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병상련 느낀 실향민들 보살핌 속 해마다 찾아와 새끼 키우던 제비들
육로 연결 1년 만에 눈에 띄게 줄자 주민들 곳곳 안내문 걸고 보호 나서
» 지난달 31일 오전 인천 강화군 교동도 대룡시장을 찾은 관광객이 시장 골목의 한 가게 처마밑에 연이어 지어진 제비집과 그 속의 새끼 제비들을 구경하고 있다. 사진=김정수 선임기자
과거 시골과 도시 변두리 어디에나 흔했던 제비가 언제부턴가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 우리나라 전역의 제비 서식 실태는 체계적으로 조사된 바 없어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부분적인 조사 결과는 제주도를 비롯한 남서해의 섬과 해안 지역을 제외한 내륙에서는 제비를 보기 어렵게 됐음을 말해준다.
한국환경생태연구소 김인규 부소장은 “2009~2010년 제비 번식지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기 위한 문화재청의 조사 용역을 수행했는데, 내륙에서는 <흥부전>의 무대인 남원에서도 번식지를 찾지 못하고 경북 상주에서 한 곳을 발견했지만 문화적 배경 등이 맞지 않아 추진이 중단됐다”고 말했다. 제비 번식지의 천연기념물 지정이 검토됐다는 사실 자체가 제비가 놓여 있는 상태를 짐작하게 한다.
» 처마에 튼 제비집. 주택개량과 먹이 부족, 집 지을 습지 감소가 제비를 보기 힘들게 만들었다. 사진=김정수 선임기자
제비를 사라지게 만든 주요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과도한 농약 사용이다. 제비의 먹이터인 논에 뿌려지는 농약으로 곤충이 사라지면서 제비는 먹잇감을 찾기 어렵게 됐다.
여기에 주택 개량으로 제비가 집을 지을 처마가 줄어든데다, 사람들이 처마밑이 지저분해진다고 제비집을 뜯어내면서 제비를 쫓아버린 것 등도 작용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 대룡시장 안에 있는 한 귀제비집에서 귀제비가 머리를 내밀고 바깥을 살피고 있다. 김석민 교사 제공
서울에서 멀지 않은 강화도 옆 교동도에서는 요즘도 제비를 발견하기가 어렵지 않다. 섬 한가운데 위치한 대룡리의 대룡시장 골목에서는 가슴과 배에 줄무늬가 나 있고, 꼬리깃과 등 사이가 붉은 것이 특징인 귀제비도 쉽게 만날 수 있다.
귀제비는 귀신제비를 줄인 이름을 얻은 데서 짐작할 수 있듯 일찍부터 사람들의 기피 대상이 됐다. 가끔 다른 제비집을 빼앗아 자기 집을 짓는 등의 행동으로 사람들의 미움을 받아 외딴 폐가나 흉가로 쫓겨나게 되고, 그런 곳에 살다보니 점점 음습한 이미지가 굳어져 사람들이 멀리하게 된 새다.
» 제비 둥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강화 교동도의 거미 모습. 30~40년 전으로 돌아간 풍경이다. 사진=김정수 선임기자
31일 찾아가본 대룡시장은 너비 3m도 안 되는 좁은 골목에 이발소, 고무신을 파는 신발가게, 시계방과 도장포, 다방 등이 들어서 마치 30~4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풍경이었다. 이런 느낌엔 골목 양옆으로 이어진 처마밑 곳곳에 지어진 제비집도 한몫했다.
제비집들에선 머리를 내밀고 먹이를 찾으러 간 어미를 기다리는 새끼 제비들의 모습도 쉽게 눈에 띄었다. 입구를 작은 터널 모양으로 지어서 속에 들어 있는 새끼들이 보이지 않는 귀제비집들도 중간중간 섞여 있었다. 어미들이 줄 먹이를 연신 물어 나르는 제비들을 보면 10마리 가운데 3마리꼴로 귀제비였다.
제비들이 교동도를 계속 찾아오는 것은 마을들이 논 사이에 적당한 간격으로 자리잡고 있어 제비들이 집을 짓기 쉽고, 특히 인사리·삼산리 지역에만 농약을 치지 않는 유기농지가 30만평에 이르러 오염 안 된 먹잇감을 찾기 쉬운 것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탐조 활동을 위해 교동도를 자주 찾는 김석민 고양 안곡초등 과학전담교사는 “요즘 시골에는 제비들이 둥지를 틀기 힘든 형태로 개량된 집들이 많은데 교동도에는 옛날 집들이 많이 남아 있는 것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제비를 각별히 생각하는 주민들이다. 교동도에는 처마는 물론 가게 형광등 갓 위, 창고 천장 밑 등 실내까지 기꺼이 제비에게 내주며 살아온 사람들이 적지 않다.
» 제비 둥지와 들머리에 구멍을 뚫은 형태인 귀제비 둥지. 사진=김정수 선임기자
대룡시장에서 북서쪽으로 3㎞쯤 떨어진 인사리에 사는 유정옥(52)씨 집 1층 창고 안 천장 밑에선 올해도 제비 부부 한 쌍이 새끼를 키우고 있다. “몇 해 전 창고 문을 열어둔 사이에 제비 한 쌍이 들어온 것을 그냥 뒀더니 해마다 찾아오네요. 바닥이 좀 지저분해지긴 하지만, 살려고 들어온 새를 매몰차게 내쫓을 수는 없잖아요”라고 말하는 유씨의 말투에 북한말 억양이 느껴진다. 건너편 황해도 연백에서 살다 월남한 친정 부모님의 영향이라는 설명이다.
대룡시장을 찾는 사람들에게 시장과 제비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대룡시장 안 대와민속공방 주인 최안례(57)씨는 “6·25 직후 연백에서 피난 왔다가 돌아가지 못하고 시장에서 장사를 하기 시작한 실향민들이 해마다 제가 태어난 곳을 찾아오는 제비들에게 특별히 정을 느끼고 보호하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왔다”고 말했다.
최씨를 비롯한 대룡시장 주민들은 올해 시장 골목에서 번식하는 제비들이 지난해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정확한 원인을 아직 알 수 없지만 주민들은 지난해 6월 강화도와 교동도가 다리로 연결된 뒤 시장을 찾는 관광객이 급증한 것에 의심을 둔다.
제비의 최적 서식처 선택 연구를 진행해온 한현진 전 낙동강하구에코센터 연구원도 “제비는 사람들이 자주 지나다니는 곳을 번식 위치로 선호하지만, 너무 가까이 접근해 사진을 찍는 등의 행동은 스트레스를 줘서 서식지를 분산시킬 위험이 높다”며 주민들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주민들은 제비 서식 환경 보호를 위해 처마 아래쪽 벽 곳곳에 ‘휴대전화를 너무 가까이 접근시키면 아기 제비가 불안해한다’는 내용의 안내문을 붙여놓았다. 하지만 31일 대룡시장에서는 이런 안내문에 아랑곳하지 않는 관광객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대룡시장에서 만난 김이재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문화지리학)는 “교동도의 제비를 잘 보호해 생태체험 자원으로 유지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강화군에 교동도 입구에서부터 관광객들에게 제비 보호 안내문을 건네는 등의 제비 보호 노력을 권유하고 있지만 실행되지 않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강화/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육로 연결 1년 만에 눈에 띄게 줄자 주민들 곳곳 안내문 걸고 보호 나서
» 지난달 31일 오전 인천 강화군 교동도 대룡시장을 찾은 관광객이 시장 골목의 한 가게 처마밑에 연이어 지어진 제비집과 그 속의 새끼 제비들을 구경하고 있다. 사진=김정수 선임기자
과거 시골과 도시 변두리 어디에나 흔했던 제비가 언제부턴가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 우리나라 전역의 제비 서식 실태는 체계적으로 조사된 바 없어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부분적인 조사 결과는 제주도를 비롯한 남서해의 섬과 해안 지역을 제외한 내륙에서는 제비를 보기 어렵게 됐음을 말해준다.
한국환경생태연구소 김인규 부소장은 “2009~2010년 제비 번식지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기 위한 문화재청의 조사 용역을 수행했는데, 내륙에서는 <흥부전>의 무대인 남원에서도 번식지를 찾지 못하고 경북 상주에서 한 곳을 발견했지만 문화적 배경 등이 맞지 않아 추진이 중단됐다”고 말했다. 제비 번식지의 천연기념물 지정이 검토됐다는 사실 자체가 제비가 놓여 있는 상태를 짐작하게 한다.
» 처마에 튼 제비집. 주택개량과 먹이 부족, 집 지을 습지 감소가 제비를 보기 힘들게 만들었다. 사진=김정수 선임기자
제비를 사라지게 만든 주요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과도한 농약 사용이다. 제비의 먹이터인 논에 뿌려지는 농약으로 곤충이 사라지면서 제비는 먹잇감을 찾기 어렵게 됐다.
여기에 주택 개량으로 제비가 집을 지을 처마가 줄어든데다, 사람들이 처마밑이 지저분해진다고 제비집을 뜯어내면서 제비를 쫓아버린 것 등도 작용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 대룡시장 안에 있는 한 귀제비집에서 귀제비가 머리를 내밀고 바깥을 살피고 있다. 김석민 교사 제공
서울에서 멀지 않은 강화도 옆 교동도에서는 요즘도 제비를 발견하기가 어렵지 않다. 섬 한가운데 위치한 대룡리의 대룡시장 골목에서는 가슴과 배에 줄무늬가 나 있고, 꼬리깃과 등 사이가 붉은 것이 특징인 귀제비도 쉽게 만날 수 있다.
귀제비는 귀신제비를 줄인 이름을 얻은 데서 짐작할 수 있듯 일찍부터 사람들의 기피 대상이 됐다. 가끔 다른 제비집을 빼앗아 자기 집을 짓는 등의 행동으로 사람들의 미움을 받아 외딴 폐가나 흉가로 쫓겨나게 되고, 그런 곳에 살다보니 점점 음습한 이미지가 굳어져 사람들이 멀리하게 된 새다.
» 제비 둥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강화 교동도의 거미 모습. 30~40년 전으로 돌아간 풍경이다. 사진=김정수 선임기자
31일 찾아가본 대룡시장은 너비 3m도 안 되는 좁은 골목에 이발소, 고무신을 파는 신발가게, 시계방과 도장포, 다방 등이 들어서 마치 30~4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풍경이었다. 이런 느낌엔 골목 양옆으로 이어진 처마밑 곳곳에 지어진 제비집도 한몫했다.
제비집들에선 머리를 내밀고 먹이를 찾으러 간 어미를 기다리는 새끼 제비들의 모습도 쉽게 눈에 띄었다. 입구를 작은 터널 모양으로 지어서 속에 들어 있는 새끼들이 보이지 않는 귀제비집들도 중간중간 섞여 있었다. 어미들이 줄 먹이를 연신 물어 나르는 제비들을 보면 10마리 가운데 3마리꼴로 귀제비였다.
제비들이 교동도를 계속 찾아오는 것은 마을들이 논 사이에 적당한 간격으로 자리잡고 있어 제비들이 집을 짓기 쉽고, 특히 인사리·삼산리 지역에만 농약을 치지 않는 유기농지가 30만평에 이르러 오염 안 된 먹잇감을 찾기 쉬운 것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탐조 활동을 위해 교동도를 자주 찾는 김석민 고양 안곡초등 과학전담교사는 “요즘 시골에는 제비들이 둥지를 틀기 힘든 형태로 개량된 집들이 많은데 교동도에는 옛날 집들이 많이 남아 있는 것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제비를 각별히 생각하는 주민들이다. 교동도에는 처마는 물론 가게 형광등 갓 위, 창고 천장 밑 등 실내까지 기꺼이 제비에게 내주며 살아온 사람들이 적지 않다.
» 제비 둥지와 들머리에 구멍을 뚫은 형태인 귀제비 둥지. 사진=김정수 선임기자
대룡시장에서 북서쪽으로 3㎞쯤 떨어진 인사리에 사는 유정옥(52)씨 집 1층 창고 안 천장 밑에선 올해도 제비 부부 한 쌍이 새끼를 키우고 있다. “몇 해 전 창고 문을 열어둔 사이에 제비 한 쌍이 들어온 것을 그냥 뒀더니 해마다 찾아오네요. 바닥이 좀 지저분해지긴 하지만, 살려고 들어온 새를 매몰차게 내쫓을 수는 없잖아요”라고 말하는 유씨의 말투에 북한말 억양이 느껴진다. 건너편 황해도 연백에서 살다 월남한 친정 부모님의 영향이라는 설명이다.
대룡시장을 찾는 사람들에게 시장과 제비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대룡시장 안 대와민속공방 주인 최안례(57)씨는 “6·25 직후 연백에서 피난 왔다가 돌아가지 못하고 시장에서 장사를 하기 시작한 실향민들이 해마다 제가 태어난 곳을 찾아오는 제비들에게 특별히 정을 느끼고 보호하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왔다”고 말했다.
최씨를 비롯한 대룡시장 주민들은 올해 시장 골목에서 번식하는 제비들이 지난해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정확한 원인을 아직 알 수 없지만 주민들은 지난해 6월 강화도와 교동도가 다리로 연결된 뒤 시장을 찾는 관광객이 급증한 것에 의심을 둔다.
제비의 최적 서식처 선택 연구를 진행해온 한현진 전 낙동강하구에코센터 연구원도 “제비는 사람들이 자주 지나다니는 곳을 번식 위치로 선호하지만, 너무 가까이 접근해 사진을 찍는 등의 행동은 스트레스를 줘서 서식지를 분산시킬 위험이 높다”며 주민들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주민들은 제비 서식 환경 보호를 위해 처마 아래쪽 벽 곳곳에 ‘휴대전화를 너무 가까이 접근시키면 아기 제비가 불안해한다’는 내용의 안내문을 붙여놓았다. 하지만 31일 대룡시장에서는 이런 안내문에 아랑곳하지 않는 관광객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대룡시장에서 만난 김이재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문화지리학)는 “교동도의 제비를 잘 보호해 생태체험 자원으로 유지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강화군에 교동도 입구에서부터 관광객들에게 제비 보호 안내문을 건네는 등의 제비 보호 노력을 권유하고 있지만 실행되지 않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강화/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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