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준(51·가명)씨는 지난 30년을 ‘칼 한자루’로 버텼다. 음식점에서 육류를 손질하는 ‘육부장’이다. 그가 손질한 고기로 주방장이 요리한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위치한 대형 음식점엔 윤씨를 비롯해 직원 14명이 함께 일했다.
음식점 한 달 매출은 꾸준히 2억원 정도 나왔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며 매출이 고꾸라졌다. 2월에 절반, 3월에 다시 반의 반으로 떨어졌다. 보름전, 직원 14명 중 5명이 윤씨와 함께 해고됐다. 사장은 나이가 많은 직원들을 먼저 내보냈다.
지난 20일, 실업급여를 신청하기 위해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 들른 윤씨는 “IMF때도 이렇지는 않았다”며 쓴 웃음을 지었다. 사장에게 “코로나19 사태가 지나갈 때까지 월급 안받고 휴직하겠다. 우리가 버텨보겠다”고 부탁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윤씨는 “나라에서 고용유지지원금을 준다지만 빈틈이 많다. 월급 25%를 사장이 내야 한다는데, ‘그냥 사람을 줄이겠다’고 하니 할 말이 없었다”고 말했다.
실업대란이 펼쳐지고 있다. 이날 하루동안 지켜본 상담창구엔 실업급여 신청자들이 끊임없이 몰려들었다. 윤씨 처럼 실업급여를 신청한 사람은 전국적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0.1% 급등했다.
정부는 고용을 유지하는 사업장에서 사용자가 부담하는 비율을 25%에서 10%로 줄이겠다고 밝혔지만, 그 10% 때문에 해고되는 사람들이 현실에선 줄을 잇고 있다. 미국 정부와 국회는 지난달 ‘2차 긴급예산법’을 통과시켜 휴직으로 발생하는 임금 부담 전액을 정부가 보조하기로 했다.
어렵게 일자리를 구해 정규직 전환을 바라보던 청년들의 희망도 사라지고 있다. 코로나19로 ‘언택트’ 문화가 확산하며 직격탄을 맞은 카셰어링업체 A사 인턴 조경민(29·가명)씨는 3개월 인턴이 끝나고 ‘정규직 전환이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던 회사였다. 앞선 인턴 직원들은 대부분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서울 4년제 대학을 나온 그 역시 정규직이 될 것이란 꿈에 부풀어 있었다. 조씨는 “함께 일했던 인턴 11명이 다 해고됐다. 어렵게 입사했는데, 또 수십군데 이력서를 쓸 생각하니 아찔하다. 그나마 요즘 공채도 안뜨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2월 종업원 3천명 이상,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상반기 신규채용 여부를 조사한 결과 기업 네곳 중 한곳(27.8%)은 ‘지난해보다 규모를 줄이거나 아예 뽑지 않을 계획’이라고 답했다. 신규채용 계획이 있던 기업들의 채용도 줄줄이 하반기로 밀리고 있다.
29일 오전 서울 동대문 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금융권 공동 채용박람회를 찾은 구직자들이 현장면접을 보고 있다.ⓒ김슬찬 기자
실업급여 신청 '그림의 떡'
프리랜서 눈물은 누가 닦아 주나
윤씨나 조씨처럼 실업급여를 신청할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놓인 특수고용직이나 일용직 노동자, 프리랜서들은 당장 생계가 막막하다.
연극배우 이승관(30·가명)씨는 지난 3월말, 공연 2일을 앞두고 ‘극장 폐쇄’ 소식을 접했다. 언제 공연이 열릴지 알 수 없다. 두 달 상영을 예상했던 공연이 갑자기 엎어지면서 받은 ‘위로금’은 20만원이었다. 이씨는 “공연 때마다 계약을 하는 구조다. 소속사가 있는게 아니라서 사실상 프리랜서”이라며 “이번 공연 뿐 아니라 올해 계획된 모든 공연을 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막막하다”고 말했다.
이씨 같은 예술인들에게도 고용보험을 적용하자는 법이 20대 국회에 발의됐지만,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코로나19 같은 사태를 맞았다.
40년간 창신동에서 미싱사로 일한 최필성(60대·가명)씨는 “이 일하면서 고용보험은 생각도 해본 적 없다. 우리 같은 객공들은 원래 그런게 없다”고 말했다.
창신동에 위치한 4층짜리 빌라를 개조해 만든 이 공장에선 인근 평화시장이나 동묘시장에 납품할 옷을 만든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시장을 찾는 사람 발길이 뚝 끊겼고, 결국 납품 계약이 줄줄이 취소됐다.
숙련 미싱사는 새벽에 출근해 하루 13시간 꼬박 일하면 20만원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요즘엔 오전에만 잠깐 나와 점심까지 일하는게 보통이 됐다. 그나마 이틀에 한 번 꼴로 ‘오늘은 쉬라’는 전화를 받는다. 오랜시간 함께 일한 사장은 나와서 일을 하면 어떻게든 임금을 챙겨주려고 하지만, 생활이 어려워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원칙적으로 최씨가 일하는 공장은 고용보험 당연적용대상 사업장중 하나다. 1998년 10월 1일부터 1인 이상 노동자가 있는 사업주는 의무적으로 고용보험에 가입해야 하지만 ‘사업 규모나 특성’에 따라 가입하지 않아도 된다.
지난 3월 기준, 전체 취업자는 모두 2,660만명이다. 이 중, 고용보험 적용 대상이 아닌 사람이 네명 중 한명 꼴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고용보험에 가입조차 할 수 없다. 나머지 취업자 중 20여%는 적용대상인데도 불구하고 가입하지 않고 있다. 결국, 이씨나 최씨 처럼 일을 하고 있지만 고용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1,284만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절반(48%)에 육박한다.
여당에 따르면 청와대는 22일, 5차 비상경제회의를 열고 고용유지지원금·특별고용지원업종 확대 등의 ‘일자리 지키기 비상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대책은 기업에 지원금을 줘 고용을 유지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 될 공산이 크다. 문재인 대통령이 “기업을 지키는 것이 일자리를 지키는 일”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촉발된 고용대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업에 지원금을 주는 방식 이외에, ‘일하는 사람 모두’를 고용보험 시스템 안으로 포함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40년 경력 미싱사 최필성씨는 “이런 상황이 오면 우리는 방법이 없지. 그냥 버티는수밖에. 고용보험이 있으면 좋겠냐고? 그걸 말이라고 하나”라고 되물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제4차 비상경제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0.04.08.ⓒ뉴시스
홍민철·윤정헌·장윤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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