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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5월 27일 목요일

주말·새벽 비상령에 협박까지…더 시달릴 게 있나 싶은 영웅들

 등록 :2021-05-28 05:00수정 :2021-05-28 07:21


한계 넘어선 ‘보건소 간호직’

원래 인력부족인데 코로나 업무 추가
백신 맞은 뒷날도 진통제 먹고 출근

격리통보 연락하면 거부는 예사
‘도끼들고 찾아간다’ 살해위협도
몸도 마음도 이미 지칠대로 지쳐

복지부 “5개월 한시인력 투입 진행중”
현장선 “비상근무도 책임있는 일도 못 시켜”

한낮 기온이 초여름 날씨를 보인 지난 24일 광주 북구 선별진료소 보건소 의료진이 이동식 에어컨으로 방호복으로 인한 열을 식히고 있다. 연합뉴스
한낮 기온이 초여름 날씨를 보인 지난 24일 광주 북구 선별진료소 보건소 의료진이 이동식 에어컨으로 방호복으로 인한 열을 식히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월 어느 주말, 한 지역 보건소 간호직 공무원인 ㄱ씨는 새벽 6시에 집을 나섰다. 새벽 1시에 전날 확진자가 수십명 나왔다며 ‘아침 7시까지 출근해달라’는 공지가 떴기 때문이다. ‘또 비상 터졌구나.’ 이미 사흘 전 수십명 확진자 발생으로 비상이 걸려, 하루 서너시간밖에 못 자던 날이 이어지던 터였다. 지친 몸을 추슬러 보건소로 차를 몰았다. 너무 졸린다는 생각이 들던 순간, ‘쾅’하고 차가 가드레일을 들이받았다.20대의 ㄱ씨는 지난 1년여간 지역 보건소에서 코로나19에 대응하는 팀에 소속돼 일해왔다. 몇 년간 종합병원 병동 간호사로 일하다 업무가 버거워, 시험을 보고 간호직 공무원이 됐다. 하지만 요즘엔 차라리 병동에서 환자들을 돌보던 때가 나았다는 생각이 든다.ㄱ씨가 꼽은 가장 힘든 일은 밀접접촉자들을 찾아내 격리하고, 격리 이탈자를 고발하는 업무다. 감정 소모가 많기 때문이다. 전화하면 감염검사 자체를 거부하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확진되면 자가격리를 해야 하니까 검사받을 필요 자체가 없다고 우기는 거예요. 격리하면 자기 생업 책임져 줄 거냐는 거죠.” 격리 통보를 받았는데도 보건소로 찾아와 욕하며 소리 지르는 사람도 많다. 그의 동료는 격리 통보를 한 확진자에게 ‘도끼 들고 찾아가서 죽일 거다. 밤길 조심해라’는 협박도 받았다.

여기에 학교·병원 출장 검사와 일일 발생 현황을 보고하는 일까지 업무는 갑절로 늘었다. 하지만 초과 근무를 제 시간만큼 인정받기 시작한 것도 지난달에 와서였다. “이전에는 아무리 일해도 67시간만 인정받았는데, 이번 달엔 120~130시간을 일한 것으로 찍혔어요. 지난 일 년간 초과근무 절반은 인정 못 받은 셈이죠.”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했던 날도 백신휴가는커녕 밤 10시에 비상이 걸려 다음날 부서 전원이 출근했다. 몸살이 심하게 왔지만, 타이레놀 여섯알을 먹어가며 역학조사 현장에 나섰다. ㄱ씨는 27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된 지 일 년이 지났는데 누구 한 명이 죽은 뒤에야 대책을 논의할 수 있다는 게 슬프다”라고 말했다.

30대 부산 보건소 간호직 극단선택…동료들 안타까움 공감

지난 23일 부산 동구보건소 간호직 공무원 이아무개(33)씨가 자택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코로나19 대응 일선에서 일하는 보건소 간호직 공무원의 상황이 한계를 넘어섰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유족에 따르면 이씨는 코호트 격리(동일집단 격리)에 들어간 병원을 새롭게 담당하게 돼 심적 압박이 심했고, 토요일에 출근해 일한 뒤 다음 날 아침에 숨진 채로 발견됐다. ㄱ씨는 “보건·간호직 공무원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소식이 전혀 이상하지 않게 들리는 거죠. 같이 일하는 계장님 얼굴이 시커멓게 변했어요. 과로사가 안 나온 것도 신기해요”라고 말했다.

보건소 등 공적 보건기관의 간호사 부족 문제는 고질적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이었던 지난 2017년에도 간호협회는 전국 보건소 250여곳 중 142곳에서 모두 601명의 간호사가 부족하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 팬데믹 대응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업무가 추가됐다는 얘기다. 지난해 6월 보건간호사회가 조사한 결과를 보면, 보건소당 평균 인력은 88.3명으로 이 가운데 간호직은 18.8명, 5천여명 규모다.

코로나19로 인한 격무가 장기화하면서 보건소 간호직 공무원들의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는 꾸준했다. 지난해 6월 간호협회가 전국 보건소·치매안심센터·정신건강복지센터 내 코로나19지역사회대응 참여 간호사 107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3.6%가 한 달 중 23일 이상 출근했고, 59.2%가 개인건강에 문제가 생겼는데도 일하러 나가야 했다고 답했다. 주말 초과근무도 하루 평균 5.2시간이었다. 이에 간호협회는 “감염병 대응 전담팀 내 간호직 인력 충원이 시급하다”는 제안을 내놨다.

보건소의 업무 과부하로 집단감염 사례를 제때 진화하지 못하는 상황도 수치로 드러난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가 자체 조사한 결과, 집단감염이 최초 확진 발생부터 마지막 확진자가 나오기까지 2주를 초과한 사례는 지난해 6~7월 17건이었으나, 10월 24건, 12월 36건으로 증가했다. 만약 역학조사가 신속히 이뤄져 제때 밀접접촉자를 격리했다면, 이렇지 않았을 것이란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전문가 “보건소에 감염병센터 설치, 전문인력 증원을”

보건복지부에선 이날 보건소 258곳에 간호사를 포함해 평균 4명씩 모두 1032명의 코로나19 대응인력을 5개월간 한시적으로 지원하기로 하고 지난달부터 인력을 채용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와 간호직 공무원들은 이러한 한시 인력은 한계가 명확하다고 선을 그었다. ㄱ씨는 “한시 지원 간호사가 이달에 한 명 단기로 배치됐지만, 주말이나 비상 상황에 출근하지도 않고, 책임 소재 문제로 주요 업무를 맡기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한시 지원 인력은 코호트 격리나 역학조사 등 현장에서 필요한 업무를 수행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정부가 코로나19 장기화와 새로운 신종 감염병에 대비해야 한다면서, 경험 있는 전문인력을 양성할 소중한 기회를 날려버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가 지난 26일 연 토론회에서 김 교수는 전국 보건소마다 진단·역학 조사 등을 담당하는 ‘감염병 관리센터’를 설치해 각 의사·간호사 등 공무원을 7명씩 1800명을 증원하자는 제안을 발표했다. 김 교수는 “이 안을 청와대 요청으로 만들었는데, 대통령에게 보고도 안 되고 정책에도 반영되지 않았다”며 “국가위기 상황에서 두세달은 비상 대처라 할 수 있겠지만, 일 년 넘게 비상 상황에서 일하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전문 인력 보충이 있었다면 보건소 간호직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도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화보] 코로나19 3차 유행

[화보] 2021 국제 간호사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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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i.co.kr/arti/society/health/997051.html?_fr=mt1#csidx9154f707832da96992e3c4d77a868b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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