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를 '케르스'로 만든 박근혜, 불안하다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메르스 쇼크
메르스 대한민국을 후진국으로 만들다
창피하고 한심하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는가.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두고 하는 말이다. 1일 현재 벌써 환자가 18명이다. 단 한 명의 환자에서 이렇게 짧은 기간에 메르스가 빨리 확산된 것은 진원지인 중동 국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환자 숫자나 확산 속도 때문만은 결코 아니다. '사망자가 나왔느냐, 3차 감염이 있느냐'도 아니다. 설혹 사망자가 나오거나(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몇몇 환자가 이미 몸의 피를 밖으로 빼내 기계 장치에서 산소를 공급한 뒤 다시 몸속으로 피를 집어 넣어 생명을 유지하는 에크모 장치로 생명을 겨우 유지하고 있다고 하니 사망자가 발생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인지도 모른다.) 3차 감염자가 나온다고 해도 난리법석을 떨 일은 결코 아니다.
메르스가 아니더라도 감염병, 만성 질환, 산업재재, 교통사고와 살인, 자살 등으로 우리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을 때론 두 눈 뜨고 지켜만 보고 있지 않은가. 중동 국가를 제외하곤 최대의 메르스 발병국이라는 오명 때문도 아니다.
우리가 정말로 우려하고 두려워하며 분노하는 것은 메르스보다 훨씬 더 가공할 위력과 전파력을 지닌 감염병이 우리 사회에서 유행하더라도 과연 국가가, 박근혜 정부가 이를 감당해낼 능력과 자질이 있는가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이는 생각만 해도 오싹해지고 몸서리가 처질 일이다.
전쟁 상태 무시한 메르스 확산 사태
감염병에 대한 대처는 전쟁 치르듯이 해야 한다. 감염병 관리의 기본이요, 철칙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감염병 관리의 이 기본이 무너졌다. 너무나 안이한 대처를 했다. 적(메르스)의 정체, 즉 원인과 전파 경로, 증상과 잠복기, 유전자 염기 서열 등이 이미 드러나 있음에도 적을 제압하지 못했다.
적을 효과적으로 깨부술 무기와 정보를 모두 가지고 있음에도 후진국도 아닌 우리나라가 초동 제압에 실패했다는 것은 그 어떤 이유로도 국민의 이해를 구하기 어렵다. 지난해 4월 그 끔직한 세월호 참사를 겪고도 우리 사회 곳곳에는 여전히 국민의 생명을 지켜줄 방패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선진국과 후진국을 나누는 기준 가운데 하나가 감염병 관리를 어떻게 하고 있느냐이다. 이번 메르스 확산은 우리 사회가 감염병 관리 후진국임을 중국과 홍콩뿐 아니라 전 세계에 민낯으로 실황 중계했다.
그동안 민주 정부 10년을 거치면서 우리나라는 모범적인 에이즈 관리, 사스 관리, 홍역 관리 등을 국제 사회에서 인정 받아왔다. 그런데 이번 메르스 사태로 하루아침에 그런 노력과 지위가 물거품이 돼버렸다. 인권 후진국, 복지 후진국, 언론 자유 후진국, 산재 예방 후진국, 자살 예방 후진국에 이어 감염병 관리 후진국이란 혹까지 붙이게 된 것이다.
감염병, 특히 메르스와 같이 치사율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감염병은 일반 시민에게 공포를 주기에 충분하다. 메르스라는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음에도 범인이 이곳저곳에서 활개를 치고 심지어는 홍콩을 거쳐 중국으로까지 가도록 내버려 둔 것을 보고 불안에 떨지 않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메르스 '괴담', 당연하다
이런 상황에서 메르스 확산과 관련해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트위터 등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를 중심으로 떠도는 것은 위험 인지 심리학의 측면에서 보면 너무나 당연하다. 정부의 감염병 부실 대응이 낳은 부산물이다. 이런 부작용은 정부가 앞으로 얼마나 잘 대응하느냐에 따라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고,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부풀려질 수도 있다.
2013년에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던 일본 후쿠시마 방사성 수산물 우려 사태 때처럼 정부가 괴담 운운하며 유포자 처벌을 들먹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대응이 아니다. 그런 식의 대응은 박정희 정권이나 전두환 정권 때 긴급 조치나 담화문을 통해 국민을 겁박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는 구시대적인 것이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미 물이 엎질러진 뒤 "개미 새끼 한 마리 지나가지 못하도록 철저히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해 개미까지 들먹일 필요도 없다. 감염병 관리는 결국 사람(환자 또는 보균자) 관리이기 때문이다. 개미 운운하는 것은 호들갑을 떤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아직 메르스 사태를 복기할 시점은 아니지만 중간 복기를 해보자면 어처구니없는 패착을 둔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최초 환자를 일찍 발견, 격리 할 수 있었는데도 환자 미발생국인 바레인에서 입국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무시했다는 점, 최초 환자와 접촉한 사람들에 대한 조사가 엉터리로 이루어진 점, 이런 유형의 감염병을 퍼트릴 수 있는 사람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의사, 간호사 등 의료진인데도(사스 때 이미 경험한 적이 있지 않은가) 이들 관리를 소홀히 한 점, 체온이 38도가 넘어야 감염 의심자로 분류해 바이러스 검사를 한다는 탈레반식 지침 해석,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약간의 인권 침해가 불가피하며 이를 충분히 대상자들에게 납득시키는 소통 노력이 너무나 부족한 점 등등이 당장 눈에 띄는 패착점들이다.
메르스 사태 후 '직무유기' '국격 손상' 책임 묻자!
문 장관은 최초 환자 병실에 국한해 감염 확산 관리를 하고 접촉자 격리를 소홀히 하는 등 메르스에 대한 초기 대응이 부실했다는 점 등을 시인한 바 있다. 이는 물론 장관의 시인이나 유감 표명으로 덮고 지나갈 문제가 아니다. 메르스 확산이 진정되는대로 어떤 식으로든 명확하게 책임을 져야 한다.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있다면 굳이 책임 운운할 것도 없지만, 이번 사태는 기본 중의 기본을 게을리 한 탓에 벌어졌기 때문에 책임 추궁은 당연한 일이다. 감염병에 대해 조금만 공부했더라도 능히 피할 수 있는 실수들이었다. 사실상 방역 당국의 직무유기 때문에 메르스가 확산됐다고 지적해도 달리 변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메르스 확산은 국제적 망신뿐만 아니라 홍콩과 중국에 보이지 않는 피해를 주었다. 그동안 박근혜 정부가 그렇게 외쳐댔던 대한민국 국격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다. 국격을 입버릇처럼 올렸던 대통령의 그 말이 진심에서 나온 것이라면 책임을 물어야 한다.
또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해 많은 사람들이 격리돼 불안과 공포에 떨고 생업에 종사할 수도 없게 된 것을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메르스 때문에 문을 닫은 병원의 물질적 피해는 어떻게 할 것인가? 메르스 유행을 성공적으로 저지한다 하더라도 해결해야 할 문제는 첩첩산중이다.
질병 관리, 특히 감염병 관리를 잘 하기 위해 우리는 캠페인을 벌인다. 손을 잘 씻자고 하거나 기침을 할 때는 옷소매나 손수건으로 가리고 하자거나, 심한 기침을 하는 사람은 외출이나 출근을 삼가고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자거나, 병의원은 감염병 환자로 의심이 드는 사람을 반드시 신고하고 격리치료하자는 등이 그런 캠페인의 메시지이다.
캠페인(campaign)은 캄파니아(campania)란 라틴어 어원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평평한 지역을 뜻한다. 고대와 중세 때 유럽에서는 평평한 지역에서 전투를 치러왔기 때문에 붙인 말이다. 이 때문에 감염병 예방 캠페인에는 에이즈와의 전쟁 등 전투적 용어가 많이 등장한다. 오랜 옛날부터 감염병은 반드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죽여야 적과 같은 존재였다. 우리 조상들의 생각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중국, 소나무 초토화시킨 것처럼 방역해야
몇 년 전 '소나무 에이즈'란 별명을 얻은 소나무재선충병이 일본과 한국, 중국, 대만 등에서 창궐한 적이 있었다. 소나무재선충병은 산림 관계자들에게는 공포의 질병이다. 아직 그 전쟁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지만 창궐 당시 중국은 명산이자 세계적 관광지인 황산의 비경을 빛내주는 소나무들을 보호하기 위해 반경 4킬로미터 이내의 모든 소나무를 베어버렸다. 이 나무 병을 일으키는 해충(선충)을 옮기는 흰수염하늘소가 날아서 병을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의 과감한 초토화 작전이다. 이 작전 덕분인지 황산 소나무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이러한데 사람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이보다 더한 작전을 감행해도 나무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땠는가? 너무나 안이했다. 환자가 거의 확실한 상황인데도 밀접 접촉자의 중국 출국을 막지 못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좋은지 등에 대한, 제대로 된 매뉴얼이나 지침이 없는 듯이 보인다. 또 그런 상황에 대비한 방역 실무자 교육 등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가 마무리되는 대로 서둘러 완전 복기를 해야 한다. 메르스 관리 실패를 통절히 반성하고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는 자세로 감염병 관리의 틀을 새로 짜야 한다. 중동호흡기증후군, 즉 메르스가 중동에서 확산,전파되는 것과 우리나라에서 이 감염병이 확산·전파되는 것은 다른 양상을 띨 수 있다. 생활문화나 의식행동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바이러스의 특성이나 질병의 증상 등도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38도를 고집하는 탈레반식 사고가 아니라 한국에 온 메르스는 케르스(KERS), 한국호흡기증후군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야말로 대한민국을 감염병 관리 선진국으로 만드는 지름길이 아닐까 싶다.
창피하고 한심하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는가.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두고 하는 말이다. 1일 현재 벌써 환자가 18명이다. 단 한 명의 환자에서 이렇게 짧은 기간에 메르스가 빨리 확산된 것은 진원지인 중동 국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환자 숫자나 확산 속도 때문만은 결코 아니다. '사망자가 나왔느냐, 3차 감염이 있느냐'도 아니다. 설혹 사망자가 나오거나(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몇몇 환자가 이미 몸의 피를 밖으로 빼내 기계 장치에서 산소를 공급한 뒤 다시 몸속으로 피를 집어 넣어 생명을 유지하는 에크모 장치로 생명을 겨우 유지하고 있다고 하니 사망자가 발생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인지도 모른다.) 3차 감염자가 나온다고 해도 난리법석을 떨 일은 결코 아니다.
메르스가 아니더라도 감염병, 만성 질환, 산업재재, 교통사고와 살인, 자살 등으로 우리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을 때론 두 눈 뜨고 지켜만 보고 있지 않은가. 중동 국가를 제외하곤 최대의 메르스 발병국이라는 오명 때문도 아니다.
우리가 정말로 우려하고 두려워하며 분노하는 것은 메르스보다 훨씬 더 가공할 위력과 전파력을 지닌 감염병이 우리 사회에서 유행하더라도 과연 국가가, 박근혜 정부가 이를 감당해낼 능력과 자질이 있는가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이는 생각만 해도 오싹해지고 몸서리가 처질 일이다.
전쟁 상태 무시한 메르스 확산 사태
감염병에 대한 대처는 전쟁 치르듯이 해야 한다. 감염병 관리의 기본이요, 철칙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감염병 관리의 이 기본이 무너졌다. 너무나 안이한 대처를 했다. 적(메르스)의 정체, 즉 원인과 전파 경로, 증상과 잠복기, 유전자 염기 서열 등이 이미 드러나 있음에도 적을 제압하지 못했다.
적을 효과적으로 깨부술 무기와 정보를 모두 가지고 있음에도 후진국도 아닌 우리나라가 초동 제압에 실패했다는 것은 그 어떤 이유로도 국민의 이해를 구하기 어렵다. 지난해 4월 그 끔직한 세월호 참사를 겪고도 우리 사회 곳곳에는 여전히 국민의 생명을 지켜줄 방패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선진국과 후진국을 나누는 기준 가운데 하나가 감염병 관리를 어떻게 하고 있느냐이다. 이번 메르스 확산은 우리 사회가 감염병 관리 후진국임을 중국과 홍콩뿐 아니라 전 세계에 민낯으로 실황 중계했다.
그동안 민주 정부 10년을 거치면서 우리나라는 모범적인 에이즈 관리, 사스 관리, 홍역 관리 등을 국제 사회에서 인정 받아왔다. 그런데 이번 메르스 사태로 하루아침에 그런 노력과 지위가 물거품이 돼버렸다. 인권 후진국, 복지 후진국, 언론 자유 후진국, 산재 예방 후진국, 자살 예방 후진국에 이어 감염병 관리 후진국이란 혹까지 붙이게 된 것이다.
감염병, 특히 메르스와 같이 치사율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감염병은 일반 시민에게 공포를 주기에 충분하다. 메르스라는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음에도 범인이 이곳저곳에서 활개를 치고 심지어는 홍콩을 거쳐 중국으로까지 가도록 내버려 둔 것을 보고 불안에 떨지 않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메르스 '괴담', 당연하다
이런 상황에서 메르스 확산과 관련해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트위터 등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를 중심으로 떠도는 것은 위험 인지 심리학의 측면에서 보면 너무나 당연하다. 정부의 감염병 부실 대응이 낳은 부산물이다. 이런 부작용은 정부가 앞으로 얼마나 잘 대응하느냐에 따라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고,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부풀려질 수도 있다.
2013년에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던 일본 후쿠시마 방사성 수산물 우려 사태 때처럼 정부가 괴담 운운하며 유포자 처벌을 들먹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대응이 아니다. 그런 식의 대응은 박정희 정권이나 전두환 정권 때 긴급 조치나 담화문을 통해 국민을 겁박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는 구시대적인 것이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미 물이 엎질러진 뒤 "개미 새끼 한 마리 지나가지 못하도록 철저히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해 개미까지 들먹일 필요도 없다. 감염병 관리는 결국 사람(환자 또는 보균자) 관리이기 때문이다. 개미 운운하는 것은 호들갑을 떤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아직 메르스 사태를 복기할 시점은 아니지만 중간 복기를 해보자면 어처구니없는 패착을 둔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최초 환자를 일찍 발견, 격리 할 수 있었는데도 환자 미발생국인 바레인에서 입국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무시했다는 점, 최초 환자와 접촉한 사람들에 대한 조사가 엉터리로 이루어진 점, 이런 유형의 감염병을 퍼트릴 수 있는 사람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의사, 간호사 등 의료진인데도(사스 때 이미 경험한 적이 있지 않은가) 이들 관리를 소홀히 한 점, 체온이 38도가 넘어야 감염 의심자로 분류해 바이러스 검사를 한다는 탈레반식 지침 해석,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약간의 인권 침해가 불가피하며 이를 충분히 대상자들에게 납득시키는 소통 노력이 너무나 부족한 점 등등이 당장 눈에 띄는 패착점들이다.
메르스 사태 후 '직무유기' '국격 손상' 책임 묻자!
문 장관은 최초 환자 병실에 국한해 감염 확산 관리를 하고 접촉자 격리를 소홀히 하는 등 메르스에 대한 초기 대응이 부실했다는 점 등을 시인한 바 있다. 이는 물론 장관의 시인이나 유감 표명으로 덮고 지나갈 문제가 아니다. 메르스 확산이 진정되는대로 어떤 식으로든 명확하게 책임을 져야 한다.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있다면 굳이 책임 운운할 것도 없지만, 이번 사태는 기본 중의 기본을 게을리 한 탓에 벌어졌기 때문에 책임 추궁은 당연한 일이다. 감염병에 대해 조금만 공부했더라도 능히 피할 수 있는 실수들이었다. 사실상 방역 당국의 직무유기 때문에 메르스가 확산됐다고 지적해도 달리 변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메르스 확산은 국제적 망신뿐만 아니라 홍콩과 중국에 보이지 않는 피해를 주었다. 그동안 박근혜 정부가 그렇게 외쳐댔던 대한민국 국격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다. 국격을 입버릇처럼 올렸던 대통령의 그 말이 진심에서 나온 것이라면 책임을 물어야 한다.
또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해 많은 사람들이 격리돼 불안과 공포에 떨고 생업에 종사할 수도 없게 된 것을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메르스 때문에 문을 닫은 병원의 물질적 피해는 어떻게 할 것인가? 메르스 유행을 성공적으로 저지한다 하더라도 해결해야 할 문제는 첩첩산중이다.
질병 관리, 특히 감염병 관리를 잘 하기 위해 우리는 캠페인을 벌인다. 손을 잘 씻자고 하거나 기침을 할 때는 옷소매나 손수건으로 가리고 하자거나, 심한 기침을 하는 사람은 외출이나 출근을 삼가고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자거나, 병의원은 감염병 환자로 의심이 드는 사람을 반드시 신고하고 격리치료하자는 등이 그런 캠페인의 메시지이다.
캠페인(campaign)은 캄파니아(campania)란 라틴어 어원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평평한 지역을 뜻한다. 고대와 중세 때 유럽에서는 평평한 지역에서 전투를 치러왔기 때문에 붙인 말이다. 이 때문에 감염병 예방 캠페인에는 에이즈와의 전쟁 등 전투적 용어가 많이 등장한다. 오랜 옛날부터 감염병은 반드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죽여야 적과 같은 존재였다. 우리 조상들의 생각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중국, 소나무 초토화시킨 것처럼 방역해야
몇 년 전 '소나무 에이즈'란 별명을 얻은 소나무재선충병이 일본과 한국, 중국, 대만 등에서 창궐한 적이 있었다. 소나무재선충병은 산림 관계자들에게는 공포의 질병이다. 아직 그 전쟁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지만 창궐 당시 중국은 명산이자 세계적 관광지인 황산의 비경을 빛내주는 소나무들을 보호하기 위해 반경 4킬로미터 이내의 모든 소나무를 베어버렸다. 이 나무 병을 일으키는 해충(선충)을 옮기는 흰수염하늘소가 날아서 병을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의 과감한 초토화 작전이다. 이 작전 덕분인지 황산 소나무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이러한데 사람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이보다 더한 작전을 감행해도 나무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땠는가? 너무나 안이했다. 환자가 거의 확실한 상황인데도 밀접 접촉자의 중국 출국을 막지 못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좋은지 등에 대한, 제대로 된 매뉴얼이나 지침이 없는 듯이 보인다. 또 그런 상황에 대비한 방역 실무자 교육 등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가 마무리되는 대로 서둘러 완전 복기를 해야 한다. 메르스 관리 실패를 통절히 반성하고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는 자세로 감염병 관리의 틀을 새로 짜야 한다. 중동호흡기증후군, 즉 메르스가 중동에서 확산,전파되는 것과 우리나라에서 이 감염병이 확산·전파되는 것은 다른 양상을 띨 수 있다. 생활문화나 의식행동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바이러스의 특성이나 질병의 증상 등도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38도를 고집하는 탈레반식 사고가 아니라 한국에 온 메르스는 케르스(KERS), 한국호흡기증후군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야말로 대한민국을 감염병 관리 선진국으로 만드는 지름길이 아닐까 싶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