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1-10-22 04:59수정 :2021-10-22 07:36
① 고령·청장년층 20명 인터뷰
② 미접종자 접종 대책
③ ‘백신 거부자들’ 저자 제안
“저는 발치할 때도 병원에 책임 팔로업 케어(추적 관리)가 있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해서 기존 계약서를 수정했을 정도예요. 백신 부작용이 생기면 누가 책임져주지 않으니까 정부 지원 체계가 제대로 되어 있어야 하는 거죠.”
회사원 손지연(31·이하 등장인물 가명)씨는 이른바 ‘코로나19 백신 미접종자’다. 21일 기준 18살 이상 인구의 91.7%(전국민 79.0%)가 1차 접종을 마친 가운데, 여전히 단호하게 버티고 있는 그의 접종 선결조건은 ‘이상반응에 대한 정부 책임’이었다.
<한겨레>가 9월30일부터 10월14일까지 심층 인터뷰한 60살 이상 고령층 10명과 청장년층 10명은 접종 거부 의사가 강했지만(<한겨레> 19일치 1·9면), 이들을 접종센터로 이끄는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20명 가운데 10명은 특정한 조건이 주어지면 백신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견해를 내비쳤다. 특히 10명 가운데 4명은 정부가 이상반응에 대해 ‘무조건’ 책임지는 것을 접종의 전제로 삼았다. 11월 초 시행될 단계적 일상 회복(위드 코로나)을 위해 미접종자 접종률 끌어올리기 대책을 고심하는 정부에 시사점을 주는 대목이다.
전직 교수 이강원(68)씨는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병역 의무에 견주었다. 병역은 시민의 의무지만, 장애나 질환이 있어서 이행하지 못할 수도 있고, 신념에 따라 병역 거부를 할 수도 있다. 접종도 시민의 의무처럼 여겨지지만, 기저질환자는 접종하지 않을 수 있고, 신념에 따라 접종 거부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복무하다 행여 다치거나 숨지는 일이 발생하면 공상이나 순직 처리를 하고 국가가 보상해야 하는 것처럼, 접종 역시 이상반응에 따른 피해가 생기면 국가가 인과관계를 따지기 전에 보상부터 해야 한다는 게 이씨의 주장이다. “접종이 병역만큼 의무사항은 아니니까 국민이 여행자보험처럼 몇천원씩 내어 기금을 만드는 방법도 좋겠지요. 빈곤층은 국가가 대신 부담하고요. 기금으로 중환자는 끝까지 치료해주고, 사망자에게도 일정 금액 보상하면 문제가 생겨도 가족에게 덜 미안하죠. 그렇지 않으면 접종할 이유가 없어요.”
손씨와 이씨처럼 백신 미접종자의 상당수는 접종 이상반응을 우려한다. 방역당국도 늦게나마 이상반응 인정범위를 확대하겠다고 밝혔으나, ‘무조건 책임’이라는 기대 수준에 부합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지난 2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신규 백신에 대한 이상반응을 검토할 수 있는 안전성위원회를 만들어 (인과성 인정) 범위를 확대하고 이전에 적용된 범위에 대해서는 소급 적용해서 판단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상반응 시 정부 책임 강화와 더불어 개별 환자의 건강 상태를 잘 아는 일선 병·의원 의사들이 접종을 권유하게 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기저질환자가 많은 고령층에게 자주 가는 병원 의사의 접종 권유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한겨레> 심층 인터뷰에서도 드러났다. 대상포진으로 접종을 꺼리는 박수애(64)씨는 “암 환자처럼 주치의가 있는 사람은 의사와 의논해서 백신을 맞더라”라며 “같은 병도 개인차가 있는데 그걸 따져보지도 않고 ‘기저질환자는 접종 필요성이 더 크다’는 정부 논리에 설득이 잘 안된다”고 말했다.
김대중 아주대병원 교수(내분비대사내과)는 최근 당뇨와 심혈관 질환이 있는 50대 미접종자를 설득해 접종으로 이끌었다. 그는 “진료할 때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를 보고 미접종자인 경우 접종을 권한다”며 “많은 환자가 기저질환 때문에 접종해도 되는지 불안해하면서 자신의 상태를 잘 아는 의사에게 묻고 접종을 결정하고 싶어 하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접종을 권유했던 환자가 접종 후에 이상반응이 나타나면 찾아와 항의할까봐 접종을 권하지 않는 의사들도 적지 않을 것”이라며 “보건복지부 장관이 의사협회장을 만나서 의사들이 고위험군 환자에게 접종을 독려할 수 있도록 협력을 요청하는 방안도 있다”고 제안했다.
미접종자들이 일상에서 끊임없이 접종 효과와 안전성을 접하도록 하는 세밀한 접근도 필요하다. 지난해부터 코로나19 대국민 인식 조사를 해온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미접종자들이 자주 가는 병원이나 약국에서 접종에 대한 우려를 상담받을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하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아직 접종하지 않으셨나요? 당신이 궁금할 만한 정보가 여기 있습니다’와 같은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등 눈높이에 맞는 영상과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령층한테 호소력이 큰 유명 연예인과 정치인이 접종을 독려하도록 하고, 지역 단위에선 종교 지도자나 지역 공동체 대표, 활동가 등이 밀착해 접종을 설득하도록 하는 홍보 캠페인을 제안하는 전문가도 있다.
정부가 대표적으로 추진하는 미접종자 대책인 ‘백신 패스’는 효과와 우려가 갈린다. <한겨레> 심층 인터뷰에서도 백신 패스가 도입되면 접종받겠다는 이들이 4명이었다. 다만 모임과 식당·카페 이용 등 일상생활을 위해 떠밀리듯 백신을 맞겠다는 이들은 모두 사회활동이 활발한 청장년층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고위험군이지만 사회생활이 활발하지 않은 고령층에게는 큰 유인책이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직장인 박소은(32)씨는 백신 패스를 도입하면 접종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백신 패스를 도입하면 회사에서 밥을 같이 먹으러 가도 저 때문에 다른 사람이 못 갈 수도 있으니 아무래도 힘들어질 것 같아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낸다며 접종을 꺼리던 대학생 안도석(20)씨도 백신 패스를 두고는 “식당이나 카페를 자주 가지는 않지만, 대면 수업이 늘면 일상에 지장이 생길 수 있으니 검사도 받고 백신도 맞고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아무리 ‘미접종자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워도, 불가피하게 ‘제약’이 뒤따르는 만큼 백신 패스에 대한 거부감은 상당했다. 허태인(46)씨는 “백신 패스로 다중이용시설을 이용하지 못한다고 해도 접종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미접종자들이 불편하게라도 은행이나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열어줘야지 무조건 안 된다고 막으면 그건 차별”이라고 지적했다. 박소은씨는 코로나19 치료비를 미접종자에 한해 유료로 전환하는 정책이나 독일처럼 미접종자에게 코로나19 검사 비용을 5만~10만원 내도록 하는 정책에도 회의적이었다. “그렇게 되면 ‘더러워서 맞고 말지’라는 생각은 들겠지만, 한국에서는 반발이 세서 도입 가능성은 낮은 것 같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장영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아직 유행 통제가 중요한 상황에서 검사·치료비를 유료화하면 검사를 받지 않고 숨어버릴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백신 접종을 강제할 수 없고 설득해야 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정확하고 일관되며 사려 깊은 ‘위험소통 전략’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박우태(65)씨는 “예전에는 접종완료율이 70%면 된다고 했다가 최근에는 다시 80%로 수치를 올렸다. 확진자가 200명이면 난리 난다고 하더니 2천명이 되어도 정부가 하는 말은 똑같다”며 “이렇게 수치를 바꾸고 입장을 바꾸면 어떻게 (정부를) 믿겠느냐”고 말했다. 장영욱 부연구위원은 “확진자, 위중증 환자, 사망자 중 미접종자 비율을 부정기적으로 발표하지 말고 매일 발표하면 접종을 고민하는 미접종자에게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아울러 유명순 교수는 “미접종자들을 접종률을 올리는 속도전의 대상으로만 보지 말고 여유를 가지고 진심으로 이들을 걱정해주는 말과 정보로 메시지를 바꿔서 전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지훈 권지담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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