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페이지뷰

2025년 4월 17일 목요일

윤석열의 폐허에 내리비치는 빛

 윤석열의 폐허에 내리비치는 빛

  • 입력 2025.04.17 18:50

  • 수정 2025.04.18 08:44

  • 댓글 0

일왕 쇼와의 언어도단, 윤석열의 헌법도단

최상목의 경제도단, 심우정의 공정도단

후안무치·인면수심의 ‘내란당’ 대통령 후보들

‘성공과 출세’ 욕망에 사로잡힌 짐승 같은 자들

시인 노리코의 ‘빛’을 이 땅에 재현한 청년들

강수돌 고려대 명예교수, 전 마을이장

이바라기 노리코(1926~2006)라는 일본 시인이 있었다. 32세 때 20대를 회고하며 쓴 시 ‘내가 가장 예뻤을 때’에서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주변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도 없는 섬에서/ 나는 멋쟁이가 될 기회를 잃어버렸다”고 고발했다. 그리하여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난 몹시도 불행했고/ 난 몹시도 엉뚱했고/ 난 무척이나 쓸쓸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가능하면 오래 살기로/ 나이 들어 매우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프랑스의 루오 영감님처럼 말이지.”

도쿄경제대 교수였던 서경식(1951~2023)은 노리코의 이 작품에 대해 “피해자 의식에 사로잡힌 한탄의 노래는 아니다. 봉건제와 군국주의의 멍에에서 해방돼 자립하려는 여성의 눈부심”이라며, 어딘가 “폐허에 내리비치는 빛”과 같은 시라고 평했다.

쇼와의 ‘언어도단’에 거무칙칙한 웃음 피 토한 시인

작가 노리코가 50세 될 즈음(1975년 10월), 쇼와 ‘천황’이 미국을 방문하고 귀국하면서 공항에서 기자회견 하는 걸 보았다. 한 기자로부터 자신의 ‘전쟁책임’에 대한 질문을 받자, 쇼와는 그런 “언어의 기교에 대해서는, 나는 문학 방면에 관해서는 제대로 연구한 바가 없어서, 대답하기 어렵습니다”라 말(?)했다.

쇼와(昭和) 천황(1901~1989)이 누구인가? 그는 124대 천황(재위: 1926~1989)으로, 당시 일본 제국의 절대 권력자로 전쟁의 최고사령관을 했다. 일본 사회에서는 그가 사실상 신(神)으로 통했는데, ‘현인신(現人神)’이라는 것! 그랬던 자가 국내외의 무수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전쟁책임에 대해선 ‘언어의 기교’나 ‘문학 방면’, ‘제대로 연구한 바가 없어’라는, 말 같지 않은 말(?)로써 사회적 책임을 교묘히 피해나갔다. 한마디로, 세상을 속인 것! 아니, 세상 이전에 자신을 속였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발언에 대해 거의 모든 언론이, 그리고 지식인들조차 별로 문제 삼지 않았던 점이다. 이바라기 노리코가 예외였다.

노리코는 ‘사해파정’(四海波靜)이란 시에서 당시 ‘피 끓는’ 심정을 토로했다. “전쟁책임에 대해 묻자/ 그 사람은 말했다/ 그런 언어의 기교에 대해/ 문학적 방면은 별로 연구하지 않아서/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와/ 거무칙칙한 웃음 피를 토하듯/ 뻗쳐올랐다가, 멈추고, 다시 뻗쳐오른다.”

‘사해파정’(四海波靜)이란 말은 천하의 풍파가 진정되어 태평해진 상태를 뜻한다. ‘현인신’으로 불리는 자가 아시아-태평양 전쟁으로 온 세상에 풍파를 일으켜놓고 전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냉정한 모습, 게다가 일본 사회 전반이 그런 태도를 상당히 공유하고 있는 상태, 그리하여 힘없는 시인 하나라도 악을 쓰면서 그런 현실을 고발해야 할 것 같은 느낌, 바로 그 모든 현실이 작가에게는 도무지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특히 전범 당사자가 자신이 감당해야 할 책임을 회피하면서 ‘언어의 기교’나 ‘문학적 방면’은 특별히 “연구하지 않아” 말할 수 없다고 한 대목은, ‘느낌-마음-언어’로써 삶의 진실을 이야기하는 시인에게는 한마디로 ‘언어도단(言語道斷)’이었다.

2025년 한국에 재현된 권력자의 언어도단

그런데 바로 그 ‘언어도단’의 현실을 2025년 대한민국에서 우리 모두 경험하고 있다. 2024년 12·3 쿠데타를 일으킨 윤석열은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했다. 야당 의원들과 시민 저항으로 채 6시간도 안 되어 국회에서 계엄해제 결의가 되자, 윤석열은 계엄 해제를 말하면서도 “거듭되는 탄핵과 입법 농단, 예산 농단으로 국가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무도한 행위는 즉각 중지해줄 것을 국회에 요청”한다고 했다. 그 3일 뒤 국민에게 사과를 한답시고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면서, “저는 이번 계엄 선포와 관련하여 법적 정치적 책임 문제를 회피하지 않겠습니다”라 하고선 지금까지 책임성 있는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말이라도 ‘안’ 했다면 기대도 않았을 텐데 말이다.

그의 모습을 보면 마치 ‘혁명 영웅’으로 보인다. 2025년 1월 15일 힘겨운 시간 끝에 구속 조치된 윤석열에 대해 50여 일 지나 지귀연 판사가 사실상 ‘탈옥’을 돕는 결정을 내렸다. 3월 8일 윤석열이 서울구치소에서 나올 때 그는 거의 ‘개선 장군’이었다. 그리고 4월 4일 헌재는 8:0 전원 일치로 ‘파면’ 결정을 내렸다. 그럼에도 진심어린 사과나 사회적 책임감은 티끌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4월 11일 대통령 관저에서 퇴거할 때까지 마치 ‘승리 파티’라도 하는 듯 보였다.

퇴거하는 당일도 ‘내란 수괴’가 아닌 ‘혁명 영웅’의 은퇴 행차처럼 보일 정도로 경찰과 경호원들이 넓은 도로를 완전 차단하고 에스코트했다. 서초동 아크로비스타(집)에 도착했을 때, 윤석열은 환영 나온 입주민과 지지자들에게 “다 이기고 돌아온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라 했다. 한 지지자가 “너무 가슴 아파요”라 하자 그는 “어차피 뭐 (대통령을) 5년 하나 3년 하나…”라며 웃었다. 장기 집권 욕망의 내란 수괴가 아닌, 선정을 베푼 성공 대통령이 겸허히 3년만 하고 물러난 것처럼 자기 기만한 것!

심지어, 4월 14일 ‘내란 혐의’ 첫 형사재판에서 “저는 군인에게 실탄 지급을 하지 않고 민간인과의 충돌을 절대 피하라고 지시했다”며 “대국민 메시지를 위한 계엄이지, 이것이 단기간이든 장기간이든 군정을 목표로 한 게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고 했다. 이미 김선호 국방장관 직무대리는 2월 국회 국방위 질의·답변에서 “동원된 실탄이 18만 발로 확인돼 보고한 바 있다” 했다. 5천만 국민을 공포에 떨게 해 놓고 이제 와서 “대국민 메시지를 위한 계엄”, 즉 ‘계몽령’에 불과했기에 별 것 아니란 투다. 이 부분에서 나는 ‘차라리 쇼와가 나았다’는 생각도 든다. 적어도 쇼와는 ‘양심’이 있었던지 “대답하기 어렵다”고 자백했기 때문! 이렇게 윤석열은 ‘언어도단’을 넘어 ‘정치도단’, ‘헌법도단’을 일삼는다. 아직까지 본인이 무슨 짓을 했는지 전혀 모른다!

윤석열 김건희 뿐인가, 최상목 심우정 한덕수…

그러나 윤석열은 결코 단독범이 아니다. 윤석열을 닮은 제2, 제3의 윤석열이 너무도 많다. 김건희만이 아니다. 우선, 최상목은 한국 경제를 책임지는 자리(경제부총리)에 앉아 ‘원화’ 가치가 하락할수록, 즉 한국 경제가 나빠질수록 이득을 보는 미국 국채를 매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3월 27일 공직자 재산공개 현황에 따르면, 최상목은 환율이 급등하던 2024년에 ‘30년 만기 미국 국채’에 2억 원가량 투자했다. 나라살림 책임자가 나라가 죽이 되건 밥이 되건 사적인 돈벌이에 정신이 팔려 있다는 것. 이게 무슨 짓인가? ‘언어도단’ 아닌 ‘경제도단’이라 해야 할까? 한편, 최상목은 2024년에 국가부채가 146조나 불어나 무려 2586조 원이 되었는데도, ‘펑크’난 살림과 ‘미래 세대’에 대해 일말의 책임감도 없이 “국가 총부채비율이 7년만에 감소했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이게 말인가, 방군가? ‘언어도단’이나 ‘경제도단’을 넘어, ‘영혼도단’ 수준이다.

검찰총장 심우정 역시 3월 8일 ‘내란 수괴’ 윤석열의 탈옥 직후 법원에 ‘즉시 항고’하지 않음으로써 내란 수괴가 맘대로 다니게 협조했다. 대전지검 임은정 부장검사가 “심우정 총장과 김주현 민정수석(대통령실)은 확실한 상명하복의 관계이기 때문에 심우정 총장이 김주현 민정수석한테 대들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 논리상 어쩔 수 없이 (즉시 항고를) 하는 척이라도” 할 것이라 확실히 생각했는데, 확신했던 바가 틀려 “너무 당황스러웠다”고 했을 정도다. 이제 심우정 검찰총장은 윤석열과 내란 공범임이 확실시됐다. 오죽하면 임 검사는 “검찰 장례식”을 치르는 기분이라 했을까? 한편, 심우정은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검찰의 수장인데, 그 딸이 외교부 공무직 연구원 채용 과정에서 ‘아빠 찬스’를 활용했다는 의혹이 크다. 무엇보다 심 총장 딸은 서류전형 3등이었는데 면접에서 1등으로 합격했다. 반면, 서류 1등이었던 다른 지원자는 면접에서 3등이 되는 바람에 탈락했다. 윤석열이 그토록 강조하던 ‘공정과 상식’은 어디로 가고, 검찰총장마저 ‘공정도단’에 앞장서다니!

한덕수는 어떤가? 그는 ‘대통령 권한 대행’임에도 스스로 ‘대통령’이 된 듯 착각한다. 그는 4월 8일 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했다. 미국이 57개국에 부과하겠다고 공언한 고율의 상호관세 발효 하루 전이었다. 국무총리실 발표로는 한 대행이 약 28분간 통화했는데, 한·미 동맹 강화, 무역균형 등 경제협력, 북핵 문제 등 양국 현안을 논의했다 한다. 그러나 트럼프는 통화 직후 자신의 SNS에 “한국의 대통령 권한대행과 훌륭한 통화를 했다”며 “거대하고 지속불가능한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 관세, 조선, 미국산 LNG의 대량 구매, 알래스카 가스관 합작 사업, 그리고 우리가 한국에 제공한 대규모 군사적 보호에 대한 지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한국의 최상급 협상팀이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했고, 상황(‘원스톱 쇼핑’) 은 매우 긍정적”이라 했다. 그럴 듯한 말의 성찬을 그만두고 골자만 추리면, ‘한국이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겠다’는 것이다. 이미 그게 현실인가 싶을 정도다.

‘내란당’에서 쏟아져 나온 후안무치 대통령 후보들

그 와중에 ‘내란당’인 국힘당에서 어찌 그리도 많은 대선 후보들이 나올 수 있는가? 그동안 참느라고 허덜시리 ‘욕 봤다!’ 그러나 그 잘 난 이들 중 어느 누구도 ‘내란 사태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거나 ‘진지한 사과’를 하지 않는다. 하기야 그런 걸 안다면 아직도 ‘내란당’을 해체하지 않고 버티겠는가? ‘언어도단’을 넘어 ‘후안무치(厚顔無恥)’ 내지 ‘인면수심(人面獸心)’의 경지다.

사회심리학적으로, 범죄자가 범죄를 자백하거나 인정하지 않기 위해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기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듯 처신할 필요가 있다. 일종의 자기방어 기제로, 이인증(離人症, Depersonalization)이라 한다. 우리에겐 ‘유체이탈’ 화법이 더 익숙하다. 이미 박근혜 시절에 많이 경험한 덕분! 이인증 내지 이인화란 자신이 신체와 심리로부터 분리되어 있거나, 또는 스스로 자신에 대한 관찰자가 되는 듯한 증상을 느끼는 것이다.

실제로, 2014년 4·16 세월호 참사로 304명의 소중한 생명이 사라졌을 때다. 유가족들이 국가의 책임을 외치며 ‘단식 투쟁’에 나섰다. 그 해 8월, 로마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해, 세월호 유가족들을 깊이 위로했다. 반면, 박근혜는 ‘남의 일’처럼 구경만 했다. 그러고선 교황과 독대했을 때 박근혜는 “지난 4월 세월호 침몰 사고의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위로를 전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 데 감사드립니다”라 했다. ‘언어도단’이자 ‘정치도단’이었다.

‘광기’ 극복 위한 인간적, 민주적, 생태적 연대 절실한 시점

이바라기 노리코는 만년에 조선말을 독학했다. 이어 노리코는 윤동주(1917~1945) 등 조선 시인들을 일본 독자들에게 적극 알렸다. 당시 일본 사회의 급격한 우경화도 개탄했다. 편협한 민족과 국가의 분단선을 넘어 인간적, 민주적, 생태적 연대가 절실한 시점이다. 그런 연대가 공고히 형성될 때 비로소 우리는 언어도단, 정치도단, 헌법도단의 ‘광기’를 제대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노리코가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아무도 내게 다정한 선물을 주지 않았다/ 남자들은 거수경례밖에 몰랐고/ 순수한 눈짓만을 남기고 다들 떠나버렸다”며 서글퍼하던 그런 시간들을 더 이상 겪지 않을 수 있으리!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내란 세력에서 보듯 “거수경례밖에 모르”거나 ‘성공과 출세’ 욕망에 사로잡힌, 짐승 같은 자들이 우글대는 세상에 산다.

1999년 이바라기 노리코는 73살의 나이에 <기대지 말고>란 시집을 출간했다. 당시는 일본에서 ‘히노마루(일장기)·기미가요(국가)’의 법제화가 강행되고 있었다. ‘기대지 말고’라는 시는 이런 속마음을 얘기한다. “더 이상 야합하는 사상에는 기대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야합하는 종교에는 기대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야합하는 학문에는 기대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어떤 권위에도 기대고 싶지 않다/ 오래 살면서 마음속 깊이 배운 건 이 정도/ 네 눈 귀 내 두 다리만으로 선들/ 무슨 불편 있으랴/ 기댄다고 한다면 그저/ 의자 등받이뿐.”

2006년 2월 어느 날, 서경식은 이바라기 노리코의 편지를 받았다. “이번에 나는 2006년 2월 17일, 지주막하출혈로 이 세상을 하직하게 됐습니다. 이것은 생전에 써 둔 것입니다.”

과연 “폐허에 내리비치는 빛”과 같은 시, 편지, 삶이다. 쇼와나 윤석열 류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말과 글, 인생이다!

20일 서울 종로구 동십자각에서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 연 '내란수괴 ' 참가자들이 응원봉을 흔들고 있다. 2025.3.20. 연합뉴스

지난 4개월 간 도처에서 만난 “폐허에 내리비치는 빛”

불행 중 다행으로, 우리는 그 “폐허에 내리비치는 빛”들을 12·3 계엄 세력과 싸우는 4개월 여 과정에서, 국회와 길거리에서, 남태령과 광화문에서, 청계천과 안국역에서 무수히 만났다. 특히 나는 2030세대 청년들(그 중 여성들)의 눈부신 활약이 희망의 토대라 본다. 이들은 ‘응원봉 집회’에서만이 아니라 ‘전봉준 투쟁단’ 깃발을 든 농민(전농)이나 ‘노동자 희망’ 깃발의 민주노총과의 연대, 나아가 ‘녹색병원’을 이을 전태일의료센터와의 연대(전태일병원 건립기금 후원)에서도 놀라운 태도를 보여 주었다. 일례로, 남태령 대첩에서 전태일병원 건립계획을 듣고선 특히 2030여성들이 대거 후원 물결을 만들고 있다. 지금까지 총 2만 7000여 후원자들 중 1만 6000명 이상(약 60%)이 2024년 12월 이후에 결합한 이들이라 한다. 현재 50억 모금 목표 중 80% 이상이 달성된 상태다. 한 역사학자는 이런 현상을 두고 “전봉준 정신이 전태일 정신으로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고 했다. 어찌 보면, 이런 모습들이 ‘우리 사회가 가장 예쁠 때’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나는, 아름다운 시로 감동을 준 이바라기 노리코만큼 오래 살지 않은 지금도 꽤 행복하다.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린다’는 한강 작가의 말처럼, ‘제대로 산 자가 죽던 자도 살린다’는 말 역시 가능하지 않을까?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