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국 경상국립대학교 국어문화원장 국어국문학과 교수
- 승인 2021.10.28 11:19
- 댓글 0
[뉴스사천=김민국 경상국립대학교 국어문화원장 국어국문학과 교수] 쉽고 바른 공공언어 쓰기의 중요성은 사회의 변화에 따라 모범이나 당위의 측면보다는 국민의 알 권리 충족, 정보 접근의 평등성 측면에서 강조된다. 즉, 쉽고 바른 공공언어 쓰기는 이제 언어 복지 차원에서 접근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언어 소외 계층이나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공공언어에 대해서는 아직 제대로 논의되고 있지 않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한 뉴스사천과 경상국립대 국어문화원은 2021년 <쉬운 우리말 쓰기> 사업을 통해 ‘품고 배려하는 말과 글’이라는 주제로 사천시 관내 6개 사회 복지 기관과 업무 협약을 맺고 기관 누리집의 공공언어 사용 양상과 복지 용어의 문제를 살펴보았다. 여러 번 논의를 통해 개선 방향을 제시한 것도 나름의 성과겠지만 앞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가를 알 수 있었던 것이 더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더 고민해야 할 문제들을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띄어쓰기의 문제이다. 단어와 단어는 띄어 쓰는 것이 원칙이지만 전문 용어나 고유명은 붙여 쓰는 것도 허용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공공기관에서는 행정적 편의를 이유로 기관명, 행정용어 등을 모두 붙여 쓰는 것이 관행이 되었다. 그런데 단어를 모두 띄어 쓰는 것과 모두 붙여 쓰는 것은 모두 가독성이 떨어지므로 원칙과 편의 중 어느 한쪽만을 고집하기 어렵다. ‘주민등록 열람 제한’과 같이 의미 단위를 고려한 띄어쓰기 방안이 더 현실적일 것이다.
둘째, 외래어 순화 범위의 문제이다. 지나친 외래어의 사용은 공공언어 사용 전반에서 꾸준히 지적되어 온 문제이다. 그러나 모든 외래어를 무조건 순화어로 바꾸어 사용해야 하는가도 고민할 문제이다. 적절히 바꾸어 쓸 수 있는 순화어를 마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국립국어원에서는 ‘브랜드’의 순화어로 ‘상표’를 제시하고 있지만 ‘복지브랜드’를 ‘복지상표’로 바꾸어 쓰기는 어렵다. 순화어 마련은 당연히 필요하겠지만 이에 앞서 외래어 순화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그 범위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있겠다.
셋째, 행정 전문용어의 사용 문제이다. 기관 누리집을 살펴보면 어려운 행정 전문용어가 그대로 사용되는 경우가 쉽게 발견된다. 각 기관에서 의지가 있다면 더 쉬운 말로 바꾸어 쓸 수도 있겠지만, 상위 기관에서 쓰고 있는 용어를 하위 기관에서 바꾸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따라서 정부나 상위 기관에서 먼저 행정 전문용어를 쉽게 잘 다듬는 것이 중요하다. 공공언어 개선은 상위 기관이 주도하고 하위 기관이 이를 따르는 하향식 접근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의 실제 요구는 하위 기관에서 더 잘 파악할 수 있으므로, 하위 기관이 제안하는 쉬운 말을 상위 기관이 수용하는 상향식 접근도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기관 사이의 협조 체계 마련을 위한 구체적 논의가 따라야 하는 이유다.
넷째, 차별적 시선을 담은 용어의 문제이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언어 복지를 고민한다면 차별적 용어 문제부터 해결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대안으로 제시된 용어에 다시 차별적 시선이 담기는 경우가 생긴다는 점이다. 가령, ‘새터민’, ‘다문화’, ‘기초생활수급권자’ 등은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거나 차별적 시선을 없앤 용어이지만 다시 이것이 차별적 용어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차별적 인식 자체가 바뀌지 않는데 말만 바꾼다고 해서 차별적 시선이 사라지겠냐는 회의적 질문이 따르기도 한다. 물론 틀린 지적은 아니지만 말이 인식을 규정하는 부분도 크다. ‘비장애인’을 가리키는 말로 ‘정상인’을 쓰게 된다면 ‘장애인’은 ‘비정상인’으로 규정된다는 것이 단적인 예이다. 그렇다면 인식 개선만을 외치기보다는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차별적 용어를 찾아내고 이를 개선할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공공언어 개선은 하루아침에 성과를 얻을 수 없다. 장기적 안목으로 꾸준히 진행되어야 하고 일정 시점이 되었다고 해서 그만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를 찾은 것이 더 큰 성과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올해 <쉬운 우리말 쓰기> 사업으로 우리가 한 일들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따뜻한 공공언어를 위해 첫걸음을 뗀 것에 불과하다. 앞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들을 중심으로 공공 복지 기관, 민간 복지 단체, 국어 전문 기관, 언론 기관, 학계 등에서 더 많은 논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끝으로, 조금은 불편할 수 있는 자리임에도 회의에 참석해 귀한 의견을 주신 6개 복지 기관의 기관장과 실무자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