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 학술토론회..100년의 숙제 풀자
- 이승현 기자
- 입력 2021.09.06 22:58
- 수정 2021.09.07 09:02
- 댓글 1
100년 전 일본 도쿄 일대에서 발생한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진상규명을 위한 학술토론회가 6일 국회에서 열렸다.
시민모임 독립(이사장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은 6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제1간담회의실에서 1923년 9월 발생한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과 박열·가네코 후미코가 연루된 이른바 '대역사건'을 주제로 학술토론회를 진행했다.
이만열 이사장이 기조발제를 하고 김명섭 단국대 연구교수(1923년 간토 조선인대학살과 '대역사건')와 김진웅 성균관대 사학과 박사과정 수료(가네코 후미코의 아나키즘 실천과 대역사건의 탄생), 이규수 히토쓰바시대학 교수(간토대지진과 조선인학살, 그리고 후세 다쓰지)가 그간 국내외 연구성과를 두루 망라해 발표했다. 또 김인덕 청암대 교수, 오지훈 박열의사기념관 학예연구사, 성주현 1923 제노사이드연구소 부소장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우원식·민형배·서동용 국회의원들은 그동안 미진했던 △정부와 국회 차원의 진상규명 △폐기된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안 제정 △사건발생일인 9월 1일 국가추모일 지정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학술토론회에서는 무엇보다 곧 100년이 되는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과 대역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이 절실함을 확인했다.
이 이사장은 "진실을 캐서 한일간의 큰 수렁을 메워가자는 것인데, 아직 미흡한 상태"라고 하면서 "시민단체가 나서 국회와 정부를 움직이고, 일본에서도 진실의 윤곽이 밝혀지고, 이로 인해 서로 화해하고 용서하며 새로운 한일관계를 성립시키는 계기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 100주년을 화해와 용서의 시간으로 맞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이 이사장은 일제 강점기의 가장 중요한 연구과제인 '독립운동사'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적었던 탓에 "그동안 '1923년 간토 대지진 조선인학살과 대역사건'에 대해서는 한국 학계에서 주목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대역사건'도 의열단 운동과 관련해서는 더러 언급이 있지만 아나키스트 사상과 관련해서는 아직 한국 학계에서 만족할만한 연구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현재 고등학교 교과서 등에서 받아들이고 있는 6천여명 희생설은 간토 대학살 당시 중국 상하이에 있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기관지인 [독립신문] 사장 김승학이 나고야에 있던 한세복을 도쿄로 파견하여 조선인 학살 진상을 보고하도록 하여 1923년 12월 5일자에 6,651명이라는 숫자가 발표된 것을 근거로 하고 있다.
그러나 그해 12월 26일자 기사에서는 1923년 9월 1일부터 8일까지 동양미술 전공자로 일본에 체류중이던 독일인 브르크하르트 박사(Dr. Otto Bruchhardt)가 그해 10월 9일 보쉬체 신문(Vossische Zeitung)에 기고한 '한인에 대한 일본의 대량학살'을 인용해 '횡빈'(橫濱, 요코하마)에서만 1만5천명, 참살당한 전체 조선인은 2만여명까지 산정된다고 보도했다.
주목할 것은 북한에서 1980년대 초반 2만3천여명 피살설(조선전사 연표, 1983, 478쪽)을 주장했는데, 그 증거를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당시 독립신문에 보도된 부르크하르트의 기록을 참고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면서 좀 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이사장은 "오늘 이 토론회는 2년후면 100주년을 맞는 간토 대학살의 문제를 다시 환기시킴으로 100년간의 숙제로 되어 있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단서를 제공하고자 하는 데에 있다"며, "이를 계기로 그동안 잊어버리려고 노력해 온 이 비극의 역사를 정면으로 마주하여 해결하는 것이 역사에 책임있는 자세"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시민모임 독립은 2023년 간토 대지진과 조선인 학살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여 이 문제를 풀고 역사의 새 장을 열자는 의미에서 토론에 임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규수 교수는 현재 일본사회에서는 9월 1일을 '방재의 날'로 지정해 자연재해의 공포를 상기하는 날로만 지낼 뿐 조선인 대량학살이 자행된 역사에서 교훈을 찾는 움직임을 기대할 수 없다고 하면서 "조선인 학살 문제에 대해 외롭지만 꾸준하고 힘있게 문제를 제기해 온 재일 조선인과 양심적인 일본인의 운동을 거울삼아 새로운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이 교수는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사건 조사·고발, 박열·가네코 후미코 사건 변호 등에 진지하게 임했던 후세 다쓰지(布施辰治) 변호사를 소개하고는, 그와 같이 '1923년 9월 1일의 기억을 망각하지 않고 기억하는 자세가 연대의 시작'이며, '학살의 실태와 기억을 사회화시키고 전승하는 일이 100년을 맞이하는 올바른 방향일 것'이라고 말했다.
후세 다쓰지는 일찍이 2.8독립선언에 참가한 한국인 학생들을 변호했고, 전남 나주군 궁삼면 등 조선 소작쟁의 변호는 물론 해방 직후 '조선건국헌법초안'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등 공을 인정받아 2004년 일본인 최초로 한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을 수여받은 인물이다.
이 교수는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조선총독부에서 본국으로 보낸 일본 식민지배 관련 자료가 모여있는 곳은 경시청이며, 이곳 자료는 미군도 손대지 않았다"며, "우리 정부 차원에서 일본 당국의 사죄뿐만 아니라 경시청 소유 자료에 대한 공개, 또는 공동연구를 요구할 것"을 제안했다.
또 이 문제는 남한만의 문제가 아니므로 남과 북이 연대하고 재일 조선인사회, 그리고 일본 시민사회와 새로운 연대를 맺어 나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대역사건에 대해 발표한 김명섭 교수도 현재 박열·가네코 후미코의 법정진술 자료외에 검시자료 등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며 일본 당국의 자료공개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