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예나 지금이나 화려한 자본주의의 어두운 이면에는 가장 약한 노동자를 가장 싼값으로 가장 험한 노동에 내몰아 최대의 이윤을 추구하고자 하는 비겁한 속성이 있다. 이러한 잔인함은 결국 일하는 사람의 생명을 희생시키는 극단의 비극으로 이어진다. 산업혁명 이후 19세기 중산층 아동들이 굴뚝을 통해 내려오는 산타클로스를 기다렸던 반면, 굴뚝 속으로 들어가 굴뚝 청소를 해야 했던 아동노동자들의 상황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유의미한 시사점을 준다(강동묵외 13인,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 2017, 322쪽 이하).
19세기 영국 런던에는 굴뚝에 들어가서 굴뚝 청소노동을 하는 아동의 수가 2,000명에 달했다고 한다. 이들은 7~8세부터 고용되어 16시간씩 노동을 했고, 굴뚝 안에서 화상을 입거나 질식사하기 일쑤였다. 굴뚝 청소노동을 하는 아동들의 몸에 ‘검댕사마귀’라 불리는 검은 돌기들이 생겼는데, 이는 음낭암이었다. 음낭암을 ‘굴뚝 청소부의 암’이라 부를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영국과 달리 유럽이나 미국의 굴뚝 청소부에게선 음낭암이 드물었다. 외과의사 버틀린은 이 문제의 해답을 찾기 위해 유럽 대륙으로 건너가 그곳의 굴뚝 청소부들을 직접 만났는데, 버틀린이 발견한 것은 유럽 대륙의 굴뚝 청소부들이 보호 의복을 잘 착용한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는 오늘날로 치면 안전보호구나 안전작업복 착용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최근 평택항에서 사망한 고 이선호씨의 나이는 23세에 불과했다. 어떤 죽음이라고 슬프고 안타깝지 않은 죽음이 있겠냐마는 스스로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위해 일하던 청년이 꿈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하고 떠나야 했다는 사실은 너무나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리고 그 죽음 뒤에는 전형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하청, 비정규직, 산재라는 단어들이 또 다시 자리잡고 있기에 분노와 절망감은 더욱 크다. 이 상황에서 법과 제도는 무의미한 것일까. 얼마나 반성하고 얼마나 고쳐야 이 잔인한 죽음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까.
2006년 노동계가 ‘산재사망은 기업에 의한 살인’이라는 기치 하에 주로 영국, 호주 등 해외 입법례를 모범으로 삼아 기업 살인법 제정 운동을 시작한 이후 약 15년의 입법운동과 수많은 노동자들의 희생위에서 2020년 1월 26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었다. 법 제정이유에 따르면 “사업주, 법인 또는 기관 등이 운영하는 사업장 등에서 발생한 중대산업재해와 공중이용시설 또는 공중교통수단을 운영하거나 위험한 원료 및 제조물을 취급하면서 안전보건 조치의무를 위반하여 인명사고가 발생한 중대시민재해의 경우,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및 법인 등을 처벌함으로써 근로자를 포함한 종사자와 일반 시민의 안전권을 확보하고, 기업의 조직문화 또는 안전관리 시스템 미비로 인해 일어나는 중대재해사고를 사전에 방지하려는 것임.”이라고 밝히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법에서 정하는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에 위반하여 중대산업재해에 이르게 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등을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처벌규정을 통해 궁극적으로 사업주에게 경고하고자 하는 바는 평소에 안전 및 보건 관리를 철저히 하여 산재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비하라는 것이다.
앞서 2018년 12월 27일에는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 국회를 통과해 2020년 1월 16일부터 시행되었다. 법 개정 이유에 따르면, 산업재해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하여 법의 보호대상을 다양한 고용형태의 노무제공자가 포함될 수 있도록 넓히고, 근로자가 작업을 중지하고 긴급대피할 수 있음을 명확히 규정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김용균법, 중대재해법 이후에도 이어지는 죽음
소규모 하청업체, 비정규직·고령·외국인 등 취약계층이 피해 사각지대
노동존중사회 만들려면 노동자 생명부터 존중해야
이처럼 산재를 줄이고 막아보겠다는 취지의 법 개정 전이건 후이건 산재 사망의 비극은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올해 4월에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0년 산업재해 사고사망 통계’에 따르면 2020년 산재 사고사망자는 882명으로 전년대비 27명이 증가했다. 2017년 문재인정부 출범당시 2022년까지 산재 사고사망자수를 절반으로 줄인다는 목표 하에 2020년에는 725명으로, 2022년에는 505명으로 줄이겠다고 공약했다. 그렇지만 2020년 사고 사망자수는 2017년 대비 82명 감소했을 뿐이고, 2019년보다는 오히려 27명이 증가했다.
그런데 통계의 세부 내용을 들여다보면 어디가 약한 고리이고, 산재 사망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어느 정도 이미 나와 있다. 먼저, 사고사망 발생 사업장의 규모별 특성을 보면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이 81%(714명)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그 중 5인 미만 사업장이 35.4%(312명), 5~49인 사업장이 45.6%(402명)이다. 즉, 산재 사고사망 사건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사업장은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이다.
그렇지만 5인 미만 사업장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었고, 5~49인 사업장에 대해서는 2024년부터 적용될 예정이어서 정작 법을 필요로 하는 사업장에는 법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다만, 법에서는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등이 하청업체 종사자에게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법에서 정하는 조치들을 취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고, 이를 위반하여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경우, 형벌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소규모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 보장을 위해서는 하청업체에 대한 원청의 안전보건 확보의무가 제대로 지켜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다음으로, 2020년 산재 사고사망자 중 가장 많은 연령대는 60세 이상(39.3%, 347명)이고, 50세 이상은 77.3%(354명)이며, 외국인이 10.7%(94명)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 또한 유의할 필요가 있다. 언론에서는 주로 청년 노동자들의 죽음을 중심으로 보도되고 있지만, 고령노동자, 외국인 노동자들이 사망자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결국 취약계층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다가 죽음의 위험에 놓이게 되는 현실을 보여준다.
요컨대 공식적인 통계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몇 가지 점들은 확실하다. 영세 소규모 사업장의 안전‧보건 조치 강구가 시급하고 비정규직, 고령자, 외국인 등 취약계층 노동자들을 산재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특단의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또한 원청은 하청 노동자에 대해 법적 책임이 없다고 하고, 하청은 경제적으로 여력이 없다고 하면서 억울한 죽음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현실이 바뀔 수 있도록 집요하게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법의 제‧개정은 시작일 뿐, 감독, 수사, 판결 등의 과정을 통해 실효성 있는 법이 되어야 한다.
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업의 조직문화로 인해 일어나는 중대재해사고를 사전에 방지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기업 내 구성원들, 더 나아가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과 문화가 변화되지 않고서는 산재 사망사고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산재 발생 이후 피해자를 제대로 구제, 보호하고 책임자를 엄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산재가 발생되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하고자 하는 인식에 기반한 실천이다.
지난 4년간 정부가 부르짖은 ‘노동존중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당장 일하는 사람의 ‘생명존중 사회’를 만들기 위한 진지하고 구체적인 노력부터 해야 한다. 수많은 김용균들, 이선호들이 우리에게 일깨우는 것은 ‘돈보다 중요한 것이 사람의 생명’이라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진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일하다 죽는 사람들에 관한 뉴스를 접하면서 노동법 전공자랍시고 그저 글 몇 줄 끄적이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하는 부끄러움과 자괴감이 든다. 그래서 산재 사망을 주제로 글을 쓰는 것이 많이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박노해 시인의 시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반복해 읽으며 일하는 사람의 생명존중을 위한 연대와 희망을 감히 말하고 싶었다.
“지금 세계가 칠흑처럼 어둡고
길 잃은 희망들이 숨이 죽어가도
단지 언뜻 비추는 불빛 하나만 살아 있다면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그대, 희미한 불빛만 살아 있다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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