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상징, 엉클 샘 ⓒ그림=카운터파이어 지난 7월 11일 벌어진 쿠바의 시위 이후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반응을 두고 온갖 예측이 몇 주 언론을 장식했다. 드디어 22일 바이든이 나섰다. 바이든이 이미 있는 경제적 엠바고와 제재에 추가 제재를 한다고 발표했다. 시위대를 과잉 진압했다고 주장하며 쿠바 군과 쿠바 특수여단 인사들을 제재하겠다고 한 것이다. 이번 조치는 바이든이 최소한 트럼프가 내린 243개의 추가 조치를 취소하고 다시 오바마 시대로 돌아가거나, 심지어 쿠바에 대한 모든 금수조치를 완전히 철회하기를 바라던 미국 민주당의 진보 세력에게 충격적이었다. 바이든과 민주당 제도권은 플로리다에 있는 우파 쿠바계 미국인의 표를 잡을 수 있는 기회로 이번 시위를 바라볼 뿐이다. 폴리티코는 이번이 2016년과 2020년 트럼프가 승리했던 경합주를 되찾아올 ‘황금 기회’라고 생각하는 민주당 인사들이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니 미국 정부와 미국 내의 우파 쿠바 망명 사회가 이번 시위를 수십 년 간 추진했던 쿠바의 체제 전복 캠페인에 활기를 불어넣을 기회로 보는 건 어찌 보면 불가피하다고 하겠다.
더 공세적인 대 쿠바 정책을 외치는 사람들의 선봉에 쿠바 망명 사회 강경파 인사들이 있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군사주의적 카스트로 반대 세력의 핵심 도시인 마이애미의 시장은 쿠바의 ‘해방’을 위해 미국의 직접적인 군사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해야 하니, 미국의 쿠바 공습을 논의에서 제외해서는 안 된다고 강변한다.
공화당의 기대주이기도 한 미국의 대표적인 강경 우파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은 베네수엘라와 쿠바를 군사적으로 공격해야 한다는 의견을 여러 번 피력했다. 사진은 이란의 2인자라 불렸던 솔레이마니의 암살 성공 소식에 기뻐하고 있는 루비오의 모습이다. ⓒ사진=인터넷 캡쳐 예상대로 이런 공격적인 조치를 정당화하는 주요 논리에는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의 필요성이 있다. 일례로 쿠바계 강경파인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공화당, 플로리다)이 작성해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인 케빈 매카시를 포함한 143명의 의원들이 공동 서명한 공개서한에서는 “자유를 사랑하는 국가들은 쿠바의 민주주의 세력과 국제적인 감독 하에 이뤄지는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에 대한 전폭적이고도 확고한 지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정치적으로 순진한 이들에게는 이것이 굉장히 합리적인 생각처럼 보일 수도 있다. 서방 국가들의 지배적인 정치적 사고로는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가 ‘자유를 사랑하는 국가’가 될 기본 전제조건이니 말이다.
여기에서 서방 국가들이 암묵적으로 깔고 들어가는 전제는 미국이 이 기본 전제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국가들을 충분히 처벌할 수 있고, 심지어는 처벌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미국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가 이뤄지지 않는 국가들을 처벌하기는커녕 이에 대해 왈가왈부할 자격조차 없다. 미국이 그간 세계에서 보여준 행동을 조금만 살펴봐도 쿠바와 다른 적성 국가들을 대할 때 보여주는 위선이 충격적일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위선은 우연이 아니다. 이런 위선은 미국의 이기적인 외교정책 목표에 대한 잘못된 신뢰를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5월 31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알링턴에 있는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메모리얼 데이'(미국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해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 세계 민주주의가 위험에 처해 있다"라며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2021.06.01. ⓒ사진=뉴시스/AP 우선 미국의 적나라한 이중 잣대를 보자. 다른 나라를 보면 미국이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에 대해 일말의 관심도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금 뿐만 아니라, 예전에도 미국이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기준으로 타국을 어떻게 대할 지를 결정해 본 적이 없다.
미국에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순종성이다. 미국에게 덜 순종적인 국가들은 체제 전복이 대상이 된다. 미국은 이들 국가에 각종 제재를 취하고 정권 흔들기를 시도하며 쿠데타를 암묵적으로 지원, 지지하고 심지어는 직접 침공한다. 분명히 말하건대, 그 국가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치르는지는 상관이 없다.
미국에게 순종적인 국가들은 거의 무슨 짓을 해도 미국이 눈을 감아준다.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치르지 않는 것까지도 말이다. 중요치 않은 지방 선거 몇 개만 치르는 절대 왕정인 사우디아라비아나 20세기 중후반에 칠레와 아르헨티나에 있었던 독재 정권들이 대표적인 예다.
특히 칠레와 아르헨티나를 보면 잔인할 정도로 아이러니컬하다. 미국은 칠레의 피노체트 독재나 아르헨티나의 군사정권에게 그 어떤 징벌 조치를 취하지 않고 오히려 세계 무대에서 이들을 인정하고 아낌없이 재정적으로 지원했다. 쿠바에 대한 금수조치를 강화하고 있을 때 말이다.
칠레의 아이러니는 한 발자국 더 나간다. 수천 명의 정적을 살해하고 더 많은 이들을 고문했던 피노체트 독재가 미국이 지원하여 CIA가 진두지휘한 쿠데타 덕에 민주적으로 선출됐던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을 축출하고 수립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19년 트럼프 미 대통령을 만난 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사우디 아라비아는 정치적인 탄압, 잔인한 태형, 구금자에 대한 고문, 여성에 대한 제도적 차별, 소수 시아파에 대한 차별 등으로 악명 높은 독재 왕국이지만 미국은 줄곧 사우디를 감싸왔다. 최근 바이든은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암살에 대한 책임을 물어 관련자들에게 입국 금지령을 내렸으나, 사건의 배후에 있었다는 증거가 충분히 나온 왕세자는 제재에서 제외했다. ⓒ사진=뉴시스/AP 미국이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에 대해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는 두 번째 이유는 미국이 마음에 드는지 안 드는지에 따라 다른 나라의 선거 결과를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최근의 두드러진 예로는 베네수엘라가 있다. 미국은 근거 없는 주장으로 집권 베네수엘라 통합사회주의당(PSUV)가 승리할 때마다 그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이 지지하는 야권이 2015년 총선에서 승리했을 때에는 선거 과정에 대해 아무 트집도 잡지 않았다.
베네수엘라와 마약 스캔들에 휩싸인 오를란도 에르난데스 온두라스를 비교하면 두 번째 이유가 잘 이해될 것이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에서의 PSUV 승리를 인정하지 않을 때 수많은 증거에도 불구하고 온두라스의 선거 부정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워싱턴 D.C.에 있는 친미 조직인 미주기구(OAS)가 에르난데스가 승리한 2018년 선거를 부정선거라 비난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미국이 뻔뻔하게 중남미의 우익 정권들의 편을 드는 것을 보면 미국의 이중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 예가 너무 많아 여기에서 일일이 얘기할 수는 없으니 미국의 전형적인 태도를 알 수 있는 니카라과에서는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FSLN)이 2006년 선거 승리로 집권한 이후 미국은 니카라과 야권에 수천만 달러를 쏟아 부었다. 사실 중남미 전역에서 좌파가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미국의 지원을 받는 우파에 비해 구조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다. 그러니 미국이 중남미에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요구하는 것은 평생 승부조작을 해온 조직 폭력배가 갑자기 한 경기에 나타나 깨끗한 경쟁을 요구하는 것이나 다를 게 없다.
온두라스 야당 대선 후보 살바도르 나스랄라가 2017년 12월 3일에 수도 테구시갈파에서 재개표를 위한 시위를 계속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나스랄라는 개표 내내 앞서다 갑작스러운 개표 지연 후 후안 올란도 에르난데스 대통령에 뒤진 것으로 발표됐다. 중단됐던 대선 개표를 3일 재개했다고 선거위원회가 밝혔다. ⓒ사진=뉴시스/AP 미국의 지원이 중남미의 민주주의에 끼치는 해악이 이 정도만이 아니다. 좌파 활동을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도 있다. 노조 조직가에게 가장 위험한 국가로 여러 해 꼽혔던 콜롬비아의 경우, 알바로 우리베 정권이 사회운동 지도자들을 살해하고 위협하는 조직적인 노력 때문에 그런 악명을 얻었다. 이는 우리베와 그를 이어받은 이반 두케 정권에 대한 미국의 전폭적인 지지 없이는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다.
예상대로 우리베는 콜롬비아 연합자위대(AUC)와 같은 우파 준군사조직의 좌파에 대한 테러에 연막이 되어준 소위 ‘마약과의 전쟁’을 명분으로 미국으로부터 수백만 달러를 받았다. 우리베파가 이들 테러 집단과 연결돼 있다는 사실은 2006년 ‘파라폴리틱스(Parapolitics) 스캔들’로 드러나 30여 명의 정계 인사가 담합으로 유죄를 받았다. 사촌인 마리오 우리베를 포함해 이들 중 다수가 우리베의 측근들이었다.
미국의 선거 개입이 중남미에서만 이뤄진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돈 레빈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47개국에서 80여 개의 선거에 개입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1996년 러시아 대선이었다. 이 선거에서 보리스 옐친은 한 자리수 지지율을 기록하다가 미국이 수백만 달러를 지원하고 IMF에게 압력을 가해 러시아에게 당시로는 최대의 지원금을 대출해 주자 승리할 수 있었다.
참고로 위에 언급된 80여 개의 선거에는 미국이 직접 지휘했던 쿠데타는 포함되지 않는다. CIA가 직접 지휘해 국민투표로 선출된 아르벤스 대통령을 몰아냈던 과테말라의 1954년 쿠데타나 2002년 우고 차베스를 축출하려 했던 베네수엘라에서의 쿠데타 시도들도 포함되지 않는다.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2009년 4월 13일(현지시간) 시민들이 차베스 축출 기도 쿠데타 실패 7주년을 맞아 집회를 벌이고 있다. ⓒ사진=뉴시스/AP 이럴진대, 쿠바 정부가 “좌파의 승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미국이 상대를 지원할 텐데, 우리가 왜 다당제 선거를 치러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게다가 다당제 선거를 치러도 쿠바 공산당이나 다른 사회주의 정당이 승리하면 미국은 그 결과를 어차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이런 태도를 가장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미국의 해외에서 최악의 잔학 행위를 할 때 국무장관을 지낸 악명 높은 전범 헨리 키신저(1973~1977)다. 그는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역임할 당시 1973년 살바도르 아옌데가 칠레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하기 직전에 “국민의 무책임으로 한 나라가 공산화되는 것을 우리가 왜 두고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 칠레 유권자에게 결정을 맡기기에는 사안이 너무 중하다”고 한 바 있다.
이런 사실에 비추어 쿠바의 혁명 지도자들이 주장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중남미의 다당제 ‘자유민주주의’에서는 미국이 친미 세력을 지원해 그들의 승리를 보장하거나, 그들이 질 경우 직접 정권 전복에 나선다. 그렇기 때문에 쿠바 혁명은 국가를 풀뿌리 ‘참여 민주주의’로 만들어 노동자와 지역 공동체에게 권력을 줘야 한다.”
쿠바가 지향하는 모델을 어떻게 생각하든 중남미의 친미 우파 정당에 대한 미국의 적나라한 ‘편애’와 세계 전역에서 선거에 개입한 과거를 감안하면 쿠바 지도자들의 논리에 문제를 제기하기는 어렵다.
20세기 후반 국제정치를 좌지우지했던 미국의 책사 키신저. 1968년 12월 닉슨에 의해 국가안보 보좌관에 임명된 후 국가안보협의회장, 국무장관을 역임한 키신저는 베트남, 방글라데시, 칠레, 키프로스, 동티모르 등의 전쟁과 분쟁에 개입했다. 거침 없기로 유명한 키신저는 1970년 칠레에서 좌익 후보 아옌데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쿠데타 음모를 지원했는데, 칠레의 슈나이더 장군이 정치 개입을 거부하자 키신저는 미국 대사도 모르게 군부내 극우파를 매수, 그를 암살했다. ⓒ사진=뉴시스/AP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요구하는 미국의 위선을 드러내는 마지막 세 번째 사실은 미국의 민주주의 자체가 하자가 많다는 점이다. 미국 지도자들은 자국을 묘사할 때 ‘민주주의의 발상지’ 혹은 ‘언덕 위의 빛나는 도시’ 등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 붙이지만 미국은 선거부터 문제가 있다. 미국은 국가와 행정부의 수반을 겸임하는 대통령도 직접 선출하지 않는다.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 중 어느 쪽이 권력을 잡아도 선거인단을 거치는 간접 선거제도를 고치지 않는다. 21세기에만 두 번이나 최다 득표 후보가 대통령이 못 됐음에도 말이다.
미국의 비민주적인 선거인단 제도만 문제인 게 아니다. 미국에는 유권자 탄압, 선거 기부금의 영향력으로 인한 부패, 선출된 공무원에 대한 기업의 뻔뻔한 로비, 예비 선거를 통한 양당의 후보자 사전 선택, 그리고 제3세력의 주변화가 만연해 국내에서의 긴축과 국외에서의 제국주의적인 행태에 대한 양당의 초당적 합의가 무너질 가능성이 없다.
특히 요즘 들어 이런 문제가 심화됐다. 공화당은 무리를 해서라도 자신들이 장악한 주 의회에서 투표권의 자격 요건을 강화하고 유권자를 줄이기 위해 애쓰고 있다. 민주당도 잘하는 게 없다. 제3세력의 제도권 진입을 막는 데에는 오히려 민주당이 앞장서고 있다. 일례로 텍사스 트리뷴은 2020년 8월에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텍사스의 주요 지역구에서 녹색당이 투표용지에 오르지 못하게 하도록 법정 싸움을 하고 있고, 그 전략이 성공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편 대법원은 시티슨즈 유나이티드(2010) 등의 사건에서 선거기부금 상한선을 사실상 없애고 정치적 후원금의 모금 과정을 공개하지 않아도 되게 만들었다.
얼라이드 월렛 CEO 아마드 "앤디" 카와자가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카와자는 힐러리 클린턴의 실패한 대선 캠페인과 다른 민주당원들에게 400만 달러 이상을 기부했으며,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2주 후에 공화당 모금가인 엘리엇 브로디와 오찬을 한 후 공화당원들에게 대대적으로 기부하기 시작했다. AP 통신에 따르면 카와자는 음란물 제작자, 월급날 대출 채권 추심원 및 역외 도박 사업이 은행 시스템의 문을 통과하도록 도왔다고 한다. ⓒ사진=뉴시스/AP 재계도 문제이기는 매한가지다. 기업들이 양당의 선출직 관리들을 매수해 국가를 장악할 지경이다. 대표적인 예가 의료분야일 것이다. 미국에서는 보편적인 국민건강보험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여러 여론조사에서 꾸준히 과반을 넘고 있다. 그럼에도 민영 건강보험이 여전히 버티고 있어 수백만 명이 건강보험 없이 방치되고,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해 매년 수만 명이 목숨을 잃고 있으며, 수십만 명이 의료비를 지불할 수 없어 파산하고 있다.
공화당의 반대 때문만이 아니다. 2019년 2월의 인터셉트 보도에 따르면,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가 ‘관련자들이 반대하기 때문에’ 한국과 같은 단일 보험자 체제를 추진하는 민주당 진보 소수파의 계획을 와해하려 했다고 한다. 민간 보험회사들이 그들에게 정치자금과 선거 기부금을 주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진보파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버니 샌더스가 민주당의 후보가 되지 못한 이유는 민주당 제도권 인사들의 고의적인 훼방 때문이었다. 리본트 어겐스트 플루토크라시의 빅토르 티파니가 보여줬듯, 2016년과 2020년에 민주당의 예비선거가 버니 샌더스에게 불리하도록 조작됐다. 당시 민주당 전국위원회 의장이었던 도나 브라질은 “경쟁이 공정했다면, 유권자들의 결정이 내려지기도 전에 한 후보의 진영이 당과 후보 경선 과정을 장악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미국의 후보들은 양당 제도권에 의해 미리 선출돼 의례적으로 후보 경선 과정을 거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16년, 힐러리 클린턴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로 공식 지명하는 전당대회를 하루 앞두고 이메일 유출로 민주당 전국위원회가 버니 샌더스에게 불리하게 경선 관리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민주당 지도부는 전국위 의장을 사퇴시키는 등 파문 확산을 조기에 차단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메일에는 전국위 지도부 인사들이 클린턴 전 장관에게 유리한 쪽으로 경선을 편파 진행한 정황이 담겨 있었다. 사진은 이에 항의하는 샌더스 지지자들이다. ⓒ사진=뉴시스/AP 언론의 역할도 살펴봐야 한다. 기업이 장악한 언론은 샌더스 관련 보도를 거의 하지 않았다. 늘 그랬다. 언론은 제3세력을 소외시켜 정책을 알리고 인지도를 높일 기회를 뺏는다. 2012년 녹색당의 대선 후보 질 스타인이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과 공화당의 도전자 미트 롬니의 토론이 이뤄지던 호프스트라 대학에 참석을 바라며 갔다가 구속됐고, 2000년에는 녹색당 대선 후보 랄프 네이더가 상당한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TV 토론에서 제외됐다.
미국은 쿠바든 어떤 나라든 다른 나라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치르지 않는다고 비판할 자격이 없다는 게 명백하다. 미국이 진정으로 민주주의를 중시한다면 다른 나라 선거에 개입하는 버릇을 고치고 자기 집 단속부터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혹시나’ 하면서 기대를 하지는 말라. 미국의 대외정책도, 선거제도를 포함한 대내정책도 민주주의, 그리고 공정한 선거와 거리가 멀다. 미국의 대외정책과 대내정책의 목표는 탐욕스러운 제국주의적 자본주의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대다수의 인류를 도탄에 빠뜨리면서까지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다국적기업과 몇 안 되는 억만장자들의 권력을 유지시켜주는 것이다.
인류와 인류를 지탱해주는 지구의 미래를 진정으로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카리브 해에 있는 한 섬 국가의 민주주의를 제대로 된 근거 없이 걱정할 것이 아니라, 이런 현실에 분노해야 할 것이다. 사실 이 나라는 이런 체제의 주된 타겟으로 핍박 받으면서도, 놀랍게도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며 이에 저항하는 선두에 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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