둥지를 안다(1)'는 제목으로 방영한 보도에서 "우리 공화국에서 그 누구보다 당의 사랑과 배려를 많이 받아온 조명철이가 아무리 천만가지 말을 꾸며내고 엮어대도 변명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그가 인간이기를 포기한 짐승보다 못한 놈이라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현재 경공업과학원 방직연구소에서 연구사업을 하는 조명철의 동생 조동철은 인터뷰 내내 연신 손수건으로 눈굽을 훔치고 목이메어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는 "온 집안 식구가 지금 그 소식 듣고 일체 밥도 못먹고 다 빈사지경에 처해있다"며, 울분에 가득 찬 목소리로 "자기가 져야 할 의무는 다 져버리고...할아버지 할머니가 조명철이 씨종자들, 내 조카들 키우느라고 고생하고 늙어 죽을 때까지도 마저 키우지 못하고 눈감는 게 가슴아파서...이건 조명철이 때문에 이렇게 된 것 아니냐...(자신의 가슴을 치며) 이건 삼촌이나 큰아버지가 맡아서 해야 할 일인가?...그런 주제에 무슨 인권타령인가?...옛날부터 그랬다. 귀신은 경에 막히고 사람은 정에 막힌다고. 제 할 바나 똑바로 하고 그따위 개수작 치라고 하십시오"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여기 아직도 제 아버지 어머니 혼백이 떠돌아 다니고 제 자식들이 살고 형제 친척들이 다 있는데. 아니 이놈이 이게 사람생각가지고 하는 짓인가 하는 겁니다"라며 심난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 TV는 앞서 지난 25일 1, 2부로 나누어 보도한 '신동혁' 편에서는 유엔인권위원회 공청회에서 한 신동혁의 증언과 친아버지, 광산 동료, 강간피해자 여성들의 증언을 교차편집하면서 그의 증언을 전혀 신뢰할 수 없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사진-우리민족TV 화면 캡쳐] TV는 앞서 지난 25일 1, 2부로 나누어 보도한 '신동혁' 편에서는 유엔인권위원회 공청회에서 한 신동혁의 증언과 친아버지, 광산 동료, 강간피해자 여성들의 증언을 교차편집하면서 그의 증언을 전혀 신뢰할 수 없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또 관련자들의 모든 증언을 영문자막으로 처리해 국제여론에 호소하려는 의사도 분명히 했다. TV는 본명이 신인근인 신동혁은 본인의 주장과 달리 평안남도 개천시 외동리 14호 수용소에 있어본 적이 없으며, 자신의 몸에 난 상처는 고문의 흔적이 아니라 "2~3살 무렵 놀다 덴 화장자욱과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남은 것"이며, "잘린 손가락은 광산에서 일할 때 돌무더기에 찍힌 후 발생한 일"이라고 관련자들의 증언을 통해 주장했다. 또 자신과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어머니와 형이 교수형고 공개처형을 당했다는 신동혁의 주장은 완전 날조된 일이라고 TV는 전했다. 신동혁의 아버지인 신경섭(70살)은 '신인근의 어머니인 본처(장혜X)와 형 신희근은 살인공모죄로 법적처벌을 받아 사망했으며, 당시 내가 작은아들인 인근이를 시켜 보안소에 신고까지 했다"고 증언했다. 1989년부터 신인근의 이웃에서 함께 살았다는 주민은 더욱 충격적인 사건의 내막을 들려줬다. "신인근의 어머니는 돈 좀 갖고 있던 김춘애라는 여성을 꼬드겨서 갈취하려고 시도하던 중 그 여성을 화장대앞에 앉혀놓고 머리를 다듬어주는 시늉을 하다 큰 아들(신희근)이 미리 준비해둔 도끼로 찍어 살해하도록 한 뒤 사체를 말아 창고에 던지고 시치미를 떼고 있었으며,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가 학교에 다녀와서 점심을 먹기 위해 집에 들른 신인근에게 법기관에 신고하게 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이 주민은 "1996년 11월인지 12월인지에 (신인근의 어머니와 형이)공화국의 심판을 받았다"며, "신인근은 마땅히 반성해야 할 이 일로 공화국에 반감을 품고 반역의 길에 들어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TV는 평안북도 운산군 부흥광산에서 일하던 신동혁이 13살 미성년자인 학생을 강간한 사실을 폭로하면서 피해 학생과 어머니의 실명을 공개하고 증언을 방영했다. 증언에 따르면, 2001년 6월 당시 수안학교에 다니던 리 모양은 시험공부를 하다가 밤에 귀가하던 중 골목에서 신동혁에게 납치당해 범죄의 피해자가 된 뒤 "아직까지 시집도 못가고 일생을 망쳤다." 피해자의 어머니는 사진을 보여주는 기자에게 "공화국에 있다면 때려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울분을 토했다. 신경섭은 "아버지로서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느냐"고 기자가 묻자 "걔들에게 이용당하지 말고 똑똑히 새겨서 당의 품에 안기라"고 말했다. TV는 "미국을 비롯한 적대세력들은 유엔무대에서 벌이는 비열한 반공화국 인권책동을 당장 걷어치우고 허황하기 그지없는 날조행위에 영원히 종지부를 찍어야 하며, 세계여론은 더는 반공화국 인권소동에 귀기울이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같은 영상보도가 나간 후 통일부 관계자는 당장 말할 수 있는 입장은 없다면서도 "이탈주민들 우리 국민이다 보니 국민에 대한 신변이나 이런 것에 대해서 위협하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수세에 몰리는 미국의 대북인권공세


<분석과전망>북한의 반공세, 중국의 반발 그리고 유럽연합의 태도변화 한성 자유기고가 기사입력: 2014/10/30 [19:11] 최종편집: ⓒ 자주민보 북미군사대결전에서의 수세를 만회하기 위해 구사되고 있는 미국의 대북인권공세 미국의 대북인권공세가 심해지고 있는 것에 대해 북한이 미국의 대북적대성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라는 견해를 보이고 있지만 분석가들의 견해는 다르다. 미국의 대북인권공세가 초장부터 수세에 내몰리고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때까지의 북미대결전의 역사를 개괄해보면 북미대결전의 핵이 핵이라는 사실은 금방 확인할 수 있다. 그것에는 미사일도 물론, 포함되어있다. 북미대결전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북미대결전이 치열한 군사대결전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북미군사대결전의 현실은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의 요체인 ‘전략적 인내’정책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 강화를 막아내는 데에 그 어떤 유의미한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대단히 체계적으로 보여준다. 전략적 인내 정책이 오히려 북한의 핵 미사일능력을 높이는데 기여했다는 역설적인 평가가 미국 내에서 나오는 이유이다. 일각에서 ‘적대적 공생관계’의 한 양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미국이 반북대결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안정과 한국에 무기판매량을 높이는 등의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고 북한 역시도 반미를 통해 내부결속을 다진다는 논리이다. 물론 이치에 맞지도 현실적이지도 않는 논리이다. 다만 그 개념이 유의미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이 실패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대북인권공세가 군사대결전으로서의 북미대결전에서 미국이 바라는 성과가 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본격화되기 시작했다는 것에 주목을 한다. 그 주목은 합리적인 결론 하나를 도출해준다. 북미군사대결전에서 수세에 몰린 미국이 그 반북공세에서의 성과를 만회하기 위해 대북인권공세를 강하게 구사하고 있는 것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객관적이다. 현실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미국의 대북인권공세가 수세에 몰린 미국의 반북공세의 성과를 만회시켜주고 있는가에 있다. 현실은 그렇지 않음을 또렷히 보여주고 있다. 북한의 반공세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9월23일 뉴욕에서 올해 유엔총회에 맞춰 북한 인권토론회를 개최했을 때 15년만에 미국을 찾은 리수용 외무상이 그 회의에 참석하겠다고 밝힌다.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던 대로 미국은 거절한다. 여기에서 국제적인 시각이 읽은 것은 미국의 궁색함이었다. 그 궁색함은 미국이 북한인권 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유엔에서 ‘인권’을 인류 보편의 가치로 여기고 있는 범주에서 벗어나는 정치공세임가 되고 있음을 드러내주는 감정의 한 모양새였다. 북한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북한이 지난 7일에는 유엔에서 인권설명회를 열은 것이다. 북한이 유엔무대에서 인권설명회를 연 것은 최초로 있는 일이었다. 이례적인 것이라 당연히 주목을 끌었다. 주목할 만한 내용은 곧바로 확인되었다. 연합뉴스에 의해서다. 연합뉴스 29일자는 북한이 인권설명회를 개최하면서 미국 국무부 등에 참석해줄 것을 제의했다는 것을 보도한다. "우리 측이 주최한 인권설명회에 로버트 킹 미국 국무부 북한 인권특사 등 몇 명을 특정해 초청하는 형식으로 대화를 제의했었다" 북한 유엔대표부 김 성 참사관이 29일 연합뉴스에 한 발언이다. 북한 인권문제를 다루는 '유엔총회 3위원회'를 전담하는 북한 외교관이 김 참사관이다. 김 참사관은 미국으로부터 아무런 반응이 없을 것으로 생각을 했었는데 비록 거절당하긴 했지만 답변이 왔다는 것을 밝혔다. 북한의 이러한 행태들은 미국의 대북인권공세에 대한 반공세이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화려한 반공세라고 할 수도 있었다. 미국의 대북인권공세에 대한 북한의 이러한 반공세는 미국의 반북공세에 힘을 빼는 것으로 평가할만하다. 중국의 반발 미국의 대북인권공세가 반북공세로서의 힘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은 중국의 입장에서도 확인된다. 중국 정부는 지난 23일 북한의 인권 유린 책임자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려는 국제적 움직임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인권 문제를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하는 것은 인권상황 개선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화춘잉 외교부 대변인이 정례브리핑에서 한 발언이다. “우리는 평등과 상호 존중을 기초로 대화와 협력을 통해 인권 분야에 대한 견해차를 극복해야 한다는 점을 한 결 같이 주장해 왔다”는 것도 화춘잉은 덧붙혔다. 많은 전문가들이 깊게 주목을 했다. 대북인권공세에 집중하고 있는 미국에게 적잖은 타격으로 될 것으로 보여서였다. 구체적으로는 대북인권결의안이 유엔안보리로 넘어온다 하더라도 중국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것을 미리 밝힌 것으로 되는 것이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 사람들이 보아도 이는 명백히 미국의 대북인권공세에 대한 중국의 반발이다. 중국의 반발이 당장에 미국에게 위협으로 될 수밖에 없는 것은 특히 북한인권문제를 놓고 미국을 정점으로 일본과 유럽연합 그리고 우리정부 등이 구성하고 있는 반북대열에 균열을 불러올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의 전향적 태도 변화 미국의 대북인권공세가 수세로 몰리고 있는 징후는 아울러 유럽연합이 자신과 일본의 주도로 만들어진 북한인권 결의안 초안 관련한 입장에서도 감지된다. 유럽연합이 북한이 공식 요청하면 유엔 북한인권 결의안 초안에 대한 수정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힌 것이 그것이다. 유엔주재 유럽연합대표부의 매튜 크리스토퍼 대변인이 29일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 보낸 이메일에서 확인되는 내용이다. 지난 27일 마르주키 다루스만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북한 외교관들과 만남의 자리를 가진다. 이 자리에서 다루스만은 북한 측으로부터, 유엔 결의안 초안에서 북한 최고 지도자를 언급한 7항과 북한인권 상황의 국제형사재판소 ICC 회부를 언급한 8항이 삭제해줄 것을 요청받는다. 동시에 자신의 방북 초청이 가능하다는 것도 확인하게 된다. 유럽연합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는 북한이 다루스만을 초청하는 것을 통해 또 다시 구사하는 미국의 대북인권공세에 대한 반공세가 낳고 있는 결과이다. 중국의 반발로 인한 미국 주도 반북대열의 균열의 한 현상이기도 하다. 유럽연합의 수정 검토 가능성 천명이 미국으로서는 탐탁치 않은 사안으로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로버타 코헨 전 미국 국무부 인권담당 부차관보가 바로 28일 ‘VOA’에 북한의 다루스만 특별보고관 초청을 환영한다고 하면서도 유엔총회 결의안 일부를 맞교환 하는 등 어떤 타협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나선 것에서 이는 잘 확인된다. 초장부터 수세에 몰리기 시작하는 미국의 대북인권공세 미국의 대북인권공세 앞에 확인되고 있는 북한의 반공세 중국의 반발, 유럽연합의 변화 이 모든 것들이 보여주는 의미는 간단하다. 북미 군사대결전에서 수세로 내몰려 있는 조건에서 미국이 새롭게 빼든 대북인권 공세 역시 초장부터 수세에 빠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미국이 자신의 대북인권공세가 수세에 내몰리고 있는 상황을 미국이 이후 어떻게 타개하게 될지 지켜보는 것은 북미대결전의 향방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2014년 10월 29일 수요일

김포서 내쫓는 재두루미 일본선 앉히려 안간힘


보내기 인쇄 윤순영 2014. 10. 30조회수 386 추천수 0 지난 27일 김포 재두루미 7마리 도착, 올해가 마지막인가 걱정 논 매립해 비닐하우스와 창고로, 재두루미 떠나면 사람은 잘 살까 크기변환_dnsYSJ_1614.jpg » 올해 처음 김포 홍도평야에 와 상공을 선회하는 재두루미.  올해도 어김없이 재두루미가 찾아왔다. 10월27일 아침 6시20분께 홍도 평에 재두루미 7마리가 내려앉았다. 지난해보다 5일 정도 이르다.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다. 혹시 안 올까 걱정도 했다. 4년 전만 해도 이런 걱정은 안 했다. 하지만 재두루미가 먹이를 먹고 쉴 들판이 점점 매립되면서 개체수가 줄었고 월동 일수도 줄어들었다. 두루미가 와도 반가움보다 걱정이 앞서는 이유이다. 크기변환_dnsYSJ_1622.jpg » 아파트 숲을 헤치고 논을 향해 내려오는 재두루미. 크기변환_dnsYSJ_1627.jpg » 논이었던 곳은 매립되어 영농창고를 짓겠다는 명분을 내걸고 편법으로 만든 창고가 즐비하다. 크기변환_dnsYSJ_1629.jpg » 곳곳에 들어선 비닐하우스 사이에 남아있는 농경지를 찾아가는 재두루미. 재두루미가 이렇게 사정이 나빠진 홍도 평을 여전히 찾아온다는 것은 우리에게 마지막 기회이다. 올해를 끝으로 다시는 홍도 평을 찾아오는 재두루미가 한 마리도 없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지금이라도 역사 속으로 사라질 김포 홍도평의 재두루미 보전에 김포시는 적극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경기도 고양시와 파주시의 재두루미 월동 취식지는 이미 사라졌다. 한강 하구에 마지막으로 남은 김포시 홍도평은 재두루미의 유일한 터전이다. 크기변환_dnsYSJ_1640.jpg » 어디에 앉을까, 한참을 선회하다 자리를 찾아 가는 재두루미. 크기변환_dnsYSJ_1642.jpg » 금빛 아침 햇살을 가슴에 안고 평야에 내려 앉고 있는 재두루미. 크기변환_dnsYSJ_1666.jpg » 이 평야는 언제까지 재두루미를 맞을 것인가.  김포시는 재두루미 도래를 김포의 가치를 창출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재두루미는 우리나라 서해안 천수만과 동해안 철원 등을 거쳐 일본 규슈 사가현 이마리 만 상공을 지나 가고시마현 이즈미로 월동하러 날아간다. 재두루미가 거쳐 가는 이마리에서는 상공을 지나가는 재두루미가 내려 앉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찾아오는 두루미를 내쫓는 우리와는 정반대다.  크기변환_dnsYSJ_1674.jpg 크기변환_dnsYSJ_1678.jpg 재두루미를 앉히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재두루미가 와야 생태관광, 유기농업 등 지역이 생존할 가치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재두루미는 생존을 위해 쉼 없이 날아 국경을 넘고 바다를 건널 뿐이다. 그들이 찾아오는 환경을 가진 곳이 지속가능한 마을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크기변환_dnsYSJ_1752.jpg » 재두루미 곁으로 황오리도 날아든다. 재두루미는 살아있는 환경의 지표이다. 재두루미가 우리나라를 잊지 않고 찾아오는 것은 부모로부터 이어온 학습 덕분이다. 이 땅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재두루미에게 위협을 가하지 않는다면 올해 이곳을 찾아온 재두루미들은 내년에도 그 후에도 계속 잊지 않고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김포시는 겨울철의 진객 재두루미를 쫒아 내고 있다. 그것은 재두루미뿐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에게도 불행이다. 글·사진 윤순영/ <한겨레> 물바람숲 필자,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관련글 재두루미 안식처에 김포 도로 꼼수 추진 '두루미 곡간' 1만5천㎡ 논 내놓은 농부 공항 새 퇴치 허가로, 딴 데서 보호새 밀렵 밝아오는 2014년, 재두루미 부부의 새해 인사 '천상의 새' 두루미, 소리-몸짓 언어 달인

밤새 기다렸지만,대통령이 웃어준 사람은 따로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푸른 기와집에 살게 해준 그 남자들에게만 환하게 웃어줬다 임병도 | 2014-10-30 08:54:1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밤새 기다렸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퇴근길을 서두른 사람들이 많았지만, 우리는 떠날 수가 없었다. 내일 그녀를 꼭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핫팩 하나로 언 손을 녹이려고 했다. 추운 날씨보다 과연 그녀가 내일 우리를 향해 무슨 말을 할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온몸의 긴장은 풀리지 않았다. 경찰들은 이미 국회 본관 앞에서 경직된 자세로 서 있었다. 우리 아이도 살았다면 몇 년 후에는 경찰이나 군인이 됐을 텐데… 참 고생이 많다. 그래도 내일은 우리가 그녀를 볼 수 있게 자리를 피해줬으면 좋겠다. 우리가 만나고 싶은 사람은 경찰이 아니라 그녀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차가운 바닷물에서 나오지 않은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이 정도 추위쯤이야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 우리는 아이들을 대신해서 그녀에게 꼭 해야 할 말이 있기 때문이다. 점점 그녀가 올 시간이 다가왔다. 문 앞에는 검은색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어젯밤 경찰보다 더 많이 등장했다. 괜찮다. 그녀가 우릴 향해 다가오리라 믿었다. 수많은 사람들을 헤치고 다가와 밤새 추위에 언 몸을 안아주면서 그녀가 웃어줄 것이라는 상상을 했다. 그녀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다시는 우리 아이들과 같은 아픔을 우리 국민이 겪지 않게 해주세요’ ‘우리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 속 시원하게 알려주세요’ ‘당신이 울면서 했던 약속을 지금이라도 지켜주세요’ 그녀가 우리 말을 들어줄 것이라 믿고 또 믿었다. 콩닥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그녀를 만나면 어떻게 말을 조리 있게 할지 되새기고 되새겼다. 그가 왔다. 무릎을 꿇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무릎을 꿇는 일조차 창피하지 않았다. 정말 간절했다. 제발, 제발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가 도와준다면 우리 아이들과 같은 아픔을 겪지 않는 ‘세월호특별법’이 만들어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는 말했다. 선거만 도와주면 최선을 다하겠다고, 우리는 믿었다. 저렇게 힘 있는 사람이 팻말을 들고 거리에서 약속했는데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우리를 도와줄 것이라고… 그가 떠났다. 차 문을 매몰차게 닫고 떠난 그의 차를 보면서 눈을 감았다.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화도 나지 않았다. 그저 우리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힘없는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난 우리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나중에라도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볼지 막막했다. 그녀가 왔다. ‘오 마이 갓’ 그녀가 우리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정말 그녀를 만나야 하는데, 그녀는 왜 우릴 보지 않을까? 눈물을 흘리면서, 우리 손을 잡아주던 그녀가 맞는지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 분명 그녀가 맞았다. 그런데도 그녀는 그냥 우릴 지나쳤다. 오늘은 중요한 행사가 있으니 끝나고 나올 때 오려고 지나쳤나 보다. 그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권력과 힘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뭐든지 할 수 있다. 그래서 또 기다렸다. 그녀가 나온다. 이제 정말 우리를 봐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그녀는 차가운 표정으로 우리를 지나쳤다. 우리가 잘못한 것이 있었나? 그저 돈보다는 우리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 알려달라고 하고, 똑같은 아픔이 이 땅에서 다시는 나오지 않게 해달라고 말했을 뿐이다. 그녀가 웃어준 사람은 우리가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을 푸른 기와집에 살게 해준 그 남자들에게만 환하게 웃어줬다. 그녀가 떠났다. 힘이 풀렸다. 풀썩 주저 앉았다. 밤새 추위에 떨면서도 그녀를 만난다는 생각에 버텼는데… 결국, 벽에 기대어 울었다. 이제는 울지 않으리라 약속했었다. 아니 더는 눈물이 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눈물이 자꾸 났다.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힘 있고, 돈 있고, 출세한 사람들의 자식으로 태어나지 못한 우리 아이들이 불쌍했다. 왜 나는 금배지를 달지 못하고, 푸른 기와집에서 살지 못했지라는 자책감이 들었다. 꿈에서라도 우리 아이들을 만나면 무어라 말하지 너희가 태어난 이 땅의 지도자가 너희를 쳐다도 보지 않았다고 말해줄 수 있을까?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그래도 엄마, 아빠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게. 우리 아이들이 보고 싶다. 미치도록 보고 싶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그 무엇보다 소중한 우리 아이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666

6개월 전 떠난 외동딸, 생일에 돌아오다


28일 발견된 세월호 실종자, 단원고 2학년 황지현양으로 최종 확인 14.10.30 10:39l최종 업데이트 14.10.30 10:50l소중한(extremes88) 기사 관련 사진 ▲ 28일 세월호 선내에서 발견된 시신이 30일 오전 단원고 학생 황지현양으로 최종확인됐다. ⓒ 박재동 관련사진보기 3개월 넘게 엄마가 차린 아침밥을 먹고, 황지현양(단원고 2학년)은 29일 물 밖으로 나왔습니다. 이날은 지현양의 생일이자 세월호가 침몰한지 197일째 되는 날입니다. 지현양의 어머니 심명섭씨와 아버지 황인열씨는 지난 7월부터 "딸이 나오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팽목항 방파제에 매일 딸의 아침밥상을 차려왔습니다(관련기사 : "추석까지 이럴 줄이야" 딸 아침밥 챙겨 매일 팽목항으로). "전에 지현이까지 해서 같은 반 학생 3명이 안 나왔었거든. 근데 누군가 ○○(이) 아빠보고 밥을 해서 (팽목항 앞 바다에) 던져주라고 했대. 그래서 밥을 잔뜩해서 새벽에 던졌는데 그날 딸내미가 나왔다니까." 지난달 8일, 딸의 아침밥을 챙겨 팽목항행 버스에 오른 심씨가 기자에게 한 말입니다. 앞서 나온 친구를 따라 지현양도 부모님이 해준 밥을 먹고 물 밖으로 나왔습니다. 당시 기자는 "이제 밥 많이 먹었으니까 지현양도 나올 때가 됐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이후로도 심씨는 딸을 마주하기까지 54일을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기사 관련 사진 ▲ 휴대폰에 담긴 단란한 가족사진 아직 딸의 소식을 기다리던 15일 황지현(단원고 학생)양의 어머니 심명섭씨가 진도실내체육관에서 휴대폰의 가족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 소중한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인 단원고 학생 황지현양의 어머니 심명섭씨는 매일 오전 7시 30분 딸의 아침밥을 챙기기 위해 체육관에서 팽목항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추석인 8일 오전, 심씨가 팽목항에서 돌아오지 않은 딸의 아침상을 차린 뒤,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 소중한 관련사진보기 의연하던 아버지, 얼굴을 감쌌다 지현양은 결혼 7년 만에 얻은 외동딸입니다. 1997년 10월 처음 엄마 품에 안긴 지현양은 2014년 4월 15일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이제야 엄마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평소 물을 안 좋아했던 지현양은 "배를 타고 수학여행을 간다며 툴툴거렸다"고 합니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 6개월째 되던 날(16일), 심씨가 했던 하소연이 생각납니다. "그렇게 싫어하던 물에 왜 아직도…." 지현양은 친가에선 막내 손녀, 외가에선 큰 손녀이기도 했습니다. 지현양이 아직 찬 바다 속에 있던 15일, 심씨는 "나와 지현이 아빠도 그렇지만, 지현이를 기다리는 사람이 참 많아"라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동안 심씨는 딸이 나오길 기도하며 "별 짓을 다해봤"습니다. 매일 아침 버스를 타고 30분을 달려, 팽목항에 지현양 아침밥상을 차렸습니다. 함께 진도실내체육관에 있다가 자식을 찾아 먼저 안산으로 올라간 다른 유가족의 자리로 자신의 잠자리를 옮겨보기도 했습니다. "(실종자) 옷을 물에 담궈놓으면 (실종자가) 나온다던데"라는 말을 듣고 그대로 해봤습니다. 부모님의 정성이 통했는지, 세월호 4층 중앙 여자화장실에 머물던 지현양은 다시 가족 품에 안겼습니다. 어두컴컴한 배 안에서 잘 버텨줬고, 물 밖으로 나와 부모님의 정성이 담긴 눈물의 생일상을 마주했습니다. 이날 오전, 의연하게 딸의 생일상을 차렸던 아버지는 돌아온 딸의 옷가지를 확인하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습니다. 기사 관련 사진 ▲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인 단원고 학생 황지현양의 어머니 심명섭씨는 매일 오전 7시 30분 딸의 아침밥을 챙기기 위해 체육관에서 팽목항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추석인 8일 오전, 심씨가 전날 가져다 둔 아침밥을 바다에 뿌리고 있다. ⓒ 소중한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마지막 순간까지 애타게 불렀을 엄마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인 단원고 학생 황지현양의 어머니 심명섭씨는 매일 오전 7시 30분 딸의 아침밥을 챙기기 위해 체육관에서 팽목항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추석인 8일 심씨가 딸의 아침밥이 담긴 가방을 메고 팽목항 방파제를 따라 걷고 있다. ⓒ 소중한 관련사진보기 떠나는 가족과 남은 가족... "괜찮아, 희망이 생겼어" 심씨는 최근 휴대폰을 스마트폰으로 바꿨습니다. 가장 먼저 지현양 사진을 휴대폰 바탕화면으로 지정했습니다. "지현이가 있었으면 내 휴대폰 가져다가 노래도 (휴대폰에) 넣어주고, 쓰는 방법도 알려주고 했을 텐데…. 카톡도 하고…. 참 좋아했을거야." 아직 딸을 기다리던 15일, 심씨가 기자에게 내보인 한 장의 사진이 떠오릅니다. 지현양, 어머니, 아버지, 이렇게 셋이서 찍은 가족 사진입니다. 돌 무렵의 지현양과 지현양의 부모님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휴대폰 화면을 채우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사진으로만 보던 딸을 (수학여행을 떠난 날로부터) 197일 만에 만났지만, 이제 다시 가슴에 묻어야 합니다. 딸을 다시 만난 부모님은 남은 실종자 가족들에게 "미안하다"고 되뇌였습니다. 오랜 시간 실종자 가족으로 살았기에 남은 실종자 가족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지현양의 부모님입니다. 남은 실종자 가족이 연신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리는 지현양의 아버지를 가슴에 품었습니다. "괜찮아. (지현이 때문에) 새로운 희망이 생겼어." 고인의 명복과 함께 지현양 부모님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그리고 단원고 남현철·박영인·조은화·허다윤 학생, 양승진·고창석 선생님, 이영숙·권재근씨, 권혁규군 등 실종자 9명의 수습 소식도 기다리겠습니다. 기사 관련 사진 ▲ "내 딸도 저 달을 보고 있을까" 추석연휴를 하루 앞둔 5일 서울과 광주에서 출발한 '기다림의 버스가 진도에 도착했다. 세월호 침몰사고로 실종된 황지현양의 어머니 심명섭씨가 손에 촛불을 쥔 채 팽목항에 뜬 달을 보고 있다. ⓒ 소중한 관련사진보기 ▲ 196일 만에 돌아온 황지현양... 딸 기다린 지 6개월 되던 날, 엄마의 인터뷰 28일 발견된 세월호 실종자 시신이 단원고 황지현양의 시신으로 확인됐다. 영상은 지현양의 어머니 심명섭씨가 딸을 기다리던 15일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다. ⓒ 소중한 관련영상보기

부창부수, 이희호 여사의 "방북하고 싶다"


부창부수, 이희호 여사의 “방북하고 싶다” 데스크 | tongil@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4.10.29 16:28:14 트위터 페이스북 박근혜 대통령과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가 28일 오후 청와대에서 만났습니다. 이날 만남은 이 여사가 지난 26일 박 대통령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35주기를 맞아 처음으로 추모화환을 보낸 데 대해 박 대통령이 답례 차원에서 초청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두고 호사가들이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만남’, ‘영남과 호남의 화해의 만남’,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간 화해의 재연’, ‘한국 현대사를 대표하는 두 여성의 만남’ 등으로 묘사하는데, 사실 이날 만남의 화두는 그보다는 ‘통일문제’였습니다. 이는 두 사람의 만남 이후 청와대가 “통일과 남북관계를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고 전한 데서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날 박 대통령도 말했듯이, 이 여사는 통일에 대해 관심이 상당히 많다고 합니다. 마침 이 자리에서 이 여사는 “북한을 한 번 갔다 왔으면 좋겠는데 대통령께서 허락해줬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고 합니다. 박 대통령이 “북한 아이들 걱정하면서 털모자도 직접 짜시고, 목도리도 짜시고 준비한다고 들었다”고 말하자, 이 여사가 “북한 아이들이 상당히 어려운 처지에 있기 때문에 겨울 같이 추울 때 모자와 목도리 겸해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짰다”면서 이같이 요청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박 대통령은 “언제 한번 여사님 편하실 때 기회를 보겠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바람직한 일입니다. 이 여사의 방북건은 아직 살아있습니다. 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살아생전에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에게 수차례에 걸쳐 “좋은 계절에 오시라”고 방북을 초청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서거할 때까지 한 번도 방북하질 못 했으며, 그나마 이 여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후 조문차 방북한 바 있습니다. 조문길이 방북길이 된 것이라 아쉬움이 컸을 것입니다. 마침 지난 8월 북한이 김 전 대통령 서거 5주기 화환을 전달했을 때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이 여사 방북) 초청은 아직도 유효하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 여사 방북 초청건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10월 4일 북측 실세 3인의 방남을 계기로 활기를 띤 남북관계가 남측 보수단체 등의 대북 전단 살포 문제로 급작스레 교착상태로 빠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남북 고위급 접촉도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게 됐습니다. 이럴 때 이 여사의 방북이 성사된다면 남북관계 개선의 분위기 조성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92세 고령의 이 여사에게도 역할이 있다는 것이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이희호 여사의 통일에 대한 열정과 의지는 전날 밤 손수 쓴 휘호를 박 대통령에게 선물했다는 대목에서 더 빛납니다. 그 휘호는 ‘平和統一’(평화통일)이라고 합니다. 이 여사는 남편인 김 전 대통령의 유지(遺志)를 이어받고자 한 것입니다. 부창부수(夫唱婦隨)인 셈입니다.

누가, 남남 갈등을 부추 기는 것인가?


<논평>북한 그리고 접경지역 주민, 사회단체, 기업인들에게 떠 넘겨지는 남남갈등 한성 자유기고가 기사입력: 2014/10/29 [22:06] 최종편집: ⓒ 자주민보 ▲10월 25일 임진각에서 대북전단살포에 항의하는 농민들 © 한성 자유기고가 반북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와 관련된 전반 사안에 대한 정부당국의 입장이 도를 지나치고 있다. 가관으로까지 치닫고 있는 모양새다. 정부가 지난 28일, 오는 30일로 제안한 제2차 남북 고위급 접촉 제안에 대해 북한이 수용할 것을 촉구하면서 그 촉구를 한 이유로 북한이 남남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을 들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연실색했다. 남남갈등의 원인을 북한이 제공하는가? 반북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는 남북 간의 총격전까지 불러왔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대북전단 살포가 남북총격전의 원인을 제공한 것이다. 여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반북단체의 전단 살포가 현 시기 남북갈등을 유발하는 최대의 요인으로 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대북 전단 살포를 둘러싸고 남북 총격전이 발생했을 때 접경지역 주민은 말할 것도 없고 전 국민이 불안해했다. 이는 대북 전단 살포로 인한 남북갈등이 남북 당국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남북갈등의 피해가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그리고 직접적으로 다가들었던 것이다. 남북관계 개선을 강조하는 정부로서는 막아야 되고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안이다. 전례가 있다. 이명박 정부시기였던 2012년 10월이었다. 당시 정부는 탈북자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행위를 경찰력을 동원하여 물리적으로 저지시켰다. 이명박 정부의 그러한 조치는 헌법상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할 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렇지만 박근혜 정부는 반북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해서 저지를 하지 않는다. ‘표현의 자유’이기 때문에 막을 수 없다는 법적 논리를 그 근거로 내세운다. 정치적인 범주인 남북관계를 법적인 테두리로 좁혀서 접근하는, 옹색하기 그지 없는 논리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정부가 강조하는 남북관계개선과 모순된다는 지적에서도 전혀 자유로울 수 없는 논리다. 대북 전단 살포는 그렇지만 남북갈등을 촉발하는 것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남남갈등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 대북 전단 살포인 것이다. 이를 또렷이 보여준 것이 지난 25일 임진각 일대에서 대북 전단 살포를 놓고 보수단체와 접경주민들 사이에서 벌어진 충돌이다. ▲대북전단 살포를 강행하는 반북단체들에 맞서는 접경지역 주민들 /10월 25일 파주 © 한성 자유기고가 “우리의 삶이 엄청 불안하다 지금이라도 포탄이 떨어질지” “당신들 때문에 오늘도 내일도 불안하게 산다” 파주지역 농민들이 반북단체의 전단 살포를 온몸으로 막겠다며 끌고 나온 트랙터의 현수막에 써 붙혀 놓은 글귀들이다. “당신들만 대한민국에 사나? 우리도 대한민국에 산다 가만히 있어라”라는 문구도 있었다. 주민들과 반북단체의 충돌과정은 심한 말싸움을 동반했다. "농번기인데 대북전단 살포 때문에 일도 못하고 있다" 농민 한사람이 반북단체와 대치하면서 전단 살포를 하지 말라며 한 말이다. 이에 대한 반북단체의 대응은 단호했다. "굶어 죽어"라고 응수를 한 것이다. 몸싸움으로 번지기 전의 상황이었다. 이 모든 것은, 남남갈등의 직접적인 원인은 반북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에 있지만 근본적이고 총체적인 원인은 우리정부에 있다는 것을 정확히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정부는 북한이 남남갈등을 조장한다면서 그 책임을 북한에게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아연실색한 이유 중에 하나가 이것이다. 접경지역 주민과 사회단체 그리고 기업인들이 북한에 동조하는 것인가? 사람들이 아연실색한 것은 이것 말고도 또 있다. 통일뉴스 29일자 보도에 의하면 통일부 당국자는 남남갈등을 "북한이 마치 정부가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안하는 것처럼 사실을 왜곡함으로 인해서 정부 입장과 다른 의견을 가진 단체들로 하여금 정부의 입장에 대해서 비판하도록 만드는 것"으로 정의했다. 이는 반북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행위를 온 몸으로 막아 나서고 정부에 대해서는 전단 살포를 묵인한다면서 항의를 하는 접경지역의 주민들 그리고 그들을 지원했던 사회단체, 심지어는 25일 임진각에서 대북전단 살포 반대 기자회견을 했던 개성공단활동 기업인들까지도 이른바, 종북으로 몰아가는 듯한 논리로 된다. ▲ 대북비방전단 살포를 하는 반북단체들이 종북좌익 척결을 외치고 있다. 왼쪽에서 세번째가 탈북자 박상학씨이다. © 한성 자유기고가 이 논리는 대북전단을 주도하는 반북단체에서는 이미 횡행하고 있다. 25일 임진각에서 전단 살포를 위해 동원된 차량들에는 ‘종북세력 척결’이라는 구호가 곳곳에 붙어있었다.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아무리 (북한이) 종북 노비들을 써서 우리를 막으려고 해도 우리는 꺾이지 않는다"는 말도 했다. 왜곡, 무리, 억지의 정점이다. 사회단체들이 접경주민들의 대북전단살포행위에 지원을 했던 것을 두고 누구도 북한에 동조한 행위로 보지 않는다. 개성공단기업협의회 소속 기업인들의 행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사회단체들이 대북전단살포에 반대하는 것은 접경지역 주민들의 생존권적 요구에 동의해서이다. 정치적으로는 남북갈등이 해소되고 남북관계가 개선되기를 바래서이기도 하다. 개성공단에서 영업을 하는 기업인들이 바라는 것도 그것이다. 남북대결 하에서 온전한 남북경협활동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정부가 나서서 할 몫을 주민과 사회단체 그리고 기업인들이 나서서 막아나선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두고 북한에 동조하는 것이라는 정부의 입장은 전형적인 반북논리이자 종북공세이다. 반북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와 관련된 정부의 극히 잘못된 입장과 태도는 남북 2차고위급 접촉에 먹구름으로 작용을 하고 있다. 남북갈등도 남남갈등도 없어지고 남북관계가 개선되어야한다는 것이 국민들의 한결같은 바램이다. 최근 들어 세 번이나 연이어 터진 남북총격전을 보면서 그 바램은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북한의 입장에 동조하라는 것이 아니다. 정부는 국민들의 정당한 요구와 지향을 더 이상 정치적으로 왜곡해서는 안될 것이다.

몹쓸대통령은 미소 띤 얼굴로 유족들을 지나쳤다??


대통령은 미소 띤 얼굴로 유족들을 지나쳤다 등록 : 2014.10.29 11:36수정 : 2014.10.29 15:36툴바메뉴 스크랩 오류신고 프린트기사공유하기facebook489 twitter352 보내기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국회에서 새해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려고 본청에 들어설 때 세월호 유가족 대표들이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세월호 유가족들 국회에서 기다렸지만 눈길 안 줘 국회 시정연설에서 ‘세월호’란 단어조차 사용 안해 “대통령님 살려주세요.” 그러나 대통령은 끝내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오전9시42분 국회에 도착한 박근혜 대통령은 박형준 국회 사무총장의 안내를 받으며 미소를 띤 얼굴로 현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현관 옆에는 30여명의 세월호 유가족들이 ‘가족참여 특별법제정·안전한 대한민국’, ‘세월호 참사 관련자들을 성역없이 조사하라’는 내용이 담긴 손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 대통령을 기다리던 유가족들의 아우성은 듣는 이 없이 허공을 맴돌았다. 28일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찾은 박근혜 대통령과 세월호 유가족들의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다. 세월호 가족대책위는 전날 “대통령이 국회에 오시니 만날 기회가 생긴 것 같다. 대통령을 만나 진상규명과 철저한 수색에 대해 말씀 드리고 싶다. 우리를 외면하지 마시라”고 기자회견을 통해 밝히고 국회 농성장에서 기다렸지만, 대통령은 유가족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대통령의 국회를 방문하는 날 이른 아침부터 세월호 유가족들은 ‘불편한 존재’로 취급됐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아침부터 경찰 통제선과 국회 의경들의 ‘장막’에 갇혀 있었다. 국회 본청 현관 왼쪽에 위치한 세월호 유가족 농성장은 경찰통제선이 ‘행동반경’을 제한했고, 의경들이 둘러싸 유가족들의 시야를 차단했다. 의경 뒤에는 사복차림의 청와대 경호 요원들이 ‘2차 장막’을 쳤다. 대통령이 지나간뒤 세월호 유가족들의 눈가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 많은 애들을 구하지 못하고 이 나라는 무얼했습니까”, “우리는 인간이 아니에요.”, “유가족좀 살려주세요.” 10분여간 본회의장에 들어가기 위해 도착한 여야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절규하던 엄마들은 결국 주저 앉아 소리를 내서 울었다. 일부 야당 의원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유가족들을 지켜봤다. 문재인 새정치연합 의원은 기자들의 질문에 “손을 한번 잡아주시면 약간의 관심이라도 표명해주시면 저분들에게도 큰 힘이 되고 국민들에게도 아주 환영받을 것 같은데…. 아쉽습니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시정연설에서 ‘세월호’라는 단어를 한번도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국가의 기본책무인 국민의 안전부터 확실히 지키도록 하겠다. 내년도 안전예산을 전분야에 걸쳐 가장 높은 수준인 17.9% 확대하여 14조6천억원으로 편성했다”고 밝혔다. 또 “최근 우리는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각종 적폐의 흔적들이 세월이 흘러도 후손들에게 상처로 남는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에둘러 말했다. 세월이 흐르니 ‘세월호’라는 말을 하기가 그렇게 싫었을까?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국회에서 새해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려고 본청에 들어설 때 세월호 유가족 대표들이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시정연설과 여야 영수회담을 마치고 김무성 대표 등 새누리당 지도부와 함께 국회 본청을 나설 때 세월호 유가족 대표들이 본청 현관 앞에서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2014년 10월 28일 화요일

한국은 검열공화국, 그 아버지에 그 딸


by 편집부Posted: October 28, 2014 at 1:54 pm 한국은 검열공화국, 그 아버지에 그 딸 -오스트리아 언론, 한국 여론 및 사이버 검열 조명 -기업총수서부터 텔레그램으로 사이버 망명 이제 한국의 박근혜 정권을 생각하면 세계언론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박근혜 정권 초기에는 부정선거와 국정원 개입이었고 2014년을 지배한 세월호 참사에 이어 최근에는 언론검열과 사이버 검열로 이어지는 검열공화국 독재국가가 아닌가 싶다. 특히 ‘박근혜의 사라진 7시간’을 기사화 한 가토 산케이 서울 지국장의 불구속 수사가 결정된 뒤에는 언론탄압국가로서의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또한 뒤이어 일어난 카카오톡 검열사태로 인한 한국민들의 유례가 없는 텔레그렘으로의 대규모 사이버 망명사태는 전 세계 언론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국격선양의 역할을 톡톡하게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오스트리아 유수의 신문인 ‘Wiener Zeitung(비너 차이퉁)’이 한국의 여론검열 및 탄압 상황을 전반적으로 짚는 기사를 실어 눈길을 끌고 있다. ‘비너 차이퉁’은 23일 “Wie der Vater, so die Tochter-부전여전”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고 박근혜정권의 강화되고 있는 여론 및 사이버 검열이 마치 그녀의 아버지인 독재자 박정희의 전체주의적인 감시체제로 국민을 억압했던 일을 떠오르게 한다고 지적했다. 파비안 크레츄머 기자가 쓴 이 기사는 박근혜의 사라진 7시간에 대한 기사로 인한 가토 지국장의 불구속 수사, 더욱 심해지는 국가보안법 적용 등에 대해서 언급했다. 특히 인터넷 보급률이 가장 높은 이 나라에서 검열이 디지털 세계에서 더욱 강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지적한 이 기사는 카카오톡의 검열로 인해 150만 이용자들이 텔레그램으로 도피한 사실을 관심있게 보도했다. 크레츄머 기자는 이 도피객들의 사이에는 한국의 재벌인 두산그룹의 박용만 대표도 포함되어 있다고 소개했다. 결국 이로 인해 다음 카카오톡은 정부의 감청요구에 협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고 전한 이 기사는 한 국회의원이 박근혜의 인터넷 정책을 가리켜 부전여전이라고 했다고 소개했다. ‘비너 차이퉁’는 박근혜가 자신의 아버지인 박정희의 대중사찰 시스템을 도입할지 모른다며 박정희는 군사독재자로서 전체주의적인 감시체제로 국민을 억압했다고 전해 그 아비에 그 딸로 이어지는 독재의 모습을 전했다. 유럽의 유명 외신 ‘비너 차이퉁’은 1703에 오스트리아에서 설립되었으며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매체 중 하나이고 전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신문이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비너 차이퉁’의 기사 전문이다. 번역 감수: 임옥 기사 바로가기 ☞ http://bit.ly/1wJ8bTw “Wie der Vater, so die Tochter” “부전여전” Von Fabian Kretschmer 파비안 크레츄머 wienerzeitung_title Südkorea galt lange als Vorzeigedemokratie Asiens. Nun nimmt Zensur der öffentlichen Meinung zu. 한국은 오랫동안 아시아의 모범적인 민주국가라고 여겨졌다. 현재는 여론에 대한 검열이 거세지고 있다. wienerzeitung_photo Winkt freundlich, zensiert aber private Chatnachrichten? Präsidentin Park Geun-hye. © ap/Do Kwang-hwan 친근하게 손을 흔들며 개인 채팅을 검열한다? 박근혜 대통령 Seoul. Der Stein des Anstoßes sind gerade mal sieben Stunden, doch für Tatsuya Kato könnten sich diese zu satten sieben Jahren Haft ausweiten: Der ehemalige Seoul-Korrespondent der ultrakonservativen japanischen Tageszeitung “Sankei Shimbun” griff in einer Kolumne vom 3. August Gerüchte auf, die das mysteriöse Fehlen der südkoreanischen Präsidentin am Tag des Schiffsunglücks klären sollten. Als beim Sinken der Sewol-Fähre über 300 Passagiere ertranken, erschien Park Geun-hye erst am Nachmittag im Krisenzentrum, selbst engste Mitarbeiter wussten stundenlang nicht über ihren Aufenthaltsort Bescheid. 서울. 문제가 되는 것은 7시간이지만 가토 타츠야에게는 이 7시간이 7년 징역형으로 연장될 수도 있다: 극우보수 일본신문인 “산케이신문”의 전직 서울지국장은 8월 3일 칼럼에 세월호 참사 당일 한국 대통령의 설명되지 않은 부재에 대해 폭로하고 있다고 하는 소문을 실었다. 세월호의 침몰로 300명이 물 속에서 익사하고 있었을 때 박근혜는 대책본부에 오후에야 나타났고 가장 가까운 직원들조차도 그녀의 행적에 대해 몇 시간 동안 정보를 알지 못했다. Kato deutete in seinem Artikel an, die Präsidentin habe sich außerhalb ihres Regierungssitzes mit einem ehemaligen Berater getroffen und ihr so indirekt eine außereheliche Affäre nahegelegt. Am 8. Oktober wurde der japanische Journalist nun wegen Diffamierung angeklagt. Brisant ist, dass Kato fast ausschließlich bereits publizierte Informationen wiedergegeben hatte, vor allem aus südkoreanischen Tageszeitungen, die dafür nicht belangt wurden. 가토는 기사에서 대통령이 집무실 밖에서 전직 보좌관을 만났다며 따라서 간접적으로 그녀가 혼외관계를 가지고 있었음을 암시하는 말을 했다. 10월 8일 이 일본 언론인은 명예훼손으로 고소됐다. 놀라운 사실은 가토는 거의 전적으로 한국 신문들에 이미 발간된 정보를 다시 재생했으며 한국 신문들은 기소당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Cyberzensur 사이버 검열 Sein Fall ist nur der letzte einer ganzen Serie an Zensurmaßnahmen, mit der die Regierung die öffentliche Meinung über sie kontrollieren möchte. Bereits 2011 bezeichnete die Nichtregierungsorganisation Freedom House Südkorea als nur “eingeschränkt freies” Land, das seine Medien aktiv zensiere. So wurde vergangene Woche ein chinesischer Student des Landes verwiesen, weil dieser über soziale Netzwerke das nordkoreanische Regime lobte – ein Vergehen gegen das nationale Sicherheitsgesetz, das laut Amnesty International in den letzten Jahren immer inflationärer verwendet werde. 그의 경우는 정부가 여론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시행하는 검열의 많은 사례 중 가장 최근의 것일 뿐이다. 이미 2011년 비정부기관인 프리덤하우스가 한국을, 적극적으로 언론을 검열하는‘제한적 자유’만을 가진 국가로 분류했다. 그래서 지난 주 한 중국 학생이 북한을 찬양하는 글을 소셜네트워크에 올렸다가 국가에서 추방됐다. 이는 앰네스티 인터내셔날에 따르면 최근 수년 동안 점점 더 많이 적용되고 있는 국가보안법 위반이었다. Südkorea ist das bestvernetzte Land der Welt, über 70 Prozent der Bevölkerung besitzen ein Smartphone. Die Gegenöffentlichkeit formiert sich vor allem im Internet, das hier so schnell fließt wie sonst nirgendwo. Kein Wunder, dass sich die Zensur immer stärke ins Digitale verlagert. 한국은 세계에서 인터넷 보급율이 가장 높은 나라로서 인구의 70% 이상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 반대여론은 한국에서 다른 매체와 비교도 안되게 빠르게 유통되는 인터넷 상에서 특히 형성된다. 검열이 디지털 세계에서 더욱 강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Allein seit letztem Jahr richtete die Regierung 147 Überwachungsanfragen an Kakaotalk, der beliebtesten Textmessage-App des Landes. Unzählige Male ließ der Chat-Anbieter Postings löschen, oft handelte es sich um vermeintlich diffamierende Äußerungen gegen die Präsidentin und führende Politiker der konservativen Regierungspartei. Als die Debatte um die Cyberzensur eskalierte, reagierten die User prompt: Anderthalb Millionen von ihnen wichen auf die Konkurrenz Telegram aus, darunter auch der Vorstand des südkoreanischen Mischkonzerns Doosan, Park Yong-maan. Telegram gilt als besonders sicher und verschlüsselt jede Kommunikation mit dem Server. 지난해 이후에만 정부는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문자 메시지앱인 카카오톡에 147건의 감청요청을 했다. 수없이 많은 경우, 채팅 제공업체는 종종 대통령과 보수집권당의 지도자들에 대한 명예를 훼손한다고 여겨지는 게시글들을 재량껏 삭제했다. 사이버 검열에 관한 논쟁이 확대되자 이용자들은 재빠르게 반응했다: 한국의 재벌기업 두산의 대표인 박용만씨를 포함한 150만명의 이용자들이 경쟁회사인 텔레그램으로 도피했다. 텔레그램은 특히 안전하다고 여겨지며 서버와의 모든 통신을 암호화한다. Scheinidentitäten 가짜 아이디 Der Internetgigant Daum Kakao stand zwischen den Fronten – und entschied sich letztlich, für seine Nutzer in die Bresche zu springen. Anfang der Woche bekundete der Firmenvorstand, bei künftigen Überwachungsanfragen von privaten Chatverläufen nicht mehr mit der Regierung kooperieren zu wollen und auch etwaige rechtliche Konsequenzen in Kauf zu nehmen. 인터넷 초대형기업인 다음 카카오는 궁지에 몰렸고 그리고 마침내 이용자들을 위해 싸우기로 결정했다. 이번주 초 회사 대표는 장차 사적인 대화 내용에 대한 정부의 감청 요구에 협조하지 않을 것이며 뒤따르는 어떤 법적 결과도 감수하겠다고 발표했다. “Wie der Vater, so die Tochter”, kritisierte eine Abgeordnete der liberalen Oppositionspartei Park Geun-hyes rigide Internetpolitik. Park würde Schritt für Schritt das öffentliche Überwachungssystem von ihrem Vater Park Chung-hee übernehmen. Dieser führte das Land am Han-Fluss in den 60ern und 70ern zu wirtschaftlichem Wohlstand, unterdrückte aber als Militärdiktator seine Bevölkerung mit einem totalitären Überwachungsapparat. 한 야당 국회의원은 박근혜의 엄격한 인터넷 정책에 대해 “부전여전”이라고 비난했다. 박근혜는 점차적으로 자신의 아버지인 박정희의 대중 사찰 시스템을 도입할지도 모른다. 박정희는 60년대와 70년대에 한강을 끼고 있는 이 나라에 경제 발전을 가져왔지만, 군사독재자로서 전체주의적인 감시체제로 국민을 억압했다. Bereits vor ihrem Amtsantritt hatte die Diktatorentocher für einen handfesten Cyberskandal gesorgt: Geheimdienstmitarbeiter gaben sich auf sozialen Netzwerken Scheinidentitäten und warben in mehr als 1,2 Millionen Tweets für die spätere Präsidentin. 그 독재자의 딸은 이미 대통령직에 취임하기 전부터 심각한 사이버상의 스캔들을 초래했다: 국가정보기관 요원들이 가짜 아이디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접속해서 후에 대통령이 된 그녀에게 유리한 120만개이상의 트윗을 올렸다. [번역 저작권자: 뉴스프로, 번역기사 전문 혹은 일부를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십시오.] Email Tags:검열 공화국박근혜박근혜 7시간부전여전산케이

참사 195일만에 실종자 추가 발견!!


엄마의 목소리가 떨렸다 참사 195일만에 실종자 추가 발견 4층 여자화장실에서 발견... 유속 빨라져 시신 인양은 아직 14.10.28 18:00l최종 업데이트 14.10.28 22:14l소중한(extremes88) 기사 관련 사진 ▲ 14일 세월호특별법 제정 촉구 광화문광장 농성천막에 세월호참사 실종자 10명(고창석, 권재근, 권혁규, 조은화, 황지현, 박영인, 양승진, 남현철, 허다윤, 이영숙)의 캐리커쳐가 붙어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기사 재보강 : 28일 오후 9시 44분] "어떡해요. 지금 (진도실내)체육관이에요. (실종자가 발견된 곳이) 어디라더라. 어, 맞아요. 4층 화장실. 어떡해요. 모르겠어요.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어요. 어떡해요." 28일 오후 5시 25분 세월호 침몰사고로 실종된 희생자 시신 1구가 선내에서 발견됐고, 곧바로 오후 5시 40분께 속보가 뜨기 시작했다. 이날 오후 5시 45분, 196일째 진도에서 자식을 기다리고 있는 한 실종자의 어머니가 기자의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어떡해요" "모르겠어요"라는 말을 반복했다.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다. 떨리는 목소리가 잦아들 즈음, 기자는 "어머님, 이럴 때일수록 기운을 내셔야 해요"라고 말했다. "네"라는 대답을 듣고 수화기를 내려놨다. 29일 오전 4시께 '시신 인양' 위한 작업 재개 예정 지난 7월 세월호에서 조리사 이아무개씨의 시신을 수습한 지 102일 만에 실종자 발견 소식이 나왔다. 지금 이 시각, 실종자 가족이 가장 기다리는 건 발견된 시신의 신원. 하지만 실종자 10명의 가족은 몇 번이고 지샜을 밤을, 또 뜬 눈으로 지새야 한다. 시신이 내 자식일지, 내 어머니일지, 내 형제일지, 내 조카일지 확인하려면 아직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 시신을 발견한 구조팀은 아직 시신을 물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유속이 빨라져 시신 인양작업을 잠시 멈췄다. 구조팀은 다음 정조시간인 29일 오전 4시께 작업을 다시 시작할 계획이다. 시신을 인양하더라도 DNA 비교작업 등 신원을 확인하기까지 통상 12시간이 더 걸린다. 구조 당국은 "빠르면 29일 정오 무렵에 신원을 확인할 수도 있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것도 "인양과 신원 확인 작업이 원활하게 진행될 경우"를 가정했을 때 나올 수 있는 결과다. 시신은 4층 중앙화장실에서 발견됐다. 이를 두고 진도 현장에선 시신의 신원과 관련된 나름의 추측이 나오고 있다. ▲ 여자화장실에서 발견됐다는 점 ▲ 4층에 주로 단원고 학생들이 탔다는 점 ▲ 4층에서 한 실종자의 지갑이 발견됐다는 점 등이 신원을 추측할 수 있는 단서지만 구조팀은 DNA 비교 전까지는 신원을 단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날 구조팀은 지난 26일 수색이 중단된 지 이틀 만인 28일 오후 4시 59분부터 잠수요원을 투입해 세월호 수중수색을 실시했고, 수색 30여 분 만에 시신 발견 소식을 전해왔다. 한 실종자 가족은 28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26일 구조팀이 기상여건 때문에 수색을 중단하기 전, 마지막 작업으로 4층 중앙화장실 뒤쪽 장애물을 뜯어놓고 나왔다"며 "오늘 오전, 구조팀이 4층 중앙화장실을 수색한다고 알려줬는데, (26일 마지막 작업 당시에 시신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말했다. 유경근 세월호 가족대책위 대변인은 28일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실종자가 발견된 4층 중앙화장실은 매우 비좁아 문만 열어보면 발견할 수 있었다"며 "여태까지 수색을 하지 않은 비좁은 공간이 많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종자 가족 "인양보다 수색 우선" 발표한 지 하루 만에 시신 발견 기사 관련 사진 ▲ 팽목항 방파제의 노란리본 세월호 참사 196일째인 28일 실종자 시신 1구가 발견됐다. 사진은 지난 10월 15일 노란리본이 묶여 있는 팽목항 방파제 너머로 해경 함정이 지나고 있는 모습. ⓒ 소중한 관련사진보기 시신 발견 전날(27일), 실종자 가족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인양 대신) 현재 진행하고 있는 수중수색의 지속으로 뜻을 모았다"고 발표한 바 있다. 실종자 가족들이 "11월에도 수중수색을 지속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한 지 하루 만에 실종자 시신이 발견된 것이다. 다만 실종자 가족들은 기자회견에서 "(수색의 최종수단으로써의) 인양 논의를 지속할 것"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실종자 가족 법률대리인인 배의철 변호사는 "실종자 가족들이 인양과 관련된 정보가 부족해 논의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정부와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충분히 대화하고 사회 각계각층의 목소리도 경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종자 발견 소식을 접한 유경근 대변인도 "정부는 무조건 여론의 힘을 빌려 인양하려고 해선 안 된다"며 "인양할만한 상황이라고 세월호 희생자 가족을 설득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배 변호사와 유 대변인 모두 '인양에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니 논의를 좀 더 심도있게 하자'며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한 셈이다. 한편, 이날 실종자 발견 전까지 남은 세월호 참사 실종자는 단원고 2학년 조은화·허다윤·황지현·남현철·박영인 학생, 양승진(일반사회)·고창석(체육) 단원고 교사, 일반인 승객 이영숙(51)·권재근(52)씨와 권씨의 아들 권혁규(6)군 등 10명이다.

"동학농민혁명군의 자주의식 '통일'로 이어져야"


'동학농민혁명 12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침략당한 역사 망각하면 전철 답습"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4.10.28 19:16:33 트위터 페이스북 ▲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과 전국동학농민혁명유족회, 천도교가 공동주최한 '동학농민혁명 12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가 28일 서울시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다. 국제학술대회는 29일까지 열린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일본 병사를 물러나게 하고 나쁜 간신배의 관리를 쫒아내서 임금 곁을 깨끗이 한 뒤에는 몇 주석(柱石)의 선비를 내세워서 정치를 맡게 하고 우리는 곧장 농촌에 들어가 생업인 농사에 종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국사를 들어 한 사람의 세력가에게 맡기는 것은 크게 폐해가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몇 사람의 명사에게 협합(協合)해서 합의법에 의해서 정치를 담당하게 할 생각이었다." 일본 아사히신문 1895년 3월 6일자 전봉준 인터뷰 기사의 한 대목이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과 전국동학농민혁명유족회, 천도교가 28일 개최한 '동학농민혁명 12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에서 이이화 전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은 농민혁명 지도자인 전봉준은 집강소 설치기간 폐정개혁을 결정하면서 의사원(議事員)이라는 이름으로 합의제로 운영했으며, 누구를 지도자로 추대할 것인지를 묻는 일본 기자에게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소개했다. ▲ 이이화 전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은 동학농민 혁명군이 지향한 반침략 반외세의 자주의식은 현재 통일문제와 연결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이화 전 이사장은 동학농민혁명군의 이같은 지향은 근대적 입헌군주제나 선출직 국회와 같은 정치체제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한 사람의 권력집중을 막으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동학농민혁명군이 밑으로부터의 변혁을 지향하면서 기층민중의 의사를 대변하려는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의사결정이라는 관점에서는 '소박한 수평적 리더십'으로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특히 봉기 당시부터 부정한 수령과 이서를 징치하면서 청산해야 할 첫 대상으로 꼽고 집강소 기간에는 불량한 양반배와 포악한 토호를 일차 대상으로 삼는 등 당시의 지배세력을 모두 적으로 보았으며, 집강소를 통해 적어도 의사결정과 정책결정, 민중의 정치참여 문제 등을 민주적으로 구상했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것은 동학농민혁명군 자체 역량의 한계도 있었지만 일차적으로는 일본 침략세력의 강력한 군사력과 정치외교력에 꺾인 것에서 연유한 만큼 이에 뿌리를 둔 민족분단의 역사적 책임에서 일본은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전 이사장은 이같은 인식의 연장선에서 동학농민 혁명군이 지향한 반침략 반외세의 자주의식은 현재 통일문제와 연결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민족의 분단이 구조화된 상황에서 독재정권을 맞아 민주주의를 유린한 세력에 맞선 민주화운동이 전개됐으며, 극심한 소득불균형을 만들어내고 있는 탐욕적 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을 비춰볼 때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은 현재적 의미를 던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국제학술대회에서는 이 전 이사장의 기조강연에 이어 치쥔지에 중국 갑오전쟁박물관 관장과 이노우에 가츠오 일본 홋카이도대학 교수의 기조강연이 있었으며, 이병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조사부장의 사회로 '동학농민혁명-청일전쟁의 전개와 동아시아 세계의 변동'을 주제로 발표와 종합토론이 이어졌다. 치쥔지에 관장은 기조강연에서 동학농민혁명의 와중에 벌어진 '중일갑오전쟁'(청일전쟁)에서 패배한 중국은 대만을 일본에 할양하고 거액의 배상금을 지불하게 됐는데, 중국에 끼친 충격은 대단히 강렬해서 '부청멸양'(扶淸滅洋)의 구호를 앞세운 의화단운동과 나아가 신해혁명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또 일본이 동학농민혁명을 빌미로 도발한 청일전쟁에서 중국을 상대로 승리한 일본은 이후 러시아와의 전쟁까지 승리로 이끌면서 열강의 대오에 들어서게 됐다며, "침략당한 과거를 잊으면 반드시 침략당한 역사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경고를 주기에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이노우에 가츠오 교수는 일본측 사료를 중심으로 당시 일본군이 저지른 동학농민군에 대한 섬멸작전은 일본 대본영과 정부가 조직한 것이었으며, '국가의 제노사이드'였다고 폭로했다. 이노우에 교수는 동학농민군의 섬멸작전을 입안, 발령하고 '토멸부대'를 파견한 것은 '히로시마 대본영'이었으나 일본군 육군참모본부는 이 작전을 전사에서 전혀 기록하지 않고 있다며, 동아시아의 장래를 위해 역사적 사실이 공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학농민혁명, 평화·화해·상생의 시대를 열다'는 주제로 진행되는 국제학술대회는 28일에 이어 29일 '동학과 동학농민혁명의 의미'를 짚어보고 '동학농민혁명과 동아시아 세계의 미래'를 주제로 계속된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날아가지 못한 대학로의 풍선들


<사회>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대 청와대 풍선 날리기 퍼포먼스 한성 자유기고가 기사입력: 2014/10/28 [23:22] 최종편집: ⓒ 자주민보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민권연대)가 세월호 참사 발생 200일을 앞두고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어 연일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대 청와대 풍선 날리기 활동이 그것이다. 민권연대의 대 청와대 풍선날리기는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문구가 적힌 대형풍선을 날리는 퍼포먼스이다. 민권연대는 28일에는 서울을 비롯하여 수원 광주 부산 대구 등에서 동시에 대 청와대 풍선 날리기를 벌였다. 수원과 부산 대구와 광주 등은 풍선 날리기를 할 수 있었지만 서울은 경찰의 제지로 무산되었다. ▲ © 한성 자유기고가 ▲ © 한성 자유기고가 ▲ © 한성 자유기고가 아래 걸은 링크는 28일 서울민권연대가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벌인 대 청와대 풍선날리기에 대한 주요 언론들의 보도 내용들이다. 그 아래 기자회견문을 첨부한다. http://media.daum.net/society/affair/newsview?newsid=20141028164408250 http://news.nate.com/view/20141028n27996&mid=n0402&cid=533104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2656721&plink=ORI&cooper=DAUM http://news.kbs.co.kr/news/NewsView.do?SEARCH_NEWS_CODE=2956501&ref=D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4&no=1363235 <세월호 참사 200일.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대청와대 풍선 날리기 기자회견문> 11월 1일 세월호 참사 200일, 진실규명을 위해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있은 지 200일이 다 되어간다. 하지만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진상규명은 제대로 되지 않았고, 참사의 책임자는 어디에도 없다. 4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와 대한민국의 장래가 달려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세월호 진상규명에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에 책임을 져야하는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는 묵묵부답이다. 정부는 ‘골든타임’ 동안 가능한 모든 자원을 동원해 구조를 했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컨트롤타워는 존재하지 않았고, 사고 후 7시간 동안 대통령은 무엇을 했는지 행적이 묘연하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아무 말이 없고, 청와대는 애초부터 조사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고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를 위해 10월 20일과 24일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민권연대)는 ‘세월호 진실규명, 대통령도 조사하라’는 내용을 담은 풍선을 광화문 세월호농성장에서 날리려 했다. 하지만 공권력은 이를 가로막았다. 경찰은 처음에는 항공법 위반을 이야기하더니 정부가 탈북‧보수 단체들의 풍선이 항공법 위반이 아니라는 해석을 내놓자 궁색하게 ‘시민들의 안전’을 내세웠다. 하지만 정부와 경찰의 입장은 이중적이다. 정부와 경찰은 탈북‧보수 단체들의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하며 제재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이야기 해 왔다. 10월 25일 임진각에서는 탈북‧보수 단체들의 대북전단 살포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이를 막은 것은 경찰이 아니었다. 대북전단 살포를 막은 것은 파주지역 주민들과, 개성공단 기업인들, 진보단체 회원들이었다. 파주시에서 대북전단 살포를 하지 못한 일부 탈북‧보수단체 회원들은 김포시에서 대북전단 2만장을 날렸다고 한다. 경찰이 한 일이라곤 탈북‧보수 단체와 전단 살포를 막으려는 사람들 간의 충돌을 막는 것뿐이었다. 사실상 박근혜 정부와 공권력은 전단 살포 자체에는 개입하지 않고 수수방관한 것이다. 통일부는 10월 27일에도 대북전단 살포와 관련해 법적 근거 없이 민간단체의 활동을 통제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 했다. 정부와 경찰의 이중적 행태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10월 28일 세월호 참사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한 풍선 날리기를 전국적으로 진행하려 한다. 10월 29일에는 다시 한번 광화문 농성장에서 청와대를 향해 풍선을 날릴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문제에 대한 모든 의혹을 밝히고, 유가족이 원하는 세월호 특별법을 통과시키는데 전력을 다하라. 경찰은 이중 잣대를 들이대며 '세월호 진실규명, 대통령도 조사하라'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막아나 설 것이 아니라 세월호 진실규명을 위한 국민들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 2014년 10월 28일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민권연대)

2014년 10월 27일 월요일

10.26 국립현충원 앞 '박정희 이장하라' 1인시위


'일왕에 견마지로 맹세한 친일파가 현충원..항일지사 모욕' 정찬희 기자 기사입력: 2014/10/28 [14:46] 최종편집: ⓒ 자주민보 지난 10월26일, 한 남성은 박정희 내외가 묻혀있는 국립현충원 앞에서 '박정희묘 이장하여 국군을 바로세우자' 라고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 참고로 박정희는 1979년 10월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 '현충원에 항일지사와 친일파 함께 안장 부당' 1인시위 © 서울의소리 제공 1인 시위남성은 '왜 박정희 묘 이장을 요구하느냐' 라는 일부 현충원 방문객의 항의를 받기도 하였다. ▲ '박정희 묘 이장' 주장하는 1인시위자 © 서울의소리 제공 이를 취재하던 서울의소리 www.amn.kr 백은종 대표(사진속 오른쪽 뒷모습)는 '박정희는 일제강점기 일왕에 개나 말처럼 충성을 다하겠다 혈서를 쓴 인물로 항일지사들이 안장된 현충원에 함께 안장되는 것이 부적절하다. 항일 지사에 대한 모욕이다' 라는 의견을 밝혔다.

MB 빨리 사, 朴 빨리 팔아, 혈세 수십조 펑펑


해외자원 살 때는 ‘글로벌 호구’ 팔 때는 ‘헐값 잔치’ 육근성 | 2014-10-28 12:40:4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MB 정권 시절 이명박 대통령은 종종 주례 라디오 연설을 통해 복음(기쁜소식)을 국민에게 전했다. 그 ‘복음’의 내용은 유전 개발 계약이 체결돼 중동과 북미에 ‘우리 유전’을 갖게 됐다는 것. 해외자원 개발 사업이 눈부신 진척을 보이고 있다는 자화자찬이었다. MB의 ‘복음’(기쁜소식) 알고 보니 ‘뻥’ 이 ‘복음’ 전파는 정권 말까지 이어졌다. 2012년 3월 6일에도 MB는 아랍에미레이트 유전 개발 본계약이 체결됐으니 기뻐해 달라며 방송을 했다. 대통령이 직접 제 입으로 ‘복음’이라고 강조한 이 사업은 어떻게 됐을까. 총 799억원이 투입됐지만 회수율은 고작 9%. ‘깡통’이 됐다는 얘기다. 석유공사와 광물자원공사. 해외자원 개발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대표적 공기업이다. 적극적이었던 만큼 출혈이 극심하다. 석유공사의 경우 MB 정권 5년 동안 부채가 3조 6천억원에서 21조 3천억원으로 7배 증가했으며, 이중 민간차입과 회사채는 103억원에서 12조5천억원으로 1216배나 폭증했다. 금융이자만 연 4110억원에 달해 벌어서 이자 내기도 빠듯한 형편이다. 광물자원공사 상황은 더하다. 이자 감당도 못한다. 부채는 7배 이상 급증했지만 투자액(3조2천억원)에 비해 수익(6년간 2200억원)은 보잘 것 없다. 금융이자로 연간 865억원이 나가지만 당기순이익은 189억원. 벌어들이는 돈보다 이자가 5배나 많다. 이런데도 연봉이 높아 사장의 경우 2억원 넘게 받아왔다. 최근 임원 연봉을 크게 낮췄지만 감사 연봉은 오히려 올랐다. 친박 낙하산에 대한 배려다. 현재 상임감사는 18대 대선 새누리당 공동여성본부장 출신인 홍표근씨다. 비싸게 사서 ‘헐값 잔치’, 공기업 해외자산 매각 ‘러시’ 뻥 뒤에 남은 건 빈 깡통. MB의 자원외교는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MB정권 동안 앞뒤 안 가리고 해외자원 개발에 뛰어들었던 공기업들. 이젠 보유하고 있는 해외 자산을 내다 파느라 정신이 없다. 박 대통령이 부채 줄이라고 강하게 압박하기 때문이다. 2017년까지 내다 팔 공기업 해외자산은 6조3000억원에 달한다. 하베스트 정유 자회사 NARL을 포함해 다수 해외사업 매각을 추진 중인 석유공사의 매각 규모는 2조7천억원. 광물자원공사 1조4천억원, 한국전력 1조4천2백억원, 가스공사 5천8백억원, 한국수력원자력 1천4백억원 등 해외자산 매각이 러시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헐값 매각이다. 국민 혈세를 펑펑 쓰며 비싸게 사더니 이젠 절반도 못 건진 채 마구잡이로 내다 팔려고 한다. MB 정권 5년 동안 석유공사, 광물자원공사, 가스공사 등이 벌인 해외 자원 투자 규모는 26조원. 하지만 회수된 금액은 3조6천억원에 불과하다. 실적이 이러니 매물로 내놓아도 제 가격 받을 수 있겠나. 자신들 돈이 아니니 펑펑 쓰다가 안 되면 휴지조각처럼 버려도 그만이란 말인가. 1조원에 사서 900억원에 팔기도, 부도난 회사 인수에 2조원 퍼줘 석탄공사가 보유한 몽골 홋고르 탄광. 2011년에 274억원을 주고 사더니 이제 111억원에 팔려고 한다. 투자금의 절반도 못 건지게 됐다. 광물자원공사의 남아공 블락플라츠 유연탄광. 2010년에 지분매입 명목으로 187억원을 투자했지만 3년 만에 176억원을 손실 처리했다. 투자금의 95%를 날린 것이다. 대부분 상황이 이렇다. 어이없어 입이 떡 벌어지는 사례 하나. 1달러짜리를 1조원에 사놓고 연간 수백억원 이상의 손실을 혈세로 매우다가 4년 만에 900억원에 매각한 경우도 있다. 2009년 석유공사는 캐나다 하베스트에너지를 인수한다. 애당초 인수가격은 2조5천억원. 하지만 석유공사는 2조원 웃돈을 얹어 4조5천억원을 건넨다. ‘2조원 웃돈’에는 하베스트에너지 자회사인 NARL 인수대금 1조원이 포함됐다. 1986년에도 NARL이 매각된 적이 있다. 당시 소유주인 캐나다 국영석유회사는 NARL을 단돈 1달러에 팔았다. 판 것이 아니라 거저 줬다는 얘기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정유업체지만 섬에 위치해 입지도 안 좋은데다 40년 이상 된 설비라 노후화가 심각해 연간 1000억원의 적자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베스트에너지가 ‘애물단지’ NARL을 석유공사에 거액을 받고 끼워 판 것이다. 1달러짜리인데 1조원을 줬다. 누가 석유공사를 ‘글로벌 호구’로 만들었을까. 턱없는 요구에 응하도록 자문한 곳은 메릴린치 서울지점. 김형찬 지점장은 MB의 40년 집사로 불리던 김백준 당시 청와대 총무기획관의 아들이다. 이 황당한 거래의 배후에 MB와 김백준이 있다는 설이 파다하다. 알고도 호구 행세를 했나? 그럼 사기를 친 것이다. 환상의 콤비… MB는 ‘빨리 사라’, 朴은 ‘빨리 팔아라’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는 최악의 투자도 있다. 2008년 광물자원공사는 멕시코 볼레오 동광산 지분 30%를 인수한다. 이게 화근이 됐다. 2011년 제련시설이 착공되지만 개발회사인 바하마이닝은 2억9천만 달러가 더 필요하다고 발표한다. 그러자 채권단은 추가자금 지원 중단을 선언했다. 광산사업권이 채권단 수중에 들어가자 광물자원공사가 나서 채권 권리유보 협상을 벌여 투자지원 계약을 맺고 추가 지분 인수에 나선다. 이미 부도난 회사의 주식을 인수하고 채권단의 권리집행을 막기 위해 광물자원공사가 쓴 돈은 현금과 지급보증 등을 합해 모두 2조원. 엄청난 돈을 들여 바하마이닝의 Default를 풀고 70% 이상 지분을 확보한 것이다. 하지만 볼레오 광산 사업성은 부정적이다. 미국 증권선물위원회가 밝힌 ‘볼레오 사업성 분석 자료’에는 온통 빨간불이다. 참여연대는 멕시코로 건너간 돈 가운데 일부가 행방이 묘연할뿐더러 비정상적인 송금이 이뤄진 사실도 있다며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이명박근혜’ 정권. 볼수록 재미있다. ‘얼른 투자하라’고 닦달했던 MB. ‘빨리 팔아치워 부채 줄여라’고 볶아대는 박근혜. 손발이 척척 맞는다. 살 때는 턱 없이 비싼 값 치러 글로벌호구 되더니 팔 때는 ‘헐값 잔치’를 준비하느라 바쁘다. 두 정권의 팀워크 덕분에 국민혈세만 폭포수처럼 새어 나간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2&table=c_aujourdhui&uid=446

[MB의 비용]'기억투쟁'은 '청산투쟁'의 초석이다


'MB의 비용'을 따져야만 하는 이유 [MB의 비용]'기억투쟁'은 '청산투쟁'의 초석이다 유종일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이사장 2014.10.28 10:00:34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과 지식 협동조합 '좋은나라'(이사장 유종일)는 직전 정부인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주요 경제 정책에 대한 평가로 'MB의 비용'을 공동 기획, 연재했다. 연재 1부를 마무리하는 글을 유종일 이사장이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1. '돈벌레, 사기꾼, 도둑놈, 철면피, 기생충, 대왕쥐, 재테크, 슬픈 역사'가 SNS에서 “이명박은 … 다”라고 규정해보라는 요청을 한 결과 얻은 답 중 일부다. 조금 긴 것들로는 ‘칠 사기는 다 치는 놈, 나라를 거덜 낸 놈, 우리가 똥 밟은 것’도 있다. 많은 이들의 분노가 담겨있었지만 아쉽게도 대단하게 상상력을 자극하는 표현은 없었다. 그런데 똥 밟은 것이라는 표현에는 선뜻 수긍이 가면서도 뭔가 미진한 느낌이 든 것은 왜일까? 그 정도가 아니라 아주 똥통에 푹 빠진 것이라고 해야 마땅할 것 같았다. 혹 똥을 밟아본 사람은 있어도 똥통에 정말로 빠져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필자는 군복무 중에 매우 지근거리에서 간접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날이 흐려 캄캄한 밤이었고, 우리는 야영훈련 중이었다. 항상 하던 대로 소대원 하나가 한밤중에 몰래 마을에 나가 소주를 사서 오기로 하였다. 그런데 그가 텐트로 돌아오다가 그만 논두렁 옆에 똥과 섞어서 썩히던 커다란 두엄더미 저장고에 빠져버린 것이다. 한잔 하고 자려고 텐트 안에서 기다리던 우리는 소주는커녕 엄청난 똥 냄새의 공격을 받으며 잠을 청해야 했다. 똥통에 빠진 병사가 냇가에 가서 온몸을 씻었고 군복도 빨아 입고 왔지만 그래도 여전히 냄새가 장난 아니었다. 그 병사는 그날 이후로 틈만 나면 씻고 또 씻었지만, 악취는 며칠이 가도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참 지독했다. 지금 우리 국민의 꼴이 똥통에 빠진 격이다. MB가 '싸질러' 놓은 거대한 똥 무더기에 빠져 사방에서 진동하는 악취에 시달리고 있다.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있으니 악취가 더욱 진동한다. 2. 4대강 사업 이후 여름만 되면 보에 고인 물이 ‘녹조라떼’로 변하고, 녹조가 썩으면서 악취를 풍기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에는 큰빗이끼벌레라는 시궁창 냄새를 풍기는 고약한 벌레가 창궐하고 있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삼척동자도 아는 상식에 비추어 4대강 사업 추진 당시부터 능히 짐작했던 바다. 작년에 MB는 "녹조가 생기는 건 수질이 나아졌다는 뜻"이라는 기상천외한 발언을 하여 우리를 당황하게 하기도 했다. 원래 유체이탈화법의 대가로 알려졌지만 우리의 의표를 찌른 한 차원 높은 발언이었다. 박창근 관동대 교수의 계산에 의하면 4대강 사업의 부작용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22조 원의 사업비보다 3배나 되는 65조 원이 필요하다. 복지 예산에는 그렇게 돈을 아끼면서 이런 황당한 짓을 벌여놓은 것이다. 낙동강의 썩은 물에서 풍겨오는 악취는 4대강 사업과 MB정권의 상징적인 유산이지만, 앞으로 수자원 공사의 부채를 갚기 위해 우리의 세금이 올라갈 것이 자명하다. 수도요금이 오를 때 서민의 호주머니에서 비명이 새어나올 것이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3. MB정권 5년 동안 정권 실세들의 주도하에 온갖 구린 일들이 벌어졌다. 위장 대운하 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4대강 사업은 물론 MB 본인이 주도한 것이고, MB와 더불어 '만사형통' 이상득과 '실세차관' 박영준은 자원외교라는 미명아래 천문학적 돈을 뿌리고 다녔다. 고기영 한신대 교수의 추정에 의하면 자원외교는 약 56조 원의 부채를 우리에게 남겼다고 한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불거지는 얘기들을 보면 아마도 손실액은 더욱 불어날 것 같다. 금액은 적지만 영부인 김윤옥도 한식세계화 사업에 편승해서 참으로 민망한 짓을 하고 다녔다. 탐욕의 촉각을 지닌 정권 실세들은 정부 사업 외에도 수많은 구린 일에 손을 뻗쳤다. 이상득은 수많은 서민의 가슴에 못을 박은 저축은행 사태와 관련되었고, 박영준은 수많은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한 한수원 비리에 연루되었다. KT나 포스코처럼 완전히 민영화된 기업도 정권이 점령군처럼 운영했고, 정권과 가까운 롯데그룹이나 효성그룹에 대한 특혜시비도 끊이지 않았다. 금융지주회사 회장들을 모조리 MB맨으로 채운 결과 이들은 ‘금융권 4대천황’이라 불리며 우리나라 금융을 주물렀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화제가 된 한국투자공사(KIC)의 메릴린치 우선주 20억 불 투자건도 MB정권과 연관되어 있다는 정황증거가 매우 많다. 여론의 반대로 무산이 되기는 했지만 인천공항을 민영화하겠다는 '담대한'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구린 일들이 구린 것으로 끝난 것만은 아니다. 국고의 손실만 해도 100조가 훌쩍 넘고, 정부 사업을 떠맡은 공기업들은 부채더미에 올라앉았으며, 정권의 낙하산들이 점령한 KT, 포스코, 금융지주회사 등에서는 각종 부실과 비리가 터져 나왔으며 당연히 경쟁력을 잃어갔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런 구린 일에 앞장서고 몸 바친 결과, 온몸에서 구린 냄새가 펄펄 나는 이들이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기세등등하다는 것이다. 4대강 사업을 주도한 자들은 책임을 지기는커녕 정부의 포상까지 받고 희희낙락하고 있으며, 자원외교 한답시고 혹은 멜리린치에 투자한답시고 조 단위로 돈을 날린 자들이 오히려 영전하여 잘나가는 것이 오늘날의 뒤틀린 현실이다. 지난 지방선거를 계기로 소위 친이계 부활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매우 구리다. 4. 흔히 ‘진보는 분열로 망하고 보수는 부패로 망한다’고 한다. 보수정권인 MB정권의 부패는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니 그걸 탓하지 말고 얼마나 유능한 정권이었는지 평가하는 것이 옳다는 입장도 있을 수 있겠다. 권력의 부패와 그로 인한 공적 권위에 대한 불신은 그 자체로 매우 중대한 평가 잣대가 되어야겠지만, 국정운영을 잘했다면 어느 정도는 용서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MB정권은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고 경제활력을 살려내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아왔는가? MB정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경제성장이다. ‘747’을 이루겠다는 정권이었다. 하지만 MB정권 5년간 연평균성장률은 불과 2.9%였다. 이는 김대중 정부의 연평균성장률 5.1%나, 노무현 정부의 4.3%에 크게 못 미치는 성과였다. 글로벌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았으니 핑계는 있다. 그러나 중국의 고도성장에 따른 혜택도 누렸다. 김대중 정부 초기에도 IMF위기가 있었고 노무현 정부도 정권 초에 카드채 위기를 맞았다. 성장은 결국 국민이 잘살기 위해 하는 것이므로 임금이 얼마나 올랐는지 살펴보자. 10인 이상 업체 비농전산업 연평균실질임금상승률은 김대중 정부 동안에는 3.5%, 노무현 정부 동안에는 3.7%였던데 반해 MB정권 동안에는 고작 0.2%였다. MB 정부 아래에서 재벌 대기업들의 이윤은 폭증했지만 실질임금은 완전히 정체했던 것이다. ▲역대 정부의 국정성과 지표. 1)5년간 연평균 2)정권 말 2007년, 2012년 기준(단 IT산업경쟁력 순위는 2007년, 2011년 기준) ©유종일 ▲역대 정부의 국정성과 지표. 1)5년간 연평균 2)정권 말 2007년, 2012년 기준(단 IT산업경쟁력 순위는 2007년, 2011년 기준) ©유종일 5. 경제성장의 이면도 살펴보자. 가장 큰 문제는 MB정부의 초라한 경제성장마저도 엄청난 빚더미 위에서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기재부 발표로는 국가채무는 2007년 말 약 299조 원에서 2012년 말 약 448조 원으로 50%나 증가했다. 그 결과 GDP대비 비율도 30.7%에서 32.8%로 증가했다. 공공기관 부채는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2007년 말 약 249조 원에서 2012년 말에는 498조 원으로 정확하게 두 배로, 즉 100%나 증가했다. 정부만 빚진 게 아니고 가계부채 또한 폭증했다. MB정부 5년간 금융권 가계대출은 222.3조 원 증가했으며, 이중 예금은행 대출은 20.3% 증가한 데 비해 금리가 높은 기타금융기관 대출은 46.2%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을 합한 것을 경제고통지수라고 한다. 한겨레신문에서는 경제고통지수에 소득불평등, 범죄율, 자살률을 더해 사회경제고통지수라는 개념을 고안했다. 1993년부터 이 지수를 산출한 결과 김영삼 정부 집권 시기엔 -3.8로 가장 낮은 수준이었고, 김대중 정부 0.6, 노무현 정부 0.7로 높아지더니 이명박 정부에서는 3.2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반면, 줄어든 것도 있다. 남북통합지수이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가 고안한 남북통합지수는 2007년 270.9에서 MB정부가 들어선 직후 200년 214.2로 급락하고 2012년에는 197.6까지 하락했다. 사회경제고통지수나 남북통합지수가 진보편향적인 지표라고 한다면, 이번에는 보수성향 단체들의 평가를 보자.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2007년에는 11위였으나 MB정부 출범 후 2008년 13위, 2009년 19위, 2010년 22위, 2011년 24위, 2012년 19위로 2012년을 제외하고는 해마다 뒷걸음질 쳤다. 또한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발표하는 IT산업 경쟁력지수에서는 우리나라가 2007년 세계 3위에서 2008년 8위, 2009년 16위, 2011년 19위로 급락했다. 미국의 NGO인 프리덤하우스는 언론부자유지수를 매년 발표하는데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시절에는 30점 이하를 기록해 줄곧 언론자유국으로 분류되었으나, MB정부 집권 3년차에 32점으로 상승해 부분적 언론자유국으로 강등되었다. MB정부도 잘한 일이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외환 및 자본거래 관련 규제를 강화한 것을 꼽을 수 있다. 프린스턴 대학 신현송 교수가 국제경제보좌관으로 일한 덕택이었다. 하지만 잘한 일을 아무리 꼽아보아도 위에서 살펴본 거시적인 지표의 부진을 극복할 수는 없다. <표1>은 이들 지표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이다. 6. 필자의 SNS 질문에 MB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우리 안의 욕심이 MB를 만들었다는 답들도 꽤 있었다. 나는 이런 관점을 존중하지만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모든 것에 대해 ‘내 탓이오’ 하는 종교적 자세에 배울 점이 있고, MB를 낳은 얄팍한 선택에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관점은 불의와 맞서 싸우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욕심을 버리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또 그래야만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은근히 MB에게 투표한 유권자를 탓하는 것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 많은 유권자가 MB를 선택하게 되었는지 물어야 한다. 뭔가 잘못된 것이 있을 때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원인과 책임을 정확하게 규명하는 것은 사회과학적 분석이나 정치적 실천에 매우 중요하다. 누가 우리를 MB라는 똥통으로 이끌었던가? 두 말 할 나위 없이 노무현 정부의 실정이었다. 넓게는 민주개혁진보 세력의 정치적 실패였다. 이에 관한 솔직한 인식을 회피하고 반성을 거부한 채, 그저 정권 심판론에 기대어 눈앞의 선거승리와 계파간 패권다툼에만 몰두해온 야권은 참패를 거듭해왔고 결국 선택을 받은 것은 박근혜 정권이었다.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 솔직한 고백이 주는 신뢰, 정책과 정당운영에 관한 참으로 진지한 성찰, 이런 것들 없이는 야권에 희망이 없다. 지금의 야권은 MB가 싸질러 놓은 똥 무더기 이상으로 악취를 풍길 따름이다. 7. 박근혜 정부가 꾸린 ‘4대강사업 조사평가위원회’는 중립적 인사들로 위원회를 구성한다는 구실 아래 비판론자들을 배제하고 사실상 찬성론자들을 여럿 포함시킴으로써 공정하고 엄정한 평가에 대한 기대를 저버렸다. 이런 구성 때문에 박근혜와 MB 담합설까지 흘러나왔다. 둘 사이에 쌓인 사적인 감정으로 보나 전두환의 은닉재산 추징에서도 나타난 정치적 셈법으로 보나 MB에 대한 추상같은 응징이 마땅하련만, 박근혜 대통령이 MB를 감싸고돌고 있으니 이는 참으로 해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대선을 매개로 해서 둘 사이에 끊기 어려운 연결고리가 형성된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이 난무하지만, 어디까지나 정황증거에 기반한 추측일 뿐이고 진실은 알 수 없다. 어쨌든 박근혜 정부의 비호로 인해 우리는 MB의 똥을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똥 냄새를 맡아야 한다는 게 억울하지만, 그보다도 더 큰 문제가 있다. 그때그때 권력에 줄서기만 잘하면 출세도 하고 이익도 향유하며 잘못에 대해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참으로 나쁜 교훈 말이다. 해방 후 친일파 청산에 실패함으로써 발생한 ‘역사의 도덕적 해이’가 오늘까지도 반복되어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 전 총리지명자 문창극 씨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다는 보도를 접하고 그의 정신상태를 의심했는데, 신임 적십자총재 김성주 씨도 유사한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이젠 놀라지도 않는다. 이 땅에서 신나게 먹고 신나게 싸지른 자들은 권력이 바뀌어도 항상 승승장구했고, 우리 국민들은 진동하는 구린내를 맡아가며 똥 치우기에 바빴던 게 한국현대사의 한 흐름이 아니었던가? 지난 2일 82Cook, 리멤버0416 등 세월호 진상규명 활동을 해온 60여개의 풀뿌리시민모임이 모여 성명을 발표했다. “사악한 집권여당도, 나약한 거대 야당도 정파적 이해에만 고립되어있는 소수야당도” 신뢰하지 않으며 오직 국민들만 신뢰하고 싸워나가겠고 했다. MB가 끼친 해악, 진동하는 구린내를 청산하는 노력도 정치권에서는 기대난망이다. 국민이 직접 나서야만 한다. 8.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는 바로 이러한 인식에서 출발하여 MB정권이 우리 국민에게 끼친 손해가 얼마나 되는지 따져보기로 했다. 단편적으로는 많은 얘기가 흘러나왔지만 흩어진 정보를 종합하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이 우리들의 '기억투쟁'을 위해 중요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조합원들께서 분야별로 나누어 맡아 연초부터 작업을 했고, 그 성과의 일부를 8월 1일부터 <프레시안>에 연재하였다.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웠고, 국회의 국정감사장에서 우리가 제기한 이슈들이 확대‧재생산되기도 하였다. 일과성으로 지나가면 끝나버리는 정치권과는 달리 우리는 MB정권의 폐해를 청산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이다. 조만간 MB의 비용에 관한 단행본을 출판하려고 하니 독자들의 관심을 당부한다. '기억투쟁'은 '청산투쟁'의 초석이다. 학문적 업적으로 쳐주지도 않는 글을 쓰느라고 고생한 조합원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박창근 교수님, 고기영 교수님, 김용진 교수님, 김학진 교수님, 이후천 교수님 등 <프레시안>에 글을 연재하신 분들 외에도 조애리 교수님, 남준우 교수님, 황평우 소장님 등이 기획 및 집필에 참여하여 많은 수고를 해주셨다. 필자의 조교인 신호정 씨는 방대한 자료를 추적하고 집적하느라 구슬땀을 흘렸다.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도 기획에 도움을 주고 지면을 할애하여 주었다. 모든 분께 깊은 감사를 표한다. ▲ 4대강 사업, 22조 원 부은 '밑 빠진 독' <1> MB의 비용 : 4대강 사업, 22조 원 부은 '밑 빠진 독' ① "박근혜 정부 5년 수질 관리 비용만 20조 원" <2> MB의 비용 : 4대강 사업, 22조 원 부은 '밑 빠진 독' ② "4대강 사업 부작용 바로 잡으려면 65조 원!" <3> MB의 비용 : 4대강 사업, 22조 원 부은 '밑 빠진 독' ③ "4대강 사업의 실체적 진실은 3년 반 후?" ▲ MB의 자원외교 <1> MB의 비용 : MB 자원외교의 虛와 實 ① MB 자원외교, 71건 MOU 중 계약은 딱 1건! <2> MB의 비용 : MB 자원외교의 虛와 實 ② MB정부, 자원외교에 43조 원 투자했으나… <3> [MB의 비용] MB 자원외교의 虛와 實 ③ 에너지 자립? 돈만 날린 MB 자원외교 <4> [MB의 비용] MB자원외교의 虛와 實 ④ MB 자원외교…묻지마 투자, 수 조원 손실 <5> [MB의 비용] MB 자원외교의 虛와 實 ⑤ "MB 자원외교, 국민에게 56조 부채 남겨" ▲ MB의 기업비리와 특혜 <1> [MB의 비용] MB의 기업비리와 특혜 ① 부실 논란 제2롯데월드, 알고보니 특혜? <2> [MB의 비용] MB의 기업비리와 특혜 ② 'MB 낙하산' 이석채의 KT, 비리 집합소 되다! <3> [MB의 비용] MB의 기업비리와 특혜 ③-上 'MB맨' 정준양, 4년 만에 포스코 부채 14조 원! <4> [MB의 비용] MB의 기업비리와 특혜 ③-下 MB 실세들, 포스코로 '짬짜미' 시도? <5> [MB의 비용] MB의 기업비리와 특혜 ④-上 MB와 롯데의 밀월관계…'친구 게이트'? <6> [MB의 비용] MB의 기업비리와 특혜 ④-下 속속 드러난 'MB정권-롯데' 밀월관계 증거들! ▲MB의 한수원 비리 <1> [MB의 비용] MB의 한수원 비리 : 고비용·비리 백화점 한수원, 이래도 안전한 원전? ▲MB의 한식세계화 예산낭비 <1> [MB의 비용] MB의 한식세계화 예산낭비 : 한식세계화 예산낭비 유종일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이사장 메일

'PD수첩'이 '촛불' 불렀단 적개심에서 끝내 교양국 '해체'까지


[MBC 시사교양국의 수난사]지속적이고 꼼꼼했던 폭력들 권순택 기자 | nanan@mediaus.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입력 2014.10.28 12:08:51 MBC ‘교양제작국’이 끝내 해체된다. 교양제작국 소속 PD들 일부는 외주 제작물을 관리하는 콘텐츠제작국으로 나머지는 예능1국의 제작4부로 이동한다. 이와 함께 MBC 대표 교양 프로그램 <불만제로>, <원더풀 금요일> 등이 폐지가 이미 확정됐다. MBC를 관리감독하는 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 김문환 이사장은 이번 조직개편과 프로그램 폐지에 대해 “성과가 적어서”라고 답했다. MBC 이번 조직개편은 공영방송의 정체성과 역할이 아닌 사업자로서의 ‘수익성’과 ‘성과’가 전면화 된 것이다. 보도국 내에 ‘뉴스사업부’를신설한 것은 너무 적나라한 위악이다. MBC의 교양제작국의 뿌리는 ‘시사교양국’이다. 2012년 큰 집에 불려가 ‘쪼인트’를 맞았다는 김재철 전 사장이 조직을 개편하기 전 ‘시사’와 ‘교양’은 한 몸이었다. 그걸 김재철 전 사장이 쪼개고, 이번에 최종적으로 해체한 것이다. 근 5년 여의 세월이다. 수난의 MBC 시사교양국, 과연 MBC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 MBC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편 MBC ‘시사교양국 수난’의 시작, 흔들기에서 시작 MBC ‘시사교양국’의 수난은 2008년 정권교체부터 시작됐다. 타깃은 정확했다. 이었다. MBC 시사교양국 수난사는 수난사와 궤를 같이 한다. 그렇잖아도 '방송 때문에 정권을 잃었었다'는 적개심에 불타던 정권에게 ‘광우병 편’은 일종의 신호탄 역할을 했다. 이 한 편의 보도를 보수언론 전체는 물론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및 방통위원회,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은 매일 같이,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물어뜯었다. 당시, <조선일보>는 ‘PD수첩의 광우병 사망자 조작 사실 밝혀졌다’는 제목의 사설을 싣었다. 지금까지도 보수언론들의 대표적 왜곡 사례 중 하나로 꼽히는 기사다. 협공이었다. 여당의 진성호·김용태 의원은 별도 보도자료를 통해 ‘PD수첩, 광우병 위험 어떻게 왜곡 과장했나’를 배포했다. 곧바로 바통은 정부여당 추천이 절대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방통심의위가 이어 받았다. 방통심의위는 철저히 다수결 원리에 따라 MBC 에 최고 징계인 ‘시청자에 대한 사과’를 의결했다. 당시, 여당 추천 박명진 방통심의위원장(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은 을 두고 “제작진들의 의욕이 넘쳐서 알면서고 그런 것(오역) 아니냐”라고 발언했다. 이 발언은 정부여권은 물론 보수세력 전체가 MBC 을 바라보는 시각을 대변했다. 해당 심의결과는 정운천 전 농림부장관의 명예훼손 근거가 되면서 형사소송으로까지 이어졌다. 내부에도 적은 있었다. MBC 경영진과 관리감독 기관인 방송문화진흥회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MBC 경영진들은 제작진의 의사와 상관없이 방통심의위의 ‘시청자사과’ 결정에 일방적으로 사과방송을 송출했다. 그리고 당시 정호식 시사교양국장을 다른 보직으로 인사발령했다. 방송문화진흥회 김우룡 이사장은 “시사교양국과 보도제작국이 분리돼 있어 소재가 중복되는 경우가 많다”고 언급한 뒤, 사실상 두 부처의 통폐합을 종용했다. 언론의 자유를 위해 외부의 간섭을 배척해야할 책임자들이 오히려 시사교양국 PD들의 적으로 나선 격이었다. ▲ PD수첩 동료인 이춘근 PD 연행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김보슬 PD ⓒ민중의소리 검찰 역시 뜨겁게(!) 화답했다. MBC에 촬영원본 제출을 요청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많은 비판이 쏟아졌지만 검찰은 한 발 더 나아갔다. MBC 이춘근 PD를 시작으로 밤 12시~새벽2시 사이에 조능희 PD와 송일준 PD, 김은희·이연히 작가를 연이어 체포했다. 도주의 우려가 없는 언론인에 대한 긴급체포, 결코 벌어져선 안되는 일이 대명천지에 벌어진 셈이었다. 이후 MBC ‘광우병 편’ 제작진들은 길고 긴 법정 투쟁을 통해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그들이 그 당시 겪었던 수많은 고초는 지금까지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그리고 MBC 시사교양국에 대한 수난은 그렇게 시작됐다. MBC 시사교양국 수난2, 시사교양국을 편성제작본부로 이동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해야할까, MBC 은 그래도 살아남았다. 최승호 PD의 역할이 컸다. 2010년 4월 MBC ‘검사와 스폰서’ 편은 향응 및 성접대 의혹에 연루된 전·현직 검사 57명의 실명이 담긴 문건을 공개해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박기준 부산지검장과 한승철 대검찰청 감찰부장을 비롯해 법무부 고위직 인사와 부장검사들이 다수 연루돼 있었다. 훗날, 최 PD는 그 압력을 버텨낼 수 있던 까닭에 “‘노동조합’이 있었기 때문에 방송이 가능했다”고 회고했다. ▲ PD수첩 "검사와 스폰서" 하지만 그 반작용으로 MBC 제작자율성에 대한 간섭은 점차 심해졌다. 시사교양국의 칼끝이 살아있는 권력을 향할수록 그 권력자들은 MBC를 압박했다. 그리고 그해 8월 일이 터졌다. MBC 최승호 PD는 ‘4대강, 수심 6m의 비밀’ 편을 제작했으나, 김재철 사장은 ‘방송 보류’를 결정했다.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국책사업이자 천문학적 규모의 토목공사였던 4대강 사업에 대한 문제제기는 정권 입장에서 사활을 걸고 막아야 하는 문제였다. 많은 논란 끝에 방영이 됐지만, 이미 그때 시사교양국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때부터 MBC 경영진은 노골적으로 조직개편을 압박하며,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흔들었다. ‘시사교양국’ 조직 전체가 타깃이 됐다. MBC 사측은 <후플러스>, <김혜수의 W>를 폐지했다. <후플러스>는 권력에 대한 감시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배려를 통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가치를 가지고 만든 프로그램이었고, <김혜수의 W>는 심층적인 정규 해외 시사 프로그램으로서 독보적인 위상을 점하고 있었다. 그러나 MBC 경영진은 해당 프로그램들에 일방적인 폐지를 통보했다. ▲ MBC <후플러스> 홈페이지 캡처 그리고 MBC는 2011년 2월 조직개편에 돌입했다. 이 속한 시사교양국을 편성제작본부로 이동하는 조직개편안이었다. MBC 경영진은 조직개편의 이유를 ‘조직의 슬림화’를 들이댔다. 교양국을 폐지한 지금과 같은 논리다. 당시, 시사교양국 소속 PD들은 “시사교양국이 편성제작본부로 이동할 경우 과 같은 시사프로그램에 대한 경영진의 노골적인 간섭이 용이해지게 된다”, “편성본부장이 아이템 기획과 결정, 예산 확보 등에 직접 관여함으로써 제작의 완성도보다는 사측의 입김이 훨씬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이 같은 비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문제는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시사교양국장 자리는 김재철 사장과 같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온 윤길용 씨에게 돌아갔다. 에 대한 직할통치의 시작이었다. 윤길용 효과는 강력했다. 의 상징과 같던 최승호 PD가 직격탄을 맞았다. 2011년 3월 이명박 대통령의 인맥으로 활용되고 있는 소망교회를 취재하던 중 최 PD는 갑자기 강제발령 났다. 그 후, 소망교회 취재는 중단됐고 관련 방송은 끝내 전파를 타지 못했다. 이 때 최 PD와 함께 을 만들던 제작진 11명 가운데 6명을 이후 다른 부서로 강제 발령났다. MBC 시사교양국 수난사의 2라운드의 허망한 종료였다. 당시 윤길용 시사교양국장은 “PD수첩 희석시키자는 게 솔직한 속내”라고 대놓고 커밍아웃을 하기도 했다. MBC 시사교양국 수난3,…방송프로램 ‘직접개입’ 이후에도 의 수난은 계속됐다. 1차 조직개편을 통해 을 편성제작본부로 이동시키고 최승호 PD등 유능한 PD들을 타 부처로 발령 낸 MBC는 급기야 프로그램 내용을 직접적으로 건드리기 시작했고, 소속 PD들에 대한 감시도 노골적으로 시행했다. 전성관 PD가 의 코너 아이템으로 ‘MB 국가 조찬기도회 무릎 논란’을 방송하려했지만 막아섰다. 뚜렷한 이유는 없었다. 윤길용 시사교양국장은 다만 “민감한 사안이다”, “헤프닝성 아이템”이라며 취재를 막았다. 민감한 사안을 다뤄야 할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 민감성을 빼라는 지시였다. 문제는 취재중단에서 그치지 않았다. 윤 시사교양국장은 전 PD를 취업규칙 위반으로 인사위원회에 회부해버렸다. 이 밖에도 윤 시사교양국장은 을 통해 ‘남북 경협 파탄 그 후’ 아이템을 방송하려던 이우환 PD와 '황우석' 편을 비롯해 <아프리카의 눈물>을 제작한 한학수 PD를 각각 용인드라미아와 경인지사, 비제작 부서로 인사 발령했다. 갑작스런 인사였다. ▲ MBC스페셜 홈페이지 캡처 MBC 경영진들은 간섭은 이후 더 꼼꼼해졌다. MBC ‘여의도 1번지 사모님들’ 편 불방(2011년 6월)을 결정했다. 윤길용 시사교양국장 체제에서 ‘MB 무릎기도 사건’과 ‘남북경제협력 중단 1년’ 아이템에 이은 세 번째 불방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논란은 다른 곳에서 벌어졌다. 해당 편 불방이 ‘경남 사천’ 통합진보당 강기갑 의원의 아내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김재철 사장이 해당 지역구에서 한 자리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언론계에 파다할 때였다. 이후, 김 전 사장은 지난 4월 새누리당 사천시장 후보 경선에서 출마해 탈락했다.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멀쩡하게 완성돼 내부 시사회까지 거친 프로그램을 불방시킨 셈이었지만, 이후 김 전 사장은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이후에도 시사교양국 PD들에 대한 감시 사례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많다. 같은 해 7월 담당 김철진 부장이 제작진의 노트북을 뒤적이고 책상을 열어보는 등 사찰했다는 주장이 나와 파문이 일으켰고, 새누리당 소속 오세훈 서울시장의 역점 사업인 ‘한강 르네상스 사업’을 다룰 예정이던 방송은 경영진과 시사교양국장의 지시로 인해 상당 부분 수정되기도 했다. 회사의 이런 기류는 노동조합에 속해있던 이들은 물론 비조합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김영호 PD는 한미FTA 아이템과 관련해 촬영까지 모두 마쳤지만 김철진 시사교양2부 부장의 반대로 방송이 무기한 보류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2011년 9월 14일에는 MBC ‘광우병 편’ 제작진들에 대한 무죄판결이 선고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BC는 김보슬·송일준·이춘근·조능희 PD등 제작진을 재차 인사위원회에 회부해 조능희PD와 김보슬PD에게 정직3개월의 중징계를 내렸다. 회사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가 달렸다. MBC 시사교양국 수난4…‘시사’와 ‘교양’ 쪼개기 그리고 교양국폐지까지 MBC노조가 2012년 초 김재철 사장 퇴진과 공정방송을 내걸고 파업에 들어간 사이 MBC는 2012년 4월 이 속한 시사교양국을 해체하는 조직개편안(제2차)을 발표했다. 편성제작본부 아래 이 속해있던 시사교양국은 보도제작국과 통합돼 ‘시사제작국’과 ‘교양제작국’으로 분리됐다. 그리고 시사제작국장에 심원택, 교양제작국장으로는 김현종 씨가 각각 배치됐다. 심원택 시사제작국장은 MBC <시사매거진 2580>에서 다루려 했던 국정원 아이템을 불방시킨 장본인으로 지속적으로 시사·고발 보도를 막아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던 인물이다. 김현종 교양제작국장 또한 을 망가뜨린 인물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던 이였지만 회사는 오히려 보란듯 그들을 임명해 시사와 교양을 보는 시작을 과시(!)했다. 그리고 끝내 최승호 PD를 해고(2012년 6월)했다. 최 PD가 MBC노조 파업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명확하지 않고, 적절한 해명도 듣지 않은 채 해고가 확정됐다. 그리고 PD를 넘어 시사교양국 내 작가들까지 손보기에 돌입했다. 작가 해고사태가 벌어진 게 2012년 7월의 일이었다. 그렇게 몇 차례에 걸쳐, 길목을 끊고 핵심 인사들을 축출하며 MBC 길들이기, 시사교양국 장악은 완성됐다. 그 결과 의 위상은 말할 수 없이 쪼그라들었다. MBC의 간판 시사프로그램이지만 ‘돈’을 위해서는 언제든 방송시간을 내주어야했고, 연성 아이템으로 점철된 그렇고 그런 프로그램이 되었다. 방영 시간에 철지난 영화가 틀어지기도 했고, 드라마 제작 일정이 차질을 빚게 됐을 때도 또 속절 없이 방송 시간을 내줘야 할 정도로 초라한 프로그램이 됐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가 2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MBC 사옥 앞에서 교양제작국 해체 반대 피케팅을 벌이고 있는 모습 (사진=미디어스) 끝없이 이어지던 MBC의 ‘시사교양국’ 손보기는 안광한 사장 체제에 이르러 조직개편을 통한 아예 교양제작국을 해체해버리는 '참사'로 이어지고 있다. 시사교양국의 한 축을 담당했던 하나의 ‘국’이 통째로 사라지게 된 셈이다. MBC를 대표했던 교양 프로그램들이 사실상 전부 사라지게 됐다. 은 간판이 남을지도 불확실하지만, 남더라도 계속된 수난사 속에 이미 죽은 프로그램이 된지 오래다. 뭐가 더 남아있을까. MBC 경영진은 회사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왔던 직원들을 아예 회사 밖으로 내쫓을까.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느냐는 기대는 너무 낭만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공영방송이 교양국이 없앨 수도 있다는 걸 언제 상상이나 해봤는가. <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신해철, 당신은 우리들의 영원한 마왕입니다 · ‘오만과 편견’, 오만한 그와 편견에 사로잡힌 그녀의 ‘무난한’ 출발 · 'PD수첩'이 '촛불' 불렀단 적개심에서 끝내 교양국 '해체'까지 · 내 마음 깊은 곳의 너… 마왕 신해철의 너무 이른 죽음 · 공무원 연금 보도, '잔머리' 굴리느라 '언론이길' 포기한 어떤 언론들 권순택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중국 1894년 갑오년 '일본 학살에 맞선 민중투쟁기'


'영원히 잊지 않는다' 우리는? 정찬희 기자 기사입력: 2014/10/28 [10:27] 최종편집: ⓒ 자주민보 올해 2014년은 한국은 갑오농민전쟁 120주년의 해다. 양반 기득권에 썩어문드러진 기득권을 지키려는 왕조와 세상을 개혁해보려는 아래로 부터의 혁명의 기운이 충돌, 그 와중에 왕조는 자국민을 치기위해 외세를 끌어들이고 관군까지 합세해 자국백성을 학살했다. 그것이 바로 1894년 우금치 전투이다. 중국의 1894년은 어땠을까? 그 일면을 중국 여순 '만충묘 기념관'에서 볼 수 있었다. ▲ 중국 여순 만충묘 기념관. 일본군은 중국으로 들어와 수많은 양민을 학살했고 중국인은 저항했다 © 정찬희 기자 무력침탈의 야욕에 불탄 일본은 신식화력을 앞세워 조선과 중국에 진출했다. 일본은 중국 여순에서 수많은 학살과 양민수탈을 자행하여 2만명 이상의 인민을 학살하고 그 만행에 중국인들은 죽음을 불사한 강력한 저항으로 맞섰다. 중국여순의 만충묘 기념관은 일제의 만행에 순국한 이들의 무덤과 그 저항의 기록이 남겨져 있는 기념관으로 수많은 일제의 만행과 그 저항의 기록이 남아있었다. 자주민보 독자들의 알권리를 위해 내부의 전시모습을 일부 공개한다. (원래 내부 사진 촬영이 금지이나 플래쉬를 터트리지 않고 찍는 사진은 허용해주어 사진을 촬영할 수 있었다. 기념관 관계자들께 감사를 표한다.) ▲ 중국 여순 만충묘 기념관을 관람하기 위해 입장하는 사람들 © 정찬희 기자 입구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문구는 '여순대도살(학살)' 이라는 표식이다. ▲ 여순 대도살(학살)이라 적힌 표지판 © 정찬희 기자 일제의 만행은 잔인했다. 이 만행을 기념관의 사실적 그림들과 사진으로 볼 수 있었다. 신식무기를 앞세워 진군하여 양민을 총칼로 학살하여 길가에 시체를 늘어놓았다. ▲ 여순 만충묘 기념관 내 전시된 일제의 중국인 학살 장면 © 정찬희 기자 ▲ 여순 만충묘 기념관 내 전시된 일제의 중국인 학살 장면 © 정찬희 기자 ▲ 여순 만충묘 기념관 내 전시된 일제의 중국인 학살 장면을 재현한 조형물 © 정찬희 기자 ▲ 여순 만충묘 기념관 내 전시된 '일본군의 신랑살해, 신부겁탈' 장면 그림 © 정찬희 기자 하단의 그림은 민가에 들어와 신랑을 살해하고 신부를 겁탈하는 일본군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이다. 2만수천명의 숫자조차 정확히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중국인이 일본군의 무력에 의해 도살(학살)당하고 중국인은 울분에 분노했음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었다. 중국인들은 이 일본의 무자비한 악행에 참지않고 일어났다. ▲ 변발을 한 남자가 일본군을 죽이는 모습을 담은 그림 © 정찬희 기자 ▲ 일본군 진영에 침투에 몰래 우물에 독을 타는 중국인 © 정찬희 기자 침략자 일본군 진영에 몰래 침투해 식수 우물에 독을 타는 그림도 있었다. 학살자 일본에 대한 중국인의 뜨거운 분노를 한눈에 알 수 있었다. ▲ 일제의 만행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중국인의 다짐 © 정찬희 기자 이 기념관의 한면에는 커다랗게 이런 글귀가 박혀 있었다. '永失不忘(영실불망)' 즉 '영원히 잊지 않겠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고 말한다. 일본이 용서를 구한적이 없음에도 '경제관계' 등의 관계를 이유로 용서하고 쉬쉬하자 한다. 심지어는 친일을 미화하는 이가 국무총리 후보가 되고 공중파 이사에 취임하고 있음이 떠오른다. 중국은 우리 못지 않게 일본과 많은 경제적 교역을 하고 있지 않은가? 이를 보면 잊지 않는 것과 경제는 별개가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올해는 갑오농민투쟁 120주년이 되는 해로 중국이 같은해 일본에 의해 우리못지 않은 참극을 당했음을 눈으로 확인하며 더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된다. ▲ 만충묘기념관 내 만충묘 © 정찬희 기자 중국 여순 만충묘 기념관은 여순 버스터미널(火車站 훠쳐짠) 인근 도보 1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입장료는 무료이다. (참고로 여순 버스터미널에서 길을 건너 3번 버스를 타면 10여 분정도면 안중근, 신채호 선생 등이 순국한 여순일아감옥에 도착할 수 있다. 3번버스 종점이고 택시로는 기본요금거리. 여순감옥 또한 입장료 무료. 오후 3시 반 폐장한다)

2014년 10월 26일 일요일

경찰, 전국 모든 운행 차량 실시간 감시시스템 구축했다


[단독] 경찰, 전국 모든 운행 차량 실시간 감시시스템 구축했다 등록 : 2014.10.26 20:08수정 : 2014.10.26 23:35툴바메뉴 스크랩 오류신고 프린트기사공유하기facebook911twitter182보내기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전국 도로 CCTV 6천여대에서 차량 번호 실시간 전송받아 전국민 이동 경로 추적 가능 수사권 남용·사생활 침해 심각 경찰청 “시험 운영 중단” 경찰이 전국 도로에서 운행중인 차량을 자동 식별·감시할 수 있는 통합 시스템을 구축해 시험운영까지 한 것으로 확인됐다. 수사권 남용과 사생활 침해 가능성을 막을 안전장치 없이 시스템이 구축돼 ‘도로 위 실시간 사찰’이라는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26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진선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수배차량 검색체계 개선사업’ 자료를 보면, 경찰은 차량번호 자동 수집이 가능한 전국의 차량방범용 카메라 5929대에 찍히는 차량정보를 경찰청 서버로 실시간 전송하는 시스템을 지난 3월 구축하고 7월까지 4개월 동안 시험운영까지 했다. 경찰이 전송받은 차량정보를 미리 입력해놓은 차량번호와 자동 비교·판독한 뒤 수배·도난 차량 등으로 확인되면 지역 경찰에 곧바로 ‘모바일 검문 지령’이 내려가게 된다. 경찰은 1992년 실시간 검색과 현장 검문소를 연결한 시스템(AVNI)을 도입해 서울 9곳을 포함해 전국 주요 길목 76곳에서 가동하며 해당 지역을 통과하는 차량의 사진을 촬영하고 차량번호를 수집하고 있다. 여기에 경찰이 구축한 새 시스템을 가동하면 각 지자체 관제센터에서 보관 중인 동영상까지 더욱 쉽게 검색할 수 있어 차량 이동 상황 파악이 수월해진다. 차량정보는 최소 석 달 이상 저장할 수 있으며, 차량번호만 입력하면 과거·현재의 이동 경로와 탑승자 영상까지 곧바로 확인할 수 있다. 진 의원은 “기존 시스템이 작동하는 76곳에서 한 달 동안 수집되는 차량정보는 2300만건에 달한다”며, 새 시스템이 본격 가동되면 차량 이동 감시가 사실상 무제한적인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경찰은 살인·강도·성폭력·납치·절도 등 범죄 수사에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경찰은 새 시스템에서 개인정보 오·남용을 막기 위해 접속자 로그 기록을 주기적으로 관리하도록 했지만 조회 권한을 누구에게, 어떤 범죄 혐의에 한정해, 어디까지 부여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조차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이와 관련해 시스템 구축 주무 부서인 경찰청 정보통신담당관실은 “인권침해 우려가 있어 시험운영을 중단하고 구체적인 운영 방법을 수사 부서와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카카오톡 사찰 논란에서 보듯 ‘투망식’ 사찰이나 수사에 악용될 가능성은 여전하다. 진 의원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경찰은 지난해 말 철도노조 파업 당시 업무방해 혐의로 수배된 노조 간부의 행적을 찾겠다며 기존 수배차량 검색 시스템을 통해 노조 간부 친인척들의 몇 달치 차량 이동 정보까지를 추적했다. 진 의원은 “일반 국민들의 차량운행 정보를 영장도 없이 수집하는 것은 헌법이 정하는 영장주의에 어긋날 뿐 아니라 심각한 사생활 침해다. 경찰은 국민들의 차량을 사찰하는 수배차량 검색체계 도입을 전면 백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다시 분열하는 마창진(마산, 창원, 진해)의 미래는?


한겨레 | 작성자 최상원 기자 게시됨: 2014년 10월 26일 15시 46분 KST 업데이트됨: 2014년 10월 26일 15시 46분 KST DEFAULT default 지난달 16일 경남 창원시 창원시의회 본회의장에서 김성일(왼쪽) 창원시의원이 프로야구 엔씨(NC) 다이노스 구단 전용구장 후보지 이전을 결정한 안상수(오른쪽) 창원시장에게 날달걀을 던지고 있다. 박재현(가운데) 창원시 제1부시장이 팔을 뻗어 막았으나, 안 시장은 2개의 달걀 가운데 첫번째 달걀을 오른팔에 맞았다. 경남신문 제공 지난달 16일 김성일(69·진해 너) 경남 창원시의원은 창원시의회 본회의장에서 안상수(68) 창원시장에게 날달걀 2개를 던졌다. 안 시장은 오른팔에 첫번째 달걀을 맞고 전치 2주 부상을 당했다. 이 장면은 언론 보도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확산되면서 국민들의 눈요깃감이 됐다. 4선 국회의원 출신에 여당(한나라당) 대표까지 지낸 안 시장은 왜 시의회에서 달걀을 맞았을까? 지난달 4일 안 시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프로야구 엔씨(NC) 다이노스 구단 전용구장 후보지를 경남 창원시 진해구 경화동 옛 육군대학 터에서 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동 마산종합운동장으로 옮기겠다고 발표했다. 달걀 투척은 야구장을 다른 지역에 빼앗기게 된 진해 출신 시의원의 ‘응징’이었던 셈이다. 김 의원이 달걀을 던질 당시 창원시의회 앞엔 야구장 후보지 이전에 반대하는 진해지역 주민 수십명이 몰려와 항의하고 있었다. 달걀 투척 다음날인 17일 창원시 간부공무원 27명은 김 의원을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경남지방경찰청에 고발했고, 김 의원은 지난달 30일 구속됐다. default 창원은 야구에 열광하는 도시라서 ‘야도’라고까지 불린다. 그렇다고 과연 창원시민은 프로야구 앞에선 폭력도 서슴지 않을 만큼 비이성적인 사람들일까? 그렇지 않다. 여기에 동의할 창원시민은 아무도 없다. 이번 ‘달걀 투척사건’을 창원시민 대부분은 “의회 내 폭력은 드러난 현상일 뿐, 본질은 통합 창원시 어거지 출범의 후유증”으로 이해한다. 달걀 투척사건 직후 창원시의회가 옛 창원과 진해 분리 건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한 것만 봐도 통합 창원시 출범 그 자체에 문제의 뿌리가 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2009년 정부가 예산 지원 등을 내세워 경남 창원·마산·진해 등 3개 시의 통합을 일방적으로 추진하자, 해당 지역 많은 시민들은 통합에 반대하며 주민투표를 통해 통합 여부를 결정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2010년 7월1일 통합 창원시 출범 때까지 주민투표는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시민들의 요구를 무시했고, 경남도의회와 창원·마산·진해 시의회에선 절대다수인 한나라당 의원들끼리 통합을 밀어붙였다. 한나라당 의원들과 비한나라당 의원들 사이에 몸싸움이 끊이지 않았고, 의회 앞은 성난 군중으로 들끓었다. 당시 정부는 전국 여러 곳에서 행정구역 통합을 추진했으나 유일하게 창원·마산·진해 통합만 성사시켰고, 이를 두고 ‘주민자율형 통합’이라고 홍보했다. 그러나 지난 7월1일 충북 청원군과 청주시가 합친 통합 청주시 출범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은 축사에서 “통합 청주시 출범은 지방자치 역사상 처음으로 지역 주민이 자율적으로 통합을 이룬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통합 창원시는 ‘주민자율적으로’ 탄생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통합 창원시 출범 이후엔 ‘어거지 통합’의 후유증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통합 창원시는 국회의원 선거구에 맞춰 5개 행정구를 설치했다. 구청장은 창원시장이 임명한다. 마산지역의 2개 행정구는 ‘마산’이라는 이름을 잃어버린 옛 마산시민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마산합포구’ ‘마산회원구’라는 어색한 이름을 갖게 됐다. 고속열차가 서는 역은 마산역, 창원역, 창원중앙역 등 세곳이나 된다. 통합 결정 직후인 2010년 2월 ‘창원·마산·진해시 통합준비위원회’는 통합시 이름과 시청 위치, 통합에 따른 정부 지원금 분배 등의 문제를 주민 여론조사를 통해 결정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창원·마산·진해 주민 2000명씩 모두 6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통합시 이름을 ‘창원시’로 결정했다. 시청 위치는 당분간 창원시청을 임시청사로 사용하되, 마산의 마산종합운동장과 진해의 옛 육군대학 터를 공동 1순위, 창원의 육군 39사단 터를 2순위로 정해 통합시 출범 이후 확정하기로 했다. 정부 특별교부세는 마산과 진해가 40%씩, 나머지 20%를 창원이 갖기로 했다. 그러나 통합 창원시 출범 이후, 창원시의원들은 창원·마산·진해 등 소지역주의로 갈려 몸싸움을 벌이는 등 마찰을 빚었고, 시청 위치 관련 약속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결국 지난해 2월 창원시의회는 ‘창원시 청사 문제 해결을 위한 협의회’를 만들어 백지상태에서 이 문제를 재검토했고, 지난해 4월23일 ‘창원시청 소재지에 관한 조례 일부 개정안’을 가결해, 통합 창원시 임시청사로 사용하던 옛 창원시청을 통합 창원시 청사로 계속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애초 약속과는 전혀 다른 결론이었다. 이 과정에 옛 창원과 진해 지역 창원시의원들이 힘을 합쳤고, 그 결과로 엔씨 다이노스 프로야구단의 전용구장 위치가 진해의 옛 육군대학 터로 결정됐다. 야구장 후보지 발표와 동시에 잘못된 결정이라는 비판이 줄을 이었다. 창원시는 3단계 용역조사를 거쳐 야구장 후보지를 결정했는데, 11곳을 추린 1차 후보지에서 옛 육군대학 터는 꼴찌를 기록했다. 접근성과 이동성 등 평가항목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종 평가에선 1차 평가에서 1등과 2등을 차지했던 창원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과 마산종합운동장 옆 공터를 모두 꺾고 최종 후보지로 선정됐다. default 창원시 마산야구장을 찾은 야구팬들 야구장 후보지 결정에 관여한 창원시 한 간부는 “창원시가 프로야구단을 유치한 것은 통합 창원시의 균형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지, 프로야구 발전을 위해 한 것이 아니다. 야구장을 진해에 건설하면서 도로를 신설하거나 확장하면 접근성과 이동성을 개선하는 것은 물론 상대적으로 낙후된 진해지역의 발전도 함께 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옛 마산시민들은 “시청에 이어 야구장까지 빼앗겼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마산지역 창원시의원들은 ‘통합 창원시에서 구 마산시 분리 건의안’을 시의회에 냈다. 한국야구위원회도 “옛 육군대학 터는 새 야구장 입지로 적합하지 않다. 새 야구장은 옛 창원이나 마산에 건립돼야 한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엔씨 다이노스 구단도 “옛 육군대학 터를 최종 후보지로 선정한 과정의 타당성·공정성·신뢰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며 창원시에 새 야구장 입지 변경을 요청했다. 반발은 수그러들지 않았고,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당선돼 7월1일 취임한 안상수 창원시장은 지난달 4일 기자회견을 열어 야구장 후보지를 마산종합운동장으로 옮기겠다고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마산종합운동장은 엔씨 다이노스가 임시구장으로 사용하는 마산야구장에 인접한 시설로, 마산회원구청이 입주해 있다. 이번엔 진해지역 시민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창원시는 지난 8일 옛 육군대학 터 종합발전계획을 발표하며 진해지역 민심 달래기에 나섰으나 역부족이었다. 김성일 창원시의원이 안상수 시장에게 달걀을 던진 것도 진해지역 시민들의 상실감과 분노를 표현한 것이었다. 갈수록 증폭되는 통합 후유증을 해결하기 위해 이제라도 주민투표를 하자는 여론이 최근 강하게 일고 있다. 박춘덕 창원시의원은 다음달 6일 창원시의회 임시회에 ‘통합 창원시 정당성 확보를 위한 지역별 주민투표 실시 건의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건의안 자체가 법적 효력은 없지만, 김성일 의원과 유원석 의장을 제외한 전체 창원시의원 41명 가운데 이미 35명이 서명했다. 창원진보연합 등 창원지역 28개 시민단체도 지난 21일 기자회견을 열어 ‘통합 창원시 찬반 주민투표’를 하자고 제안했다. 차윤재 마산와이엠시에이(YMCA) 사무총장은 “달걀 투척 등 최근 몇 년 동안 창원시의회에서 일어난 모든 의회 폭력은 통합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다. 반강제적으로 통합 창원시를 출범시켰고, 가장 중요한 시청 위치 관련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주민투표를 한다면 다시 분리하자고 결정될 것이 확실하다. 뻔한 결과를 보기 위해 주민투표까지 할 바에는 차라리 창원지역 국회의원 5명이 협의해 통합 특별법을 개정함으로써 국회 차원에서 예전의 3개 시로 되돌리는 것이 옳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유호 창원진보연합 대표도 “야구장 문제는 통합 갈등이 드러난 여러 현상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반강제 통합에 따른 갈등을 끝내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주민투표를 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더 보기:마창진 분열마산 창원 진해창원통합시 분열창원 분열창원 야구장안상수 창원시장달걀 시장지역통합시지역자치지자체정치

"전작권 전환 무기한 연기는 '갑오보호조약'"


정세현 "박정희의 피맺힌 '자주국방', 그 딸이…" [정세현의 정세토크] "전작권 전환 무기한 연기는 '갑오보호조약'" 이재호 기자(정리) 2014.10.26 15:39:06 박근혜 정부가 2015년 12월로 예정됐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무기한 연기했다. 이에 대해 군사주권을 사실상 포기한 행위라는 평가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는 가운데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현 원광대 총장)은 "1894년 갑오년에 민족자주와 경제민주화를 지향하는 '갑오 농민혁명'이 일어났었는데, 그로부터 120년 후 오늘, 2014년 갑오년에는 우리 정부 장관들이 자진해서 미국에 군사주권을 무기한으로 맡기는 일이 일어났다"며 씁쓸해했다. 정 전 장관은 지난 1905년 일본과 맺은 을사늑약을 거론하며 "지난 1905년 일본이 힘으로 외교주권을 빼앗아갔던 경우와 지금은 또 다르기 때문에", 즉 "미국은 전작권 찾아가라고 하는데 우리가 매달려서 맡겼으니까 '늑약'은 아니고. 한국의 강력한 요청으로 미국이 한국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군사주권을 갖고 있기로 했으니 '갑오 보호조약'이라고 불러야 할까"라고 말했다. 이번 결정으로 대중, 대북한 외교에서 한국의 입지는 상당히 좁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한국이 전작권 환수를 연기하면서 본격적으로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에 편입하는 수순을 밟아갈 것으로 보여, 중국의 강력한 반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정 전 장관은 "한국이 안보 분야에서 미국과 함께 대중국 봉쇄에 나서는 것으로 비쳐지면 중국은 경제 분야에서 압박카드를 쓸 것"이라며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가인 데다 무역 흑자의 상당 부분이 대중 교역에서 나온다. 이런 상태에서 중국이 실력 행사를 하면 별다른 도리가 없다"고 진단했다. 북한과 관계에서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도발을 저지른 이후 전작권이 있는 미국에게는 바로 사과했지만 남한에게는 큰 이익이 걸려있지 않은 이상 사과한 적이 없다. 정 전 장관은 "만약 북한이 천안함 사건이나 연평도 포격에 대해 군사문제라는 이유로 미국에게 사과한다면 어떻게 되겠나"라며 "우리는 완전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꼴이 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근혜 정부가 전작권 환수를 무기한 연기한 이유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크다는 이유다. 이에 대해 정 전 장관은 "2010년 기준 북한의 국방비 예산이 8억 1000만 달러, 같은 해 남한의 국방비 예산은 225억 7000만 달러다"라며 "단순히 국방비만 놓고 봐도 우리는 지금 북한이 '위협적'이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말해야 정상이다. 그 많은 국방비는 다 어디에 썼나?"라고 반문했다. 북한 핵과 미사일이 위협이 된다는 것에 대해 정 전 장관은 "북핵과 미사일에 대한 정보 중에는 실체적 진실보다 부풀려지고 왜곡된 것이 적지 않다고 본다"며 2002년 부시 정부가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는 정보를 유통시킨 사례를 들었다. 미국에서 이야기가 돌면 그것이 곧 실체적 진실이 되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북핵과 미사일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 전 장관은 "군사주권 포기는 정권의 도덕성, 정통성과도 관련되는 것"이라며 야당에서 이 사안에 대해 적극적인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지난 25일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박인규 대표와 대담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현 원광대 총장) ⓒ프레시안(최형락)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현 원광대 총장)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지난 23일 워싱턴에서 열린 제46차 한미안보연례협의회의(SCM)에서 한미 양국 정부는 '조건에 기초한 전시작전권 전환'에 합의했는데요. 따로 기한을 정하지 않고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전시작전통제권(이하 전작권)을 환수하겠다는 겁니다. 이로써 당초 2012년으로 예정됐던 전작권 환수는 이명박 정부에서 2015년으로 한 차례 연기됐다가 무기한 연기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우선 이번 결정이 한국의 대외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 같은데요.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정세현 : 이번 결정으로 군사주권 환수를 사실상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게 됐습니다. 국가의 주권은 군사주권, 경제주권, 외교주권이 있는데, 한 나라의 외교는 사실상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군사력은 장비와 병력 외에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말합니다. 군을 통제할 수 없다면 군사력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정부가 바로 이러한 군의 '통제권'을 미국에 무기한 맡겨버린 겁니다. 조선 조 말 이완용 등 조정 대신들이 1905년 을사늑약을 통해 외교주권을 일본에 넘겼습니다. '늑약'은 일본이 우리에게서 강제로 빼앗아갔다는 뜻인데, 일본은 '보호조약'이라고 말해왔지요. 1894년 갑오년에 민족자주와 경제민주화를 지향하는 '갑오 농민혁명'이 일어났었는데, 그로부터 120년 후 오늘, 2014년 갑오년에는 우리 정부 장관들이 자진해서 미국에 군사주권을 무기한으로 맡기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지난 1905년 일본이 힘으로 외교주권을 빼앗아갔던 경우와는 또 다른 것이죠. 미국은 전작권 찾아가라고 하는데 우리가 매달려서 맡겼으니까 '늑약'은 아니고, 한국의 강력한 요청으로 미국이 한국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군사주권을 갖고 있기로 했으니 '갑오 보호조약'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1905년 일본에 외교주권을 뺏기기 전 우리는 이미 경제주권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군사훈련을 일본 교관들한테 받다 보니 군사주권도 일본에 뺏긴 것이나 다름없었죠. 이렇게 군사주권이 넘어가면 국가 운영이 상당히 힘들어집니다. 외교적으로도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결국 군사주권을 미국에게 무기한으로 맡긴 이번 결정으로 우리 외교의 운신 폭이 대단히 줄어들 것으로 전망됩니다. 특히 중국과의 관계에서 외교적 입지가 좁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번에 정부는 전작권을 환수하지 않은 이유로 북핵 위협을 꼽았습니다. 그리고 이 위협이 없어지거나, 위협에 대비하는 군사적 예방책이 완비되면 전작권을 환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 위협에 대비하는 군사적 예방책은 킬체인과 KAMD(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구축, 그리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도 포함되는데 이들은 사실상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MD)에 들어가는 도입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국이 반발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추궈훙(邱國洪) 주한 중국대사가 사드 배치에 대해 명확하게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추 대사는 사드를 두고 "북핵 대응이 아니라 한반도를 훨씬 넘는 범위를 커버한다"면서 우려를 표명했죠. 즉 사드가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는 겁니다. 전작권 전환 연기와 KAMD, 킬체인, 사드 배치가 모두 하나의 연결고리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전작권을 찾아오지 않는 것은 단순히 우리의 대북억지력을 강화하는 시간을 버는 것이 아니라, 중국을 견제하는 움직임으로 비쳐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한중 간 외교문제가 상당히 복잡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게다가 중국은 전작권 전환 연기를 계기로 한미일 정보공유가 강화되는 것에 대해 매우 심각한 우려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마치 중국은 아직 미국을 대적할 수 없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미국은 전 세계를 무대로 국제정치를 하고 있지만, 중국은 일단 동아시아만 자신의 세력권 아래로 만들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만일 우리나라가 지리적으로 태평양 가운데나 유럽 어딘가에 있다면 중국이 그러든 말든 상관없지만, 우리와 중국은 같은 동아시아에 포함돼 있는 국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이번 결정은 중국 입장에서 보면 "이웃나라 한국이 중국의 인중(人中: 코와 입 사이의 급소)에 비수를 들이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때 중국이 우리를 압박할 수 있는 카드는 경제입니다. 중국이 한중경제관계에서 실력 행사로 나오면 우리는 별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즉 대중 경제외교가 굉장히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겁니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가인 데다 무역 흑자의 상당 부분이 대중 교역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한국이 안보 분야에서 미국과 함께 대중국 봉쇄에 나서는 것으로 비쳐지면 중국은 경제 분야에서 압박카드를 쓸 겁니다. 그럴 때 우리가 과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이런 부분을 고민해야 합니다. 전작권을 환수하기 위한 '조건'이 결국 미국의 대중국 압박 및 포위 전략의 일환이 된다는 생각은 못하고, 북핵 위협 핑계를 대면서 아직 전작권을 찾아올 때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는 건, 바둑 용어로, 패착(敗着)입니다. 프레시안 : 북한과 관계에서도 남한의 입지가 좁아지지 않을까요? 정세현 :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앞으로 남북 간 군사문제가 터지면 북한은 전작권도 없는 남한정부를 상대로 웬만해서는 사과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경우에는 좀 다르겠지요. 즉 사과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챙겨야 할 큰 이익이 없어지는 상황이 된다면 몰라도. 예를 들어 2002년 6월 29일 서해교전이 터졌을 때, 당시 북한은 쌀과 비료를 챙겨가야 했기 때문에 장관급 회담 수석대표가 통일부장관 앞으로 사과편지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1968년 1월 21일 김신조 사건이나 1975년 8월 15일 문세광 사건, 1983년 10월 9일 아웅산 사건 같은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도 북한은 사과는커녕 잡아떼기로 일관했습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현 원광대 총장) ⓒ프레시안(최형락)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현 원광대 총장) ⓒ프레시안(최형락) 북한은 대신 전작권이 있는 미국과는 사건 발생 즉시 협상을 하거나 사과도 했습니다. 김신조 사건 이틀 후 발생한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 때 북한은 바로 미국과 협상했습니다. 물론 그건 미국이 잘못했기 때문에 그랬던 거고 미국이 먼저 제안은 했지만, 아무튼 미국과는 그런 식으로 합니다.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때도 김일성 주석이 미국에 직접 사과했었죠. 북한은 미국을 '화가 나면 바로 군사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국가'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남한은 화나게 만들어도 미국의 허락이 없으면 북한에게 결정적인 군사적 대응조치를 할 수 없다고 간주하고 있습니다. 실제 1996년 9월 18일, 강릉 잠수함 침투 사건 당시 북한은 사건 이후 100일 만에 남한이 아닌 미국에 사과했습니다. 그때 제가 청와대 통일비서관으로 근무했었는데 우리 대통령과 나라가 참 처량하게 보이더군요. 북한이 우리 바다에 침투해서 우리 땅에 올라와 총격전을 벌였고, 우리 군에서 조사하고 결과 발표했는데 정작 사과는 미국에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정부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던 것은, 평시작전통제권은 1994년에 환수 받았지만 사실상 진짜 지휘권이라고 할 수 있는 전작권이 미국에 있었기 때문이죠. 북한은 자신들의 도발에 대해 사과할 때 주어를 명시하지 않고 얼버무립니다. "OO사건이 일어난데 대해 유감으로 생각한다,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서로 노력하자"는 식으로 넘어가는 겁니다. 필요에 따라 북한이 천안함 사건이나 연평도 포격에 대해 이같은 방식으로 얼버무리고 넘어갈 수 있는데, 만약 이런 식의 사과마저 군사문제라는 이유로 미국에게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지만, 만약 그리된다면 우리는 완전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는 겁니다. 대통령은 이론적으로 '군 통수권자'입니다. 군통수권은 인사·재정 등 군정권과 작전지휘 등 군령권으로 구성되는데, 이번 일로 앞으로 우리나라 대통령에게는 인사권만 있고 군 지휘권은 없는 거나 다름없이 됐습니다.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군정권은 국방부 장관이, 군령권은 합참의장이 집행하는데, 대통령이 합참의장에게 지시를 해도 합참의장은 ‘협의’라는 미명하에 사실상 주한미군사령관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구조가 되어 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6.25동란이 터진 지 40일 만인 7월 14일 이승만 대통령이 작전지휘권을 유엔군사령관 모자를 쓴 주한 미군사령관에게 넘긴 이후 그래 왔습니다. 그걸 노무현 정부가 2012년 4월 17일에 찾아오게 만들었는데 이명박 정부가 2015년 말로 연기시켜서 안타까웠는데 박근혜 정부는 한 수 더 두었습니다. 아예 무기 연기시켜 버렸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노린 1.21사건이나 아내의 목숨까지 앗아간 '문세광 사건'에 대해서는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은 북한이 미군 장교가 죽게 된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때는 미국에 즉각 사과하는 북한의 모습을 보면서 박정희 대통령은 엄청난 굴욕감과 비애를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시절에 '자주국방'이라는 구호가 나온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에게 '자주국방'은 멋진 수사(修辭)가 아니라 피맺힌 절규였다고 봅니다. 이게 40년이 넘었고 자주국방의 기치를 내걸고 그동안 엄청난 국가예산을 국방비에 투자했는데도 아직도 군사력으로 북한을 감당할 수 없어서 전작권을 무기한 미국에 맡길 수밖에 없이 됐다니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자주국방을 피맺히게 외쳤던 아버지의 딸이 40여 년 후 나라의 대통령이 되어서 '의존국방'의 시대를 열어 놓은 셈입니다. '북한 곧 붕괴' 예상하면서 북한 핵미사일은 위협적이다? 프레시안 : 올해 초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 대박론’을 내세우고 후속 조치로 통일준비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지난해 말에는 군 출신인 남재준 당시 국정원장이 ‘2015년 자유민주주의 체제 통일’을 외쳤다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북한의 붕괴를 가정한 흡수통일론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습니다. 북한의 체제가 그만큼 불안정하다는 것인데 불과 9개월 만에 북한이 위협적이라면서 전작권 환수를 무기한 연기했습니다.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은데요. 정세현 : 통일대박론과 전작권 환수 무기한 연기는 상충되는 이야기입니다. 말씀하신 통일대박론, 2015년 자유민주주의 체제 통일론, 통일준비위원회 등은 모두 사실상 북한 붕괴나 흡수통일을 전제로 하고 이야기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곧 붕괴할 북한, 흡수할 북한을 상대로 해서 군사력을 강화한다? 이게 말이 됩니까? 자가당착도 이런 자가당착이 없습니다. 통일대박론이 세상에 나온 지 이제 겨우 9개월 남짓입니다. 이 짧은 시간에 ‘곧 붕괴할 북한’, ‘흡수통일 대상인 북한’이 ‘무시무시한 핵·미사일 강국’으로 변했습니다. 청와대나 군부는 이걸 국민들이 그대로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이번에 이런 큰일을 벌인 거겠지요? 청와대 대변인의 해명도 한심한 수준입니다. 불과 2년 전, 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 당초 계획대로 전작권을 2015년 12월에 찾아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청와대 대변인은 “공약보다는 국가 안보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대변인은 대통령을 2년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당장 2년 전에 했던 말을 뒤집어야 할 정도로 사안을 보는 통찰력이 없다면 안보 책임을 맡을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민경욱 대변인은 대통령을 무능력자로 만들어 버린 것이죠. 대선 끝난 지 2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그 사이에 국가 안보 상황이 어려워져서 전작권을 찾아오지 못하게 됐다는 말을 어느 국민이 믿겠습니까. 한쪽에선 북한 붕괴를 전제로 통일 대박론을 얘기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북한의 군사력이 커지고 강해질 것이기 때문에 2020년대 중반까지 우리 군사력을 키워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럼 북한은 언제 붕괴하는 건가요? 대박은 언제 터집니까? 킬체인, KAMD 개발· 배치하면서 드레스덴 선언에서 제시한 대북지원 프로그램을 쓸 수 있을까요? 통일준비위원회에서 만들겠다는 각종 정책과 프로그램은 언제 쓰려는 거죠? 요컨대, 통일이 임박했고 그래서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고 해놓고는 전작권은 2020년 이후까지 연기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붕괴 직전에 있는 집단의 군사력이 무서워서 국가주권의 핵심인 군사주권, 그것의 핵심인 전작권을 미국에게 무기한 맡긴다? 국방비 차이 30배, 그런데도 북한이 위협적이다? 프레시안 : 정부는 전작권 환수 무기한 연기의 이유로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꼽았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부터 40년 동안 자주국방을 외쳐왔고 경제 규모로는 북한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경제강국인 한국이 아직도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두려워한다는 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정세현 : 북한의 군사력은 재래식 전력과 비대칭 전력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현재 재래식 군사력 면에서는 우리가 북한을 겁낼 것이 없습니다. 하기야 한때 무인기 가지고도 법석을 떨었으니까 재래식 무기나 원시적 무기에도 대비는 해야겠지만, 문제는 핵과 미사일 같은 비대칭 전력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자금이 없으면 만들 수가 없습니다. 결국 군사력은 경제력과 직결되는 겁니다. 부국강병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 23일(현지시각) 미 국방부 청사(펜타곤)에 도착해 사전 의전행사를 지켜보고 있는 한민구(왼쪽)국방부 장관과 척 헤이글 미 국방부 장관 ⓒAP=연합뉴스 ▲ 23일(현지시각) 미 국방부 청사(펜타곤)에 도착해 사전 의전행사를 지켜보고 있는 한민구(왼쪽)국방부 장관과 척 헤이글 미 국방부 장관 ⓒAP=연합뉴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0년 기준 북한의 국방비 예산은 8억 1000만 달러입니다. 같은 해 남한의 국방비 예산은 225억 7000만 달러였습니다. 국방비만 따지면 28배가 넘는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전체 예산 규모로 따져 봐도 북한은 남한에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2010년 남한 국가 총예산이 1740억 달러인데, 북한은 52억 달러입니다. 만약 북한이 이 국가 예산 전부를 국방비에 쓴다고 가정해도 남한 군사비 225억 7000만 달러의 4분의 1도 되지 않습니다. 단순히 국방비만 놓고 봐도 우리는 지금 북한이 “위협적”이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말해야 정상입니다. 대체 그 동안 그 많은 우리 국방비는 어디에 사용한 겁니까? 북한보다 30배나 많은 투자를 했으면 이제는 북한의 군사능력이 위협적이라는 말은 그만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또 북한의 핵미사일이 그렇게 문제가 될 것 같으면 미국에 떼를 쓰던지 애원을 해서라도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문제, 미사일 사거리 연장 문제 등을 해결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건 정권의 성격과 철학의 문제가 아니라 군부의 사고방식과 의식구조의 문제입니다. 우리 힘만으로는 북한을 상대할 수도 이길 수도 없으니까 모든 걸 힘이 센 미국에 맡겨야 한다는 의식구조를 가지고 있으니까 애당초 이런 요구도 할 수가 없었을 겁니다. 프레시안 : 결국 자주국방이란 고가의 첨단무기를 갖춘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 속에서 어떻게 평화를 확보할 것인가에 대한 주체적 고민, 즉 의지의 문제라는 말씀이군요. 제가 최근 한 공직자로부터 들은 얘긴데 우리 군에 별을 단 장성이 400명, 대령은 3000명이라고 하더군요. 이 수많은 별들이 북한보다 30배나 많은 국방비를 쓰면서, 자주국방을 외친 지 40년이 지나서도 북한 군사력이 무서워 전작권 전환 무기 연기를 선택하는 것을 보면 참 뻔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세현 : 그렇습니다. 여담이지만 북한은 장성이 1000명이 넘기는 하지요. 그래서 무섭다고 할 수도 있지요(웃음). 아무튼 우리는 그 많은 국방비로 북한에 대응할 무기를 샀지만 그냥 무기만 사다 놓은 겁니다. 고가의 미국 무기를 열심히 구매해준 셈입니다. 북한 무기에 대응해야 하니까 우리도 고성능 무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판단 아래 전략적 판단 없이 미국이 사라고 하는 것을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는 식으로 구입해준 겁니다. 한국 무기의 80%가 미국산 무기라는 것 아닙니까. 게다가 최근 언론 보도를 보니 전작권 전환 연기를 위한 미 의회의 동의를 얻어내기 위해 미제 무기 구매를 대폭 늘였다고 하더군요. 우리 군은 기본적으로 전략 판단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골치 아플 일이 없죠. 그러니까 군의 기강이 안 잡히고 일어나서는 안될 사고들이 생기는 겁니다. 전략적인 고민을 하는 장군이 지휘하는 부대에 간부가 부하를 성추행하는 사고를 일으키겠습니까? 국가를 지킬 전략 짜느라 밤을 새는 상관 모시려면 술 진탕 마시고 딴 짓 할 시간이 없습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미국은 북한 핵과 미사일 전력이 위협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특히 전작권 전환 협상이 타결된 이후 주한미군사령관은 “북한이 핵탄두 소형화 기술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정세현 : 저는 북핵과 미사일에 대한 정보 중에는 실체적 진실보다 부풀려지고 왜곡된 것이 적지 않다고 봅니다. 정보라는 것이 원래 객관적 사실이기보다 가공된 해석 아닙니까? 그 가공되고 해석된 정보가 유통되는 과정에서 몇 번 구르고 나면 별것 아닌 위협이 엄청난 괴물로 과장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강원도의 고랭지 채소가 밭떼기 상인한테 싼값에 팔렸으나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 올 때까지 여러 유통단계에서 엄청난 마진이 붙음으로써 생산가의 몇 배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비싸게 팔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북핵과 미사일 관련 정보도 많은 전문가와 씽크탱크 등의 발언과 해석을 거치는 동안 가공되고 과장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2002년 10월, 미국 부시 정무는 북한이 연료봉을 재처리 하지 않고도 막 바로 핵무기를 만들기 위해서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고 자백했다”고 발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발표가 제네바 합의 파기의 직접적 원인이 됐죠.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 과정은 사실 당시 부시 정부의 정책적 의도가 개입돼서 나온 과장·왜곡된 정보였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부시 정부가 그걸로 북한을 압박해도 문제가 해결 안 되니까 나중에는 북한과 협상을 시작하면서 슬그머니 말을 바꾸더군요.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고농축 우라늄, 즉 HEU(Highly Enriched Uranium)이 아니라 그보다 급이 낮은 ‘농축 우라늄’으로 슬그머니 용어도 바꿨습니다. 그냥 ‘우라늄 농축’은 북한이 원자로 연료봉을 만들기 위해 일상적으로 해오던 일입니다. 이처럼 미국이 내놓은 북한 관련 정보라는 것은 정치적 목적에 의해 얼마든지 가공·왜곡·가미될 수 있습니다. 특히 미국은 과학·기술 면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나라이다 보니까 그들이 과학·기술력을 바탕으로 초기 정보를 가공하고 왜곡해도 그것이 불변의 진실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공개된 진실’ 이면에는 사실은 별것 아니라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전작권 전환을 연기하는 명분이자 근거로 내놓는 북한 핵능력에 대한 판단도 실체적 진실보다는 가공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기에 미국이 무기 시장을 유지해야 한다는 시장 관리 차원에서 정보를 가공하기도 합니다. 수익을 내야 하기 때문이죠. 군산복합체에 유리한 쪽으로 정보를 가공하고, 이런 정보들을 우리처럼 대미 의존성이 강하고 친미를 넘어 숭미, 종미 하는 사람들이 지도층을 형성하고 있는 국가에 흘립니다. 그럼 여지없이 이것이 진실이 되는 겁니다. 미국에서 진행되는 북한에 대한 평가는 일단 싱크탱크에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이곳이 대부분 군산복합체와 연결돼 있습니다. 제대로 된 객관적인 사실보다는 군산복합체에 이익이 되는 정보들로 가공되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우리 보수성향의 지도층과 군은 북한의 군사력과 병력에 대해 트라우마, 즉 근원적 공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국 싱크탱크와 의견을 주고받다 보면 실체적 진실과 다른 이른바 ‘괴물’ 북한이 만들어 집니다. 그런데 미국은 사실 우리와 정보를 100% 공유하지 않습니다. 1995년엔가 오산 공군작전사령부를 방문했을 때 일입니다. 북한 전역을 인공위성이나 U-2기로 볼 수 있는 방이 있는데 한국 장교도 거기까지는 들어갈 수 있더군요. 그런데 소리를 듣는 방에는 한국 장교건 사병이건 들어가지 못하더란 말입니다. 군사정보가 됐건 정치정보가 됐건 영상정보보다 음성정보가 핵심인데, 미군사병도 들어가는 방에 한국 장교도 못 들어간다는 겁니다. 한국은 핵심 정보에 접근을 못하는 겁니다. 아니 미국이 핵심 정보는 안 주는 거지요. 프레시안 : 북한 핵 및 미사일 위협에 대응할 KAMD와 킬체인 등이 마련돼야 전작권을 환수할 수 있다는 것 역시 유치한 발상 아닌가요?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너무 1차원적으로 대응한다는 느낌입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현 원광대 총장) ⓒ프레시안(최형락)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현 원광대 총장) ⓒ프레시안(최형락) 정세현 : 과거 정부는 다른 방법을 썼습니다. 보수 정치인인 김영삼 대통령도 미국에 의존해 북한의 대남 군사적 위협을 군사력으로 상쇄하거나 억지시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남한의 우월한 경제력을 앞세워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해소하려 했습니다. 1994년 7월 25일부터 27일까지 예정되어 있던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던 김영삼 대통령의 기본 구상은 “북한의 대남 위협을 줄이기 위해 우리가 쓸 수 있는 카드는 경제협력”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경협이 심화돼 남북간 상호 의존성이 커지고, 이를 통해 북한이 지속적으로 혜택을 본다면 북한이 쉽게 군사적인 도발에 나서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으로 북한의 위협을 줄이려고 했습니다. 이후 김대중 정부 때 2000년 6월 6.15 공동선언이 나왔는데, 당시 정부는 이 정상회담과 그 이후 장차관급 남북회담들에서 경협을 레버리지로 삼아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줄이고 완화시키려는 전략을 썼습니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 때 북한의 대남 군사적 위협이 현저하게 줄어든 측면도 있습니다. 또한 미국이 우리에게 MD를 팔려고 혈안이 돼 있던 때, 당시 김대중 정부는 무기를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우리에게 미사일을 쏘지 않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밝힌 적도 있습니다.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북한의 안보 위협을 해소한다는 발상이죠. 프레시안 : 박근혜 정부의 이번 결정은 사실상 군사주권의 포기입니다. 어쩌면 훗날 박근혜 정부가 남긴 가장 부정적 유산으로 기록될지 모릅니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공사보다도 치명적 피해를 낳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중대한 결정이 아무런 사회적 토론 없이 밀실에서 은밀하게 결정됐습니다. 게다가 여당은 물론이고 야당도 이번 결정의 중대함에 대해 깊이 인식하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정세현 : 전작권 전환의 무기한 연기는 야당 전체가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도 모자랄 일입니다. 군사주권 포기는 정권의 도덕성, 정통성과도 관련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야당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국회의원들이 바쁘고 전문성이 없으면 연구소라도 잘 만들어서 제대로 된 정책 조언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새누리당의 여의도연구소는 그런대로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연구소는 해당 전공도 아닌 사람들이 연줄을 타고 내려온다고 하더군요. 다 자신을 밀어준 이른바 ‘보스’가 있구요. 제대로 된 정책 조언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민주국가에서 야당은 여당을 비판하고 견제함으로써 국가가 제대로 운영되도록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인데, 우리 야당은 그런 개념이 없지 않나 싶습니다. 전작권 전환 연기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조항과 정신에도 어긋나는 일입니다. 주권의 핵심인 군사주권을 국민과는 일언반구의 논의도 없이 미국에 갖다 바쳤기 때문입니다.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이 군사주권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엉뚱한 곳에 가 있습니다. 지금 대통령이 가진 것은 군 인사권뿐입니다. 인사권만 가진 지휘권은 반쪽에 불과합니다. 야당은 이런 점을 잘 파고들어서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데 지금 하는 걸로 봐서는 별로 가능성이 없어 보입니다. 야당, 참 한심합니다. * 지난 연재 모아 보기 이재호 기자(정리) 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