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한 경기도 이천시 한익스프레스 물류센터 화재 현장에서 30일 소방관들이 잔해 처리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동자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한익스프레스 물류센터 화재 참사는, 2008년 이천시 호법면 ㈜코리아2000 냉동창고 화재 사고와 너무도 닮았다. 특히 2008년 화재 뒤 국회가 추진한 대로 불에 취약한 건축자재를 쓰지 못하도록 건축법을 바꿨다면 화재는 일어나지 않았거나 피해가 줄었겠지만, 당시 국토교통부는 이를 거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화재도 ‘인재’였던 셈이고, ‘소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은 잘못’이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불러오는지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 2008년 사고 장소·면적만 다른 ‘판박이’
40명이 희생된 2008년 냉동창고 화재는 2만2천㎡ 규모의 완공된 건물 지하 1층에서 우레탄폼 발포 작업을 하다 유증기가 폭발하면서 일어났다. 이번 사고도 지하 2층에서 우레탄폼 희석 작업 도중 유증기가 폭발하면서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2008년 사고 때에는 폭발음과 함께 5분 만에 창고 전체가 아비규환으로 변했었고, 이번 사고도 10여차례의 폭발음과 함께 신축 건물 전체가 검은 연기로 뒤덮였다. 화재에 매우 취약한 샌드위치패널로 지어진 것도 마찬가지다.
이번 참사 목격자들은 “폭발음에 이어 불길이 삽시간에 번졌고 시커먼 연기와 유독가스로 금세 불지옥으로 변했다”고 전했다. 2008년 화재 때도 똑같은 진술이 나왔다. ‘우레탄폼 작업→유증기 폭발→샌드위치패널 화염→유독가스 발생→대형 인명피해’라는 상황이 매뉴얼처럼 반복된 것이다.
■ 소 잃고 외양간 왜 못 고쳤나
경기도 이천소방서가 2008년 6월 펴낸 <이천시 코리아2000 냉동창고 화재사고 백서>에서는 우레탄폼 작업 중 폭발과 함께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샌드위치패널 때문에 대형 인명피해가 났다고 분석했다. 이어 재발방지를 위해 제도·법률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실제 사고 이듬해인 2009년 국회 국토해양위원회에서는 신축 건물에 불에 잘 타지 않는 난연 소재의 마감재 및 단열재 사용 등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건축법 등 관련 법 개정이 추진됐다. 하지만 당시 국토해양부는 이를 반대해 법 개정이 지연되고, 시행령 수준으로 규제 수위가 낮아졌다.
2009년 7월8일 국회 속기록을 보면, 당시 권도엽 국토부 1차관은 “(마감재) 관련 제한을 처음 도입하는 거라 신중해야 한다. (외국) 사례도 많지 않다. (하더라도) 대상을 제한적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개정안의 건축주를 처벌하는 내용을 두고서도 권 차관은 “전문가가 아닌 건축주를 처벌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결국 2014년 5월 국회를 통과한 시행령은 규제 대상을 기존 창고 바닥면적 3000㎡ 이상에서 600㎡ 이상으로 강화하고, 내부 마감재는 난연재료 이상을 사용하도록 의무화했다. 벽체 내부에 설치하는 단열재 규제 조항은 없었다.
이번 참사가 일어난 물류센터도 내외부 마감재는 난연재료 사용 대상이지만, 마감재 안에 들어가는 단열재는 별도 규정이 없어 샌드위치패널을 사용했다가 화를 키웠다. 2017년 제천 화재 참사 이후 국회 재난안전대책특별위원회에서 활동한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가연성 내·외장재 사용을 금지하는 것은 입법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비용이 더 투입되다 보니 강제하기가 쉽지 않다”며 “국민 안전을 확보하려면 코로나19처럼 막대한 국비를 투입해서라도 참사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천/김기성 이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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