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기자회견서 강한 어조로 조선일보 비판하며 “선거에서 손 떼라”
- 정철운 기자 pierce@mediatoday.co.k
- 승인 2021.09.16 12:54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과 대한민국 대통령선거에서 손을 떼세요. 정치개입하지 마십쇼.”
조선일보가 단독 보도한 ‘대장지구 개발사업 특혜의혹’과 관련해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14일 “대장동 개발은 민간개발 특혜 사업을 막고 5503억원을 시민 이익으로 환수한 모범적 공익사업”이라고 반박하며 던진 말이다.
이 같은 이재명 지사 발언은 2002년 4월6일 새천년민주당 인천지역 국민경선 당시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경선 후보의 연설을 떠올리게 한다. “제 장인은 좌익 활동을 하다 돌아가셨다. 제가 결혼하기 훨씬 전 돌아가셨는데, 저는 이 사실을 알고 아내와 결혼했다. 이런 아내를 제가 버려야 하나?”라는 발언으로 유명한 당시 연설에서 노무현 후보는 이렇게 외쳤다.
“언론에게 고개 숙이고 비굴하게 굴복하는 대통령이 되지 않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동아, 조선은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십시오.”
이재명 지사가 과거 노무현 후보를 떠올리게 하는 공세적 화법으로 위기를 돌파하려는 모양새다.
실제 14일 이재명 지사 발언은 수위가 높았다. 이 지사는 “조선일보, 대한민국 최고부수를 자랑하는 전통 중앙일간지 아닌가”라고 묻는가 하면 “고등 교육받은 사람이 쓴 거 맞나”라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이 지사는 “사돈팔촌식 이렇게 (엮으려) 하지 말고, 같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더라, 이렇게 쓰는 게 훨씬 낫지 않나”라며 조선일보 의혹보도가 터무니없다는 주장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 지사는 이어 “저를 인터뷰했던 기자가 훗날 화천대유 대표가 되었다, 그래서 의심된다(는 보도인데), 오늘 여기 취재하신 기자분들, 앞으로 절대로 저와 관계된 사업 하지 마시기 바란다. 조선일보가 또 쓸 거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어 “이게 이 나라…하아…정말 말 안 하려고 했는데 해도 해도 너무하는 것 아닌가”라며 불편한 감정을 평소보다 더 여과없이 드러냈다.
이 지사는 이날 “민주주의를 지키라고 특별히 보호되는 특권을 이용해 가짜뉴스 만들어서 정치적으로 개입하고 특정 후보 불리하게 공격하고 이렇게 해서 민주주의 절차를 훼손하는 것은 중범죄 행위다. 민주주의 지키라고 주어진 특권을 헌법 질서 파괴하고 대의정치를 훼손하는데 쓰면 엄정하게 제재해야 한다. 이런 게 징벌배상의 사유다. 이러니까 국민들이 징벌 배상하라고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어조는 노무현 후보를 떠올리게 하기 충분하다. 2002년 4월6일 국민경선 연설에서 노무현 후보는 “음모론, 색깔론, 근거 없는 모략 이제 중단해 달라. 한나라당과 조선일보가 합창해서 입을 맞춰 저를 헐뜯는 것을 방어하기도 참 힘이 든다”고 했으며 “지난 10년간 정치하면서 언론에 굽실거리지 않고 당당히 맞서 수구언론으로부터도 철저한 검증을 받아왔다”고 주장했다.
노무현 후보는 민주당 상임고문이던 2001년 월간 ‘말’ 8월호 ‘내가 조선일보와 싸우는 이유’라는 기고를 통해 대선 전부터 조선일보와 ‘전면전’을 선포했다. 노무현 고문은 “조선일보는 자신의 의도에 맞추기 위해 사실을 왜곡‧조작해 보도하는 것을 밥 먹듯이 한다. 조선일보 기사와 사설은 건전한 상식이 아니라 자신들의 편견, 심지어는 특정 정파적 이해를 대변하는 차원에서 쓰여지고 있다. 스스로 언론이길 포기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노무현 고문은 “조선일보는 의도를 가지고 치밀한 계획 아래 정치를 좌지우지하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권력을 창출하려 한다. 특정 정치세력과의 유착을 통해 정권을 창출하는 데 기여함으로써 한 차원 높은 권언유착을 현실화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정치권력은 국민이 선택하는 것이지 언론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권력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국민 위에 군림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노무현 고문은 당시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의 관계를 가리켜 “조선일보가 한나라당 기관지인지, 이회창 총재가 조선일보 대변인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라고 꼬집으면서 “조선일보의 사주는 지금 ‘언론의 자유’가 마치 ‘언론사주의 자유’와 동의어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노무현 후보는 ‘1등신문’ 조선일보와 맞서며 개혁적 이미지를 각인시켰고, 결국 ‘노풍’을 일으키며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재명 지사의 지난 14일 발언은 향후 자신을 향한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의 의혹 보도에 이 지사가 어떻게 대응할지를 짐작하게끔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하는 對조선일보 강경화법은 의혹에 대한 반박과 함께 민주당 내 전통지지층을 결집시키는 효과도 노린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사회적으로 ‘개혁의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는 언론과 날을 세우면서, 자신의 개혁적 이미지를 선명하게 강조하려 했을 수도 있다.
이재명 지사는 이날 “대선후보인 저에 대한 견강부회식 마타도어 보도는 공직선거법이 정한 후보자비방죄에 해당한다. 조선일보는 언론의 선거중립의무를 상기하고 정론직필하시고, 경선과 대선개입을 즉각 중단하라”고 경고했다. 이재명 지사로서는 상황에 따라 조선일보를 겨냥한 비판의 수위를 더욱 높일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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