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 상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해군 A중사(여·32)가 부모에게 2차 가해를 당한 사실을 털어놨던 것으로 13일 밝혀졌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인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이날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에서 A중사와 가족이 주고받았던 문자 내용을 공개했다.
A중사는 지난 3일 부모에게 보낸 문자에서 "일해야 하는데 (가해자가 나를) 자꾸 배제하고 그래서 우선 오늘 그냥 부대에 신고하려고 전화했다"며 "제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안 될 것 같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하 의원은 "가해자가 업무를 지시하는 직속 상관이었고, 같은 사무실에 있었다고 한다"며 "성추행 사건이 지난 5월 27일에 있었고 그 이후에도 같은 사무실에서 같이 있었는데 (피해자는) 업무상 따돌림을 당하고 일상적으로 스트레스를 계속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또 성폭력 가해자는 성추행 사건이 벌어진 다음 날 사과하겠다며 피해 여중사를 불러 술을 따르게 했는데, 피해자가 '업무 시간'이라며 이를 거부하자 '술을 따라주지 않으면 3년 동안 재수가 없을 것'이라며 악담을 퍼부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 의원은 "주임상사가 없던 일로 하려고 회유하려고 한 것으로 유족들은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 의원은 "(유가족은) 자랑스러운 해군으로서 11년간 국가에 충성한 대가가 고작 성추행과 은폐였냐며 분통을 터뜨렸다"며 "이 사건을 크게 공론화해 다시는 딸과 같은 피해자가 없길 바란다고도 했다"고 전했다.
"외부 노출 우려" 피해자 핑계로 후속 조처 미온적이었던 해군
이러한 2차 가해 의혹은 이날 해군이 발표한 내용에는 없는 것이었다.
이날 국방부와 해군에 따르면 지난 5월 24일 섬에 있는 해군기지에 부임한 A중사는 3일 뒤인 5월 27일 오후 같은 부대 B상사와 부대 인근에 있는 민간 식당에서 함께 늦은 점심식사를 했다.
당시 B상사는 "손금을 봐주겠다"며 1~2분간 A중사의 손을 만졌다. 또한 부대 복귀 과정에서도 A중사가 거듭 거부하는데도 이해할 수 없는 신체 접촉 시도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 직후 A중사는 예전에 같이 근무한 적이 있는 부대 주임상사에게 성추행 피해 사실을 알리며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국방부와 해군은 이 과정에서 A중사가 "사건이 일체 외부로 노출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이에 주임상사는 가해자 B상사를 불러 성추행 사실에 대해선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채 '행동거지를 조심하라'고 한 차례 주의를 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외부 노출'을 우려하는 A중사의 뜻을 존중한다는 이유로 성추행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가해자 분리 등 사실상 아무런 '후속 조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성추행 피해를 당한 뒤 그로 인한 불이익까지 걱정해야 하는 A중사의 곤란한 처지를 사건 '사건 은폐'의 명분으로 삼은 셈이다.
이에 대해 하 의원은 "세상에 알려지길 원하지 않은 것이지 피해자가 방치되는 상황을 원했던 건 아니다. 두 달 반 정도 지속적인 2차 가해가 매일매일 있었다고 본다"며 "국방부에 신고하기까지 기간이 가해의 연속이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A중사가 사건이 발생한 지 70여 일만인 이달 7일 피해 사실을 지휘부에 결국 알려 공론화하기로 결심한 것도 2차 피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와 해군은 기자들에게 설명할 때, 그 배경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국방부와 해군에 따르면 A중사는 당시 1차 지휘관인 감시대장(대위)과 면담에서 피해 사실을 밝혔다. 그리고 이틀 뒤인 9일 정식 신고했다.
그러면서 A중사는 도서 지역에서 육상으로 전출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소속 부대장은 지침에 따라서 A중사를 평택에 자리한 2함대 육상 근무부대로 파견조치했다. 그제야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 조처가 이뤄진 셈이다.
신고 다음 날인 10일 2함대 안 독신자숙소를 배정받은 A중사는 화장실 전등이 나갔다며 "전구를 교체해달라"고 부대에 요청했다. 그는 11일부터 18일까지 청원 휴가가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A중사는 심적 고통이 상당했는지 신고일인 9일부터 숨진 12일까지 성고충 상담관과 전화로 무려 8번을 통화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A씨는 숨진 채로 12일 전등을 교체하려고 들어간 이들에 의해 발견됐다. 해군은 "남긴 유서는 없다"며 "휴대전화 등을 포렌식해 수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해군은 "국방부 조사본부와 해군본부 군사경찰단 등 수사를 통해 엄정 조치하겠다"며 "과거 유사 성추행 여부, 추가 피해 호소 여부, 2차 가해 등을 수사할 것"이라고 향후 수사 방침을 설명했다.
유족은 해군에 "가해자에게 엄정하게 강력하게 처벌 조치를 해 달라"며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우리 아이가 마지막 피해자가 되도록 재발 방지를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앞서 부대장의 지시에 따라 수사에 돌입한 함대 수사대는 지난 10일 가해자 B상사를 함대로 불러 조사했고, 11일 B상사를 입건했다.
A중사 사망 후 2함대 사령관이 부석종 해군 참모총장에게 보고했고 참모총장은 장관에게 보고했다. 장관과 참모총장은 2차 가해 여부 등을 철저히 수사하고 피의자 신병을 확보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B상사를 상대로 구속영장이 신청됐다. 영장실질심사는 13일 열린다.
공군에 이어 해군에서 또...군 당국 안이한 대처 도마 위
한편 지난 5월 공군 성추행 피해 부사관 사망 사건에 대한 수사가 끝나기도 전에 비슷한 사건이 또 발생하면서 군 당국의 안이한 대처는 더욱 논란이 될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날 사건을 보고받은 뒤 격노하면서 "한치의 의혹이 없도록 국방부는 철저하고 엄정하게 수사하라"고 지시한 것도 이런 배경 탓으로 보인다.
서욱 국방부 장관도 "안 될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 유족과 국민들께 송구하다"며 "이와 관련해 사안의 엄중함을 고려해 국방부 조사본부와 해군 중앙수사대에 전문 인력으로 구성된 수사팀을 만들어 한 치 의혹 없는 수사를 진행해 유족과 언론에 소상히 밝히겠다"고 밝혔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이날 성명을 내고 "국방부가 공군 성추행 피해자 사망 사건 이후 이렇다할 방책을 뚜렷하게 내놓지 못한 채 다시 성폭력 피해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며 "일선에서 근무 중인 여군들은 또 한번 깊은 무력감, 조직이 더이상 우리를 보호하지 못한다는 절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임 소장은 "2013년 육군 여군 대위 성추행 사망사건, 2017년 해군 여군 대위 성추행 사망사건, 2021년 공군 여군 중사 사망사건, 그리고 2021년 8월 해군까지 도대체 얼마나 세상을 떠나야 '할 만큼의 조치를 다 했으니 소임은 다했다' 식의 문제 인식을 벗어날 것인가"라며 "피해자 중심주의에 입각한 성폭력 사건 지원 체계 개선은 지금 즉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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