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이른 죽음을 이르는 말
댓글 0 생명 있는 목숨들의 죽음은 슬프다. 천명을 누리지 못한 채 일찍 져버린 목숨이라면 더 슬프게 가슴에 와 박힌다. 그래서 요절(夭折)이라는 낱말은 언제나 안타까움이라는 감정을 동반한다. 만 스물여덟의 나이에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한 윤동주의 요절이 그렇고, 천재적인 재능을 충분히 펼치지 못한 채 만 스물다섯의 나이에 이승을 떠난 가수 유재하의 요절이 그렇다. 몇 살 이전에 죽어야 요절이라고 할까? 딱히 정해진 기준은 없는데, 요절에 해당하는 나이들을 가리키는 낱말이 국어사전에 있다.
중상(中殤): 12세부터 15세 사이에 죽음. 또는 그런 사람.
이 낱말을 보는 순간 상상(上殤)과 하상(下殤)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찾아보았더니 예상대로 두 낱말이 표제어로 올라 있다.
상상(上殤): 열다섯에서 스무 살 사이에 장가들지 않고 죽음. 또는 그런 사람.(=장상)
하상(下殤): 여덟 살에서 열세 살 사이의 나이에 일찍 죽음. 또는 그런 사람.
상(殤)은 스무 살 이전에 당하는 죽음을 이르는 한자이며, 상상(上殤)이라는 말도 쓰긴 했지만 그보다는 장상(長殤)이라는 말을 더 많이 썼다. 그런 사실보다 내 눈길을 끄는 건 중상과 상상에 걸쳐 있는 열다섯이라는 나이였다. 열다섯에 죽으면 상상이라고 해야 하는지 중상이라고 해야 하는지 셈이 서질 않았기 때문이다. 더 심한 건 중상과 하상에 함께 걸려 있는 나이였다. 열두 살과 열세 살을 중상과 하상 중 어디에 위치시켜야 할지 난감하지 않은가?
어린 나이의 죽음을 가리키는 용어는 중국 사람들이 만들었다. 위 용어들은 중국 고대에 관혼상제의 격식과 절차 등을 정리해서 기록한 『의례(儀禮)』 「상복전(喪服傳)」에 나오며, 그 후 명나라 때 나온 『주자가례(朱子家禮)』 등에도 그대로 원용되었다, 우리나라 역시 중국식 의례를 따랐으므로 위 용어들을 그대로 받아들여 썼다. 조선 시대에 신식(申湜)이 『주자가례』를 한글로 풀이한 책인 『가례언해(家禮諺解)』에 나오는 내용들이 그런 사실을 뒷받침한다. 그렇다면 어린 나이의 죽음을 굳이 몇 단계로 나눈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하는 의문을 가져볼 수 있다. 그건 나이에 따라 제사의 방식과 상복 입는 걸 달리했기 때문이다. 상상(上殤)의 풀이에서 장가들지 않고 죽은 사람을 가리킨다고 한 건, 장가를 들었으면 성인으로 쳐서 일반 상례에 따라 처리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부분은 국어사전에서 제시한 나이가 맞느냐 하는 점이다. 표준국어대사전과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이 똑같이 풀이하고 있는데, 둘 다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문헌에 따르면 상상은 열다섯 살이 아니라 열여섯 살부터고, 하상은 열세 살이 아니라 열한 살이다. 그래야 서로 나이가 겹치지 않으니 이치를 따질 것도 없이 너무 당연한 구분이다. 그런데 왜 이토록 자명한 사실을 놓치고 엉뚱한 나이를 가져왔을까?
이쯤에서 한 가지 더 의문을 떠올릴 수도 있다. 여덟 살 미만의 죽음을 가리키는 말은 없었을까 하는 점이다. 이에 해당하는 용어가 국어사전에 있다.
무복지상(無服之殤): 상복을 입지 아니하는, 일곱 살 이하의 어린아이의 죽음.
여기서는 다행히 정확한 나이를 제시했으며, 줄여서 무복상(無服殤)이라고도 하지만 이 말은 표제어에 없다. 너무 어린 나이의 죽음이라 상복을 입을 필요가 없다고 여겼으며, 그 위의 나이는 그래도 죽음에 대한 예를 갖춰 상복을 입도록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무복지상보다 더 가여운 죽음을 이르는 낱말로 요혼(夭昏)이라는 용어가 있는데, 국어사전에는 없다. 태어나서 이름을 짓기도 전에 죽은 경우 혹은 태어난 지 석 달 안에 죽었을 때 사용하는 용어다.
이른 죽음과 관련한 낱말 하나만 더 살펴보자.
팽상(彭殤): 오래 삶과 일찍 죽음.
상(殤)이 일찍 죽는 걸 가리키는 한자라는 사실은 위에서 밝혔으니 팽(彭)은 오래 산다는 뜻으로 쓰인 게 분명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팽(彭)을 옥편에서 찾으면 아무리 봐도 죽음과 관련한 뜻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팽(彭)이라는 한자를 끌어오게 된 다른 사유가 분명히 있을 거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중국의 옛 기록에 따르면 팽조(彭祖)라는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고대의 인물로 기공(氣功)과 양생법(養生法)에 능해 700살이 넘도록 살았다는 도인이다. 당연히 지어낸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테지만 장수한 인물로 동방삭(東方朔)과 함께 거론되는 가공의 인물이다. 팽상의 팽(彭)은 바로 팽조에서 가져왔다. 이런 사실을 국어사전 풀이에서 다뤄주면 안 되는 걸까? 친절한 국어사전을 바라는 게 나만의 욕심일지는 모르겠으나, 낱말이 형성된 이유를 밝혀주면 더 이해하기 쉽고 오래 기억할 수 있으리란 건 분명하다.
시인 (pih66@naver.com)
박일환 pih66@naver.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일환입력 2021.08.10 07:30생명 있는 목숨들의 죽음은 슬프다. 천명을 누리지 못한 채 일찍 져버린 목숨이라면 더 슬프게 가슴에 와 박힌다. 그래서 요절(夭折)이라는 낱말은 언제나 안타까움이라는 감정을 동반한다. 만 스물여덟의 나이에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한 윤동주의 요절이 그렇고, 천재적인 재능을 충분히 펼치지 못한 채 만 스물다섯의 나이에 이승을 떠난 가수 유재하의 요절이 그렇다. 몇 살 이전에 죽어야 요절이라고 할까? 딱히 정해진 기준은 없는데, 요절에 해당하는 나이들을 가리키는 낱말이 국어사전에 있다.
중상(中殤): 12세부터 15세 사이에 죽음. 또는 그런 사람.
이 낱말을 보는 순간 상상(上殤)과 하상(下殤)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찾아보았더니 예상대로 두 낱말이 표제어로 올라 있다.
상상(上殤): 열다섯에서 스무 살 사이에 장가들지 않고 죽음. 또는 그런 사람.(=장상)
하상(下殤): 여덟 살에서 열세 살 사이의 나이에 일찍 죽음. 또는 그런 사람.
상(殤)은 스무 살 이전에 당하는 죽음을 이르는 한자이며, 상상(上殤)이라는 말도 쓰긴 했지만 그보다는 장상(長殤)이라는 말을 더 많이 썼다. 그런 사실보다 내 눈길을 끄는 건 중상과 상상에 걸쳐 있는 열다섯이라는 나이였다. 열다섯에 죽으면 상상이라고 해야 하는지 중상이라고 해야 하는지 셈이 서질 않았기 때문이다. 더 심한 건 중상과 하상에 함께 걸려 있는 나이였다. 열두 살과 열세 살을 중상과 하상 중 어디에 위치시켜야 할지 난감하지 않은가?
어린 나이의 죽음을 가리키는 용어는 중국 사람들이 만들었다. 위 용어들은 중국 고대에 관혼상제의 격식과 절차 등을 정리해서 기록한 『의례(儀禮)』 「상복전(喪服傳)」에 나오며, 그 후 명나라 때 나온 『주자가례(朱子家禮)』 등에도 그대로 원용되었다, 우리나라 역시 중국식 의례를 따랐으므로 위 용어들을 그대로 받아들여 썼다. 조선 시대에 신식(申湜)이 『주자가례』를 한글로 풀이한 책인 『가례언해(家禮諺解)』에 나오는 내용들이 그런 사실을 뒷받침한다. 그렇다면 어린 나이의 죽음을 굳이 몇 단계로 나눈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하는 의문을 가져볼 수 있다. 그건 나이에 따라 제사의 방식과 상복 입는 걸 달리했기 때문이다. 상상(上殤)의 풀이에서 장가들지 않고 죽은 사람을 가리킨다고 한 건, 장가를 들었으면 성인으로 쳐서 일반 상례에 따라 처리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부분은 국어사전에서 제시한 나이가 맞느냐 하는 점이다. 표준국어대사전과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이 똑같이 풀이하고 있는데, 둘 다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문헌에 따르면 상상은 열다섯 살이 아니라 열여섯 살부터고, 하상은 열세 살이 아니라 열한 살이다. 그래야 서로 나이가 겹치지 않으니 이치를 따질 것도 없이 너무 당연한 구분이다. 그런데 왜 이토록 자명한 사실을 놓치고 엉뚱한 나이를 가져왔을까?
이쯤에서 한 가지 더 의문을 떠올릴 수도 있다. 여덟 살 미만의 죽음을 가리키는 말은 없었을까 하는 점이다. 이에 해당하는 용어가 국어사전에 있다.
무복지상(無服之殤): 상복을 입지 아니하는, 일곱 살 이하의 어린아이의 죽음.
여기서는 다행히 정확한 나이를 제시했으며, 줄여서 무복상(無服殤)이라고도 하지만 이 말은 표제어에 없다. 너무 어린 나이의 죽음이라 상복을 입을 필요가 없다고 여겼으며, 그 위의 나이는 그래도 죽음에 대한 예를 갖춰 상복을 입도록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무복지상보다 더 가여운 죽음을 이르는 낱말로 요혼(夭昏)이라는 용어가 있는데, 국어사전에는 없다. 태어나서 이름을 짓기도 전에 죽은 경우 혹은 태어난 지 석 달 안에 죽었을 때 사용하는 용어다.
이른 죽음과 관련한 낱말 하나만 더 살펴보자.
팽상(彭殤): 오래 삶과 일찍 죽음.
상(殤)이 일찍 죽는 걸 가리키는 한자라는 사실은 위에서 밝혔으니 팽(彭)은 오래 산다는 뜻으로 쓰인 게 분명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팽(彭)을 옥편에서 찾으면 아무리 봐도 죽음과 관련한 뜻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팽(彭)이라는 한자를 끌어오게 된 다른 사유가 분명히 있을 거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중국의 옛 기록에 따르면 팽조(彭祖)라는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고대의 인물로 기공(氣功)과 양생법(養生法)에 능해 700살이 넘도록 살았다는 도인이다. 당연히 지어낸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테지만 장수한 인물로 동방삭(東方朔)과 함께 거론되는 가공의 인물이다. 팽상의 팽(彭)은 바로 팽조에서 가져왔다. 이런 사실을 국어사전 풀이에서 다뤄주면 안 되는 걸까? 친절한 국어사전을 바라는 게 나만의 욕심일지는 모르겠으나, 낱말이 형성된 이유를 밝혀주면 더 이해하기 쉽고 오래 기억할 수 있으리란 건 분명하다.
시인 (pih6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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