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인터뷰③] 진안에서 만난 암 투병 중인 이용마 MBC 해직기자… “장삼이사가 MBC 사장 뽑으면 왜 안 되나?”
김도연 기자 riverskim@mediatoday.co.kr 2017년 03월 29일 수요일
<편집자주 : 이명박에서 박근혜 정권까지 MBC는 9년 동안 철저하게 망가졌다. 부당한 권력에 비판적인 MBC 언론인들은 2012년 파업 이후 비제작부서로 쫓겨나고 해고당했다. 뉴스는 정권 편향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PD수첩’ 등 송곳 같던 시사 보도 프로그램은 무뎌진 지 오래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통해 근현대사에 드리운 그늘을 조명하던 MBC는 이제는 말할 수 없는 방송사가 돼 버렸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언론장악 빗장을 푼 방송사 노동조합 활동도 위축됐다. 미디어오늘은 87년 체제 30년을 맞아 전·현직 MBC 언론인과 전문가들의 생각을 담고 권력의 언론장악 구조를 분석해 MBC 사태를 되짚으려 한다.>
“김 기자, 스틱 운전할 줄 알아요?” 지난 26일 만난 이용마 MBC 해직기자는 난감한 표정이었다. “여기 와서 처음 스틱 운전을 해보네. 익숙지 않으니…. 고갯길에서 멈춰야 할 때 그게 제일 힘들어.” 콜록거리며 기자에게 건넨 말에는 암 투병 환자의 힘겨움이 묻어났다. 암 수술 대신 자연 치유로 경기도 남양주시 한 요양원에 거처를 마련했던 그는 한 달 전 전라북도 진안에 위치한 건강촌으로 자리를 옮겼다. 크게 부푼 그의 배는 직시해야 하는 현실로 다가왔다. “나빠지는 현상은 있어도 좋아지는 증후가 없으니 좀 그렇네. 복수에 이어 흉수(폐에 물이 차는 현상)까지 왔어. 위암이나 폐암은 시티(CT)를 찍어서 확인이 가능한데 복막암은 체크가 어려워. 직접 배를 열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니까.”
▲ 이용마 MBC 해직기자는 2012년 170일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해직됐다. 파업 이후 MBC의 공영성은 더욱 추락했고 파업에 참여했던 언론인들은 보도·제작 일선에서 철저하게 배제됐다. 이 기자가 지난 26일 전북 진안의 한 건강촌에서 전주고등학교 동기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이용마 기자는 2012년 MBC 170일 파업을 이끌었다. 공정방송 사수를 기치로 내걸고 MB정부와 그에 부역한 경영진에 맞섰다. 해고는 파업에 대한 혹독한 대가였다. 그의 암 투병은 지난해 9월 김종구 한겨레 편집인 칼럼(“암에 걸린 후배 해직 기자를 바라보며”)을 통해 알려졌다. 이 기자의 전주고등학교 선배이기도 한 김 편집인은 칼럼에서 “‘심화’는 사람을 태운다”라고 썼다. 해직이라는 고통이 가슴속 솟구치는 불길로 이어진 게 아니냐는 내용이었다. 수년 만에 만난 이 기자는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여기는 경기도 남양주보다 공기가 더 좋은 것 같더라고. 남양주에서는 별을 보기 어려웠는데, 여기 내려오니까 별이 쏟아져서 참 좋아.”
진안시외버스터미널에서 익숙지 않은 스틱 운전으로 30분. 이 기자가 머물고 있는 한 건강촌이 보였다. 냇물이 흐르고 인적은 드물었다. 황토방의 향기는 30분 전의 긴장감을 달래주는 듯했다. “우리 용마 왔네.”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그의 전주고등학교 동창 3명이 이 기자를 반겨줬다. 이 기자는 1987년 전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애들이 용마 너한테 안부 전해달란다. 애들이 여기 찾아온다고 하더라고.” “여기까지 와서 뭐해. 괜찮아.” “20차 촛불집회에서 너 발언한 거 이미 카카오톡이랑 밴드에 막 올라오더라.” “그랬어? 난 몰랐네.(웃음)”
궁금해졌다. 이 기자는 학창 시절에 어떤 학생이었는지. “우리 반 반장이었어. 모범생이지 모범생.” “전교 1등이었나요?” “전교 1등은 아니었는데 우리 반 1등이었어. 키 큰 순으로 번호를 매겼는데 용마는 1번이었어.” 친구들이 생각하는 MBC 대량 해직 사태도 궁금했다. 고등학교 친구 권혁씨는 표정이 어두워지며 “정말 너무한 거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라고 탄식했다. 최재철씨는 “하필이면 (이 기자를 해고한 김재철 전 MBC 사장이) 나랑 이름이 같네”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들은 대법원에 묶여있는 해고무효소송(1·2심 재판부는 모두 해고무효판결을 내리며 MBC 해직자들의 손을 들어줬다.)을 걱정하며 무너진 MBC를 안타까워했다. 권씨는 “신경민 앵커가 클로징 멘트를 할 때만 해도 MBC 잘나갔지. 그때가 그리워”라고 말했다. 김옥주씨는 “정수장학회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MBC 지배구조 개편의 필요성도 꺼냈다. 본격적인 인터뷰는 친구들이 기자에게 자리를 내주면서 시작됐다.
- 현재 건강 상태는 어떠한가?
“아직 잘 모르겠다. 좋아지는 현상은 크게 눈에 띄지 않는데 나빠지는 현상만 있으니 좀 그렇다.(웃음) 체중이 10kg 이상 빠졌다. 복수가 많이 찼고 흉수까지 찼다. 기력도 많이 떨어졌다. 원래는 등산을 1시간 반이나 2시간 정도 했었는데 여기 와서는 1시간 정도로 줄어들었다. 등산은 치료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시작했다. 여전히 항암식품을 먹으며 몸을 다스리려고 노력한다.”
- 기침도 심하고 복수 문제도 있는 것 같다. 의사들은 뭐라고 진단하고 있나?
“의사도 명확하게 이야기해줄 수 없는 것 같다. 복막에 위치한 종양의 개수, 그 크기 등에 대해서 직접 체크가 어려우니까. 복막암은 직접 배를 열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고 한다. 다만 악성종양으로 나타나는 현상들, 그게 지금 복수다. 복수가 넘쳐서 폐로 간 것인지 흉막에 종양이 생겨 흉수가 생긴 건지 잘 모르겠다.”
▲ 이용마 MBC 해직기자는 2012년 170일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해직됐다. 파업 이후 MBC의 공영성은 더욱 추락했고 파업에 참여했던 언론인들은 보도·제작 일선에서 철저하게 배제됐다. 이 기자가 지난 26일 전북 진안의 한 건강촌에서 전주고등학교 동기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 암 투병 중 지난 11일 촛불집회에서 연대 발언을 한 것이 화제였다. 페이스북, 유튜브, 트위터 등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그것도 치료를 위해 올라가던 차였다. 흉수 때문에 숨쉬기 매우 어려웠고 안 되겠다 싶어서 병원을 찾았다. 그때 마침 참여하게 된 것이다. 이전에도 퇴진행동에서 한번 나와 달라고 요청하셨는데 나가는 게 어렵기도 하고 그래서 나가지 않았다. 요양하느라 촛불집회에 한 번도 참석하지 못했다. 그래도 인터넷으로 생중계되는 촛불집회는 챙겨봤다.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컸었고.”
-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
“굉장히 자유롭더라. 매력적이었다. 어린 시절 고향 전주에선 시청 뒤 광장에 ‘난장’이라는 게 크게 열렸다. 음식을 파는 이들, 특산물을 파는 이들, 한쪽에는 풍물패도 있었다. 말 그대로 축제의 장이었다. 난장을 보는 느낌이었다. 보통 시위라고 하면 경찰과 시위대가 대치하는 분위기나 경찰이 시위대를 포위하는 모습을 떠올리지 않나? 긴장감이 팽배해 있는 분위기.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자유로움이 있었다. 사실 처음 가다보니까 연단을 찾지 못했다.(웃음) 또 중간에 스크린이 있으니까 그쪽으로 향했는데 연단은 저 앞에 있더라. 이렇게 축제처럼 시위가 열릴 수 있는데 그동안 어땠나. 정부가 계속 시민들을 억눌렀고 이 때문에 긴장이 조성되고 충돌이 발생한 것 아닌가. 굉장히 질서정연했다. 민주주의는 국민들이 마음껏 자기 목소리를 내고 끼를 발산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 평화로운 집회였지만 MBC 기자들은 수모를 겪었다. 취재진이 발을 붙일 수 없을 정도로 MBC에 대한 격렬한 저항이 있었다. 나아가 MBC 앞에서 열린 친박집회에 MBC 기자가 나서서 연대 발언을 하기도 했다. “MBC가 ‘애국방송’을 충실히 하고 있다”는 비아냥도 쏟아지고 있다.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현실이 되고 있다. 태극기집회를 포함해 소위 ‘애국세력’들은 한국사회의 패배자들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 사회에 뒤처진 사람들. 그들의 인정 투쟁이 비정상적인 형태로 분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MBC 내 애국세력들도 마찬가지다. 일반인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아웃사이더들이 스스로 주류가 되고자하는 극한 열망의 표출 아닐까. 한때 자신들을 대리해준 박근혜의 몰락에 대한 극한 반발이다.”
이 기자는 지난 11일 촛불집회에서 검찰과 언론 개혁을 주문했다.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돌려줘라.’ 하나를 더 추가하고 싶다. 국민의 것은 국민에게 돌려줍시다.” 검찰과 언론의 인사권을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그의 외침은 시민들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 촛불집회에서 “언론과 검찰의 인사권을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공영방송 사장을 국민이 직접 뽑자는 이야기인가?
“공영방송 사장 직선제를 주장하는 건 아니다. KBS·MBC 사장을 대통령 뽑는 것처럼 할 수는 없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추첨제’다. 직접 민주주의 시작은 그리스 아테네였고 아테네는 선거를 중시하지 않았다. 선거를 하게 되면 귀족주의 편향이 빚어지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돈이 있는 사람들이라든지 귀족 혈통을 가진 이들이 지배하게 되고 중요한 자리를 그들이 독점하게 된다. 이런 것들을 막기 위해 아테네에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추첨을 활용했다.”
- 추첨제는 조금 낯설다. 이게 현실화할 수 있는 대안인가?
“우리는 이미 추첨제를 활용하고 있다. 국민참여 배심원제도가 그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사법개혁 일환으로 도입한 제도로서 관할 구역의 20세 이상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추첨해서 배심원 후보들을 뽑아낸다. 남녀 성비, 연령 비율 등을 감안해 뽑는다. 이렇게 추첨된 배심원 후보들을 변호사와 검사 양측이 골라낸다. 이렇게 선발된 배심원들은 대한민국 평균의 사람들이다. 배심원들의 평결 결과와 판사가 내린 마지막 최종 판결이 어긋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추첨을 통해 일반인 가운데 배심원을 무작위로 뽑는다면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장삼이사가 무슨 판결을 할 수 있겠느냐’고 생각할 것이다. ‘엘리티시즘’이 짙게 깔린 거다. 그런 기준이라면 현 대통령 선거야말로 가장 무책임한 선거가 아닐까.”
- 추첨제를 어떻게 공영방송 사장 선임에 활용할 수 있다는 건가?
“현재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이자 관리·감독 기구) 이사진은 여야 6대3 구조다. 진영 논리에 의해 모든 투표 결과가 6대3으로 동일하다. 그렇다보니 회의를 통한 건전한 의견 교환 자체가 불가능하다. 1987년 ‘방문진 체제’가 들어선 뒤 이런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이 때문에 방문진 이사진 구성원을 여야 7대6으로 만드는 등 단순히 숫자 조정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숫자 조정해봐야 어차피 7대6이면 과반수 차지하는 쪽이 이긴다. 추첨을 통해서 50명이면 50명, 100명이면 100명이 선발되고 이들이 공영방송 사장 청문회를 보고, 직접 참여해 사장을 뽑는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정치권에서 추천된 인사들은 아무리 사장 후보자가 흠결이 있다고 해도 여당에서 ‘이 사람을 밀라’고 하면 미는 거다. 오차 한 치도 없다. 추첨제 대리인단은 한 번 모였다가 해산되는 것이기 때문에 특정 정파에 유리하게 판단할 이유도 없다.”
▲ 이용마 MBC 해직기자가 지난 1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20차 촛불집회 연단에서 공영방송 사장 선임 구조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그는 “국민의 것인 공영방송은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권성민 MBC PD 페이스북 |
- 그렇다면 현재 20대 국회에 계류 중인 언론장악방지법에도 부정적인가?
“언론장악방지법은 지난 2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시민사회 진영에서 합의된 안이고 어떤 취지인지 알기 때문에 가타부타 말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처음부터 부정적이었다. 언론장악방지법에 따르면 여야가 합의해야 사장을 뽑을 수 있다. 야당이나 여당 어느 한쪽에서 동의하지 않으면 사장을 뽑을 수 없다. 떼쓰면 답이 없다는 말이다. 또 그걸 고리 삼아 또 다른 거래가 이뤄질 수 있다. 사장은 누구를 뽑을 테니 보도본부장이나 제작본부장을 누구로 임명하라는 식으로 딜(deal)이 이뤄진다면 누가 손해인가. 국민이다.”
- 그럼에도 현실적 대안으로 꼽히지 않나?
“여야 양쪽 지지를 받는 사람이 사장이 된다면 그는 아마 중립을 가장한 기회주의자일 수 있다. 그렇다면 공영방송이 제대로 굴러갈 수 있겠나. 여야 양측의 눈치를 봐야 할 텐데. 여야가 추천한 이사들로 공영방송 이사진을 구성해야 한다는 프레임에 갇힌 게 아닌가 싶다. 지금이 19대 국회처럼 양당 구조가 아닌 다당 구조라는 점도 걸림돌이다.”
- MBC는 세월호 유가족을 폄훼해온 대표적 언론사였다. 이 때문에 세월호 인양을 지켜보는 심정도 남달랐을 것 같다.
“그 말이 제일 가슴 아팠다. ‘이렇게 쉽게 인양할 수 있었는데….’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를 수년째 바다에 처박아뒀다. 박근혜가 물러나니까 세월호가 떠올랐다. 세월호가 인양됐다는 소식을 듣고 무심결에 내뱉은 말이었는데 나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박근혜의 몰락과 세월호 인양을 연상하더라.”
- MBC가 세월호 특보를 편성하는 등 보도를 쏟아냈던 것은 알고 있나?
“열심히 한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그건 내가 모르겠다.(웃음) 중요한 것은 공영방송이 제대로 역할을 했다면 진상규명과 인양이 지금처럼 지지부진하지 않았을 거라는 점이다. 자유롭게 보도하던 그때였다면 이미 해결되지 않았을까 싶다. 인양은 기술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지금 올릴 수 있었다는 이야기는 작년 이맘때도, 재작년 이맘때도 가능했다는 이야기 아닌가.”
- 현 김장겸 사장이 차기 권력 눈치를 보고 있는 것 아닐까?
“글쎄.(웃음)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 또 모른다. 저 사람들은 변신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니까.”
이야기는 대선으로 흘렀다. 현재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MBC는 전쟁 중이다. 문 후보는 지난 21일 MBC ‘100분토론’에 출연해 MBC를 강하게 비판했다. “MBC가 심하게 무너졌다고 생각한다. ‘이명박근혜’ 정권은 공영방송을 장악해 국민의 방송이 아니라 정권의 방송을 만들었다. 공영방송이 다 망가졌다. 옛날 자랑스러운 MBC 모습이 어디 갔나 생각이 든다.” 면전에서 MBC에 일침을 가한 것이다.
- 문재인 후보와 MBC와의 충돌은 어떻게 지켜봤나?
“100분토론 영상을 모두 본 것은 아니다. 기사나 일부 영상을 통해 봤다. 문 후보는 적어도 언론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현재 대선 주자 가운데 가장 문제의식이 있다고 평가한다. 그런 차원에서 100분토론 현장에서 MBC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안다.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보여줘야 하는 행보다. 사실 문 후보가 뛰어났다기보다 그동안 다른 대권 주자들이 공영방송 문제에 너무 소극적이었다.”
이 기자의 이러한 문제의식은 안희정 민주당 후보 비판으로 이어졌다. 언론노조 MBC본부가 21일 공영방송 정상화 문제의 시급성을 호소하기 위해 MBC 사옥 앞에서 피켓 시위를 했는데 안 후보가 “무엇 때문에 시위하는 것이냐”고 물었다는 보도가 논란이었다. 이 기자는 다음날 자신의 페이스북 통해 “MBC와 KBS 구성원들이 언론 장악 철폐와 독립성 확보를 내세우며 시위한 게 하루 이틀이 아닌데 어떻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느냐”며 “‘아이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있다는 데 구조가 그렇게 힘드냐’고 물었던 박근혜가 떠오른다. 우리가 2012년 6개월 파업하고 수백 명이 부당 전보로 업무에서 배제됐고 MBC가 엠XX 소리를 듣고 있는 이 악몽 같은 현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말이 아닌가”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 안 후보를 강하게 비판했다.
“적어도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언론 문제를 그렇게 몰라서는 안 된다. 현재 언론은 철저하게 국민의 눈과 귀를 통제하고 있다. 과거 군사 정부에서 언론은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억압적으로 언론과 언론인들을 때려잡았다. 민주화가 이뤄지면서 비로소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생겼다. 민주 정부가 들어선 뒤에야 언론에서 정부 비판적 목소리가 나왔다. 그런데 MB정부가 다시 언론을 때려잡기 시작했다. 억지로 때려잡다보니까 파열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거고. 여러 사람들이 해고되고 징계 받는 등 지금도 비정상적인 행태가 이어지고 있다. 그런 부분에 대한 고민이 없다고 봤다. 언론을 기득권의 정책 홍보로 만드느냐, 아니면 다수 대중에 봉사토록 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 이용마 MBC 해직기자가 지난 26일 오후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김도연 기자 |
MBC에 대한 이야기는 인터뷰 후반부에 이뤄졌다. 본격적으로 MBC를 도마 위에 올리자 그의 목소리는 커졌고 눈빛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민감한 주제인데도 거침없었다. ‘2012년 파업에 대한 평가’, ‘MBC 내 부역 세력들과의 갈등 해소 문제’, ‘2012년 박근혜 대선 후보의 김재철 퇴진 약속 번복’ 등의 질문을 던져봤다.
- 첨예하게 MBC 노사가 대치하고 있고 사측에 가담한 인사들은 탄압에 서슴없다. 태극기집회에서 마이크를 잡은 이도 MBC 기자 아닌가. 설사 MBC 정상화가 이뤄진다고 해도 그들의 존재는 정상화의 걸림돌로 작용할 것 같다.
“어떻게든 해결해야지. 어떤 식으로든 정리를 해야 한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상식에 입각해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그럼에도 상식을 거부한다면 그건 언론인으로서 자격이 없는 것이다. 자기만이 무조건 옳다? 그건 아니다. 그런 자세라면 그 사람들은 내버려둬도 자연스레 도태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그동안 MBC 전·현직 인사들을 인터뷰하면서 느낀 건 MBC는 ‘87년 체제’ 위에서 언론 민주화를 일정 부분 달성할 수 있었고 그 힘을 바탕으로 권력과 맞서왔던 것 같다. 1996년에 입사했는데 신입 기자 이용마가 바라보는 MBC는 어땠나?
“그때는 우리 사회가 언론의 자유 물결을 타고 있던 때였다. 정부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내긴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강하게 비판하긴 어려웠다. 여전히 여당이나 청와대 입김이 MBC 내에 작용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런 부분이 점점 완화되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부에 와서는 청와대 입김은 거의 작용하지 않았다. MBC 내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청와대에서 전화가 오면 오히려 ‘조져버려라’고 지시하고 따를 수 있는 분위기였다. 우리는 분명 1987년 민주화 혜택을 봤다.”
- 기자 사이에서 보도에 대한 고민도 있었을 것 같다.
“첫 번째 고민했던 것 중 하나가 정치부 기사를 어떻게 쓸 것인가였다. 입사했을 무렵에는 여야를 5대5로 써주면 된다는 식의 분위기가 형성됐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여당 기사가 95라면 야당 기사는 5에 불과했다. 사실 야당 기사라는 게 없었다. 민주화가 되니까 여야 균형을 맞춰야하지 않느냐, 중립과 객관적인 보도라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 이른바 기계적 중립도 민주화의 산물인 건가?(웃음)
“그것도 엄청 발전한 거였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과연 5대5로 보도하는 것이 맞는 거냐는 고민들이 있었다. 여당에서 사실이 아닌 걸 가지고 사실이라고 우기고 야당이 사실을 가지고 반박할 경우 그것을 5대5로 보도하면 어떻게 되나. 한쪽이 틀렸으면 틀렸다고 명확히 해줘야 하는 게 아닐까라는 고민들이다. 논의가 발전한 거다. 이런 논의가 나오던 차에 이명박 정부로 넘어갔다. 모든 논의는 도로 아미타불이 됐다.(웃음)”
- 현재 공영방송 보도들이야말로 ‘기계적 중립’을 통해 사실을 왜곡하고 있지 않나?
“논의 프레임은 여당에 찍혀 있다. 여당 주장으로 리포트를 만드는 거다. 여당에서 야당 후보 의혹을 제기하면 의혹 제기를 50% 보도하고 나머지는 야당 반론이다. 사람들이 보면 중립을 지키는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야당이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도하고 있다. 반면 야당의 의혹제기는 묵살하는 게 공영방송이다.”
- 박근혜 탄핵이 1987년 체제처럼 공영방송의 변화를 이끌 수 있을까?
“후배들에게 미안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큰 변화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현재 방문진 이사들의 임기는 2018년 7월까지다. 이 구성이 바뀌지 않는 한, 고영주 체제는 김장겸 MBC 사장을 바꾸려 하지 않을 것이다. 다음 이사진이 구성될 때까지 지금 체제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그 기간 동안에는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 시민들은 야당이 집권하면 공영방송 사장이 교체될 것이라고 기대하거나 교체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다. 방문진 이사들의 임기가 정해져 있는데 사퇴하지 않는 한 쫓아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물론 과거 이명박 대통령이 정연주 전 KBS 사장을 쫓아낸 것처럼 사정기관을 동원하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무리하지 않으려는 야당이 그렇게까지 할 거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KBS는 대통령이 사장을 임명하는 구조이지만 MBC의 경우 방문진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다. 더욱 어려울 것이다. MBC 구성원들한테는 우울한 이야기다.”
- 이와 관련해 국회에는 MBC 출신들이 많지만 공영방송 문제에 있어서는 눈에 띄는 인사들이 드물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분들이 언론 개혁을 위해 국회의원이 됐는지 아니면 MBC를 통해 사회적 지위나 쌓고 그것으로 국회의원이 된 것인지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 박근혜 탄핵 이후 언론노조 MBC본부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아무래도 언론 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의 지지가 적어도 조합 운동에는 힘이 되지 않겠나?
“상황에 맞게 노조가 대응할 거라고 본다. 박근혜 탄핵 이후 전반적으로 구성원들의 분위기가 좋아지고 있다. 그게 노동조합에 큰 힘이 될 거다. 노조가 지난해 처음으로 상암동 MBC 본사 내에서 집회를 가졌다. 이전에는 그곳에서 집회 한 번 열 수 없었다. 조합원 100여 명 이상이 현장에 있었다. 달라진 상황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조합원들 정서가 많이 고양됐다는 점을 노동조합이 적극 반영할 거라고 본다. 노동조합이 아무리 목소리를 내려고 해도 조합원들이 꿈쩍하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다. 2012년 파업 때 노동조합이 세서 파업한다고 일부에서 그랬지만 사실과 다르다. 아래로부터 요구가 있지 않으면 조합은 움직일 수 없다.”
▲ 지난해 9월 이용마 MBC 해직기자 암 투병 소식이 알려졌다. 1·2심 재판부는 그의 해고가 무효라고 판결했지만 대법원 선고는 기약없이 미뤄지고 있다. 병마와 싸우는 동안 10kg 이상 빠졌다고 한다. 사진=김도연 기자 |
- 2012년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한다면. 실패인가 성공인가?
“의미는 있었지만 실패했다. 실패했지만 의미가 있었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2012년 당시 우리는 공정방송 파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방송의 공정성이 바닥으로 추락한 상황에서 노동조합이 파업을 안 한다? 그건 노동조합 문을 닫으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당시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이기며 회사는 ‘배 째라’는 식으로 나왔다. 이로 인해 파업이 무한정 늘어져버리는 상황이 됐고 결과적으로 패배했다. 그럼에도 암흑기에 노동조합 구성원들이 침묵하지 않았다는 것, 그 동력으로 여전히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파업은 실패했지만 파업 정신은 끝난 게 아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MBC가 정상화되는 순간에 우리는 최종적으로 승리를 선언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진행형이다.”
- 파업 관련 소송에서 1·2심 재판부는 ‘공정방송은 방송 노동자의 중요한 근로조건’이라고 판시했다. 이 판결은 언론계뿐 아니라 노동계도 주목하는 판결이었다. 방송 언론 종사자들의 공정방송 투쟁 정당성을 인정해 준 것이었는데?
“법정 투쟁을 통해서 파업의 정당성을 확보했다.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또다시 같은 상황이 우리를 포함해 방송사에서 발생한다면 그 싸움은 합법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확인해준 판결이다. 대법원은 현재 상고를 미루고 있지만 원심이 확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2012년 170일 파업 상황을 고려해보면, 새누리당의 4월 총선 승리는 파업 동력을 점차 잃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정영하 본부장과 이용마 홍보국장 등이 이끈 언론노조 MBC본부는 2012년 7월 파업을 끝내고 MBC로 복귀했다. 같은 해 11월 김재철 사장 해임안이 부결되자 이들은 “박근혜 후보가 김재철 퇴진 약속을 했었다”고 폭로했다. 당시 하금열 대통령실장과 김무성 새누리당 총괄선대본부장이 MBC 인사 문제에 개입해 김재철 전 사장의 해임안을 부결토록 획책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박근혜 후보 메신저로서 언론노조 MBC본부와 소통했던 이상돈 국민의당 의원은 김 전 사장 해임을 전제로 노조에 파업을 풀 것을 약속했다. 2012년 8월 방문진 이사진이 교체됐지만 김 전 사장 해임안이 부결되며 약속은 휴지조각이 됐다.
- 2012년 파업 과정에서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김재철 사장 퇴진을 약속했다. 물론 당선 뒤 그 약속은 일방적으로 파기됐고 언론장악은 더욱 공고화했다.
“사실 박근혜 약속은 믿지도 않았다. 파업이 장기화하는 상황이었고 회사는 망해도 괜찮다는 식으로 적반하장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파업을 빨리 끝낼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박근혜 약속을 그 출구로 삼은 측면이 있다.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면 웃기는 놈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웃음) 진심이다. 파업을 계속 강행하는 건 지나치게 소모적이었다. 상대가 어느 정도 통해야 대화도 하는 것인데, 회사는 완전히 외면했다. 박근혜가 해온 행태를 알면서도 파업을 접을 명분으로 박근혜 약속을 확인받고 들어간 것이다.”
- 암 투병 이후 김재철 체제 경영진으로부터 ‘미안하다’ 등의 메시지를 받은 적은 있나?
“전혀. MBC 사내에서 이미 서로를 투명인간 취급한 지 오래됐다. 한쪽에서는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후배들을 배신하고 엉뚱한 일들을 하고 있다. 후배들은 그런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으니까. 서로 언성 높일 이유도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 지금 경영진들도 한때 조합원으로서 권력 외압에 싸웠던 동료들 아니었나?
“선후배들끼리 그런 얘기를 한다. 일제 35년 그때의 군상들이 MBC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고. 일부는 극렬 친일파로 변신해 충성 맹세를 하고 일본인보다 더 지독하게 한국 사람을 탄압하고 억눌렀지 않나? 똑같은 모습이다. 해외로 도피한 독립군처럼 MBC에서 아예 쫓겨난 이들도 있고 내부에서 근근이 버티면서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독립군을 지원하면서(웃음). 짧은 시간 내에 그대로 나타내는 것 같다. 어려운 시기가 돼야 진면모를 알 수 있다던데 지금 MBC가 그렇다.”
- JTBC, SBS와 견주어 ‘이럴 바에 MBC도 민영화하자’는 주장도 있다.
“JTBC에 손석희 사장이 영입되면서 그런 주장이 나오는 것 같다. 그러나 홍석현 회장이 자신의 결심을 바꾼다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게 민영 구조다. 변화의 가능성을 단 한 사람에게 맡기는 것인데 위험성이 여전히 크다고 본다. 공영방송은 국민의 것이다. 국민이 통제력을 발휘해 항구적인 권력 차단 장치를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 특정 개인의 선의에 맡기는 것은 위험한 선택이다. 공영언론을 포기하지 말아달라. 국민이 왜 자기 것을 포기하려고 하나.”
▲ 이용마 MBC 해직기자는 한 달 전 경기도 남양주에서 전북 진안에 위치한 한 건강촌으로 거처를 옮겼다. 지난 26일 전주고등학교 동창들이 방문을 했다. 그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사진=김도연 기자 |
- 그렇다면 MBC 정상화를 위해 시민들이 할 수 있는 건 무엇이 있을까?
“당장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다만 탄핵과 똑같다고 본다. 박근혜를 탄핵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국민들이 일상적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내는 일이 중요하다. MBC 문제도 마찬가지다. 쪽팔리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게끔 욕도 필요하다. 하지만 MBC를 욕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경영진을 압박해야 한다. 앞서 이야기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문제에 대해서도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주셔야 한다. 대통령과 국회의원도 잘 뽑아야 할 것이다.(웃음)”
- MBC로 돌아간다면 하고 싶은 보도가 있나?
“복귀하면 리포트할 짬밥이 지나버린 것 같은데(웃음). 우리가 파업하고 파업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싸웠을 때, 주류 언론들이 우리를 어떻게 대했는지 살펴보고 싶다. 조중동과 종편, KBS와 MBC 모든 언론들이 철저히 외면했다. 우리 문제가 사회 이슈로 등장하는 걸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외면해왔다. 우리 사회에 그런 문제가 MBC뿐 일까. 쌍용자동차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겨우 사회 이슈로 등장한다. MBC가 다시 출발한다면 외면 받은 이들을 주목해야 한다.”
- MBC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
“항상 미안하다. 2012년 파업에 대해 평가 가운데 하나로 ‘실패했다’고 한 건 후배들 때문이었다. 한참 현업에서 뛰어야 할 친구들이 배제되는 상황을 초래했다. 후배들에게 미안함을 금할 수 없다. 그럼에도 버텨주고 있는 후배들이 고맙다. 장하다. 조금만 더 우리가 힘을 낸다면 정상화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정상화가 되어 다시 만난다면 가장 좋을 것 같다.”
인터뷰가 끝나고 친구들은 이 기자의 건강을 염려해 일찍 황토방에서 일어났다. 친구들을 배웅하는 이 기자는 “이젠 오지마. 무엇하러 이렇게 먼 곳까지 오려고 해”라고 했다. 친구들은 대답 대신 두 손을 잡았다. 이 기자는 차량이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동창의 차편으로 돌아오는 길에 권혁씨는 말했다. “용마가 그래도 혈색과 낯빛이 예전보다 좋아진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처음에는 정말 어두웠거든. 용마가 고민이 많았어요. 수술 여부에 대해서. 수술 이후의 삶과 지금의 삶을 고민한 끝에 ‘삶의 질’을 택한 거 같아요. 좋아질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니까 분명 다시 일어날 거예요.”
[이제는 말할 수 없는 MBC 기획 1-①] 시민의 희망이었던 MBC, 시민의 절망이 되다
[이제는 말할 수 없는 MBC 기획 1-②] 김재철·안광한·백종문, 그들도 한때 파업 전선에 있었다 [이제는 말할 수 없는 MBC 기획 2-①] 5·18 기획 다뤘더니 특전사 웃통 벗고 시위까지 열었는데 [이제는 말할 수 없는 MBC 기획 2-①] MBC PD수첩 반대집회에 추선희와 주옥순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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