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경제 '전환기' 읽기] '전환기'를 이끄는 경제 책임자들의 전면 쇄신 (2)
당의 경제팀 구성과 당적 지도, 정책적 지도
경제담당 당비서는 오수용(전 제2경제위원회 위원장, 제8차 당대회)이다. 당중앙위원회에 전문부서들이 있으며 그 가운데 경제부장(오수용), 농업부장(리철만), 경공업부장(박명순), 과학교육부장(최상건) 등 4인이 경제팀을 이루고 있다. 중앙위원회에는 이들 부장 외에 제2경제위원장(군수담당)과 경제정책실장(전현철)이 있다.
오수용의 당비서 겸 경제부장으로의 '이동'에 따라 제2경제위원장은 현재 공석이거나 미발표 상태다. 당비서는 당중앙위원회 전문부서들인 경제부, 농업부, 경공업부, 과학교육부 등과 경제정책실을 총괄한다. 경제부는 농업, 경공업, 과학교육 이외의 내각 성‧중앙기관들을 '지도'한다.
당-국가체제에서 정부에 대한 당의 지도는 중요하다. 당의 지도는 북한에서 '당적 지도' '정책적 지도'로 표현된다. 당적 지도는 당조직생활 지도, 당사상생활과 선전사업 지도, 행정경제간부 인사, 생산현장 등의 근로대중조직 지도 등을 포함한다. 중앙당에는 당적 지도를 담당하는 조직지도부, 선전선동부, 간부부, 근로단체부 등을 두고 있으며 당적 지도가 일상적으로 이뤄진다.
당적 지도는 또한 당의 사상과 노선에 관한 지도를 포함한다. 당대회 또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전략적 노선이 결정되면 내각과 생산현장에서 그 노선을 제대로 이행하는지를 당이 실질적으로 지도하는 것이다.
정책적 지도는 해당 시기의 경제정책을 내각과 생산현장에서 제대로 이행하는지를 당이 지도하는 것이다. 중앙당의 경제부, 농업부, 경공업부, 과학교육부 등이 그 역할을 맡는다. 역사적으로 보면 정책적 지도의 담당부서(당중앙위원회 전문부서)는 때로 늘어났다가 줄어들기도 했다. 당-국가체제의 이러한 구조를 이해해야 당 경제부서와 내각의 성‧중앙기관들 간의 관계, 경제정책의 작동구조와 원리를 알 수 있다.
내각-지방당-중앙당을 거친 '경제관리자' 오수용
오수용(1947년생)은 김덕훈 내각총리보다 14년 연상이다. 그는 김책공업종합대학을 졸업한 뒤 전자자동화 부문에서 일한 전형적인 경제 관료다. 그는 정무원(내각 전신) 전자자동화공업위원회 기술국장을 거쳐 1994년 9월에 전자자동화공업위원회 제1부위원장으로 일한 것으로 확인된다. 그는 1999년 12월에 내각 전자공업상에 임명됐다. 전자공업 전문가인 그가 1998년 9월부터 금속기계공업성 부상으로 잠시 일한 것은 경력 관리에 도움이 됐을 것이다.
그가 내각 전자공업상에 임명된 시기는 '고난의 행군'을 수습할 무렵이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09년 4월에 그는 내각부총리에 임명됐다. 전자‧금속기계공업의 관리책임자로 일하던 그는 2010년 7월경 함경북도당위원회 책임비서에 임명되어 지방경제를 체험할 기회를 갖게 된다.
도당 책임비서 자리는 중앙당에 진입하기 위한 디딤돌인 사례가 많았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김재룡 자강도당위원회 위원장(책임비서)이 내각총리에 임명되었다가 다시 당 조직지도부장으로 보직을 변경한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수용은 2014년 5월 당비서(계획재정담당)가 되었고 정치국 후보위원에 선출됐다. 이때는 김정은 위원장의 집권(2012년)에서 2년 반 경과한 시점이었다. 그는 김 위원장이 영도력을 발휘하며 인사에 관여한 첫 시기에 발탁된 당료(apparatchik)이자 경제기술관료(technocrat)였다. 그는 제7차 당대회(2016년 5월)에서 당중앙위원, 정치국 위원, 부위원장(계획재정담당) 겸 경제부장에 선임되어 경제부문의 최고책임자 직위에 올라서게 된다.
그가 당중앙위원에 처음 선출된 것이 2010년 9월의 당 제3차 대표자회였음은 보기에 따라서는 남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당 제3차 대표자회는 김정은 위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서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됐던 바로 그 정치행사였다.
오수용은 2014년 4월 최고인민회의 예산위원장에 선출되는 등 다른 직무를 겸임으로 수행하기도 했지만, 기본 임무는 내각에 대한 당적 지도, 정책적 지도를 총괄하는 것이었다. 그는 내각-지방당-중앙당을 거치며 북한경제의 관리 운영에서 경험할 것은 다해보았다고 할 수 있다.
오수용은 제8차 당대회에서도 여전히 정치국 위원이었고, 제2경제위원장을 맡아 관심을 끌었다. 그는 국방공업 능력을 민간경제로 전환하는 사업(김 위원장의 혁신전략)을 이행하는 견인차(牽引車)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런데 한 달 만에 역할이 바뀌었다. 김두일 당비서 겸 경제부장의 갑작스런 해임에 따른 대타(代打)가 필요했던 것이다.
김 위원장은 긴박한 사태를 맞아 그를 차출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군수경제는 잠시 다른 간부에게 맡기더라도 5개년계획의 첫해를 잘 이끌어가려면 오수용의 노련한 손이 필요했던 것이다.
'젊은 농업전사' 리철만과 '경공업 수문장' 박명순
리철만은 1968년생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지방 농촌경리위원회 출신의 농업 전문가다. 그는 2005년 1월에 평안북도 농촌경리위원회 부위원장, 2010년 7월에 평안북도 농촌경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그가 내각에 진입한 것은 2012년이었다. 2012년 4월에 내각 농업상에 임명된 그는 김정은 시대의 농정 최고책임자로 급부상했다.
그는 2013년 4월에 내각부총리 겸 농업상에 임명됐는데 이는 파격적인 인사였다. 45세에 부총리로 승진한 것으로 보아 식량증산에서 상당한 능력을 발휘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제7차 당대회(2016년 5월)를 계기로 내각에서 당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는 약 3년간 당중앙위원회 농업부장으로 일했다. 그는 2019년 4월에 황해남도당위원회 위원장으로 전출했다가 2021년 1월에 당 농업부장으로 되돌아왔다. 리철만의 승진 패턴은 농촌지역 관리책임에서 출발해 내각-중앙당-지방당-중앙당의 궤적을 그렸다.
그는 제7차 당대회(2016년 5월)에서 당중앙위원, 제8차 당대회(금년 1월)에서 정치국 위원에 선출되는 등 김덕훈 내각총리 못지않게 초고속으로 승진했다. 당 농업부장에 50대 초반을 등용한 것은 김 위원장의 과감한 인사스타일을 보여줄 뿐 아니라 알곡생산목표를 달성하는데 '젊은피'의 역동성이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박명순(출생년도 미상, 여성)은 2016년 10월경에 당중앙위원회 경공업부 부부장을 역임한 경공업 전문가다. 그의 이전 경력 가운데 2016년 5월에 당중앙검사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던 것이 확인되지만, 경력의 대부분은 김경희 경공업부장(김정은 위원장의 고모) 밑에서 경공업부문에 대한 실무를 오랫동안 맡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2020년 8월경부터 당 경공업부장으로 일한 것으로 확인된다. 그는 지방당이나 내각의 근무 기회를 갖지 못한 것 같다. 통일부 자료에 그러한 경력파일이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2014부터 2017년 사이에 김정숙평양방직공장, 평성합성가족공장, 만경대혁명사적지기념품공장, 김정숙평양제사공장, 유원신발공장 등 경공업부문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현지지도에 동행했던 기록은 확인된다. 이 기록들은 그가 2014~17년에 경공업부문의 책임자임을 보여준다.
그는 2020년 4월에 당중앙위원, 2020년 8월에 정치국 후보위원에 보선됐다. 그는 제8차 당대회(금년 1월)에서 다시 당중앙위원, 정치국 후보위원, 당 경공업부장에 선임됨으로써 경공업부문의 수문장으로 남게 됐고,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는 한 직위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과학기술의 최전선' 최상건
최상건은 1953년생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김정은 집권 첫해인 2012년 8월에 내각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한 것이 확인된다. 그 이전에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부위원장과 조선과학기술총연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은 적이 있다. 전형적인 과학기술의 테크노크라트다. 그는 2014년 4월의 인사에서도 국가과학기술위원장에 유임되었다.
그러다가 2015년 11월 당중앙위원회 과학교육부장에 임명되면서 내각에서 당으로 책상을 옮겼다. 그는 제7차 당대회(2016년 5월)에서 당중앙위원에 재선됐는데 과학교육부장에 임명될 무렵에 이미 당 중앙위원이었던 것 같다.
그는 2019년 4월에 김일성종합대학 총장 겸 내각 교육위원회 고등교육상에 임명되면서 당에서 내각으로 잠시 복귀했다.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2019년 12월)에서 당중앙위원에 보선되었다. 제8차 당대회(금년 1월)에서는 당중앙위원, 정치국 위원, 비서(과학교육담당), 당 과학교육부장에 선임됐다. 내각-당-내각-당으로 이동하는 과정에 정책실무와 당의 정책적 지도의 경험을 겹겹이 쌓았다.
그렇다고 해도 그가 예전의 최태복처럼 롱런할 것으로 예상되지는 않는다. 인민경제의 주체화‧현대화‧정보화‧과학화의 전략 방침에 집중하는 당에서 68세의 나이의 좀 부담스러울 수 있다. 당이 인민경제의 정보화‧과학화를 강조하면 할수록 잦은 인사교체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당-내각의 파이프라인 전현철 당경제정책실장
전현철(출생년도 미상)은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화제의 인물'이다. 그는 금년 1월 제8차 당대회에서 파격적으로 당중앙위원, 정치국 후보위원에 선출되어 모든 관찰자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했다. 당중앙위원회에 이전에 없던 경제정책실이 신설됐고 그가 실장에 임명됐다. 그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4차 회의에서 내각부총리에도 임명됐다.
그는 당중앙 경제정책실장으로서 당‧정 간의 링커 역할을 맡게 됐다. 당의 경제정책실장이 내각부총리를 겸임하는 구조는 처음 있는 일이어서 내각의 상들은 어리둥절할 수 있다. 경제정책실은 "내각사업이자 당중앙위원회사업이고 당중앙위원회 결정 집행이자 내각사업"이라는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을 구체화한 부서이다.
이 조치는 당-내각의 정책적 연계를 일상적으로 수행하도록 하기 위한 장치다. 경제정책실의 운영 준비, 전현철의 업무 수행의 준비는 최소한 수개월 동안 해왔을 수 있다. 그의 혜성과 같은 등장은 '경제관리개선 상무조(常務組, 태스크포스)'가 실제로 존재했고, 그가 그 책임그룹의 일원이 아니었을까 하는 관측을 낳는다. 경제정책실은 '전환기' 북한경제에서 김 위원장의 '신의 한수'가 될지도 모른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50310391871387#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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