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노동, 검은 눈물③] “똑같은 생산라인인데 왜 하청이죠?”
서울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4시간가량을 달리면 동해에 닿기 전 조그마한 마을에 도달한다. 기술 발전의 산물인 KTX는 지나가지 않는다. 이곳은 석탄의 생산지, 탄광이 자리 잡고 있는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전두리다. 마을이 저탄장에서 날아오는 탄가루로 인해 새카맣다며 ‘까막동네’라고도 불린다.
너도나도 ‘탈석탄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하지만, 탄광은 지금도 활화산처럼 검은 먼지를 밤낮없이 뿜어내고 있었다. 그 검은 먼지 속에서 정규직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매일 숨을 쉬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같은 검은 먼지 속에서 건강검진마저 차별받는 설움에 북받쳐있었다.
직영 정규직보다 하청 비정규직 비중이 더 커지고 있다
“막장에서 이어지는 똑같은 생산라인이잖아요. 저희는 직접 생산과 연결되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대한석탄공사가 이 일을 하청에 주느냐는 말이에요.”
지난달 27일 도계광업소의 한 하청업체 사무실에서 만난 황계인 민주노총 공공연대노조 석탄공사지회 영보기업분회 사무국장이 성토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쉴 틈 없었던 일을 마치고 난 직후였다. 황 사무국장은 갱 안에서 채굴부 노동자들이 캐낸 원탄(석탄)에서 불순물을 골라내는 작업을 선탄부 노동자다. 많은 대중매체를 통해 비교적 잘 알려진 채굴은 석탄공사 직영 노동자들이 하지만, ‘가려진 노동’인 선탄은 하청 노동자들이 도맡아 한다.
그의 말처럼, 석탄이 에너지원으로 팔리기 전까지 생산 과정을 보면, 끊임없이 하나로 쭉 이어진다. 석탄은 탄맥을 찾아 나서는 ‘굴진’ 작업→가장 위험한 공정인 ‘발파’ 작업→석탄을 직접 캐는 ‘채탄’ 작업→석탄의 공급 과정인 ‘운반’ 작업→이물질을 제거하는 ‘선탄’ 작업의 과정을 거쳐 저탄장(탄을 저장하는 곳)으로 옮겨진다. 선탄은 석탄의 품질을 결정하는 생산 과정의 가장 마지막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사실 모든 일은 애초 석탄공사 직영 노동자들이 하던 것이었다. 하지만 석탄공사는 1991년부터 광업소 업무를 외주화하기 시작했다. 관리직과 갱내에서 채탄과 굴진 등의 생산에 직접 종사하는 직접부를 제외하고는, 상당 부분이 하청으로 하나둘씩 넘어갔다. 광차를 수리하는 노동자, 탄을 운반하는 노동자, 탄에서 불순물을 골라내는 노동자 등이 바로 그들이다.
지난해에는 석탄공사 직영 정규직보다 하청 비정규직의 수가 더 많아지는 ‘역전’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양이원영 의원이 석탄공사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6~2020년) 직영 정규직은 최근 5년간 1,388명에서 848명으로, 하청 비정규직은 1,114명에서 868명으로 각각 줄어들었다. 석탄 생산량을 줄이면서 그에 맞춰 감원도 하고 있는 것인데, 그 과정에서도 계속되는 석탄 생산은 하청 비정규직에 더 많이 의지하고 있는 셈이다.
하청 비정규직의 비중은 앞으로 더 커질 전망이다. 석탄공사 자료에 따르면 오는 2025년에는 직영 정규직 436명, 하청 비정규직은 794명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정규직이 나간 자리에 비정규직을 채우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는 하청 노동자들
그렇다고 하청 노동자들이 ‘좋은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인력 충원도 되지 않고 시설 개선도 이뤄지지 않다 보니 하청 노동자들은 늘 고강도 노동과 위험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갱내 막장에서 직영 노동자들이 채굴해온 석탄을 받아 실어 나르는 일을 하고 있는 A 하청업체 노동자 박모(63)씨는 민간광업소에서 30년 넘게 일했던 민간광업소와 현재 석탄공사를 비교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운탄 작업은 위험하기 때문에 항상 2인 1조로 일해야 해요. 그런데 여기선 혼자 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도 최근 2년간 혼자 일했어요. 예를 들어 운전자가 있으면 조수가 있어야 하는데 조수가 없어요. 그러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어요. 대체인원도 조별로 최소 한 명씩은 있어야 해요. 그러면 누군가 아프거나 사고를 당해 결근하더라도 대체인원이 투입될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게 없어서 업무가 가중돼요.”
석탄공사 B 하청업체에서 13년째 일하고 있는 안전계원 장모(51)씨는 현장 관리자임에도 직접 실무에 뛰어드는 게 다반사다. “일손이 부족해 현장 관리자도 현장에 투입해 일을 하게 돼요. 그러다 보면 현장 관리가 될 수가 없죠.” 그래서인지 현장에선 사고가 종종 발생한다. 지난 9월에는 하청 노동자가 직영 노동자를 돕다가 광차에 깔려 발가락을 절단해야 하는 중상을 입은 사고도 발생했다.
장 씨는 “밖에서 석탄공사에 오면 ‘30년 전이랑 똑같네’라고 한다. 시설투자가 하나도 없다. 개선할 의지도 없다. 레일을 하도 오래 써서 두꺼웠던 게 종잇장처럼 된다. 이리 두꺼운 게 이렇게 될 때까지 그냥 놔둔다”며 “그러다 보니 계속 사고가 반복된다. 혼자 일하다가 (차가) 탈선하면 복구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하청 노동자들은 다쳐도 ‘119’ 구급차를 불러본 적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 사이에선 ‘산재로 처리되면 입찰에서 감점을 받아 떨어진다’는 말이 나돈다. 실제로 하청 노동자들이 쉬는 대기실 벽에는 ‘129’라고 불리는 사설구급차의 번호가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다. ‘119’라는 숫자 3개만 누르면 쉬울 것을, ‘010’으로 시작되는 11개의 휴대전화 번호를 누르게 한 셈이다. 일자리를 잃을까 겁이 나는 노동자들은 ‘119’를 누르지 못하고 있었다.
석탄공사는 도급 계약을 할 때 보통 9개월 단위로 한다. 이는 곧 하청 노동자들의 계약 기간을 의미한다. 석탄공사 하청업체에서 광차 수리를 도맡아 하고 있는 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하청에선 1년 계약직이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때도 근무 이력을 다 보는데 회사명이 매년 바뀌는 셈이다. 일을 하는 건 매년 똑같은데 ‘윗머리’만 왔다 갔다 하고 있다”며 “시대가 어렵다 보니 이거라도 해서 먹고살아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일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선탄 노동자의 경우 하청 노동자 중에서도 ‘가장 열악하다’는 평을 받는다.
선탄부의 경우 3교대도, 2교대도 아니다. 한 개의 조만 남아 일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밤사이 밀려 있는 일을 몰아서 해 노동강도가 더욱 높아졌다고 한다. 하청업체의 운탄 노동자도 선탄 노동자를 두고 “생산량이 줄어서 (인력을 줄여도) 문제가 없다는데 그렇지 않다. 기계는 계속 돌아간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다 보니 노동자 한 명만 빠져도 남아있는 노동자들에게는 큰 타격이다.
현재 도계광업소에서 선탄은 한 협력업체 소속 11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도맡아 하고 있는데, 최근 김모(50대)씨가 ‘병가’를 내면서 ‘구멍’이 발생했다. 8년 차 선탄원인 그는 2년 전 갑자기 각혈 증상을 보이다가 최근 병원에서 ‘폐종괴’ 등의 진단을 받고 이달 수술을 앞두고 있다. 미세한 탄가루가 폐에 쌓여서 기능을 못 하는 직업병인 ‘진폐증’은 아니지만, 주변에선 석탄가루가 분명 폐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의심을 강하게 하고 있다.
산재 처리를 요구하기 위해 회사 사무실에 들른 김 씨는 “손가락 관절, 어깨, 팔, 다리, 허리, 지금 다 아프다”고 토로하며 선탄 일을 마치고 모인 동료들의 모습에 미안한 듯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선탄 노동자 중 가장 경력이 긴 양금옥 영보기업분회 분회장은 “아픈 사람이 빠지면 우리는 그 사람 몫까지 다해야 하니까 너무 힘들다. 그렇다고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황 사무국장은 “지금 직영에선 두 조로 나눠서 교대 근무를 하는데 저희는 하나로 조를 줄였다. 우리 선탄도 막장의 (채굴처럼) 똑같은 생산라인인데 거긴 두 조로 나뉘어 있고 우리는 오전에 모든 걸 해치워야 한다”며 “이렇게 바뀐 지 2년 정도 됐다. 그동안 몸이 많이 망가졌다”고 토로했다.
선탄은 여성들만 하고 있는 일이다. 과거 채굴과 같은 고강도 일을 남성이 하는 대신, 비교적 강도가 낮은 선탄은 여성들이 도맡게 되면서 지금까지 전통처럼 이어지게 됐다. 하지만 비교하면 그렇다는 것이지, 중년의 여성이 하기에는 벅차 보이는 고강도 노동이다. 커다란 망치를 두 팔로 들은 뒤 내리치며 돌을 깨기도 하고, 쉴 틈 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에 실려 오는 돌덩어리를 손으로 일일이 골라내야 한다.
황 사무국장은 “한 시간 일하고 10분 쉬기를 반복한다. 벨트가 계속 쉬지 않고 돌아가니까”라고 말했다. 심지어 점심시간을 쪼개 ‘청소’도 해야 한다. 이것 역시 말만 청소지, 낡은 벨트에서 떨어지는 석탄을 삽으로 퍼서 다시 올리는 고된 일이다. “일보다 청소가 더 힘들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양 분회장은 “가면 갈수록 시설이 좋아져서 일도 쉬워져야 하는데, 우리는 오히려 십수 년 전보다 더 힘들어진 거 같다”고 토로했다.
그렇게 하루 종일 일하다 보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검은 석탄가루를 뒤집어쓴다. “비누질을 세네 번씩 한다. 계속 탄이 나오니까 계속 닦아줘야 한다”고 황 사무국장은 말했다. 그를 비롯해 선탄 노동자들의 얼굴은 얼마나 많이 문질렀는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렇게 닦아도 석탄가루는 고된 노동을 보여주듯 선탄 노동자들의 손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와중에 건강검진마저 차별 대우
이 와중에 하청 노동자들은 직영 노동자들에 비해 ‘못한 대우’를 받는 차별을 겪고 있다. “입사할 때 산재병원에서 가서 건강검진을 한 뒤 결과를 제출했는데 그땐 폐가 깨끗했다”는 김 씨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회사에서 하는 건강검진에서 직영 정규직과 차별을 받은 것이 아픈 그에게 더 서럽게 다가온다.
“병원에서 (광업소로) 차량이 와요. 우리는 그 차량에서 엑스레이(X-ray)를 찍고 피검사와 청력검사 등을 해요. 올해도 검사했는데 그때도 이상 소견이 나오더라고요. 광산에서 일하시니 병원에 가서 CT를 찍어보라고 하더라고요. 우리는 그동안 건강검진 때 CT와 같은 특수촬영은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어요. 우리보다 연배 높은 동료들도 입사한 이래 특수촬영이란 건 한 번도 안 받아봤다고 했어요. 그런데 직영 사람한테는 석탄공사가 30만원의 지원금을 주고 지정병원에 가서 CT도 찍게 하고 다한다고 하더라고요. 어떻게 이렇게 차별을 할까요.”
실제 양 의원이 석탄공사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석탄공사는 직영 노동자들에게 30만원씩 지원하며 종합건강검진을 받도록 하고 있었다. 반면 도계광업소 내 11개 하청업체는 단 한 곳도 종합건강검진을 실시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다보니 하청 노동자들은 직영 노동자들과 달리 흉부CT와 같은 특별검진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건강을 두고도 차별을 하는 것이 다름 아닌 ‘공기업’인 석탄공사였던 셈이다.
차별은 이뿐만이 아니다. 노조에 따르면 석탄공사 정규직은 건강검진 지원금뿐만 아니라 기본급 3%의 위험수당, 그리고 휴가수당, 특수직무수당, 연료보조비, 중식보조비, 생산성향상독려비, 성과급, 문화여가비, 경조비 및 유족위로금, 상여금, 교통비 등을 받고 있지만 비정규직은 이를 받지 못하고 있다. 송주화 공공연대노조 석탄공사지회 지회장은 “성과급이 정규직에게만 있다”며 “석탄 생산 과정에서 정규직보다 비정규직 인원이 더 많은데 성과급은 정규직이 다 가져가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원청이 해결해야”...정작 석탄공사 사장은 한 달 넘게 ‘공석’
이런 노동자들의 울분에 하청업체는 이렇다 할 도리가 없다는 반응이다. 한마디로 ‘석탄공사가 돈을 충분히 주지 않아 우리도 돈이 없다’는 것이다.
대체인력 투입을 요구하며 열악한 노동 환경을 토로하던 노동자들에게 C 하청업체 사장은 “그건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본청(석탄공사)에서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나는 방법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그는 최저단가 입찰이 문제라는 취지로 주장했다. 그는 “요새 들어 입찰 경쟁이 더 심해졌다. 6~7개씩 들어오다 보니까 단가를 낮추게 된다”며 “우리도 지원해주고 싶지만, 인원에 딱 맞춰서 인건비가 책정돼 있어서 사람을 더 채용하지도 못한다”고 잘라 말했다. 또한 그는 “매년 감산을 하다 보니까 그렇게 (인력 감축이) 될 수밖에 없다. 내년에도 또 그렇게 되지 않겠나”라며 정책 탓을 했다.
실제로 석탄공사가 현재 운영하고 있는 광업소는 도계광업소와 강원도 태백시의 장성광업소, 전라남도 화순군의 화순광업소 등 3개뿐인데, 이마저도 규모를 점차적으로 축소하고 있다. 1989년 경제성이 낮은 탄광을 정리하고 경제성이 높은 탄광을 집중 육성하기 위해 시작된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이 이제는 ‘탈석탄’ 정책으로 이어지면서다.
양 의원이 석탄공사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실적’을 보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1,008→908→650→540→475톤으로 절반이 줄었다. 석탄공사는 향후 5년간 생산량을 이보다 절반(402→340→293→249→213톤)으로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송 지회장은 도계광업소 주변을 둘러보다가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키며 “저곳이 저탄장이다. 팔리지 않고 쌓여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광업소에서 퇴직자가 나온 자리에 신규 채용을 아예 하지 않다 보니 노동자들은 고령화되고 있었다. 석탄공사 자료에 따르면 올해 노동자의 평균 연령은 석탄공사 직영의 경우 59세, 하청업체 노동자의 경우 52세였다. 특히 하청업체 노동자 중 직영 정년(60세) 초과 인력이 488명에 달하며, 그중 70세 이상은 39명이었다. 노동강도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그런데 석탄공사의 계획을 보면 최소한 향후 5년간은 석탄 생산을 계속하게 된다. 노동자들 입장에선 열악한 환경에서 하루 이틀 버틸 일이 아닌 것이다. 차별 해소 등이 시급한 문제로 떠오르는 이유다. 송 지회장은 “작업 환경이 개선돼야 하는데 결국 원청의 의지가 필요하다. 어느 정도 예산을 받아야 할 수 있다”며 석탄공사의 역할을 촉구했다.
현재 석탄공사 사장은 한 달 넘게 공석이다. 지난달 2일 퇴임한 유정배 전 석탄공사 사장은 내년도 지방선거 춘천시장 출마를 선언했다. 노동자들은 산적한 문제에 따른 책임을 회피하려고 계속 공석으로 두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드러내고 있다. 결국 공석인 석탄공사 사장을 대리해 김인수 관리본부장이 지난 15일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했다. 이 자리에서 양 의원은 “석탄 산업이 전환기를 거치는 어려움을 알지만 노동이 소외되고 차별받아선 안된다”고 지적했고, 김 본부장은 “협력업체와 적극적으로 대화해서 개선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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