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사는 길] "한국의 탄소감축정책은 역진하고 있다"
해를 이어 산림 화재를 경험하고 있는 시베리아, 기록적인 50℃ 기온을 경험한 남·북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대륙과 폭염과 더불어 대홍수 피해를 본 유럽과 아시아 등 전 세계적으로 이상기후가 휘몰아쳤다. 결국 올해 7월은 지표면 온도 관측이 시작된 1880년 이래 가장 뜨거운 16.73℃를 기록(20세기 평균 15.8℃보다 0.93℃ 높은 온도)했다는 보고가 미국 해양대기청(NOAA)에서 나왔다. 그리고, '이젠 탄소 감축의 문제에서 생존의 문제가 됐네….' 기후변화가 정치 의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라고 느꼈던 사람이라면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보고서가 나왔다. 지난 8월 9일 IPCC가 '6차 (기후변화)평가보고서 제1실무그룹 보고서'를 승인한 것이다. 보고서의 요지는 '지구가 생태적 파국 없이 감당할 수 있는 기온상승한계 1.5℃ 돌파 시한이 지난 2018년 나온 '1.5℃ 특별보고서'의 예측보다 10년 이상 빨라졌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오는 11월 영국에서 개회될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의 논의기반이 될 것이다.
1.5℃ 이내의 기후변화 억제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남은 탄소예산은 300Gt뿐이다. 이조차도 100% 확실한 게 아니고 약 83%의 확률로 억제할 수 있는 배출량일 뿐이다. 게다가 전 세계가 극적으로 탄소 배출을 줄여서 2050년 탄소중립을 이루더라도 1.5℃ 기후변화는 불가피하다. 2040년 무렵 지구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1.5℃ 상승할 게 확실하고 이 기온변화를 다시 정상으로 돌리는 데만 최소 30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1.5℃ 기온상승은 지구의 생태적 파국을 피하고 인간과 자연이 적응할 수 있는 최소 기온변화일 뿐 피해가 없는 기후변화인 건 아니다. 그것이 산업혁명 이래 오늘날까지(1850~2019) 이미 인류가 배출한 탄소 2390Gt이 불러온 결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0년 세계 총탄소배출량은 34Gt(단위 CO₂eq, 이산화탄소환산톤)에 달한다. 이런 규모의 탄소배출은 1.5℃ 기후변화 통제목표를 아득히 초과하는 것으로 탄소예산 완전 소비까지 10년이 채 걸리지 않는 규모와 속도다.
말 그대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지구촌 기후정치의 근간은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가 합의한 신기후체제이다. 각국의 탄소감축계획(NDC)을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얼개로 짜였다. 문제는 각국 NDC의 총합 또한 이미 1.5℃ 목표를 아득히 추월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 강화된 감축계획이 필요한 마당이다. 이러한 인식 아래 유럽을 선두로 산업에 더 직접적인 탄소감축을 요구하는 제도 도입이 이어지고 있다. 유럽연합은 지난 6월 28일 기존 목표보다 15% 상향된 탄소감축목표(1990년 대비 55%)를 설정하고 2050년 탄소중립을 명문화한 '기후기본법'을 제정한 데 이어, 7월 14일에는 이 법의 하위 실행법에 해당하는 발전, 제조, 이동과 수송 부문의 12개 법안(Fit for 55)의 시행을 밝혔다. Fit for 55는 이미 탄소감축 이행수단으로 널리 쓰이는 '배출권거래제(ETS; 기업 간 탄소배출권 매매제도)'의 강화(무료 할당량 단계적 축소)와 '탄소국경세(CBAM; 유럽연합의 탄소배출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한 국가의 수출제품에 유럽연합 역내 생산제품과의 탄소비용 차액을 관세로 부과)'의 신설(2026 시행 예정) 등 시장기제와 행정기제를 망라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유럽에 수출하는 국가들의 기업들은 정부로부터 무료 할당받은 탄소배출권에 대해서 추가 관세를 물어야 하고 생산에 재생에너지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그 부분도 추가 관세를 물게 된다. 자신들의 탄소감축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국가의 수출품에 관세를 매겨 유럽연합 내부 생산제품의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고 교역 관계가 있는 유럽 이외 지역의 탄소감축도 강제하는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적어도 일방적인 '사다리 걷어차기(선발 국가의 후발 국가 성장을 막는 제도적 장벽의 도입)'로만 볼 수 없는 명분이 있는 것이다.
#2. 역진하는 한국 기후정치의 풍경
유럽연합의 전향적인 정책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 탄소감축정책은 역진하는 중이다. 지난 8월 6일 민관 공동으로 설립된 '2050 탄소중립위원회'가 3개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을 공개했다. 2개의 시나리오는 아예 2050 목표연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지 못하는 안이고 1개 시나리오만 탄소중립이 가능했다. 탄소중립 목표연도인 2050년 이후까지 석탄화력 7기와 LNG화력발전을 유지(1안)하거나, 석탄화력은 퇴출하되 LNG화력발전은 유지(2안)하는 시나리오가 어떻게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위원회로서는 각 행정부처가 산업계 등 주요 탄소 배출처에서 제출된 자료를 받아 국가계획에 대비해 판단 후 정리해 제출한 전달한 자료를 종합정리한 것이니 사실상 탄소중립 달성 불가 2개 시나리오가 한국 산업계와 행정부의 '진심'에 가까운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1개 시나리오에도 문제는 있다. 석탄화력발전과 내연기관 자동차의 퇴출 등 탄소중립을 위한 핵심과제의 완료 시점이 명기되지 않은 그저 선언에 가까운 시나리오이기 때문이다.
한편, 지난 8월 1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여당(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야당 의원들이 반발해 퇴장한 야간에 '2050 탄소중립'과 '2018년 배출량 7억2760만t 대비 35% 감축목표(구체적 목표 수치는 대통령령에 위임, 2030 NDC 목표로 삼게 된다)'를 담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녹색성장법'을 단독 처리했다. 이 법에 담긴 감축목표는 IPCC가 제시한 각국 NDC 기준목표인 '2010년 대비 45% 감축'에 턱없이 미달한다. 그저 기존 '녹색성장법'에 2050 탄소중립 목표만 집어넣어 개명한 대체입법인 것이다.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와 2030 탄소감축목표가 명시된 탄소중립 녹색성장법 결의 과정에서 정부여당이 보여준 탈석탄, 내연기관 퇴출에 관한 정책 의지 박약과 더불어 더욱 문제적인 것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보여주는 이중성이다. 국내 신규 핵발전소 건설은 불허해도 수출은 장려한다(5.21. 문재인 대통령 방미 한미정상 공동성명)거나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사업 연구비를 지원하는 일(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21년 대통령 업무보고)들은 기후위기 대응에 핵의 역할을 대대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보수야당과 핵산업계의 주장에 동조하는 결과를 불러올 뿐이다. 수출해도 되는 핵발전소를 내수시장에서도 확대하지 않을 논리적인 이유가 없고 발전과정만 보면 저탄소인 핵발전으로 석탄화력과 가스화력발전을 대체하지 않을 논리적인 이유 또한 없기 때문이다. 이 논리를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예를 들어 거부하면 안전하지 않은 핵발전소 수출을 지원하는 정부라는 프레임에 걸린다. 그러니 원자로 규모만 줄인 SMR을 핵의 위험성도 줄인 신기술인양 포장하는 꼼수를 쓸 수밖에 없다.
기후파국을 피할 시간이 10년밖에 남지 않은 현재, 유럽연합을 위시해 한국의 NDC 수준을 훨씬 넘는 전향적 탄소감축목표를 세우고 실행에 나선 소위 '선진국'들의 탄소감축 규모와 속도는 이미 개도국을 벗어나 '선진국이 된 우리나라(유엔무역개발회의는 지난 7월 5일 68차 이사회에서 한국의 지위를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공식 변경했다)'에겐 반드시 좇아가야 할 과제가 됐다. 국력에 훨씬 못 미치는 NDC의 수준은 전 세계 기후정치권과 시민사회로부터 '기후악당국가'라고 불리는 직접적 원인이다. 아직까지 우리나라 공식 국가감축목표는 '2030년에 2017년 배출량 대비 24.4% 감축'이다. 하지만 오는 11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는 이전보다 상향된 국가감축목표를 제출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여당이 내놓은 안은 녹색성장법 대체입법에 담긴 '2030년에 2018년 배출량 대비 35% 감축'에 불과하다. 위기의 심각성에 비해 심각하게 안이하고 그만큼 국내 산업계의 형편을 봐준 이기적인 감축목표다.
#3. 기후위기의 현실을 살아가기 위하여
후기산업주의의 질서와 변화를 연구해 탁월한 성과를 남긴 역사가이자 사회발전론 연구자인 루이스 멈포드(Lewis Mumford)는 1930~1970년대에 이르는 일련의 연구를 통해 '신·구 에너지체제는 경쟁을 통해 전환한다'고 갈파했다. 오늘날 한국의 기후변화 대응 감축정책을 보면 구 화석연료체제가 신 재생에너지체제의 성장을 정치와 제도의 관성으로 억누르는 상황이다. 총론에서 전환의 당위성과 방향에는 동의하지만, 각론에서 구 에너지체제를 옹호하는 정책 현실은 2030년 이후 닥칠 피할 수 없는 기후변화의 증강된 후폭풍을 재촉할 뿐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국가가 대변하고자 애쓰는 산업계는 물론 개별 국민, 특별히 사회적 약자들에게 집중될 것이다.
21세기 중반까지 향후 100년간의 지구 미래를 예측한 저서, <성장의 한계>(1972) 공동 저자인 미래학자 요르겐 렌더스는 지나온 40년을 돌아보고 다시 40년 뒤(2052년)의 미래를 다룬 저서 <더 나은 미래는 쉽게 오지 않는다>(2012)를 통해 지구의 생태총량을 초과한 경제활동과 기후변화의 영향 아래 국가와 정책의 실패로 더 살기 어려워진 미래를 예측하고 그 미래를 살아갈 개인들에게 기후위기 시대의 20가지 적응 방법을 제안했다. 그 제안의 핵심은 기후위기와 중첩된 사회경제적 성장의 한계를 인정하고 이기적이지만 영리하게 국적, 거주지, 직업, 자녀교육, 투자를 '성장의 한계가 뚜렷한 곳에서 덜 뚜렷한 곳으로 바꾸라'는 것이었다. 임박한 재난과 함께 살 생각을 하라는 권유다. 기후위기는 이제 회피하기 어려운 현실이자 미래다.
국가, 공권력의 무능과 산업계를 중심으로 한 자본의 이기주의는 21세기 중반에도 여전히 살아남아 생활해야 할 개별 시민들과 자연생태계의 생명들에게 치명적이다. 아직 우리에겐 시간이 있다고 말하기엔 너무나 촉박한 일정이다. 인류는 10년 이내에 지금보다 최소한 9분의 1 수준으로 탄소를 감축하고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는 대대적인 전환을 실천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올해 생태발자국 초과일은 지난 4월 5일이었다. 12월 31일까지 써야 할 생태예산을 8개월 앞당겨 탕진한 셈이다. 이러한 '초과'가 계속되면 결국 인출할 잔고가 마르고 그 순간 지구의 생태적 파산이 찾아온다. 기후위기는 생태발자국 초과의 결과이자 가속기제다.
이기적 개인으로 기후위기시대에 생활과 생존을 시험받을 것인지 지금 당장 국가와 산업의 에너지 체제 전환을 재촉하는 적극적 기후행동가가 될 것인지 2021년 가을, 우리는 절박한 질문 앞에 서 있다. 이기적 생활자로 살아남고자 한다면 한순간이라도 빨리 요르겐 랜더스의 조언을 실천해야 한다. 지구와의 공존을 선택한 기후행동가로 나서고자 한다면 당장 비영리 기후행동단체(시민사회단체) 회원이 되어 정치와 자본의 전환을 요구하는 시민참여행동을 시작해야 한다. 다행히 개별적 생활자와 기후행동가의 삶은 분리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당장 오늘부터 미래를 연습해야 한다. 기후위기를 완화하면서 동시에 그 위기에 적응하는 삶을 앞당겨야 하는 것이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91313413014655#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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