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의 새벽에 문득]
참여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 언론계와 정치권은 '취재지원시스템선진화 방안'을 놓고 시끌벅적했다. 각 정부 부처 건물 안의 기자실을 없애고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등 3곳의 합동브리핑센터로 통합하는 것 등을 뼈대로 하는 정부 방침에 언론계가 반발하고 정치권이 가세해 정치적·이념적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요즘 현안으로 떠오른 언론중재법 개정안 논란과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다.
우선 시기적으로 대선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시점이어서 정치 싸움이 더 격렬하게 벌어졌다. 야당의 차기 대선 주자들도 가세해 정부 방침을 성토했다. "언론자유 탄압" "언론 재갈 물리기" "국민의 알권리 침해"…. 요즘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놓고 쏟아져 나오는 비판과 똑같은 레퍼토리의 성토가 이어졌다.
언론계는 그때나 지금이나 정부 방침에 크게 반발했다. 언론 성향에 따라 온도 차이는 있었지만 대체로 언론계는 부정적 기류가 강했다. 취재지원선진화 방안은 관·언 유착관계의 개선, 기존 언론들의 기득권과 특혜 폐지, 부처별 출입기자 제도의 부작용 해소 등 긍정적인 면도 적지 않았으나, 주요 언론단체는 물론 일선기자들까지 나서서 "취재 기회의 봉쇄" 우려를 제기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언론학자들 중에는 정부의 '선의와 개혁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정부의 강행 방침에는 대체로 우려를 표시하는 분위기였다.
언론계와 정치권의 뜨거운 공방에 비하면 국민의 관심은 그리 높지 않았다. 이런 사안의 특성상 '피해자'를 자처하는 사람은 많지만 자신을 '수혜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기자실 폐지나 언론중재법 개정이나 모두 마찬가지로 그런 정책 변화로 자신들의 이익이 당장 증대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적극적 반대층은 있어도 적극적 지지층은 형성되기 어려운 이유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두고 "다수 국민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찬성하는 현실에 대해 언론계는 진지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처럼 당시에도 "언론의 자기 성찰이 없다"고 꼬집는 냉소적 분위기 역시 적지 않았다.
그런데 더 유의해서 보아야 할 대목은 그 결말이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는 선거 기간중 "기자 프렌들리"를 내세우며 "집권하면 기자실을 원상복구하겠다"고 약속했고, 대선이 끝나자 기자실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그런데 '엠비 시대'의 '기자 프렌들리'는 정권의 뜻에 맞는 기자들과의 프렌들리였다. 2008년 YTN 기자 6명이 이명박 후보 특보 출신인 구본홍 사장 선임에 반대하다가 해직됐고, 그로부터 몇 년 뒤 문화방송에서도 김재철 사장 체제의 불공정 방송에 항의하는 장기 파업 끝에 기자 수십여명이 해고와 징계 처분을 받았다. 취재지원선진화 방안을 "언론탄압"이라고 비난했던 정치세력이 오히려 정권을 잡자 언론탄압에 앞장선 것이다. 그리고 언론자유를 그렇게 목놓아 부르짖던 보수신문들은 동료 언론인의 해직 사태에 침묵으로 동조했다.
최근 언론중재법 개정안 철회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해 언론에 오르내리는 세계신문협회(WAN)의 움직임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세계신문협회는 취재지원선진화 방안에 항의하는 서한을 노무현 당시 대통령 앞으로 보냈다. 그러나 정작 기자들의 강제 해직 사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세계신문협회가 주로 한국 보수신문들의 의견을 들어 성명을 발표한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세계신문협회의 입장 발표에 일희일비하거나 대단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이야기다.
또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공무원 조직의 행보다. 취재지원선진화 방안은 폐기됐으나 기자들의 취재원 접근을 제한하는 조처는 오히려 강화됐다. '취재 지원'이 아니라 '취재 제한'이 될 것이라는 기자들의 우려는 기자실 원상복구와 관계없이 현실로 나타났고, 행정정보 유통구조는 더 폐쇄적으로 바뀌었다.
취재지원선진화 방안에 대한 추억은 '언론개혁의 우선순위와 타이밍의 문제'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당시 언론개혁의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가 과연 기자실 폐쇄였을까? 대선을 앞둔 시점에 어쨌든 언론계의 집단적 반발을 부르는 행위는 정치적으로 현명한 선택이었나? 이런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런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내년 대선은 결과를 쉽게 예측하기 힘든 혼돈 상황이다. 예를 들어 현재 야권 대선후보 중 지지도 1위를 달리고 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 같은 사람이 집권하면 언론계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는 22일 기자회견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언론재갈법"이라고 비난했는데, 이명박 대선 후보가 취재지원선진화 방안을 "민주사회, 열린 사회에선 안 될 일"이라고 비판했던 모습과 오버랩된다. 게다가 윤 전 총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 검찰이 가장 쿨했다"는 말까지 한 사람이다. 문화방송 <피디수첩> 수사,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수사, 정연주 한국방송 사장의 배임 혐의 수사 등 무리한 정치적 수사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정신구조를 가진 사람이 집권하면 언론계에 다시 광풍이 몰아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언론개혁의 가장 핵심적 과제는 무엇보다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이다. 정부와 정치권의 개입을 차단해 정권의 향배와 관계없이 안정적이고 공정한 방송의 토대를 갖추는 것은 어떤 언론 과제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이 개혁과제는 지지부진 제자리걸음 속에 공회전을 거듭하고 있다. 여당이 언론중재법 개정안 국회 통과에 모든 힘을 소진하고 나면 더는 이 과제를 추동할 기력도 없어 보인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불거진 언론 관련 논란은 선거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정확한 산술적 계산은 불가능하지만 기자실 폐쇄 문제의 경우 대선에서 여권에 불리하게 작용했으면 작용했지 유리하게 작용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언론탄압' 프레임에 갇히면 여론지형은 여권에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2007년 9월 한국언론학회 주최로 열린 심포지엄에서 상당수 학자들은 "정책이라고 하는 것은 목표 설정 또는 동기의 순수성뿐 아니라 타이밍도 대단히 중요하다"고 지적했는데, 그 지적은 지금도 타당해 보인다.
'거둥길 닦아 놓으니까 깍정이가 먼저 지나간다'는 속담이 있다. 공들여 어떤 일을 해놓으니 생각지도 않았던 쪽이 활용하면서 애초의 기도는 물거품이 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언론중재법 개정안 중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 대상에서 고위공직자·기업을 배제하는 등 독소조항으로 지적돼 온 내용을 많이 손질했다. 그러나 여전히 우려는 가시지 않는다. 과거 경험을 보면 지금 "언론자유 침해"를 외치는 세력이 오히려 앞장서서 징벌적 손배제를 악의적·전략적 봉쇄 소송의 수단으로 악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엊그제 21일은 문화방송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뒤 복막암 판정을 받고 병마와 싸우다 숨진 고 이용마 기자의 2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그가 죽기 직전까지 부여잡고 고민하던 화두는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항구적이고 안정적인 방송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방안이었다. 그런데 그의 꿈은 아직도 미완의 상태에 머물러 있고 오히려 더 멀어지고만 있다. 그리고 이 시대는 온갖 위험한 징후를 안고 불안하게 달려가고 있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82308023255550#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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