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단군천부경 100주년 전시회’ 기획한 이찬구
- 김치관 기자
- 입력 2021.10.03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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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경, 100년 전 전병훈의 『정신철학통편』에 첫 수록
“전병훈의 『정신철학통편』이 북경에서 1920년에 발간됐고, 그 책에 천부경이 들어 있다. 그 책을 기준으로 작년이 천부경이 세상에 공개된 지 100주년인데, 코로나로 인해 올해 전시회를 하게 됐다.”
제4353주년 개천절을 맞아 10월 1일부터 25일까지 특별한 전시가 서울 천도교 수운회관 4층 대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단군천부경 공개 100주년 기념전시회’가 그 것.
(사)한국민족종교협의회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는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단군천부경학술대회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찬구(66) 박사의 안내로 2일 오후 전시장을 둘러보고 인터뷰를 가졌다.
“천부경이 대중들한테 최근에 많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다만, 문헌상으로 봤을 때 천부경이 언제 어떻게 전수됐는지에 대해서는 불명확해서 사람들마다 견해가 각양각색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이번에 택한 것은 가능하면 확실한 문헌에 기초하려는 것이고, 그래서 택한 것이 전병훈 선생의 천부경이다.”
‘천부경 天符經’은 한자 81자로 적힌 우리 고유 경전으로 알려져 있지만 전승이나 판본이 불명확하고, 심지어 81자 글자까지 다른 경우도 있을 정도인데다 해석도 난해해 주류 강단학계 등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제에 항거해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민족종교 대종교는 천부경과 삼일신고, 참전계경을 우리 민족 고유의 3대 경전으로 삼고 있지만 대종교가 정식으로 천부경을 3대 경전에 포함시킨 것은 1975년이다.
이찬구 위원장은 “전병훈 선생은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중국으로 망명해서, 지식인으로 어떻게 나라를 지킬 것인가를 고민했던 분으로, 특히 그분은 우리 역사에 대한 애정이 투철했던 분”이라며 “구한말 애국지사 윤효정이라는 분이 북경에 가서 전병훈 선생을 만나 천부경을 전해주는데, 1919년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윤효정의 북경행 여부는 확인된 바 없다.
서우 전병훈(曙宇 全秉薰, 1857-1927)은 평안남도 삼등현에서 태어나, 고종 29년(1892)에 의금부 도사, 대한제국 광무 3년(1899)에 중추원 의관을 지냈으며, 순종이 즉위하던 해(1907)에 관직을 버리고 중국 광동으로 건너가 정신연구에 몰두했다.(위키백과) 중국에서 도교 수련을 통해 도를 통했고, 중국 북경에 ‘정신철학사’를 건립, 기라성 같은 중국인 제자들을 이끌던 중국 지성계의 정신적 지도자였다.(소나무통신)
전병훈은 『정신철학통편』에서 “동방의 현인 선진 최치원(857∼?)이 말하였다. “단군의 《천부경》 팔십일자는 신지의 전문(篆文)인데 옛 비석에서 발견되었다. 그 글자를 해석해 보고 삼가 백산(白山)에 각을 해 두었다... 이 경문이 작년 정사년에야 비로소 한국의 서쪽 영변 백산에서 나왔는데 도인 계연수(?∼1920)가 산에서 약초를 캐다가 깊은 산골짜기로 들어갔는데 한 석벽에서 이 81자를 발견하고 조사(照寫)했다고 한다. 나는 이미 정신철학을 편성하고 바야흐로 인쇄에 맡길 것을 계획하였을 때 홀연 유학자 윤효정으로부터 천부경을 얻었는데 참으로 하늘이 주신 기이한 일이었다”고 적었다.(윤창대 역)
전병훈은 『정신철학통편』 출간을 앞둔 시점에 1917년 계연수가 묘향산 석벽에서 발견했다는 천부경을 윤효정으로부터 얻어서 이 책 맨 앞에 싣고 스스로 해석을 달아 1920년 출간했고, 이것이 문헌상으로 확인된 최초의 천부경이다.
전병훈의 이 책에는 캉유웨이(康有爲), 옌푸(嚴復), 왕슈난(王樹枏) 등 당대 중국 최고 지식인과 명사들의 찬사가 실려 있고, 구미 29개 나라의 150개 대학과 미국, 프랑스, 스위스 세 총통에게 배포되었다고 한다.(소나무통신)
이찬구 위원장은 “이 책이 북경대학 도서관에 있다는 것을 군산대 김성환 교수가 확인했다고 책에 썼고, 나도 컬럼비아대학 도서관에서 발견해 사진까지 찍어뒀다”고 말했다. 『정신철학통편』 원문은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www.nl.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위원장은 “전병훈 선생은 천부경을 보자마자 전통 내단학(內丹學) 관점에서 인격 완성의 경이라고 본 것 같다”며 “예를 들어 ‘운삼사 성환오칠(運三四 成環五七)’을 자오묘유(子午卯酉) 즉 수승화강(水昇火降)으로 풀이하고 있다”고 특징을 짚었다.
천부경 해석은 우주론, 심성론, 수리학 등 다양한 관점으로 풀이되고 있지만 전병훈의 천부경 해석은 인체구조와 운행을 다룬 내단학의 견지에서 풀이하고 있다는 것.
또한 “‘만왕만래(万万來)’에 쓰인 한자는 전병훈 판본이 유일하고 이후 이시영 선생 등 만주지역 독립운동가들에게 전해졌고, 대종교 주해집에도 인용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국내 최초 수록은 1921년 단군교 기관지 『단탁』창간호에
이찬구 위원장은 “『환단고기 桓檀古記』에 실린 천부경은 계연수 선생이 묘향산 단군굴 석벽에 최고운 선생이 새긴 것을 단군교에 공개했고, 1921년에 『단탁 檀鐸』이라는 잡지에 실음으로써 세상에 공개됐다”고 전했다.
1920년 전병훈의 『정신철학통편』에 천부경이 수록된 직후인 1921년 단군교 기관지 『단탁』 창간호에 “단군께서 태백산 단목 아래 강림하실 시 지래(持來)하신 천부경은 좌와 여(如)하니라”라는 설명을 덧붙여 천부경 전문을 실은 것.
『환단고기』는 계연수가 「삼성기 상」,「삼성기 하」,「단군세기」,「북부여기」,「태백일사」 5권의 책을 한데 묶어 해제한 책으로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에 천부경 전문이 실려있다. 그러나 1911년 발간됐다는 『환단고기』는 현존하지 않고, 계연수의 실존여부도 확인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환단고기』는 계연수의 제자 이유립이 1979년 편집 발간했지만 위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만약 1911년 발간된 『환단고기』 초판본이 발견될 결우 천부경 수록의 역사는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1917년 계연수의 묘향산 석벽 발견설보다 앞서고, 이맥(1455-1528)이 지은 「태백일사」가 위서가 아니라면 16세기까지 소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찬구 위원장은 “우리 학계가 환단고기를 우선 위서로 치부해놓고 연구하려고 하니까 학문적인 진지한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계연수 생애도 오리무중에 빠져 있다”며 “일반인에게 ‘찾아서 가져와라. 그러면 입증해 줄께’는 학자의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학자라면 북경을 가든 러시아를 가든 관련 자료를 찾아야 한다”고 서운한 감정을 토로했다.
학계는 물론 우리 사회의 전반적 풍토는 단군이나 천부경, 환단고기 등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거나 백안시하는 경향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얼마전 ‘홍익인간’을 교육이념에서 삭제하자는 법률안이 제출됐다가 여론에 밀려 슬그머니 철회된 적이 있는가 하면, 법정 국경일 중 국회의장이 주재하는 제헌절을 제외하고 유독 개천절만 대통령이 아닌 국무총리가 기념사를 하는 관행이 굳어지고 있다.
‘백두산 천부경’, “진지한 자세로 연구할 필요가 있겠다”
이 위원장은 “작년 3월 북쪽에서 공개한 백두산 장군봉에서 발견된 대리석에 새긴 ‘백두산 천부경’은 우리 남측에서는 그동안 고려말 농은 민안부 선생의 책더미 속에서 나왔던 통칭 ‘농은 천부경’, ‘갑골문 천부경’과 같아서 깜짝 놀랐다”며 “농은 천부경을 발견한 후손이 천부경 제목은 자기가 썼다고 나에게 분명히 말했었는데, 이번 백두산 천부경에 천부경 한자가 다른 점으로 보아 진지한 자세로 연구할 필요가 있겠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한 “바라는 게 있다면 묘향산 단군굴에 가서 맨 처음 최고운 선생이 천부경을 새겼다는 석벽을 확인해보고 싶다”며 “북쪽에서도 당군을 숭상하고 있으니까, 천부경 전시로 전국을 순회하고 북쪽에도 전시하는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이번 전시회를 주최한 (사)한국민족종교협의회(회장 이범창)는 천도교, 대종교, 원불교, 갱정유도, 증산도 등 민족종교들이 참여하고 있고 북측 단군민족통일협의회(단통협)과 교류하며 2002년, 2003년 평양 단군릉에서 개천절공동행사를 치르기도 했다. 오는 22일 천부경 학술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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