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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5월 16일 일요일

[인터뷰] “총수 지정 피한 쿠팡 김범석... 제도 완비 못한 공정위 잘못”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기업집단 범위 획정 기준 동일인에서 핵심기업으로 바꿔야”

윤정헌 기자 
발행2021-05-16 14:52:30 수정2021-05-16 15:59:34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뉴시스/AP

최근 쿠팡 김범석 이사회 의장은 회사의 실질적인 지배자임에도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동일인(총수) 지정을 피해갔다. 현행 규제가 국내를 전제로 설계돼 있어 외국인인 김 의장을 총수로 지정하더라도 규제하기 어렵다는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의 판단에서다.

동일인은 공정거래법상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 집단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사람 또는 법인을 말한다. 실질적 지배 여부는 공정위가 대상자의 지분율 등을 고려해 판단한다.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과 남용을 방지한다’는 제도의 취지에 따라 동일인의 배우자와 6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 등이 소유한 회사는 계열사로 편입해 이들의 주식 소유 현황도 함께 신고해야 한다. 반면 동일인이 법인일 경우엔 해당 법인과 지분관계에 있는 계열사에 대해서만 공시하면 된다.

지난달 29일 공정위가 쿠팡의 총수로 김범석 의장이 아닌 쿠팡(주)을 지정한다고 발표하자, 동종 업계에서는 형평성 논란이 불거져 나왔다. 외국인은 사실상 총수 지위를 누리면서 규제는 피한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공정위는 김 의장이나 그의 친족이 소유한 국내 회사가 없어 어느 쪽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든 기업집단의 범위가 바뀌지 않는 만큼 문제가 없다고 봤다. 또 쿠팡이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한 만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규정에 따라 이미 엄격한 규제를 받게 된다는 점도 반영했다.

쿠팡 동일인 지정을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행 공정거래법에는 동일인의 정의를 명시한 조항이 없다. 기업집단을 정의하면서 ‘동일인이 사실상 그 사업 내용을 지배하는 회사의 집단’이라는 표현만 있을 뿐이다. 이제까지는 재벌 그룹의 특성상 총수가 명백했지만, 앞으로는 이런 제도적 공백으로 인한 문제가 더 발생할 수 있다.

이황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고려대 ICR센터 소장)가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외국인이라’ 동일인 지정 피한 쿠팡 김범석 의장?
“기회 있었음에도 제도 보완 못한 공정위 잘못”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한국경쟁법학회장)는 지난 11일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상황에 대해 “기회가 있었음에도 동일인 제도를 보완하지 못한 공정위에 근본적인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미 국내에 유사한 사례들이 발생했었지만, 그럴 때마다 공정위가 이를 ‘특수한 상황’으로만 여기고 규제 보완 없이 넘겼다는 것이다.

쿠팡과 유사한 사례로는 ‘롯데’와 ‘네이버’를 꼽았다. 이 교수는 “처음 이런 문제가 사회적으로 노출된 건 롯데다”라며 “롯데의 동일인이 고 신격호 회장이었는데, 동일인의 친족과 특수관계인에 일본인과 일본 기업들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실제 당시 그들에 대한 공시는 전혀 이뤄지지 않는 것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네이버는 기존 재벌기업들과 구조나 체제 등이 전혀 다르다는 점에서 쿠팡과 유사한 사례로 봤다. 이 교수는 “신흥 ICT기업인 네이버는 과거 경제력집중억제 시책이 염두에 뒀던 불투명한 지배구조나 소수 지분으로 전체 기업을 지배하는 등의 폐단이 현실적으로 거의 없고, 그럴 가능성도 없다”면서 “이런 상황에서도 ‘동일인 지정을 통해 그에 상응하는 규제를 가해야 하는가’라는 논란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이 사례들을 공정위가 그냥 넘기면서 쿠팡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라며 “그때그때 제도를 보완해 완비된 제도를 만들어놨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또 공정위가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하지 않아도 쿠팡을 공정거래법으로 규제하는데 공백이 없을 것이라고 자평한 데 대해서도 비판했다.

이 교수는 “공정위의 논리는 부당지원행위규제제도가 모든 기업에 다 적용이 되는 만큼 쿠팡에서 무슨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규제할 수 있어 공백이 없다는 것인데, 이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면서 “총수일가에 대한 사익편취 규제가 탄생한 배경은 부당지원행위규제에 공백이 있기 때문에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한 것이다. 부당지원행위규제만으로 모든 걸 규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한 쿠팡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규정에 따라 이미 엄격한 규제를 받게 될 것이라는 공정위 설명에는 “그건 대한민국에서도 미국법만 있으면 된다는 말이냐”며 “공정위가 이렇듯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하는 것이 제도가 완비돼 있지 않은 데서 나오는 혼란”이라고 꼬집었다.

이황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고려대 ICR센터 소장)가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재벌 2,3세 상속서 또 문제 불거질 수도... “국적이탈 종용”

김 의장이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동일인 지정을 피한 일련의 상황으로 인해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이 교수는 “현재 국내 재벌 2, 3세들의 경우 유학생활을 많이 하는 만큼 외국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향후 이들에게 상속이 이뤄질 경우 쿠팡과 같은 문제 많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아직까진 큰 문제가 없을지 모르지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동일인 지정이 되지 않는다면, 자칫 국적이탈을 종용하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기존 재벌과 다른 기업지배구조를 가진 신흥 ICT기업에 대해선 다른 규제를 적용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 대기업은 크게 전통적인 재벌그룹과 신흥 ICT기업으로 나눌 수 있다”면서 “이들은 경영형태부터 지배구조까지 다 다르다. 이질적인 두 집단을 하나의 틀안에서 규제하는 게 가능한지, 바람직한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다만 최근 신흥ICT 기업들이 문어발식 확장에 나서는 모습에 대해서는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교수는 “어떤 면에서 보면 이들 기업의 행태가 과거 재벌과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만큼 깊이 연구해 봐야 할 문제인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황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고려대 ICR센터 소장)가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외국인 동일인 지정해도 직접적인 규제 어려워...
“동일인 중심의 기업집단 범위 획정, 핵심기업 중심으로 바꿔야”

지난 12일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앞으로 외국인이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경우 동일인으로 지정하는 것을 배제하지 않겠다”며 외국인까지 동일인 대상에 포함해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리고 △동일인의 정의와 요건 △외국인에 대한 형사 제재 △외국인의 친족 범위 등 현행법상 불분명한 부분들을 종합적으로 손보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하지만 이 교수는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수는 있을지언정 직접적인 규제는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그는 “대한민국 법을 포함해 일반적인 법은 속인주의, 속지주의다. 한국인, 한국기업이 외국에서 하는 행위는 다 한국법이 적용된다. 거기엔 예외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외국인을 한국에서 한국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명문 규정을 두기도 어렵다. WTO문제도 있고 FTA문제도 있다. 입법 자체를 두고 위헌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현재 동일인을 기준으로 한 기업집단의 범위 획정을 핵심기업을 중심으로 해야 한다고도 제안했다. 기업엔 국적이 없는 만큼 동일인 국적을 둘러싼 문제가 간명해질 것이라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예를 들어 현대기아차의 경우 현대차를 중심으로 지분구조나 영향력 등을 살펴보면 계열회사는 물론 동일인도 있을 것인 만큼 동일인까지 규제범위 대상에 포함하는 식이다.

그는 “핵심 기업을 중심으로 한 지분관계 내지는 영향력 등을 통해 범위를 획정하면 거기에 동일인이 있을 수도 있고, 기업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럼 동일인도 규제범위에 포함하는 것”이면서 “출발점을 핵심기업으로 하면 동일인 국적을 둘러싼 문제가 훨씬 간명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 공기업에서부터 출발한 포스코나 KT 등의 경우 이런 식으로 하고 있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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