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난한 교인들이 20년 동안 헌금을 모아서 지은 '삼일교회'. 이 교회는 녹번 1-2구역 재개발 과정에서 강제로 철거됐다. | |
ⓒ 삼일교회 |
서울 은평구 녹번동 산동네에는 809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었습니다. 사는 건 힘들었지만 그래도 가족이 있고, 누울 집이 있고, 슬픔과 기쁨을 나누는 정겨운 이웃이 있었습니다. '녹번제1구역제2지구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아래, 녹번 1-2 재개발)이 만들어지고 재개발이 추진되면서 강제로 쫓겨나기 전까지는 산동네 사람들은 의지가지하며 정답게 살았습니다.
이 산동네에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삼일교회'(담임목사 하태영) 라는 작지만 아름다운 교회가 있었습니다. 가난한 교인들이 20년 동안 모은 헌금으로 지은 눈물 겨운 교회입니다. 봄이면 개나리와 철쭉이 앞 다투며 피었고 여름이면 담쟁이와 덩굴장미가 교회 담장을 붉게 뒤덮으면서 교인들은 물론이고 오가는 행인들을 즐겁게 했습니다. 가난한 교회는 그렇게 가난한 이웃과 30년을 살았습니다.
이 교회의 슬로건은 '평화를 가꾸는 교회'입니다. 가난한 목사는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작고 힘없는 교회는 평화를 가꾸기는커녕 자기 교회조차 지키지 못하고 쫓겨났습니다. 합법이란 미명 하에 쫓겨났기에 강제 철거의 억울함과 부당함을 호소해도 돌아온 것은 참혹함뿐이었습니다.
자기 교회에서 쫓겨난 작은 교회의 슬픈 사도신경
▲ 자기 교회에서 쫓겨난 삼일교회 교인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다. | |
ⓒ 조호진 |
"(전략)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다 (하략)."
지난 4월 23일이었습니다. 서울 은평구 통일로 도로변 허름한 건물 2층에 위치한 삼일교회에 도착하니 20평 남짓한 임시예배당에서 40명 가량의 교인들이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교회 어딘가에는 부자와 권력자들에게 쫓겨난 예수가 앉아 있었을 것이고 벽면에는 금빛 십자가가 아닌 작고 힘없는 나무 십자가가 걸려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자기 교회에서 쫓겨난 목사와 교인들이 낭독하는 '사도신경'(신앙고백 기도문) 슬프게 들렸습니다.
삼일교회는 1973년 개척됐습니다. 당시의 교회 이름은 '제3교회'였습니다.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에 반대하며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김재준 목사의 영향을 받은 진보적 교인들이 제3의 교회를 지향하며 세운 교회입니다. 한신대 66학번으로 민중신학자 안병무 박사의 제자인 하태영 목사는 1988년 부임했고 삼일교회로 이름이 바뀐 것은 1996년입니다. 삼일교회라는 이름엔 사흘 만에 부활한 예수와 일제하의 삼일운동 정신을 따르자는 뜻이 담겼습니다.
삼일교회는 1977년 서울시 은평구 녹번동 19-26에 위치한 국민주택을 매입해 예배당으로 삼았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흐르면서 오래된 예배당은 금이 가고 비가 샜지만 가난한 교인들은 손을 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20년 동안 한 푼 두 푼 건축 헌금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모은 건축헌금 5억 원으로 2007년도에 대지 85평에 건평 110평짜리 2층 예배당을 지었습니다.
삼일교회는 1973년 개척됐습니다. 당시의 교회 이름은 '제3교회'였습니다.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에 반대하며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김재준 목사의 영향을 받은 진보적 교인들이 제3의 교회를 지향하며 세운 교회입니다. 한신대 66학번으로 민중신학자 안병무 박사의 제자인 하태영 목사는 1988년 부임했고 삼일교회로 이름이 바뀐 것은 1996년입니다. 삼일교회라는 이름엔 사흘 만에 부활한 예수와 일제하의 삼일운동 정신을 따르자는 뜻이 담겼습니다.
삼일교회는 1977년 서울시 은평구 녹번동 19-26에 위치한 국민주택을 매입해 예배당으로 삼았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흐르면서 오래된 예배당은 금이 가고 비가 샜지만 가난한 교인들은 손을 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20년 동안 한 푼 두 푼 건축 헌금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모은 건축헌금 5억 원으로 2007년도에 대지 85평에 건평 110평짜리 2층 예배당을 지었습니다.
▲ 강제철거 싸움을 이겨낸 홍대 앞 '두리반' 주인인 소설가 유채림씨는 강제 철거당한 '삼일교회' 교인이다. 유씨가 강제 철거당한 '삼일교회'(사진 속 붉은 벽돌이 삼일교회 벽돌이다) 앞에 서 있다. | |
ⓒ 조호진 |
▲ 2015년 11월 강제 철거당한 삼일교회 교인들이 은평구청 앞 마당에서 길거리 예배를 드리고 있다. | |
ⓒ 삼일교회 |
낡은 교회를 헐고 새 예배당을 짓는 데 30년이나 걸린 것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 등 가난한 교인들뿐 아니라 한 은퇴 신부는 빈병을 주워 팔아 삼일교회에 헌금했습니다. 그렇게 지어진 교회의 입당 예배는 눈물과 감사로 얼룩졌습니다. 비가 새지 않는 삼일교회 새 예배당은 예루살렘의 그 어떤 성전 못지않은 성전이었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교인들의 눈물 겨운 정성으로 지어진 삼일교회는 하루 아침에 강제 철거되고 말았습니다. 하태영 목사의 증언입니다.
"2015년 11월 18일, 비가 내리는 가운데 강제 집행됐습니다. 조합장과 재개발조합 측은 협상 중에는 강제철거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놓고서 약속을 깨버렸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성전인데, 가난한 교인들의 정성으로 지은 눈물겨운 예배당인데 시공사인 삼성물산과 재개발조합은 최소한의 예의도 없이 교회 성물(聖物)들을 들어냈습니다. 교인들은 부서지는 교회를 보면서 울부짖었고 힘도 없는 저는 하나님을 부르며 탄식했습니다. 그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삼일교회 교인들은 자기 교회에서 쫓겨난 첫 번째 주일인 11월 22일 재개발 인허가권자인 은평구청에 항의하기 위해 구청 마당에서 길바닥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이후 3개월 내내 강제로 쫓겨난 삼일교회 정문 앞 인도에서 추위에 떨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 목사는 촛불 기도회로 진행된 성탄절 길바닥 예배에서 "분쟁으로 얼룩진 곳에 평화를 베푸소서!"라고 기도하면서 교인들에게 "우리보다 더 어려운 이들을 위해 기도하자"고 당부했습니다.
550일째 농성 중인 철거민들의 피눈물을 아십니까?
▲ 부활절 두 번째 주일인 4월 23일 삼일교회 교인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다. | |
ⓒ 조호진 |
▲ 녹번 1-2구역 철거민들이 은평구청 앞 마당에서 550일째 농성하고 있다. | |
ⓒ 조호진 |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디모데전서 6장17절~19절)
삼일교회 교인들은 지난 4월 23일 주일예배에서 '디모데전서'를 봉독했습니다. 선한 일을 많이 하면서 너그럽게 사는 것이 참된 삶이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하지만 하늘의 뜻은 통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집과 교회에서 쫓겨난 이들이 눈물로 예배를 드리고 노숙 농성으로 고통을 겪고 있었지만 재개발 조합과 입주권을 산 이들은 억대의 프리미엄(웃돈)을 취하고 있습니다.
녹번 1-2구역 재개발 시공사는 삼성물산입니다. 이 회사의 아파트 브랜드인 래미안(來美安)에는 '편안함과 아름다움이 한데 어우러진 주거 공간'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다들 래미안일까요. 그렇지 못합니다. 쫓겨난 원주민들은 5월 12일 현재 550일째 은평구청 마당과 3호선 녹번역 앞 재개발 현장 앞에서 대책을 촉구하며 장기 농성 중입니다. 이들에게 래미안은 피눈물입니다.
내년 12월 입주 예정으로 재개발 중인 녹번 1-2구역 '래미안 베라힐즈'는 지하 4층~지상 20층 20개 동으로 총 1305가구(전용면적 59~114㎡) 규모입니다. 부동산 중개업자들에 따르면 4월 현재 20평대와 30평대 입주권은 분양가에 비해 1억 3000만 원에서 1억 5000만 원가량의 프리미엄이 붙었다고 합니다. 자기 집을 빼앗긴 이들의 피눈물이 투기꾼들의 먹잇감이 되고 만 것입니다.
"은평구청과 삼성물산과 재개발조합에 각성을 촉구합니다!"
▲ 녹번 1-2구역 재개발 시공사인 삼성물산이 재개발공사 중인 현장. | |
ⓒ 조호진 |
하지만 이런 일들은 위법으로 진행된 게 아닙니다. 녹번 1-2구역 재개발조합과 시공사 삼성물산 그리고, 인·허가를 내준 은평구는 합법적 절차를 밟았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습니다. 건장한 용역들이 진을 친 가운데 강제집행이 됐지만 집행관 입회 아래 진행된 삼일교회 철거는 합법적이었습니다. 문제는 합법이란 이름으로 쫓아내도록 보장한 개발악법입니다.
악법으로 지목된 법은 군사정권 때 만들어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아래, 도정법)입니다. 도정법은 보상가를 개별공시지가 수준에서 결정하는데 이는 인근 지역의 주택 시세와 비교해 차이가 크게 발생합니다. 녹번 1-2구역에서 철거당한 164가구 대부분이 공시지가의 60~70% 정도 보상금을 받고 쫓겨났다는 것입니다. 삼일교회 또한 공탁된 보상금으로는 마땅한 교회를 매입할 수 없어서 합의를 거부했습니다. 재개발조합은 법원에 공탁금을 걸어 놓고 강제 집행했습니다. 헌법이 보장하는 사유재산권은 재개발현장에선 무용지물이었습니다.
녹번 1-2구역을 비롯한 재개발지역의 가난한 원주민들은 감당하기 힘든 분담금 때문에 분양권을 포기했고 현금 청산된 원주민 상당수는 세입자로 전락했습니다. 자기 집을 빼앗기고 도시빈민으로 전락시키는 재개발이 너무 억울한 원주민들은 2년이 다 되도록 농성하고 있습니다. 용산 참사의 비극이 아직 생생하고 철거민들의 피눈물은 거리를 적시고 있지만 투기 세력들은 가난한 이들의 고통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프리미엄 등의 잇속 챙기기에 급급합니다. 이게 사람 사는 세상입니까.
이들 철거민들도 재개발을 반대하진 않습니다. 반대하는 것은 주거권을 침해하면서 재산피해를 강요하는 재개발 방식입니다. 재력과 정보를 가진 투기세력들이 프리미엄을 챙기면서 가난한 원주민들은 도시빈민으로 추락시키고, 가족들을 뿔뿔이 헤어지게 하는 야만적인 재개발, 시공사와 투기세력의 이익을 보장하는 재개발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하태영 목사가 은평구청과 삼성물산 그리고 재개발 조합과 한국교회를 향해 각성을 촉구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 녹번 1-2구역 재개발 시공사인 삼성물산이 '래미안 베라힐즈' 공사에 한창이다. | |
ⓒ 조호진 |
▲ 삼일교회에서 기도 중인 하태영 목사. | |
ⓒ 조호진 |
"사회적 약자인 원주민과 작은 교회가 재개발조합과 시공사의 합법적 폭력에 희생되고 있는데도 은평구청장과 담당 공무원들은 알량한 법을 내세우며 외면하고 있습니다. 구청장과 공무원들은 재개발이 지역발전이란 구시대적 개발논리에 사로잡혀 원주민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재개발 인허가권을 행사했습니다. 약자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없는 법집행은 비극과 반발을 낳기 마련입니다.
삼일교회는 재개발 계획 당시 '존치' 아니면 '대토'를 요구했지만 은평구청은 삼일교회가 등기부상에 종교부지가 아닌 대지라는 이유로 현금청산자로 분류했습니다. 종교시설 판단은 '고유목적'으로 하는 것이지 '지목'으로 구분하지 않는 것이 상식임에도 은평구청은 이를 자의로 해석함으로써 삼일교회를 재개발조합과 삼성물산의 먹잇감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40여 년 전에 조성된 서울 시내 대부분의 교회는 종교부지가 아닌 대지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삼성을 한국 최고의 기업이라고 하고 삼성물산이 만든 래미안을 명품 아파트로 부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삼성물산은 합법이란 이름으로 원주민과 교회를 쫓아냈고 쫓아낸 그 땅 위에 래미안을 짓고 있습니다. 래미안은 명품 아파트가 아니라 쫓겨난 사람들이 흘린 피눈물 위에 짓는 바벨탑 같은 욕망의 덩어리입니다. 이런 기업을 과연 글로벌 기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재개발로 인해 마을공동체는 산산 조각나고 말았습니다. 가난한 이웃들을 개발 이익의 제물로 삼은 재개발조합은 하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저희들은 그나마 임시예배당인 예배처소가 있지만 자기 땅에서 쫓겨나 세입자로 전락한 원주민들은 도시빈민으로 전락했습니다. 오랜 세월을 거리에서 농성하고 있는 원주민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한국 교회는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의 각성 또한 촉구합니다."
"약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대통령이 되어 주십시오!"
▲ 2014년 11월 녹번 1-2구역 비상대책위 주민들이 은평구청 앞에서 공시지가보다 낮은 감정평가액에 반발해 재감정을 요구하고 있다. | |
ⓒ 은평시민신문 |
"이게 나라냐!"
이건 나라가 아닙니다. 불법 부당한 세력들은 약자들의 집을 빼앗고 삶을 짓밟았지만 그들은 언제나 합법적이었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이 울부짖고 몸부림쳤지만 부당한 일조차 합법으로 뒤바꾸는 그들을 상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입니다. 살기를 원하는 철거민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사건이 용산 참사입니다. 주거권을 빼앗긴 이들이 울부짖는 나라, 이웃의 피눈물을 외면하는 비인간적인 사회에서 과연 인간다운 삶이 가능할까요.
"나라를 나라답게"
▲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 캐치프레이즈인 '나라를 나라답게' | |
ⓒ 정철 |
문재인 대통령께서 내건 대선 캐치프레이즈입니다. 제발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어주십시오. 불의와 편법이 판치는 야만의 나라를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나라로 바꿔 주십시오. 재벌기업과 자치단체와 재개발조합의 합법적인 폭력을 중단시켜 주십시오. 합법이란 미명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재산을 빼앗는 도정법은 폐기되어야 합니다. 투기세력에 의해 가난한 사람들이 쫓겨나지 않도록 주거권을 보호해주십시오. 가난한 사람들이 더 이상 투기세력의 제물이 되지 않도록 보살펴주십시오.
사회적 약자의 생존권이 보장돼야 나라다운 나라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권을 합법적으로 빼앗은 야만의 법과 제도가 사라져야 나라다운 나라입니다. 투기에 미쳐 날뛰는 세력들을 일벌백계해서 미친 집값을 바로잡아야 나라다운 나라입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사회적 약자들이 당당하게 살 수 있게 해주십시오. 더 이상 눈물과 피눈물을 흘리지 않게 해주십시오. 문재인 대통령님으로 인해 삶의 희망을 이야기하며 살고 싶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정의로운 나라로 만들어 주십시오. 문재인 대통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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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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