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강수의 경세제민] 다음 대통령이 취해야 할 부동산 정책 방향
부동산 정책 전문가이자 토지정의 운동가인 대구가톨릭대학교 경제금융부동산학과 전강수 교수가 경제정의와 부동산 문제에 관해 정론을 피력하고 그때그때 부각하는 경제 이슈를 해설하는 '전강수의 경세제민'을 연재합니다. '경세제민'은 세상을 잘 경영해 국민을 편안히 한다는 뜻으로 썼으며 이 말을 줄인 것이 '경제'이기도 합니다. 필자는 대한민국이 해방 후 농지개혁으로 잠시 실현했던 '평등지권 사회'를 회복하기를 꿈꿉니다.[편집자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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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도심 아파트 단지와 주택들. | |
ⓒ 권우성 |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정책에서 참담하게 실패했다. 사실 다 죽어가던 야당이 기사회생한 것이나 지난 4.7 재·보궐 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것, 그리고 이번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적지 않게 고전하는 것은 모두 여기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한국은 이미 부동산공화국으로 전락하여 심각한 사회경제적 폐해가 발생하고 있는데도 문 정부는 근본 해결책을 마련할 생각은 하지 않은 채 '핀셋 규제'와 '핀셋 증세'로 일관했다. 부동산 정책을 가격을 적당히 마사지하는 정도로만 여긴 것이다. 결과는 역대 정부 최고의 부동산값 상승, 최다의 '풍선 효과' 발발이라는 초라한 성적표였다.
몇 년간 투기 광풍을 겪고 난 지금,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이 계층 간·세대 간·지역 간 양극화의 주범이자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는 최대 질곡임을 부정할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서인지 이번 대선에 나선 예비후보들도 하나같이 부동산 문제 해결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한두 명의 후보를 제외하고는 정책 방향을 엉뚱하게 잡고선 큰소리만 치고 있어서 심히 걱정스럽다.
차기 정부가 출범한 다음 이야기해 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 일찌감치 다음 대통령이 취해야 할 부동산 정책 방향을 밝혀두고자 한다. 어떤 경로로든 다음 대통령이 될 후보에게 전해져서 차기 정부 부동산 정책이 바른길을 찾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정책 철학을 분명히 세워야 첫째, 정책 철학을 확실히 세워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한 데는 철학 부재라는 근본 원인이 있었다. 가격이 폭등하지도 폭락하지도 않게 관리하는 것을 정책 목표로 삼았으니 거기에 무슨 철학이 필요했겠는가? '괴물'과도 같은 투기 광풍이 사방에서 불어닥치는 와중에 '핀셋'을 들고 우왕좌왕한 것도 철학 부재 때문이었다.
그러니 다음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을 반면교사 삼아 부동산 정책의 철학부터 분명히 세워야 한다. 가능하다면 정부 출범과 함께 국민 앞에 그 철학을 밝히고 새 정부의 정책을 거기에 맞게 추진할 것임을 천명해야 한다.
내가 권하고 싶은 부동산 정책의 철학은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이다. 이는 인공물이 아닌 토지의 특수성을 고려해 토지공개념을 구현하되, 가능하면 시장원리에 맞게 하자는 내용이다. 현행 헌법에는 이미 토지공개념 조항(122조)이 들어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이 추상적이고 애매해서 토지공개념 정신을 구현한 법률(토지공개념 3법, 종합부동산세법 등)이 도입될 때마다 위헌 시비가 일곤 했다. 그러므로 다음 대통령은 정부 출범 직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헌법 개정안을 마련해 발의하는 것이 좋겠다.
공약이 다 발표되지 않아서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들 가운데 토지공개념 철학을 천명할 사람은 없는 듯하다.
예컨대 8월 29일 윤석열 후보는 부동산·주택 공약을 발표하면서,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이 수요 억제, 지나친 규제 때문에 실패했다고 단언한 후 공급 확대, 세금 및 규제 완화, 재개발·재건축 촉진 등을 주요 정책으로 제시했다. 홍준표 후보의 부동산 공약도 쿼터아파트제(1/4값 아파트를 공급하겠다는 내용이다)라는 특이한 이름의 공약을 제외하면 대부분 윤석열 후보의 정책과 유사하다. 최재형 후보의 부동산 공약도 마찬가지다. 이 공약들은 전형적으로 부동산 시장만능주의에 입각한 노선으로 토지공개념과는 정반대의 정책 방향이다.
재개발·재건축을 촉진하고 세금과 규제를 완화하면 부동산 투기의 동기가 자극될 것이 명약관화한데, 도대체 어떻게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말인가. 과거에 토지공개념 제도가 노태우 정부에 의해 처음 도입되었음을 생각하면, 그동안 한국의 보수세력은 심하게 퇴락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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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불어민주당 추미애(왼쪽), 이재명 대선 경선 후보가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에서 열린 MBC 100분 토론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 | |
ⓒ 국회사진취재단 |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 중에는 이낙연 후보와 추미애 후보가 토지공개념을 명확히 하는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추미애 후보는 토지공개념 개헌 공약과 함께 그 정신을 구현할 세부 정책도 꼼꼼히 제시해서 신뢰가 가지만, 이낙연 후보는 택지 소유를 제한하겠다는 둥, 유휴 토지에 종부세 가산세를 부과하겠다는 둥 실효성이 떨어지는 정책을 제시해 '포장지만 토지공개념'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여권 지지율 1위인 이재명 후보는 국토보유세 도입, 비필수 부동산에 대한 부담과 규제 강화 등 토지공개념 정신에 부합하는 정책들을 공약하기는 했지만, 토지공개념 구체화를 위한 개헌까지 약속하지는 않아서 올바른 정책 철학을 세우려는 의지가 추미애 후보보다 약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공급확대론의 주술에서 벗어나야
둘째, 다음 대통령은 공급확대론의 주술에서 벗어나야 한다. 공급확대론이란 부동산값 폭등이 공급 부족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각종 규제를 완화해서 주택공급을 확대하는 것만이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는 인식 체계를 가리킨다. 참여정부 때 보유세 및 양도세 강화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자 이를 무력화하기 위해 부동산 시장만능주의자들이 억지로 만들어낸 이론이다.
부동산 불로소득을 차단·환수할 제도적 장치가 미비한 가운데 유동성 과잉 상태가 지속해서 일어난 일을 두고 공급이 부족해서 일어났다고 강변한다는 점에서 곡론(曲論)의 전형이라 부를만하다. 공급확대론자들은 투기로 인한 수요의 팽창이 진정한 원인인데도 그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공급만을 외친다.
정책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그 정책으로 이익을 보는 사람이 누구인지 따져보면 된다. 지금 주택공급 확대 정책으로 이익을 볼 사람들은 누구인가. 토건족과 그 주변 인물들 아닌가. 토건족의 이해에 복무하는 이런 엉터리 이론이 언론의 대대적인 지원으로 한국 부동산 정책 담론의 중심을 차지했으니 실로 통탄할 일이다.
투기 장세에서 공급확대 정책을 펼치면 시장이 안정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과열되기 쉽다. 공급확대 지역을 중심으로 새로운 투기가 유발되기 때문이다. 여러 증거를 제시할 필요도 없다. 올해 들어 문재인 정부가 대대적인 공급확대 정책을 발표했는데도 서울과 수도권의 집값이 고공행진을 계속하는 것을 생각해보라. 또 지금 공급확대 정책을 추진하면 4, 5년 후 실제 공급이 이루어질 무렵에 집값 폭락을 초래하는 시차 효과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수도권 중심으로 이뤄지는 주택공급 확대는 지역균형 발전에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국민의힘 후보들은 이구동성으로 공급확대를 주장한다. 문제는 더불어민주당 후보들까지도 이에 동조한다는 사실이다. 정세균 전 대선 후보는 과세 강화와 규제는 부동산값을 상승시킬 뿐이라며 자신은 주택공급 '폭탄'을 퍼붓겠다고 약속했다. 박용진 후보는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과감하게 완화해 서울 시내에 좋은 집을 우선 공급하는 동시에 김포공항 부지에 스마트시티를 구축해 주택 20만 호를 공급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토지공개념을 약속한 이낙연 후보도 서울공항을 이전해 3만 호, 주변 지역 고도제한 완화로 4만 호를 공급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이재명 후보는 기본주택 100만 호 포함이라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임기 내에 250만 호를 공급하겠다는 공급확대 정책을 부동산 공약의 맨 앞에 배치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더불어민주당의 네 후보는 공급확대론에 인지 포획되었다고 판단한다. 시장만능주의자들이 만든 엉터리 주장이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의 지면에 매일같이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내면화한 결과가 아닐까. 김두관 후보와 추미애 후보 두 사람은 공급확대론의 영향에서 벗어나 있지만, 그들의 생각은 더불어민주당의 주류가 아니다.
다음 대통령은 공급확대론의 주술에서 벗어나 확실한 투기 억제 정책을 펼쳐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실패한 것은 투기 억제에 치중했기 때문이 아니라 투기 억제 정책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다. 김두관 후보가 지역균형 발전 정책을 급진적으로 추진해 주택 수요를 분산할 것을 주장한 것은 일석이조의 효과를 발휘할 탁월한 대안이다. 다음 대통령은 김 후보의 공약을 차기 정부의 핵심 정책 과제로 삼아야 한다. 공급확대 정책을 펼칠 것인가 말 것인가는 일단 투기적 가수요를 걷어내고 난 다음에 결정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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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불어민주당 김두관(왼쪽), 이재명 대선 경선 후보가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에서 열린 MBC 100분 토론에 참석해 리허설을 하고 있다. | |
ⓒ 국회사진취재단 |
취임 6개월 안에 국토보유세 입법화
셋째, 근본 정책에 천착해야 한다. 수술받아야 할 환자를 두고 수술은 하지 않은 채 진통제만 투여하는 것은 돌팔이 의사가 하는 짓이다. 부동산 시장을 투기가 창궐하는 비정상적인 시장이 아니라 실수요와 공급이 상호작용하는 정상적인 시장으로 만들려면, 부동산 불로소득을 차단·환수하는 것이 급선무다.
여기에 가장 효과적인 대책은 토지보유세를 강화하는 것이다. 주지하듯이 한국의 보유세 실효세율(세액/부동산값)은 미국, 캐나다, 일본 등에 비해 현저하게 낮다. 이를 높여서 부동산 보유비용을 무겁게 만들지 않고서는 불로소득을 차단할 수도, 주기적인 투기 광풍을 막을 수도 없다.
한국의 땅값이 세계 최고 수준을 보이는 것은 보유세가 너무 가볍다는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보유세 강화, 거래세 완화'는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 부동산 정책의 숙제였다.
다행히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후보와 추미애 후보는 보유세 실효세율을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두 사람은 종합부동산세보다 더 좋은 국토보유세를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국토보유세는 현행의 용도별 차등과세를 철폐해 토지·빌딩 소유자들이 누리는 세제상 특혜를 해소한다. 또 세수 증가분을 전액 사회적 배당금 또는 기본소득으로 분배하기 때문에, 국민 모두가 주권자임을 실감케 하는 효과도 있다.
그렇게 하는 경우 내는 세금보다 받는 배당금이 더 커서 순수혜자가 되는 국민의 비율이 90%가 넘을 것이라는 추계가 이미 나와 있다. 이 순수혜자들은 소수가 벌일 조세저항을 잠재울 강력한 방파제 역할을 할 것이다.
다음 대통령은 취임 즉시 국토보유세 도입 방침을 밝히고 이를 6개월 이내에 입법화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처럼 차일피일 미루다가 극소수를 대상으로 핀셋 증세하는 정도로 그칠 경우,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사실 다음 정권은 국토보유세 도입만 성공하더라도 '역사에 남을 개혁 정권'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처럼 부동산 조세를 경기조절용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또 그것을 투기꾼에게 부과하는 '벌금'처럼 취급해서도 안 된다. 불로소득 경제 시스템을 혁파해 정의롭고 활력 넘치는 경제를 건설하기 위한 백년대계의 하나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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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오후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부동산 부패 청산, 제7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1.3.29 | |
ⓒ 청와대 제공 |
정권 출범 1년 안에 끝내야
넷째, 다음 대통령은 국가의 주택공급 역량을 장기공공임대주택과 토지임대부 주택의 공급에 집중해야 한다. 민간에게 분양할 주택은 민간 건설업체에 맡기는 것이 옳다. 박정희 정권이 대한주택공사를 설립해 분양주택을 대량 공급하기 시작한 이래 한국의 주택 관련 공기업은 분양주택 공급에 주력해 왔다. 국가가 무슨 이유로 사적 재화 공급에 그렇게 힘을 쏟아 왔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주택은 가치재(시장에 맡기면 소비가 적정 수준에 미달하게 되는 재화로 국가가 그 생산과 소비를 권장하는 일이 잦다)라서 그렇다고 하는 답이 나오겠지만, 그렇다고 분양주택 공급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가치재라서 국가가 직접 공급한다면 분양주택이 아니라 공공임대주택과 토지임대부 주택 등 공공성이 높은 주택의 공급에 주력하는 것이 옳다.
게다가 과거의 토지공사나 주택공사 그리고 현재의 토지주택공사(LH)는 민간의 사유지를 강제수용해서 공공택지를 조성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해 왔다. 민간의 사유지를 수용한다는 것은 그 후의 과정이 고도의 공공성을 가질 것임을 전제해야 하는데도, 지난 수십 년간 공사들은 땅을 팔거나 집을 지은 다음 땅과 건물을 파는 짓을 아무렇지 않게 해왔다.
물론 명분은 있다. 땅장사, 집장사로 얻는 수익을 공공임대주택 건설에 투입한다는 교차 보조의 논리다. 하지만 그 명분을 정당화하기에는 지금까지 건설한 공공임대주택 재고가 너무 적다(2019년 기준으로 한국의 장기공공임대주택 재고 비율은 4.4%로 OECD 평균 수준인 8%에 크게 미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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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일 오후 경남 진주시 충무공동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로 사람이 이동하고 있다. 2021.3.3 | |
ⓒ 연합뉴스 |
따라서 다음 대통령은 정부와 공기업이 공공성 높은 주택의 공급이라는 국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앞으로 LH가 더 이상 땅장사하지 못하도록 못을 박아야 한다. 기존의 국공유지나 새로 조성하는 공공택지는 가능한 한 국공유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공유지 비율을 다른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토지비축 제도를 활성화하는 일도 중요하다. 현행 LH가 이 임무에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이 들면 과감하게 조직 개편을 해야 한다. 국공유지 임대와 공공임대주택 및 토지임대부 주택의 공급과 관리를 전담할 토지주택청을 신설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당부하자면, 국가 근간을 바꾸는 대개혁은 정권 출범 1년 안에 해내야 한다. 그 시기를 놓치면 개혁은 기대난망이다. 나는 다음 대통령이 부동산 정책에서 문재인 대통령처럼 참담하게 실패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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