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저널리즘] 이번 대선에서 지역언론이 꼭 집요하게 던져야 할 질문
- 노광준 전 경기방송 PD media@mediatoday.co.kr
- 승인 2021.09.19 08:59
며칠전 일이다. 아침에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내가 일하는 층에서 확진자가 나왔으니 오늘은 나오지말고 코로나19 검사부터 받으라고. 큰 일 났구나 싶어 바로 가까운 보건소로 향했다. 검사받는 일이 한 두번이 아니기에 나는 수원시내 여러 보건소 중 가장 인적이 뜸한 보건소로 차를 몰고 갔는데, 세상에, 오전 9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 이미 인산인해였다. 검사를 기다리는 줄이 길게 늘어져서 건물을 빙빙 돌고 있었고, 주차를 하려고 늘어선 차량조차 줄을 섰다. 서울 양재에서의 경험이 떠올랐다. 무심코 줄을 섰는데 자그마치 1시간 반을 기다렸다. 여기선 안되겠구나, 하는 직감이 왔기에 나는 3시간 뒤로 예정된 지역출장지로 가서 그곳에서 코로나 검사부터 받기로 했다.
출장지는 여주였다. 쌀의 고장인 여주는 경기도, 즉 수도권에 속해있고 지하철도 연결돼 있다. 지하철을 타고 두시간 뒤 여주에 도착했는데, 이 곳에서 또 한번 ‘세상에~’를 외칠 수 밖에 없었다. 여주의 코로나 검사장은 완전히 딴 세상이었다. 기다리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곧바로 검사를 받을 수 있었고 검사도 원칙대로 구강검사 한번, 코 검사 한번 두 번을 받았다. 검사결과는 만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나왔다. 불과 두 시간 사이에 완전히 다른 세상을 경험한 것이다. 인구가 폭발해 뭘해도 줄서서 기다려야하는 ‘대도시’라는 세상과 인구가 소멸해 뭘해도 텅빈 의자만 덩그러니 있는 ‘농촌’이라는 세상…
두려웠다. 지금도 떠오른다. 사람 한 명 없이 빈 의자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농촌 검사소의 풍경… 만일 내가 간 곳이 여주같은 경기도 농촌이 아니라 비수도권 농촌이었다면 어땠을까?
며칠 뒤 난 다시 한번 ‘세상에~’를 외쳤다. 여주에서 영감을 얻어 ‘대선주자들의 농촌공약, 지역소멸 대안’에 관한 비교기사를 준비하던 중이었다. 난타전을 벌이고 있는 집권여당 예비후보들의 블로그와 관련 보도를 취합해봤는데, 딱 한 후보를 제외하고는 이렇다할 공약조차 없었다. 이재명 지사의 농업농촌기본소득은 재원조달이나 실효성 논란과는 별개로 일단 지역소멸을 심각하게 보고 관련 대안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평가할만 하다.
다른 후보들은 아쉽게도 이렇다할 공약이 보이지 않았다. 다들 나도 시골출신, 농촌 출신, 나아가 농민의 자식이라고 말은 하지만 투표전략지역에 이런 도로 저런 철도망 깔고 이러저러한 산업단지를 유치하겠다는 ‘회색 인프라’ 개발 공약을 제외하고는 도대체 어떻게 농촌에 사람이 살게 하겠다는건지 지역의 인구소멸에 관한 진지한 대안이 보이지 않았다. 비교 자체가 힘들었다. 야당은 어떨까?
지역은 이제 위기를 넘어서 ‘소멸’의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래서 지역언론이 질문 해야한다. 집요하게 해야한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 나선 여야의 모든 후보들에게 우리 지역에 뭘 지어줄거요, 가 아니라 어떻게 사람이 살게할건지 지역소멸에 대한 당신의 공약은 무언지 묻고 또 물어야한다.
당장 표를 모아야하는 정치인들에게 농촌이나 지역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도로나 건물같은 회색인프라도 아닌 먼 미래에 빛을 보게될 농촌이나 어촌, 산림, 공원과 습지라는 ‘녹색 인프라’ 정책은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릴 것이다.
160여년전 미국도 그랬다. 격자형으로 설계한 뉴욕이라는 신도시 한가운데에 무려 백만평 규모의 공원을 만들겠다는 안이 나왔을 때 격렬한 찬반논의가 붙었다. 시장 선거의 첨예한 화두가 될 정도였다. 그 때 옴스테드라는 조경전문가가 나서 정치권과 시민들을 설득하며 ‘센트럴 파크(Central Park)’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지금 센트럴파크는 뉴욕의 상징이자 시민들의 휴식처로 연간 5억달러가 넘는 수입을 올리고 있다.
우리나라에 옴스테드같은 천재들이 없을까? 더 많을 지도 모른다. 물꼬만 터져준다면. 그래서 지역언론의 질문이 중요하다. 백년 후 이 나라의 녹색미래를 설계한다는 사명감으로 지역소멸에 대한 강도높은 대안을 요구하자. 지금밖에는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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