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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4일 목요일

“벌금 낼 돈 없어? 그럼 몸으로 때워야지”

‘국회로 간 장발장’ 은행이 없어지길 바라는 사람들, 국회에 모이다.
임두만 | 2015-06-05 09:03:58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43.199…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람들, 법원에서 벌금형을 선고 받았으나 벌금 낼 돈이 없어서 스스로 노역장으로 가야하는 사람들의 1년 통계입니다.
‘장발장 은행’은 이들을 위해 설립된 은행입니다. 지난 2월 25일 문을 연 이 은행은 출범이후 현재까지 개인과 기관 단체로부터 3억 1,207만 원을 모금하여 8차에 걸친 엄격한 심사를 통과한 145명에게 벌금 2억 6,671만 원을 대출했습니다.
이 은행 설립을 기획하고 실천한 소설가 서해성씨는 장발장 은행 디렉터입니다. 그런 그는 “결과적으로 이 은행은 없어져야 할 은행”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국회가 장발장들을 위한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를 위해 인권연대는 6월 4일 국회에서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 주요 인사들을 초청, ‘장발장은행’ 출범 100일을 맞아 기념식을 갖고 벌금제 개혁을 촉구했습니다.
▲ 천주교 서울대교구 염수정추기경 및 국회의원 30여 명이 참석한 장발장 은행 설립 100일 기념 공청회 © 임두만
‘국회로 간 장발장’이라는 이름으로 열린 이날 행사는 성황이었습니다. 현역 국회의원들이 다수가 참석하여 성황이 아니라 가톨릭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특별히 일일은행장 자격으로 참석한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국회의 공개 공청회 등에 참석한 적이 없다는 가톨릭 추기경이 입법 사안과 관련해 국회를 찾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이례적으로 이 행사에 참여한 염 추기경은 개회사에서 “(장발장 은행을 찾는) 이들의 사연 어느 하나하나 절절하지 않은 것이 없다”며 “자신뿐 아니라 가족들까지 절망에 빠져있다는 게 공통점이란 얘기를 들었을 때는 제 마음이 너무나 아팠다”고 말했습니다.
▲국회의 입법 공청회에 이례적으로 참석, 법안제정을 촉구한 염수정 추기경 © 임두만
특히 염 추기경은 “개인적인 안락 추구와 무관심의 일반화가 가난한 이에 대한 책임까지 미약하게 한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담화문을 인용, “누군가의 도움으로 일어선 그들이 다시 한 번 정의로운 사회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사랑과 관심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 이날 행사의 중요성을 언급했습니다.
염 추기경 외에도 정치권에선 정의화 국회의장,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새누리당 소속 황진하 국회 국방위원장 등 여야 국회의원 30여명이 참석했습니다. 이들 중 가장 먼저 축사에 나선 정 의장은 “병원장을 할 때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 그런 모토로 병원을 운영했다”면서 “정치란 결국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정 의장은 “그러나 사리사욕 당리당략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는 대한민국 국회의 면모가 있다”고 자성하면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장발장’을 만드는 일을 국회가 해야 한다”며 “저도 재력이 좀 있으니 가담을 하겠다”고 후원 의사를 밝혀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도 이날 벌금형제도게혁 입법에 동참하겠다고 말했다. © 임두만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도 “벌금을 내지 못해 교도소에 가서 강제노역을 받는 분들이 해마다 4만명이 넘는다는 통계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돈 없는 분에게 몇십만, 몇백만 원은 생계비를 빼앗는 가혹한 형벌이다. 우리 사회의 장발장들을 외면하면 안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문 대표는 특히 “돈이 없어 가난한 피고인은 더 가벼운 형인 벌금형보다 실제로는 더 무거운 형이자 실형인 집행유예를 더 선호한다”면서 ‘변호사로서 이런 현실을 대할 때 가난한 사람에게 가혹한 벌금형을 꼭 개혁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며 개혁법안 동참을 약속했습니다.
또 장발장 은행설립 시부터 참여했다는 이종걸 원내대표도 “하나의 숙제를 끝낸 기분이다. 그러나 이제 법으로 장발장들을 보호해야 하는 또 다른 숙제가 남았다”면서 벌금제도의 개혁에 대한 입법의 시급함을 말했습니다. 즉 '한국판 장발장'을 막기 위해 현행 벌금제도를 대폭 개편하는 내용의 법안을 입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행사 주최의 일원이자 장발장은행 운영위원인 새정치연합 홍종학 의원도 ‘한국판 장발장’을 막기 위해 벌금형에도 집행유예를 도입하고, 벌금의 납입기한을 연장하거나 분할 납입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된 벌금형 제도 개선 입법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현재 국회에는 새정치연합 김기준 의원이 주관 발의한 벌금제 개혁 법안이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입니다. 이 법안은 피고인의 재산상황 등을 살핀 뒤 하루에 부과하는 벌금액을 결정하는 방식의 일수벌금제도 등을 도입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것입니다.
경미한 죄를 저질러서 벌금형을 선고 받았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워 벌금을 내지 못하는 소년소녀가장,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미성년자 등에게 무이자 대출을 해주는 장발장 은행, 지난 2월 25일 출범한 이 시민단체는 책임자를 은행장으로 명명하고, 1대 은행장은 ‘파리의 택시운전사’로 유명한 사회운동가 홍세화씨가 맡았습니다.
그리고 이날 행사는 이 시민단체인 ‘장발장 은행’이 주최하고, 인권연대와 홍종학 의원 등 국회의원 30여 명이 공동으로 주관했습니다. 이 행사를 기점으로 국회에서 벌금형 개혁법안이 제정되어 ‘한국형 장발장’이 없어질 것인지, 그리 되기를 희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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