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된 문제 제기에 공익제보 ‘결정타’… 청소년 보호 의제 설정·인공지능 ‘위험 기반’ 제도화 논의 등 화두
- 금준경 기자 teenkjk@mediatoday.co.kr
- 승인 2021.10.13 07:00
페이스북 공익제보자 폭로 ‘반향’
지난 5일(현지시간) 미 연방의회 상원 상무위원회 소비자보호소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프랜시스 하우건의 폭로는 전세계가 주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페이스북 수석 프로덕트 매니저 출신인 하우건은 ‘내부자’로서 알고리즘 설계의 치부를 폭로했다. 그는 페이스북이 혐오발언, 허위정보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고 인스타그램의 특정 게시물이 청소년의 자살률을 높이는 등 유해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이 자리에 나오게 된 이유는 페이스북이 아이들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치고, 사회의 분열을 조장하며,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플랫폼이라는 걸 말씀드리기 위해서”라며 “페이스북은 이용자의 안전보다 자사 이익만을 우선시해왔다”고 밝혔다.
앞서 월스트리트저널은 하우건이 제공한 자료를 통해 인스타그램이 청소년에게 자살 충동을 일으키는 등 정신 건강에 유해하다는 사실을 연구를 통해 확인하고서도 방치한 사실을 보도한 바 있다.
폭로가 나오자 미 의회는 한 목소리로 페이스북 규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자율규제 방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대한 폭로”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논란이 일자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연구 결과를 무시했다면 왜 우리가 업계 최고의 연구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유해 콘텐츠와 싸우는 데 관심이 없었다면 왜 가장 열정적인 전문가를 고용했겠는가”라며 폭로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누적된 문제 제기, 성토 쏟아져
페이스북을 향한 성토가 이어지는 까닭은 하우건의 폭로에 앞서 페이스북에 대한 문제 제기가 누적됐기 때문이다.
페이스북 알고리즘이 민주주의에 해가 된다는 비판은 여러번 제기됐다. 지난 미국 대선 당시 부정선거 주장이 퍼지고 초유의 미 의회 의사당 점거 사태까지 이어지면서 ‘페이스북 책임론’이 대두된 바 있다. 미얀마, 필리핀에선 권위주의 권력자들이 페이스북을 통해 우호적 여론을 만들고 허위정보를 유포해 민주화를 저해했다는 평가도 있다. 미얀마 로힝야족 학살에도 친 미얀마 정부 계정들의 갈등 조장과 허위사실 유포가 영향을 미쳤다.
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정권에 대한 비판 보도로 2021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언론인 마리아 레사는 두테르테 정권 못지 않게 페이스북을 비판해왔다. 2016년 그는 두테르테 대통령 취임 후 가짜 페이스북 계정 등이 ‘친 두테르테’ 뉴스를 퍼뜨렸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페이스북의 책임을 촉구한 바 있다. 그는 노벨상 수상 후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페이스북이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고 비판했다.
페이스북은 ‘추천 알고리즘의 재료’인 개인정보 문제도 끊이지 않았다. 2018년 뉴욕타임스는 페이스북에서 개인정보 대량유출사태가 일어났음에도 은폐한 사실을 보도했다. 페이스북은 2014년 케임브리지 대학 알렉산더 코건 심리학 교수에게 ‘성격분석 퀴즈’ 앱을 통한 개인정보 수집을 허용했다. 문제는 코건 교수가 개인정보를 캐임브리지 애널리티카라는 데이터 회사에 넘겼으며 이 회사의 데이터가 트럼프 후보 캠프에 넘어갔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이어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몇차례 이어지기도 했다.
‘추천 알고리즘’ 제도화 논의 어떻게?
페이스북 문제는 ‘추천 알고리즘의 폐단’과 ‘개인정보 문제’로 나눌 수 있는데, 국내 규제는 ‘개인정보 문제’ 대응에 집중돼 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지난 8월 페이스북이 이용자의 동의 없이 ‘얼굴인식 서식’을 생성하고 수집한 사실을 확인해 64억 40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지난해엔 페이스북이 연동된 제휴 서비스를 이용할 경우 이용자와 페이스북 친구의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제공해온 사실이 드러나 67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수사기관에 고발했다.
2018년 국회에서는 박대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의원과 정부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절충해 일정 규모 이상의 해외 사업자가 개인정보 감독 등 국내대리인을 지정하도록 의무를 부여하는 ‘대리인제’ 법안을 마련했다.
반면 이번 논란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추천 알고리즘’ 영역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논의가 부족한 상황이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에 발의된 법안 가운데 ‘알고리즘’ 키워드가 포함된 법안은 8건에 그쳤다.
이들 법안 다수는 포털 등 ‘국내 사업자’ 규제 성격이 강하지만 일부 규정은 플랫폼 전반에 대한 내용으로 페이스북이 포함될 수 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알고리즘 서비스’ 등을 정의하고, 설명 책무를 부과하고, 방통위 산하에 알고리즘분쟁조정위원회를 두는 내용이다. 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온라인 플랫폼 이용자 보호법안’은 ‘노출 기준’ 조항을 통해 대규모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가 검색결과, 추천 등을 결정하는 요소 등 콘텐츠 등의 노출 방식 및 노출 순서를 결정하는 기준을 공개하도록 했다. 이원욱 민주당 의원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로부터 알고리즘 관련 내용을 제출받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송경재 상지대 교양학부 교수는 “한국에서도 페이스북 알고리즘에 대한 검증 기회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국회 뿐 아니라 언론도 요구를 해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선 청소년보호위원회 같은 기구가 게임규제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알고리즘 문제에는 대응이 부족한 상황이다. 관련 문제에 전담 부처들의 의제화가 중요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인공지능 규제를 적극적으로 논의해온 EU의 규제 체계를 참고할 필요도 있다.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국내에선 생소한 방식이지만 유럽의 인공지능 규제 흐름은 위험의 영향성의 정도를 파악해 수준을 나누는 ‘위험 기반적 접근’(Risk-Based Regulation)을 하고 있다”며 “이를 위해서는 실질적인 해악성에 대한 판단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심층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U의 AI규제안은 유형에 따라 ‘고위험’, ‘제한된 위험’, ‘최소한의 위험’ 등으로 나누고 ‘고위험 AI’를 중심으로 공급자 의무 부과, 적합성 평가·인증 등의 규제 내용을 담았다. 고위험 AI의 경우 전세계 매출의 4% 내에서 벌금을 부과하는 기존의 기준과 달리 6%까지 부과할 수 있게 했다.
방통위가 올해 발표한 ‘‘인공지능(AI) 기반 미디어 추천서비스 이용자 보호 기본원칙’ 이 ‘위험기반적 접근’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기본원칙은 Δ투명성 Δ공정성 Δ책무성을 명시했으며 실천적 방안으로 ‘자율검증’을 통해 사업자가 이용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고 조정함으로써 위험성을 상시 관리할 수 있도록 체계를 마련하는 내용이다. 자율검증은 위험 수준에 따라 차등적인 체계를 구성하게 된다. ‘기본원칙’은 법적 강제성은 없지만, 방통위는 이를 바탕으로 관련 논의를 확대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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