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주간=김철환 활동가] 지난 15일 ‘문화역서울 284’(옛 서울역사)에서 제76주년 광복절 경축식이 열렸다. 경축식에 수어통역사도 배치됐다. 경축식에 수어통역사를 배치한 것은 관련 규정 때문인데, 지난 6월 이 규정이 개정되면서 모든 국가 기념일에 수어통역사를 배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럼에도 개선되지 않는 것이 있다. 수어통역사와 대통령과의 거리다. 문재인 대통령이 연설을 할 때 바로 옆 자리에 수어통역사가 배치된 적이 없었다. 대통령 후보 시절에는 선거유세에서 몇 번 있었지만 당선된 이후에는 없다.
광복절 경축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수어통역사가 배치되었지만 수어통역사와 대통령의 거리도 5m(미터) 정도였다. 그나마 행사가 축소됐기에 그 만큼이라도 거리가 좁혀진 것이다.
일반적으로 연설자와 수어통역사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농인들은 거리감을 느낀다. 그래서 수어통역사는 연설자의 표정 등을 농인이 잘 볼 수 있도록 연설자 가까이에서 통역을 한다. 광복절 경축식에 수어통역사를 배치했지만 이를 고려하지 않은 셈이다.
그래도 이정도 만이라도 고맙다 해야 할 입장이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연설할 때 수어통역사를 배치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초기부터 이러한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
대통령이 연설하는 곳이나 청와대 기자회견장인 춘추관에 수어통역사를 배치해야 한다고 장애인들은 주장해왔다. 주장을 넘어 국회를 통해 공식적인 의견을 청와대에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수용되지 않고 있다.
급기야 장애인단체(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가 청와대를 상대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진정을 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물론 ‘한국수화언어법’이 시행되고 있는 만큼 청와대의 정보나 대통령의 연설을 장애인의 눈높이에서 볼 권리가 있기에 대통령의 연설이나 청와대 대변인의 기자회견에도 수어통역사를 배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차별진정에 청와대는 유보적인 입장을 보여 왔다. ‘대통령의 연설을 방송사가 중계하면서 방송사의 수어통역사가 통역을 하고 있고, 춘추관의 경우 수어통역사 배치를 위해 인력충원 등 예산배정이 필요한 만큼 관련 부서와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는 장애인단체의 의견을 수용해 지난해 12월 청와대에 의견표명을 했다. ‘청와대의 주요 연설을 중계하거나 연설 영상을 홈페이지에 게시할 때에 농인들의 실질적인 정보접근을 보장하기 위하여 수어통역을 제공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의견 표명이 나간 지 반년이 넘었지만 청와대는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의 일부 영상에 수어통역을 넣었을 뿐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연설을 하거나 춘추관에서 대변인이 브리핑을 할 때 수어통역사를 세우지는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초기 탈권위적(脫權威的)인 모습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소방관들에게 커피를 따라주거나 등산로에서 시민들과 대화를 하는 등 이전 대통령들에게서 보지 못했던 소탈함을 보였다.
하지만 수어통역과 관련해서는 다른 모습을 보여 왔다. 연설하는 대통령의 옆에 수어통역사가 없거나 수어통역사가 있더라도 거리는 멀었다. 이처럼 수화통역사와 대통령과의 좁혀지지 않는 간격은 대통령이 보였던 탈권위(脫權威)와 다른 모습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사람이 먼저다.’를 강조해왔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이 이러한 약속은 지키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연설하는 곳에는 수어통역사가 함께해야 한다. 청와대 춘추관에도 수어통역사를 배치하고, 청와대 홈페이지를 장애인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하여 수어통역사와 대통령, 청와대와의 거리를 좁혀가야 한다. 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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