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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과 5월은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가슴의 한을 되새기는 시기다. 30년 전 4월 26일 명지대 신입생 강경대 군이 백골단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이후 노태우 군사 독재에 항거하며 박승희(4월 29일), 김영균(5월 1일), 천세용(5월 3일) 열사가 잇따라 분신해 목숨을 잃었다. 한진중공업 노동자 박창수 열사는 5월 6일 수감 중이던 안양 구치소에서 의문의 상처를 입고 세상을 떠났다. 이어 윤용하(5월 9일), 이정순(5월 18일), 김철수(5월 18일), 정상순(5월 22일) 열사도 스스로 목숨을 던지며 싸웠다. 5월 25일 4차 범국민대회 때에는 김귀정 열사가 백골단의 폭력 진압에 목숨을 잃었다.
이 숭고한 생명들이 목숨을 던지면서 마지막까지 외쳤던 구호는 모두 “노태우 군사독재 타도”였다.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가증스러운 슬로건을 앞세워 수많은 민주화 투사들을 잔혹하게 탄압했던 노태우 일당과의 싸움은 그렇게 처절했다.
그런데 이 가슴 아픈 기억을 되새기며 열사들을 추모해야 할 시기에 도저히 눈 뜨고는 못 볼 기사들이 연이어 보도되고 있다. 노태우 장남 노재헌이 광주를 방문해 ‘사과 쇼’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눈 깜빡거리는 게 사죄냐?
언론에 따르면 지난달 노재헌이 병석에 누운 노태우를 대신해 광주 5.18 민주묘지를 방문해 방명록을 통해 사죄의 뜻을 표했다는 거다. 그런데 나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노태우가 광주에서 학살을 저지른 지 어언 41년이다. 그 41년 동안 노태우는 어디서 뭘 하고 자빠졌다가 지금 와서 본인도 아니고 아들을 내세워 사과 운운하나?
관련 보도를 읽다가 4월 12일자 중앙일보 기사 ‘고비 넘긴 노태우…아들이 “광주 갈까요?” 물으면 눈 깜빡’이라는 기사를 읽고 완전히 뚜껑이 열렸다. 뭔 소리인가 싶어 살펴봤더니 노재헌이 2019년과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광주를 찾아 사죄의 뜻을 밝혔는데 이게 다 노태우의 뜻이었다는 거다.
그 증거랍시고 하는 말이, 노재헌이 병석의 노태우에게 “(광주에) 가지 말까요?”라고 물으면 노태우가 가만히 있었고, “갔다 올까요?”라고 물으면 눈을 깜빡거렸단다. 이것들이 진짜 이걸 말이라고 하나? 눈 깜빡거린 게 사죄냐? 눈 좀 여러 번 깜빡거렸다가는 노태우가 아예 석고대죄를 했다고 소문내겠다?
“당사자가 병석에 누워 말을 못하니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라는 반론은 집어치워라. 노태우 올해 나이가 여든아홉이다. 광주 민주화항쟁 이후 41년 동안 건강했던 기간이 최소 30년 이상인데 그 동안은 왜 눈도 안 깜빡거리다가 지금 와서 눈 깜빡거린 것으로 퉁을 치려고 하느냐는 말이다.
백만 보를 양보해 눈 깜빡거림이 사죄의 의사라고 치자. 그러면 41년 전 독재에 항거하다 목숨을 잃은 숭고한 광주 영령들에게는 뭐라고 고할 건가? “노태우가 드디어 눈을 깜빡거렸으니 이제 그만 용서해줍시다” 이러자는 건데,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노태우가 감옥에서 풀려난 것은 죗값을 다 치렀기 때문이 아니라 사면을 받았기 때문이다. 노태우는 반란 중요임무 종사, 상관 살해, 내란모의 참여 등 무려 7개 혐의가 유죄로 인정된 악질 범죄자다. 형량도 1심에서는 무기징역, 대법원에서는 징역 17년을 받았다.
이 악질 범죄자가 뭘 회고할 게 있었는지 2011년 『노태우 회고록』이란 것을 발간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는 이 책에서 5·18 항쟁에 대해 “광주 시민들이 유언비어에 현혹된 것이 사태의 원인이었다”고 적었다. 이게 고작 10년 전의 일이다. 심지어 5년 뒤인 2016년에는 그의 딸 노소영이 대구에서 총선에 출마한 김문수를 지지하며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민주화, 더 이상 뒤에서 팔짱끼고 남의 나라 보듯이 해서는 안 된다”는 헛소리까지 지껄였다.
그러면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라. 불과 10년 전 이런 멍멍이 소리를 지껄이던 자와, 5년 전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민주화” 운운하던 그 가족들이, 갑자기 마음을 바꿔 광주 영령들에게 사죄의 뜻을 표했다는 것을 어떻게 믿으라는 건가? 나는 절대 못 믿지만 나보다 훨씬 더 아량이 있는 사람이 그 말을 믿으려 한다고 쳐도, 최소한 회고록에 적은 저 대목은 고치고 눈을 깜빡거리던지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노태우와 그 가족들은 아직도 회고록을 수정하기는커녕 사과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아무리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라지만
나는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라는 사실이 두렵다. 인지신경과학자 탈리 샤롯(Tali Sharot) 칼리지런던 대학교 교수에 따르면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 망각이라는 기법을 사용해왔다. 특히 인류는 좋은 기억보다 나쁜 기억을 더 빨리 잊는 쪽으로 진화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과거의 아픈 기억이 발목을 잡으면 새로운 모험과 도전에 나설 수 없기 때문이다. 사냥에 나섰는데 동료가 죽는 아픈 경험을 했을 때, 인류가 그 기억을 간직한다면 절대 다음에 사냥에 나서지 못한다. 인류의 뇌가 나쁜 기억부터 빨리 삭제하도록 진화된 이유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의 아픔을 자꾸 잊는다. 41년 전 광주에서 목숨을 바친 그 숭고한 영령들의 이야기를 우리의 뇌는 자꾸 잊으려 한다. 30년 전 노태우가 죽인 강경대, 박승희, 김영균, 천세용, 박창수, 윤용하, 이정순, 김철수, 정상순 열사를 잊는다. 나는 이 망각이 진심으로 두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41년 전 광주를, 30년 전 그 뜨거웠던 거리를 잊지 못하는 이유는 그 일이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과거의 아픈 기억을 잘 잊으려 하는 반면, 마무리되지 않은 일은 또 잘 잊지 못하는 상반된 경향을 갖고 있다. 러시아의 심리학자 블루마 자이가르닉(Bluma Zeigarnik)의 이름을 딴 자이가르닉 효과, 혹은 미완성 효과라 불리는 이론이다.
시험 하루 전날 벼락치기 공부를 하면 시험을 보는 순간까지는 암기한 것이 기억이 잘 난다. 하지만 시험이 끝나는 순간, 암기한 것은 귀신같이 머리에서 사라진다. 시험 직전까지 뇌는 자기의 일이 마무리되지 않았다고 믿고 그 기억을 굳게 붙잡지만 시험이 끝나면 일이 마무리됐다고 간주하고 기억을 지운다. 그래야 다른 기억을 채울 공간을 확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41년 전 광주의 일은 마무리됐나? 전두환은 아직도 자신이 발포 책임자라는 사실을 부인한다. “노태우와 전두환은 다르지 않냐?”는 주장은 웃기는 소리다. 1996년 12월 2심 재판에서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노태우는 전두환의 참월(僭越, ‘분수에 넘친다’는 뜻)하는 뜻을 시종 추수(追隨)하여 영화를 나누고 그 업(業)을 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한 마디로 노태우가 전두환의 따까리였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노태우와 전두환이 뭐가 다른가? 두목과 따까리여서 다른가? 작작 웃겨라. 전두환이 저 멍멍이 소리를 아직도 지껄이고 다니는데 노태우는 눈만 깜빡거리면서 “나는 따까리여서 전두환과 달라요” 이러면 이걸 믿는 게 정상인가? 이 말을 믿으라고 하려면 노태우는 최소한 전두환의 멍멍이 소리에 저항하는 모습이라도 보였어야 했다. 41년 전 광주의 일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일을 쉽게 잊을 수 없다. 나는 1991년 수많은 열사들과 동시대를 살면서 그들의 죽음을 목도했다. 부끄럽게 살아남은 자로서 나에게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자격이 주어진다면 분명히 말한다. 죽어도 나는 노태우 너의 눈 깜빡거림 따위를 사죄의 뜻으로 보지 못하겠다. 그게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던진 수백 명의 민주화 열사들에 대한 예의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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