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법 개정안 위헌 제기에 전문가들 "행정입법 더 통제해야"
▲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회의 정부 시행령 수정에 대해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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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상위 법률에 위배되는 정부 시행령의 수정·변경 요구 권한을 강화한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이에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시사하면서 첨예한 대결 국면이 전개되고 있다. 위헌논란이 벌어지고 있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논란 거리도 안 된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일 우선 이번에 개정된 국회법에 대해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국정은 결과적으로 마비상태가 되고 정부는 무기력화 될 것"이라며 "이번 국회법 개정안을 정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또 과거 비슷한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예를 들며 "위헌 소지가 높다는 이유로 통과되지 않은 전례가 있는데, 이것은 국회 스스로가 이번 개정안이 위헌의 소지가 높다는 점을 인식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 언론과 일부 법학자들도 국회법 개정 과정을 '졸속 입법'이라거나 '3권분립을 침해하는 위헌 법률'이라는 의견을 내면서 개정된 국회법을 원래대로 되돌려놓으라고 파상공세를 펼치는 형국이다.
하지만 관련 내용을 찬찬히 훑어보면 이 같은 논란이 일어난 자체가 허무하다. 개정 전후의 국회법은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다음은 개정되기 전의 국회법 98조의 2의 3항이다.
"(전략) 대통령령 등이 법률의 취지 또는 내용에 합치되지 아니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소관 중앙행정기관의 장에게 그 내용을 통보할 수 있다. 이 경우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통보받은 내용에 대한 처리계획과 그 결과를 지체 없이 소관 상임위원회에 보고하여야 한다."
다음은 지난달 29일 국회를 통과, 정부 이송을 앞둔 국회법 개정안 같은 조항이다.
"(전략) 대통령령·총리령·부령 등 행정입법이 법률의 취지 또는 내용에 합치되지 아니한다고 판단되는 경우 소관 중앙행정기관의 장에게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다. 이 경우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수정·변경 요구받은 사항을 처리하고 그 결과를 소관 상임위원회에 보고하여야 한다."
개정 내용을 요약하면, 기존 국회가 법률 위배 내용을 행정기관장에게 통보하는 것에서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다"로, 행정기관장이 국회에 시행령 수정 처리계획과 결과를 보고하던 것에서 "수정·변경 요구받은 사항을 처리하고 그 결과를 보고하여야 한다"로 바뀐 것이다.
큰 차이가 없다. 기존 국회법이 다소 두루뭉슬하게 축약해 놓은 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풀어서 명시한 수준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시행령 수정·변경 의무가 강제성을 띠는지 아닌지 여야가 확정해 달라고 하고, 여야는 이를 두고 논란 중이다.
"개정안으로도 정부가 '배째라'면 별 도리 없어"
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권력분립 원칙에 어긋날 정도로 강제력이 있다고 하려면 국회의 수정 요구를 행정부가 거부했을 때 시행령은 효력이 없어진다거나 정지되는 등의 결과가 야기돼야 한다"며 "그런데 이번 개정안은 국회의 시행령 수정요구에 행정부가 막말로 배째라고 나와도 별다른 방법이 없다. 그래서 적어도 강제력을 가진다고는 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정태호 경희대 로스클 교수는 "논란이 있을 게 없는 사안을 갖고 논란을 벌이는 상황이 우습다"며 "강제력이 있냐 없냐, 위헌이냐 얘기하는 게 오히려 헌법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촌평했다.
정 교수는 "대통령령 같은 행정입법은 입법부인 국회가 '사소한 것들은 대통령이나 총리나 장관 등이 알아서 정하라'고 헌법에 따라 위임한 건데, 정부가 이런 위임의 취지에 맞지 않게 시행령을 만들고 있으니 '원래 내가 부탁한 취지대로 시행령을 만들라'고 요구한 게 이번 국회법 개정 취지인 것 같다"며 "그렇다면 당연히 위임을 받은 정부는 원래 입법권의 주인인 국회의 요구를 따라야 한다"고 설명했다.
입법취지대로 시행령을 만들지 않아 문제가 된 최근 사례가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에 의한 대통령령인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이다. 정부는 시행령을 정하면서 특별조사위 인원과 예산을 당초 안보다 축소시키고 조사 대상인 해양수산부 공무원을 특별조사위에 파견토록 해 '꼼수 시행령으로 특조위 활동을 방해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지난 정부 때의 대표적 사례는 4대강 사업이다. 이 사업은 당연히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이지만 정부가 국가재정법 시행령을 수정해 재해예방사업은 예비타당성조사를 받지 않아도 되도록 했다. 결국 수십조 원의 세금이 들어가는 공사가 적절성을 따져보지도 않고 시행됐다.
"행정입법 당연히 통제해야... 나라 망할 것처럼 얘기해선 안돼"
▲ 국회법 개정안 위헌 논란 세미나 새누리당 친박계 의원들이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가경쟁력강화포럼에 참석해 국회법 개정안 위원논란을 주제로 한 제정부 법제청장의 강의를 경청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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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현재 한국의 상황은 국회가 입법권한을 통해 행정부를 견제하는 걸 염려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행정부가 입법부에 위임받은 권한으로 시행령을 마음대로 정하고 수정·변경하는 상황을 통제하는 게 급선무라고 본다.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통제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종수 연세대 로스쿨 교수는 "한국의 경우 입법부의 '입법독재'가 아니라 행정입법에서의 독재가 더 문제시 돼 왔다"며 "이번 국회법 개정안이 위헌이라고 보는 이들이 입법독재를 거론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단언했다. 이 교수는 "같은 대통령제인 미국에도 정부에 법안제출권이 없지만 한국은 법안제출권뿐 아니라 국회의원을 통해 청부입법하는 경우도 많지 않느냐"며 "이번 국회법 개정안 정도로 행정입법을 통제하겠다는 걸 입법독재라고 할 순 없다"고 밝혔다.
한상희 교수도 "법치주의의 기본틀을 가진 국가는 행정입법을 다 통제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엔 헌법에서 행정명령에 대해선 의회의 동의권을 부여했다"며 "시행령이 법률에 맞도록 노력하는 건 행정부의 당연한 업무인데 거기에 국회가 관여하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얘기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꼬집었다.
한 교수는 이어 "그런데 이게 마치 새삼스러운 일처럼 위헌 논란을 일으키고, '무능한 국회가 유능한 행정부를 통제하느냐'는 식의 얘기까지 하고 있다"며 "입법부가 당연히 행정입법을 통제해야 한다. 잘하고 못하는 건 나중의 문제고 먼저 행정입법을 통제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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