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의 역사>
오늘은 130주년 세계노동절이다. 미국에서는 놀기만 하는 자본가들이 다이아몬드로 이빨을 해 넣고, 100달러짜리 지폐로 담배를 말아 피울 때, 노동자들은 하루 12-16시간 장시간의 노동에 일주일에 7-8달러의 임금을 받으며 월 10-15달러 하는 허름한 판잣집의 방세내기도 어려운 노예와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1886년 5월 1일, 마침내 미국 노동자들은 8시간 노동을 위해 총파업을 시작했다. 공장의 기계소리, 망치소리가 멈추고, 공장굴뚝에서 솟아오르던 연기도 보이지 않고 상가도 문을 닫고 운전수도 따라서 쉬었다. 경찰은 파업 농성 중인 어린 소녀를 포함한 6명의 노동자를 발포 살해하게 되고, 그 다음날 경찰의 만행을 규탄하는 30만의 노동자, 시민이 참가한 헤이마켓 광장 평화 집회에서 갑자기 누군가에 의해 폭탄이 터지고 경찰들이 미친듯이 몽둥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 후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들이 폭동죄로 노동운동 지도자들을 체포하고 억울하게 폭동죄를 뒤집어 쓴 노동운동의 지도자들은 장기형 또는 사형을 선고받게 된다. 이 사건이 바로 세계 노동운동사에 기록된 ‘헤이마키트 사건’이다. 1889년 7월, 세계 여러 나라 노동운동의 지도자들이 모인 제2인터내셔날 창립대회에서 8시간 노동쟁취를 위해 투쟁했던 미국 노동자의 투쟁을 전 세계로 확산시키기 위해 5.1을 세계 노동절로 결정하게 된다. 그리고 1890년 5월 1일을 기해 모든 나라, 모든 도시에서 8시간 노동의 확립을 요구하는 국제적 시위를 조직하기로 결의하게 된 것이다. 1890년 세계 노동자들은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외치며 각국의 형편에 맞게 제1회 메이데이 대회를 치렀다. 그 후 지금까지 세계 여러 나라에서 노동자들의 연대와 단결을 과시하는 국제적 기념일로 정하여 이날을 기념하고 있다.
<노동절이 없는 나라에 사는 근로자들...>
한해 사망자 1,748명…! 하루 평균 3명씩 죽어가는 나라. 전쟁을 하느냐고…? 전쟁이다. 먹고살기 위한 전쟁. 한해 1748명이 목숨을 잃는 나라를 두고 어찌 전쟁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2020년 4월 30일 어제, 노동절을 하루 앞둔 대한민국 경기도 이천에는 38명의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2018년 12월 11일 새벽 3시, 홀로 석탄 운반용 컨베이어 벨트를 점검하던 24살 청년이 벨트에 끼어 사망했다. 그 해 김용균씨처럼 사고성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는 895명. 매일 3명의 ‘김용균들’이 일터에서 목숨을 잃고 있다. ‘설마 그렇게 까지’...라고 생각할 사람들이 많겠지만 이게 경제대국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산업재해 사망률 1위’라는 오명은 이제 새삼스럽게 꺼내기조차 진부한 얘기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모든 국민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가 있고 국가는 이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고 했지만, 노동자들에게는 먼 남의나라 얘기다. 매일 ‘김용균’이 있었고, 내일도 ‘김용균’이 있을 것이지만 한국사회는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 무감각해진 지 오래다.
경향신문이 정부통계를 인용해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 한 해 2,142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하루 6명이 죽는다. 산재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특수고용노동자·1인 자영업자의 사망, 은폐된 사망 등은 여기서 제외된다. 이런 현실을 두고 헌법이 보장하는 ‘행복추구권’이니 ‘노동하기 좋은 나라’라는 말을 말장난이요, 사기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도 아니고 그냥 먹고 살기 위해서다.
지금도 삼성전자 서초사옥이 있는 서울 강남역 사거리 교통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철탑 위에는 해고노동자 김용희씨가 325일째 높이 25m, 지름 1.5m 원형 철판 철탑 위에서 복직투장을 하고 있다. 사람이 325일동안 목욕도 운동도 못하고 영하의 날씨를 견디며 투쟁하는 사람이 헌법에 보장한 ‘모든 국민이 인간답게’ 사는가? 국가는 책임을 다 했는가? 오늘은 노동자들의 생일날이다. 노동자들이 없는 나라가 가능한가? 그런데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은 왜 이렇게 천대받고 사는가? 목숨을 건 투쟁을 멈추지 않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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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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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역사>
우리나라 최초의 노동절 행사는 1923년 일제 식민지 시절, 당시 노동자의 자주적 조직인 ‘조선 노동 총연맹’의 주도하에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약 2,000여 명의 노동자가 “노동시간 단축, 임금인상, 실업방지” 등을 주장하며 전 세계 노동자의 명절인 메이데이 기념행사를 최초로 치렀으며, 그 이후 1945년 해방되기 전까지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굽힘 없는 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왔다.
해방을 맞은 1945년 결성된 조선 노동조합 전국평의회는 1946년 20만 노동자가 참석한 가운데 메이데이 기념식을 성대히 치루게 된다.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이하 전평)의 깃발아래 노동자들의 힘찬 함성이 울려 퍼지는 서울운동장 야구장 바로 옆, 육상경기장에서는 대한노총이 주최한 약 1,000여 명의 우익청년과 노동자가 참석한 초라한 기념식이 치러졌다. 미군정과 대한노총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폭력적인 ‘전평’ 파괴로 수많은 조합원이 해고되고 검거되었다. 게다가 미군정은 정부의 입맛에 맞는 대한노총을 껴안고 정치색을 띤 전평은 일체 정당한 단체로 인정하지 않겠다며 마침내 전평을 불법단체로 규정하기에 이른다.
<문재인대통령,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들겠다고...?>
1989년. 전교조가 노동자라면서 노동조합을 결성했다가 1800여 명의 교사들이 교단에서 쫓겨났다. 그들은 김영삼정부가 이들을 특별채용형식으로 복직은 시켰지만 지금도 연금조차 받지 못하고 ‘해직교사원상회복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투쟁하고 있다. 선진국 문턱에 선 대한민국은 왜 아직도 노동자와 근로자조차 구별하지 못하고 노동자들이 탄압받고 사는가? 어떤 책에 보니 독재자의 통치술에 민중을 간난 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있지만 가난해야 한눈팔지 못하고 자본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하게 순종하는 노동자가 되고 기업하기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일까?
지난 해 노동절 하루 전날 ‘노동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겠다던 문재인 촛불대통령은 경기도 화성시 소재 삼성전자 사업장에서 열린 ‘시스템반도체 비전과 전략 보고회’에 참석해 “사람과 기술에 집중 투자하겠다”면서 당장 내년부터 10년간 1조 원 수준의 기술개발 사업을 추진해 차세대 반도체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반도체 분야 국가 연구개발(R&D)을 확대하고 관련 학과를 신설해 전문 인력을 키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촛불이 만든 문재인대통령은 정말 노동자가 사람대접 받는 나라를 만들 수 있을까? 문재인정부가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사람은 노동자인가, 근로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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