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군 다니던 Y고교, ‘위험 업체 아냐’ 판단하면서도 ‘잠수기술 습득 기대’ 모순
교과과정 여러차례 바뀌면서 전문성 무뎌져…교육청 관리·감독 기능도 작동 안해
지난 6일 발생한 여수 특성화고 현장실습 사고와 관련, 학교가 위험을 사전에 알고 있었거나, 현장 점검에 소홀했던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됐다.
12일 <민중의소리>가 강민정 열린민주당 의원으로부터 확보한 전라남도교육청 자료에 따르면 고 홍정운 군이 다니던 Y특성화고등학교는 사전 점검 등을 통해 홍 군이 잠수를 동반한 업무에 투입될 가능성을 파악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전남교육청이 강 의원에 제출한 자료와 민중의소리 취재 내용을 종합하면 Y고교는 지난 9월 초부터 홍 군이 실습 할 회사 S해양레저에 현장 실사를 진행하고, 실습 계획을 수립했다.
학교측이 작성한 ‘현장실습 산업체 방문 조사 카드’를 보면 해당 업체가 산업재해 다발 기업인지, 4대보험에 가입 가능한 곳인지 등을 파악했다. 이외에도 숙식 제공이 가능한지, 현장실습 수당은 얼마로 할 것인지, 현장실습 종료 후 채용 전환 계획이 있는지 등을 파악했다. 해당 업체는 최저임금인 시급 8,720원을 약속하면서 현장실습 후 채용전환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학교측은 지난달 9일, 현장 조사를 바탕으로 해당 업체가 교육청 등에서 정한 실습 기업 기준에 부합하는지 검토했다. Y고교 관계자는 해당 업체가 ‘학교 교육과정상 인력양성 목표에 부합하는 현장실습 프로그램에 개발되었다’고 판단하고 ‘참여학생에 대한 지도·관리 계획도 수립되어 있다’고 봤다.
문제는 책임자가 잘못 판단한 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교육청 기준표를 보면 근로기준법에서 위험 작업으로 분류한 잠수 등이 실습에 포함하고 있느냐고 묻는 대목이 나온다. Y고교측은 ‘해당 업체가 위험 작업을 하지 않는다’고 적시했다. Y고교는 이외에 총 13개 선정 기준을 검토한 결과 해당 업체가 실습 파견에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업체를 ‘실습 적합’으로 판단한 Y특성화고는 교장과 교사들로 이뤄진 ‘현장실습 운영위원회’를 열고 홍 군 실습 파견을 승인한다. 당시 회의록에는‘선박갑판관리, 요트조정, 기관실무’와 함께 ‘잠수기술 습득이 가능할 것으로 사료된다’고 적혀 있다. 학교측이 관련 업체에서 잠수 관련 업무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사전에 인지한 정황으로 볼 수 있다. 업체 선정과정에선 위험 업무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실습 효과에선 잠수 기술 습득을 기대하는 모순 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Y고교가 현장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정황도 확인된다. Y고교에서 작성한 ‘현장실습 프로그램 계획서’를 보면 홍 군은 총 4개 분야 업무에 대해 실습할 계획이었다. 4개 실습 과제 중 ‘보트 선체관리’가 눈에 띈다. ‘보트 선체관리’ 실습 매뉴얼을 살펴보면 홍 군이 했던 따개비 제거 작업이 선체관리에 포함돼 있다.
따개비 제거 작업이 곧 잠수 작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실습 매뉴얼에는 따개비 제거 작업을 수상에서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제거한 따개비가 해상 오염을 일으키고, 작업자가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금지한 것이다. 제거 작업을 할때는 요트를 육지로 끌어 올려 고압 장비로 따개비를 털어낸 뒤, 다시 해상으로 이동시켜야 하는 것이 규정이었다.
하지만 사고가 발생한 이순신마리나는 이 규정을 지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홍 군이 실습을 나가기 1년 전부터 육상 작업이 금지돼 있었다. 따개비 작업을 하고 난 뒤, 발생하는 쓰레기가 썩으면서 악취를 풍겼고, 주민들 민원이 발생하자 마리나 운영사가 따개비 육상 작업을 금지한 것이다. 이순신마리나 곳곳에는 ‘마리나 내에서 따개비 작업을 금지한다’는 대형 현수막이 곳곳에 부착돼 있다.
인근 요트업체 관계자들은 “육상 작업이 금지되고 해상에서 잠수를 통해 따개비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학교측이 규정을 제대로 이해하고, 현장을 꼼꼼하게 조사했다면 홍 군이 위험한 작업을 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었던 셈이다.
Y고교에 “사전에 위험을 인지하고 있었는지”, “방문 조사에 문제점은 없었는지” 등을 수차례 문의했지만 학교측은 끝내 답변하지 않았다.
수 차례 교과 개편 전문성 낮아져...
실습 기회 늘리려 안전 점검 무시했나, 교육청 관리 감독 기능도 작동 안해
Y고교가 여러번 교과 과정을 개편하면서 학교측의 현장실습 전문성이 낮아졌다는 시각도 있다. Y고교 연혁을 보면 1980년 실업고등학교로 개교한 이후 2012년 교명을 Y해양과학고로 변경했다. 교명 변경 과정에서 학과 개편이 이뤄졌다. 수산양식, 상업, 자동차학과 중심이었던 교과 체계를 수산, 토탈미용학과로 변경했다. 미용학과는 불과 6년 뒤인 2018년 사라지고 대신 해양레저학과가 들어섰다. 10여년 사이 자동차 학과에서 미용학과로, 다시 해양레저학과로 여러차 교과 체계가 변경된 것이다. 사고를 당한 고 홍정운 군은 2018년 신설된 해양레저학과 3학년이었다.
강민정 의원은 “해당 학교에서는 연이어 연관성이 없는 학과로 급격한 개편이 이뤄졌다”며 “무분별한 학과 개편 과정에서 학생들이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현장실습에 나가게 된 것은 아닌지 점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홍 군과 함께 수업한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면 학교측이 안전 보다는 실습 성사에 방점을 찍었던 것 아니냐는 의심도 든다. 신설학과인 해양레저학과는 실습 자리가 없어 전전긍긍했다는 것이다. 홍 군이 실습을 나간 S해양레저는 지난 여름 홍 군이 아르바이트를 한 업체였다. 이후 홍 군 현장실습 파견 이야기가 오갔고 학교가 관여하면서 같은해 9월 성사됐다.
이상헌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 이사장은 “홍 군의 현장실습 업체가 선정된 과정을 감안해야 한다. 실습처가 확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학교가 학생의 기회 보장에 무게를 뒀다면 안전 점검이 미흡했을 가능성이 있는것”이라고 말했다.
교육청이 각급 학교의 업체 선정을 관리감독해야 하지만, 이마저도 이뤄지지 않았다. 홍 군 실습을 결정한 Y고교는 교육청에 회의록과 함께 관련 내용을 공문으로 통보했다. 교육청은 공문을 제대로 검토하고 지도·교육할 의무가 있다. 전남교육청 ‘직업계고 현장실습 운영지침’에 따르면 교육청은 현장실습에 나간 학생들의 안전과 노동인권보호에 대한 지도·점검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관리시스템(하이파이브)에 탑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관리시스템에는 홍 군이 실습나갔던 S해양레저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전남도교육청은 “홍 군의 경우 현장실습 시작단계인 관례로 점검은 이뤄진 적 없다”고 해명했다.
한편, 경찰은 홍 군이 실습을 나갔던 S해양레저 황모(48)대표를 이날 정식 입건했다. 경찰은 황 대표가 안전규정을 지켰는지 등을 확인하고 있다. 경찰은 이와 함께 학교나 교육청이 현장실습 업체 선정 관련 절차를 제대로 밟았는지 등도 확인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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