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경제 '전환기' 읽기] 식량 증산과 국가의 역할
북한 경제정책의 역사를 돌아보면 농업과 경공업은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중공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뒷줄에 서 있었다. 중공업과 농업․경공업의 균형적 발전을 내걸었지만 자립적 민족경제건설의 지향은 중공업 우선으로 기울게 했다.
김정은 집권기의 '전환기' 경제에서는 이전에 비해 농업․경공업을 중시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인민들이 더 이상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도록 하겠다"는 지도자의 발언이 그 상징이었다.
농업과 경공업의 정책에는 묵은 숙제도 있고 새로운 과제도 있다. 이것을 들여다봐야 '먹는 문제'의 해결과 생필품 공급의 앞길을 알 수 있다. 전국 각지의 협동농장에서 '분조관리제 안에서의 포전담당책임제'에 관한 다양한 실험이 진행 중이다.
경공업 공장들에서는 품질 향상과 원가 절감이 구호를 넘어 실행력을 갖기 시작했다. 농업‧경공업의 실태와 향방을 가늠하기 위한 첫 행정은 북한의 정책과제들을 검토하는 것이다. 북한의 '먹는 문제 해결과 인민생활 향상'에 대해 총 7회에 걸쳐 알아본다.
조선로동당의 기관지 <로동신문>의 3월 11일자 사설 '새로운 5개년계획의 첫해 알곡고지를 무조건 점령하자'의 한 구절이다. 사설에는 전반적인 농업정책이 담겼다. 전당‧전국가적인 과제로 농업부문에 대한 국가적 투자, 공업의 농업 지원, 전 사회적인 농촌 지원, 화학비료‧연유(석유)‧전력‧농기계부속품 등의 적시(適時) 보장 등이 제시됐다. 농업근로자들에게는 종자개량과 과학농사, 저(低)수확지에서의 증산, 간석지 개간, 기계화 등을 촉구했다.
'먹는 문제' 해결에 초집중
올해 5개년계획(2021~25년)에 돌입한 북한은 '먹는 문제'에 초집중하는 모습이다. 북한의 농업생산을 관찰하는데 있어서 결과 못지않게 과정(정책)이 중요하다. 과정이 좋으면 좋은 결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기후조건을 비롯한 여러 변수가 도사리고 있는 농업에서 그 생산량을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올바른 정책에 따라 추수기까지 열심히 농사짓는 수밖에 없다. 북한 농정당국은 바로 그 문제 앞에 서 있다.
식량 자급자족을 향한 북한의 열망은 오래되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현 시기의 농업정책을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먹는 문제를 해결해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그 열쇠는 지난 1월의 제8차 당대회와 2월의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 전원회의에서 찾을 수 있다.
당대회와 전원회의에서 제시된 정책들은 8년 남짓 정책 실험의 결과들이다. 2013년 3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채택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진노선', 2016년 5월 제7차 당대회에서 채택된 '5개년전략(2016~20년)', 2018년 4월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채택된 '경제건설 총력집중노선', 2019년 12월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채택된 '정면돌파전' 등의 곳곳에 농업정책이 담겨 있었다.
"농업전선은 정면돌파전의 주타격전방"
'전환기' 북한경제에서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는 중대한 전환점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전원회의에서 "농업전선은 정면돌파전의 주타격전방(主打擊前方)"이라고 선언했다.
2020년 1월 17~19일 평양에서 열린 '2019년 농업부문 총화회의'는 "정면돌파전의 주타격전방에서 보다 큰 전진을 가져오기 위한 새로운 결의회의"였다(조선중앙통신, 1월 20일 자). 김 위원장은 전원회의에서 "불리한 기상기후가 계속된 조건에서도 올해 농사에서 최고 수확년도를 돌파하는 전례 없는 대풍이 마련"됐다고 말했다. '최고 수확년도를 돌파하는 전례 없는 대풍'이라 한 것으로 보아 2019년의 식량생산량은 약 550만 톤(정곡 기준) 이상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필자는 연재의 앞부분에서 남한의 농촌진흥청이 북한의 2020년 식량생산량을 440만 톤으로 추정했다고 언급했다. 농촌진흥청의 북한 식량생산량의 2019년 추정치는 464만 톤이었다. 이 추정치는 수정되어야 할 것 같다.
북한이 '최고 수확년도를 돌파하는 전례 없는 대풍'이라고 했는데 생산량을 464만 톤이라 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다. 북한은 '대풍(大豐)'이라고 하면서도 알곡생산량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2013년 3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 이래 올해의 제8차 당대회와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 전원회의까지의 북한 농업정책의 흐름은 다음과 같다. 이를 보면 농업정책의 중점이 조금씩 변했음을 알 수 있다. 시기별로 유의미한 변화가 있기는 하지만, 주제별 분류가 정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 점은 아래의 경공업 정책에서도 마찬가지다.
김정은 시대 북한의 농업정책 과제들을 주제별로 분류하면 7가지로 나눠지고 이를 세분하면 17개가 된다. 농업정책의 방향성을 세부적으로 보기 위해 17개 소주제를 설명한다.
농업에 대한 국가적 투자 증대 : [1] 농업에 대한 국가적 투자(1-①), 농촌에 대한 국가적 지원(5-⑥), 올해 농사의 성패가 달려있는 영농물자의 국가적 보장(6-⑩)
첫째, 식량문제 해결을 위한 북한 정부의 과제들이다.
농업에 대한 국가적 투자와 지원에서 중요한 것은 협동농장들에 공급할 화학비료이다. 화학비료는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평남 안주시), 흥남비료연합기업소(함남 함흥시), 순천인비료공장(평남 순천시), 쌍룡인비료공장(함북 김책시), 순천석회질소비료공장(평남 순천시), 안주흙보산비료공장(평남 문덕군) 등에서 생산한다.
비료를 생산하는 화학공장들은 모두 국영기업체이고 내각 화학공업성 산하에 있다. 농업생산을 총괄하는 내각 농업성은 비료 때문에 화학공업성의 협조를 얻어야 한다. 농약은 2.8비날론연합기업소(함남 함흥시), 명간화학공장(함북 명간군)에서 생산한다.
김정은 위원장은 2020년 5월 1일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인비료 생산을 정상화하기 위한 원료보장 대책 수립 △통합생산체계에 의한 생산 공정의 안정적 운영 △환경보호사업 중시 등 공장의 과업을 제시한 바 있다(<조선중앙통신>, 2020년 5월 2일. 이하 <연합뉴스>, <통일뉴스> 등에서 인용한 것이 표기되지 않은 경우 통일부의 <월간 북한동향>을 인용한 것임).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연유(석유)와 전력이다. 석유는 봉화화학공장(평북 피현군)과 승리화학연합기업소(함북 라선시)에서 공급된다. 봉화화학은 중국 다칭(大慶)유전에서 단둥(丹東)을 거쳐 북한 연결 파이프라인으로 공급되는 원유를 정제한다.
승리화학은 러시아에서 들어오는 원유를 정제한다. 북한은 국내의 정제유 외에 상당량의 정제유를 수입한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인해 농업용 정제유 공급에 심각한 차질을 빚고 있다. 전력은 북한 전역의 수력‧화력발전소에서 송배전망을 타고 협동농장들에게 공급된다.
영농물자의 국가적 보장에서 중요한 것은 농기계 및 부속품공장의 가동이다. 농기계는 금성뜨락또르공장(남포시 강서구역), 원산충성호뜨락또르공장, 순천뜨락또르공장, 강계뜨락또르공장, 청진연결농기계공장, 신천연결농기계공장, 해주연결농기계공장, 해주농기계공장, 평양농기계공장, 신안주농기계공장, 정주농기계공장 등에서 생산된다.
대표적인 농기계부속품공장은 원산뜨락또르부속품공장, 사리원뜨락또르부속품공장, 정주뜨락또르부속품공장 등이다. 각 시‧군에 농기구를 생산하고 수리하는 중소형 농기계작업소들과 농기구공장들이 있다. 매년 모내기철에는 북한 언론에서 농기계의 완전 가동, 예비부속품의 충분한 확보와 이동수리활동 전개 등을 강조한다(<로동신문>, 2020년 5월 11일자 사설).
영농물자의 국가적 보장이라고 해서 협동농장에 무상으로 공급하는 것은 아니다. 협동농장들이 영농물자를 구입해야 한다. 화학비료, 연유‧전력, 농기계‧농기계부속품 등은 농업생산의 기본물자들이다. 국가의 투자와 지원이 늘어나는데 비례하여 농업생산은 증대할 것이다. 협동농장들은 모내기와 온실재배에 필요한 박막(비닐) 등 여러 영농물자를 자체 조달한다.
농촌경리의 수리화: 관계체계와 시설물 복원 : [2] 농촌경리의 수리화 완성 및 흉풍(凶豊)을 모르는 농업생산 토대 마련(4-④), 관개체계와 시설물 복원, 관수면적의 확장(6-⑦)
농촌경리의 수리화와 관개체계도 농정당국이 해결해야 할 과제다. 북한은 전기‧석유 등 에너지를 사용해 물을 끌어들이는 유역(流域)변경식‧순환(巡還)식 관개에 오랫동안 의존해왔다. 20m 이상 높이로 물을 끌어 올려야 해서 관개시설의 에너지 요구량이 많았다. 북한의 전력 부족과 홍수피해의 시설물 훼손 등으로 인해 관개시설의 가동률이 낮아지면서 유역변경식‧순환식 관개에서 자연흐름식 물길(水路) 관개로의 전환이 필요해졌다. 물길공사는 농업용수의 공급, 전력수요의 절감, 홍수 예방, 공업용수 확보 등에 필요했다.
북한의 대표적인 물길공사는 개천-태성호 물길공사였다. 1999년 11월에 시작된 이 물길공사는 2002년 10월에 완공됐다. 이 물길은 평안남도 개천시, 순천시, 숙천군, 평원군, 대동군, 증산군 등을 거쳐 남포시 강서구역의 태성호에 이른다. 개천-태성호 물길은 대동강 갑문에서 160㎞의 지상수로 및 90개의 물길굴로 이뤄져 있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는 황해남도 물길공사 1~2단계, 함경남도 금야군 관개수로 등이 완료됐다. 황해남도 물길공사 1~2단계는 황해남도 청단군‧봉천군‧강령군‧옹진군과 새로 개간되는 룡매도간석지 등 서해 곡창지대에 관개용수를 담당한다. 재령강‧예성강 하류지역의 홍수피해를 방지하는 역할도 한다.
북한은 현재 청천강-평남관개 물길공사, 황해북도 황주긴등 물길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자연흐름식 관개망은 농업용수의 해결에서 새로운 전환점이 되고 있다고 한다.
한편, 지하수 시설은 2020년 3월 기준으로 북한 전역에서 3만 1700여 개가 건설됐거나 보수됐다. 곡창지대인 황해남도에서는 1만 3400여 개의 지하수 시설이 건설됐거나 보수됐다고 한다(<로동신문>, 2020년 3월 29일).
농사채비에서 물 확보는 다른 어떤 일보다 중요하다. 이를테면 △양수기 수리 정비와 고압전동기 개조 △물길과 저수지‧저류지(貯留池, 배수로를 따라 모여드는 물을 관개에 다시 쓰기 위하여 뽑아서 주위에 모아 두는 곳) 건설 △졸짱(땅속 깊이 관을 박아 땅속의 물을 끌어올리는 시설) 박기와 굴포(논밭에 물을 대기 위해 만든 보조 수원시설)‧우물파기 등을 해야 한다. 이 업무들을 계획에 맞춰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태풍과 홍수로 파손된 관개 구조물들의 복구에도 힘써야 한다. 유실된 농지의 복구도 농사채비 기간에 마무리해야 한다(<로동신문>, 2020년 11월 23일).
토지정리, 간석지 건설과 새땅찾기 : [3] 농업토지의 통일적 관리(4-⑥), 간석지 건설과 새땅찾기, 토지정리의 전개(6-⑧)
이미 완료된 대규모 토지정리사업은 국가 차원에서 군 병력의 대거 투입으로 진행됐다. 토지정리사업은 소(小)구획 경지를 대(大)구획으로 정리해 기계화영농이 가능하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평야지대는 1500평, 중간지대는 800~1000평, 산간지대는 300~500평으로 논밭을 규격화했다.
토지정리사업은 1998년에 강원도에서 시작되어 1999년에 평안북도, 2000~2002년에 황해남도, 2002~2004년에 평안남도‧평양‧남포 등으로 지역을 옮겨가면 진행되었다. 2004년까지 정리된 토지는 약 27만 6000정보였다고 한다. 2004년 이후 황해북도, 개성, 함경남도, 함경북도, 량강도 등 전역으로 확대되어 김정일 집권기간에 거의 마무리됐다.
토지정리사업 이후 간석지 건설과 새땅찾기에 주력하고 있다. 전자는 국가 차원에서, 후자는 지역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다. 새땅찾기는 하천 복구정리, 도로와 물길 곧게 펴기, 비경지 개간, 공공건물 이전 등으로 농경지를 새로 찾아내는 것이다.
김성민 내각 농업성 국장에 따르면, 2020년 4월 기준으로 새땅찾기 운동에서 9개월 동안 3만 7000여 정보의 농경지를 새로 확보했다. 2014년의 경작지가 총 191만 정보였음을 감안하면 새땅찾기 농경지는 적은 양이 아니다. 함경북도와 황해남도에서 각각 4000여 정보, 황해북도에서 3900여 정보, 평안북도에서 3500여 정보의 새땅을 찾아냈다고 한다. 새로 찾아낸 농경지에서 2020년부터 벼와 강냉이를 재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조선중앙통신>, 2020년 4월 21일).
북한에서는 1970년대 중반부터 '자연개조 5대 방침'을 실천해왔다. 그 주요 내용에 밭관개 완성, 경지정리, 토양개량, 다락밭 건설, 치산치수, 간석지 개간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자연재해가 있을 때마다 심각한 피해로 '실패가 입증된' 다락밭 건설 외에는 오늘도 유지되고 있다. 농경지 부족을 해소하려는 북한 인민들의 70여 년의 노력은 눈물겹지만 이 문제는 여전히 해결 과정에 있다.
[4] 농업성을 비롯한 농업지도기관들에서의 예견성 있는 농사작전(6-①)
내각 농업성, 도농촌경리위원회, 군협동농장경영위원회 등이 매년 농사작전을 전개함에 있어서 예측성이 중요하다. 특히 재해성(災害性) 기후에 대한 사전 대처가 중요하다. 북한은 태풍과 홍수 등 자연재해의 피해가 유달리 크다.
이에 대해서 치산치수(治山治水)의 실패를 지적하는 분석이 많다. 북한 당국(당과 내각)은 자연재해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강하천 정리와 관개수로 정비를 잘할 것과 재해성 기후예측과 사전대비를 잘할 것을 강조해왔다.
기상예보 통보체계의 수립과 배수시설의 과학기술적 관리에 대해서는 《농업법》에서도 규정을 두고 있다(제58조). 당장은 기후예측에 필요한 위성자료를 구입하고 있고 장기적으로는 기상위성을 쏘아 올려야 한다는 것이 북한 정부의 생각이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50311234134747#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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