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섭 2017. 0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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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길에 떨어지는 곡물 수송 화차의 낙곡, 치인 동물, 개미 등 선호
인도 동북부 차나무 밭은 빽빽한 하층 숲이 은신처 제공, 표범 몰려
» 철길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수컷 어린 회색곰. 연구자들이 곡물 수송열차에서 떨어진 곡식을 측정하기 위해 설치한 장치를 물어뜯고 있다. Niels de Nijs
대형 포식동물은 훼손되지 않아 먹이가 풍부한 곳, 다시 말해 인적이 드문 곳에 살기 마련이다. 그런데 꼭 그렇지는 않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사람이 바꾼 환경이 종종 이들을 불러들이기도 한다. 쓰레기 매립장은 대표적인 예이다. 유럽황새와 터키의 불곰이 매립장에서 먹이를 구하느라 오랜 이동 경로를 바꾸고 있다(■ 관련 기사: 쓰레기를 사랑한 야생동물의 비극).
쓰레기 매립장뿐이 아니다. 도로나 철도는 야생동물을 죽이고 또 그것이 다른 야생동물을 불러모은다. ‘로드 킬’로 잘 알려진 도로 말고 철도 또한 야생동물에 큰 영향을 끼친다.
철도는 도로보다 교통량은 적지만 야생동물이 입는 피해는 더 클 수 있다. 무엇보다 기차는 야생동물을 피할 길이 없고 정지하는 데도 시간이 더 걸린다. 차체가 커 동물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고, 덜 개발된 지역을 다니는 경우가 많다. 충돌사고가 나도 사람이 입는 피해가 거의 없으니 관심도 덜하다.
지역에 따라 철도는 도로보다 더 큰 피해를 야생동물에 입힌다. 캐나다 밴프 앤 요호 국립공원도 그런 곳으로, 이 지역에 사는 회색곰 전체 개체수가 약 60마리인데 이제까지 19마리가 기차에 치여 숨졌다.
» 캐나다 로키산맥에 위치한 밴프 국립공원 모습. Wing-Chi Poon, 위키미디어 코먼스
모린 머레이 캐나다 앨버타 대 생물학자 등은 이 국립공원에서 회색곰 21마리에 위성추적 목걸이를 부착해 이들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한편 배설물을 분석해 철도의 이용과 영향을 조사했다. 과학저널 <플로스 원> 24일 치에 실린 이들의 논문을 보면, 회색곰은 철도를 광범하게 이용했다.
곰이 철도를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곡물을 실은 화물열차에서 적지 않은 곡식이 철도에 떨어진다. 특히 수확기인 가을철에 곰들은 떨어진 낱알을 많이 섭취했다.
곡물에는 자연계에서 찾을 수 없는 풍부한 영양분이 들어있다. 밀과 보리에는 탄수화물이 많고, 캐놀라 씨에는 지방이, 렌틸콩에는 다량의 단백질이 들어있어 곰들에게는 놓칠 수 없는 먹이이다. 철길에서 150m 거리 안에서 확보한 곰 배설물의 43%에서 곡물이 나왔다.
철도는 숲에 생긴 열린 공간이어서 민들레, 개미 같은 새로운 생물이 등장하기도 한다. 곰들은 이런 새로운 먹이를 놓치지 않았다.
무엇보다 철길에서 교통사고로 죽은 사슴 등 다른 동물은 외면하기 힘든 단백질원이다. 곰들은 일정 영역의 철길을 자신의 영역으로 확보해 매일 순찰하면서 먹을 것이 생겼는지 확인했다. 철도는 이들의 손쉬운 이동통로 구실도 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회색곰 21마리 중 17마리는 하루의 9% 미만을 철도에서 보냈지만 나머지 4마리는 20% 이상을 보내는 등 철도 이용률이 매우 높았다는 것이다. 4마리 가운데 3마리는 청소년기의 어린 개체였는데, 1마리는 전체 무리에서 가장 큰 우두머리 수컷이었다.
경험 없는 미성숙 개체가 철길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다면 기차에 치일 위험도 커진다. 반대로 우두머리 수컷은 위험을 회피할 경험이 풍부한 것으로 보이는데, 국립공원 철길의 절반을 제 영역으로 차지해 다른 개체들이 철길에 접근하는 것을 막고 그럼으로써 사고 위험도 줄이는 구실을 하는지가 관심거리라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한편, 철도에서 7㎞ 떨어진 곳의 곰 배설물에서도 곡물이 확인돼 곰이 씨앗의 확산시키는 구실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운송되는 곡물 가운데는 유전자 조작 캐놀라 종자가 들어있어 외래종이 퍼져나갈 우려도 제기됐다.
» 표범 한 마리가 차나무 밭에서 죽은 가우어(야생 들소)를 먹고 있다. KALYAN VARMA
인도 북동부에서는 표범이 차나무밭에 자주 출몰한다. 동부 히말라야의 생물 다양성이 높은 이 지역에는 소규모의 자연보호구역 외에 대규모 차나무밭이 농지, 마을과 함께 펼쳐져 있다.
아리트라 크쉐트리 야생동물보전협회(WCS) 인도 지부 연구자 등은 <플러스 원> 17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이 지역에 서식하는 표범이 남긴 표식을 바탕으로 활동영역을 조사한 결과를 밝혔다. 놀랍게도 야생지역 밖에 있는 차나무밭의 25%에서 표범이 아주 자주 드나들었다.
이 지역에서는 2009∼2016년 사이 표범과 사람이 조우한 사례가 350건에 이르고, 5명은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차나무밭에 드나드는 표범이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일은 없었다.
크쉐트리는 “이번 연구에서 표범이 많이 이용하는 지역이라고 사람을 공격하는 사례도 잦지는 않음이 드러났다. 상처를 입은 사람 얘기를 들었더니 표범과의 조우는 대낮에 차나무밭에서 일하던 사람과 사이에 우발적으로 일어났고 부상 정도도 경미했다”라고 이 협회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표범은 울창해서 숨기 좋은 차나무 밭 근처에 굴을 파고 새끼를 낳곤 한다. 사람 공격은 이런 번식지와도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논문은 밝혔다.
연구자들은 표범이 개발이 많이 이뤄진 지역을 피해 빽빽한 하층 식생이 있는 차나무밭을 찾아오는 것으로 보았다. 크쉐트리는 “연구 결과는 넓은 영역을 지니는 포식 동물에게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인위적인 지역도 보전을 위해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며 “사람과의 충돌을 효과적이고 사전적으로 줄일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Murray MH, Fassina S, Hopkins JB, III, Whittington J, St. Clair CC (2017) Seasonal and individual variation in the use of rail-associated food attractants by grizzly bears (Ursus arctos) in a national park. PLoS ONE 12(5): e0175658. https:// doi.org/10.1371/journal.pone.0175658
Kshettry A, Vaidyanathan S, Athreya V (2017) Leopard in a tea-cup: A study of leopard habitat-use and human-leopard interactions in north-eastern India. PLoS ONE 12(5): e0177013. https://doi.org/10.1371/journal.pone.0177013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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