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섭 2017. 05. 30
조회수 83 추천수 0
바이오블리츠 코리아 2017에 1200여명 참가, 하룻새 836종 확인
2m 구렁이, 식충식물 끈끈이주걱, 북방계 희귀식물 두메애기풀 등 발견
» 27일 밤 전북 고창군 선운산 생태숲에서 열린 바이오블리츠 코리아 2017 참가자들이 유인등에 끌려 스크린에 몰린 곤충에 관한 설명을 임종옥 국립산림과학원 곤충분류연구실 박사로부터 듣고 있다.
“바이오블리츠가 뭔다요?”
전북 고창군에 있는 선운산을 등산하던 이가 ’바이오블리츠’란 글귀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조사단원에게 물었다. “미식축구에서 일제히 공격하는 것을 이르는 말인데, 전문가와 일반인이 힘을 합쳐 한 지역의 생물 종을 하루 동안 조사해 목록을 만드는 것”이라 설명하니 “떼거리 생물조사구먼”이란 답이 돌아왔다.
그렇다. 멸종과 생물 다양성 감소가 워낙 심각하니 공식 생태조사를 기다릴 겨를이 없다.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동원되고 미래 세대의 주역을 포함한 일반인이 참여해 조사과정을 배우고 보전의 중요성을 깨닫는 행사가 바로 바이오블리츠이다.
» 각종 이야기 마당이 펼쳐진 바이오블리츠 중앙 무대. 전광판이 24시간 가운데 남은 조사 시간을 가리키고 있다.
국립수목원과 한국식물원수목원협회가 올해로 8번째 주관한 ‘바이오블리츠 코리아 2017’ 행사가 27∼28일 전북 고창군 선운산 생태숲을 중심으로 열렸다. 각 분야 분류 전문가 100여명과 일반인 400여명 등이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등 모두 1200여 명이 만 하루 동안 선운산 도립공원 일대를 누볐다.
지금까지 바이오블리츠에서는 관속식물과 곤충이 전체 조사 생물 종의 약 4분의 3을 차지한다. 대개 잘 보전된 숲에서는 곤충이 많았지만 훼손된 곳에서는 오히려 식물 종이 곤충보다 많았다.
대관령과 청태산에서 열린 바이오블리츠에서는 곤충이 식물을 눌렀지만 도심인 서울숲에서 열린 조사에선 식물이 많았다. 생물권보전지역으로 보전과 개발이 균형을 이루는 곳인 선운산 일대에선 과연 어느 쪽의 종이 많을까.
» 유인등에 몰려든 곤충을 살피는 참가자들.
첫날 밤 유인등으로 곤충을 유인하는 프로그램은 참가자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행사이자 일거에 곤충의 종수를 늘리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낮에 25도이던 기온이 한밤중에 14도를 기록하며 10도 이상 떨어져 쌀쌀해지자 변온동물인 곤충의 활동이 둔해졌다.
야간 곤충채집에 나선 150여 명의 참가자는 유인등에 드문드문 날아든 나방 몇 마리와 파리류에 만족해야 했다. 임종옥 국립수목원 박사는 “기생벌이 다양한 것을 보면 먹이가 되는 곤충도 다양하다는 뜻이어서 이 지역의 생물 다양성이 풍부할 것으로 예상했다”며 “한밤중의 기온이 낮아 전체 곤충 종수의 절반을 차지하는 나방이 적게 나온 것 같다”라고 말했다.
» 유인등에 이끌려 스크린에 달라붙은 파리류.
이번 행사에서 확인된 곤충은 모두 269종으로 고등식물 319종보다 적었다. 그러나 이 두 분류군을 합치면 588종으로 이번에 확인된 전체 종수 836종의 70%를 차지해 생태계에서 가장 중요한 생물 집단임을 재확인했다.
■ 선운산 바이오블리츠에서 확인한 분류군별 생물 종
그러나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야간 채집한 곤충을 분류하던 중 미기록 과의 버섯파리류 곤충이 발견된 것이다. 이날 유인등 스크린에는 약 500마리의 파리류가 새카맣게 달라붙었는데, 그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한 번도 기록되지 않은 종이나 속보다 상위 분류군인 새로운 과의 곤충이 나온 것이다.
몸보다 긴 더듬이에 얼룩 날개를 지녀 파리류로는 보이지 않는 이 곤충은 케로플라티대(Keroplatidae) 과의 마크로세라(Macrocera) 속 파리류로 추정된다. 임종옥 박사는 “이 무리의 곤충은 열대 지역의 동굴처럼 습한 곳에서 발견되며 어둑어둑한 시간에 천천히 날아다닌다”며 “이 과의 파리류가 확인된 것은 국내에서 처음”이라고 말했다.
» 국내에서 처음 발견된 과의 파리류. 27일 야간채집에서 발견됐다. 임종옥
임 박사는 또 “이 무리의 곤충은 먹이 곤충을 옥살산으로 죽이는 사실이 보고된 바 있다”며 “새로 확인된 곤충이 산림 내 해충의 중요한 천적 곤충으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봄 가뭄이 계속됐지만 계곡에서 전문가들은 보기 힘든 습지 식물을 발견했다. 김혁진 국립수목원 박사는 “식충식물인 끈끈이주걱과 희귀 난인 큰방울새난을 습지에서 확인했다”고 말했다. 조사단은 또 함경남도 부전고원 이북의 고산에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진 북방계 식물로 남한에서는 강원도 석회암 지대에서 드물게 볼 수 있는 두메애기풀을 무덤가에서 발견했다.
» 선운산의 한 계곡에서 발견된 식충식물인 끈끈이주걱
양서·파충류 조사단은 돌담 근처에서 길이 2m에 이르는 커다란 구렁이의 허물을 발견했다. 이상철 인천대 생물연구소 박사는 “구렁이를 자주 목격했다는 주민의 목격담에 비추어 한 무리의 구렁이가 서식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구렁이는 쥐와 마찬가지로 사람에 기대어 살아가는 동물인데 환경 교란과 남획으로 멸종위기종이 됐다”라고 말했다. 일반인 참가자들은 구렁이 허물을 직접 만져보면서, 뱀이 피부의 수분 증발을 막아주는 케라틴 껍질을 갖춰 개구리 등 양서류와 달리 물가를 벗어날 수 있었지만 피부가 잘 늘어나지 않아 성장하면서 주기적으로 허물을 벗어야 한다는 설명을 들으며 신기해했다.
» 구렁이 허물을 만져보며 참가자들이 이상철 박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선운산 생태숲의 연못에서는 밤이 되자 외래종인 황소개구리가 저음의 소 울음 소리를 냈다. 참개구리와 청개구리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 박사는 “전국에 급속히 번지던 황소개구리의 확산 세가 천적이 생기는 등 생태계 내부의 조절기능이 작동하면서 최근 꺾였다”며 “그러나 전북 부안 등에는 아직 황소개구리의 밀도가 높고 그 바람에 경쟁에 밀리는 토종 참개구리가 자취를 감췄다”라고 말했다.
포유류 조사단은 일반인 참가자가 발견한 흰넓적다리붉은쥐를 포함해 멧밭쥐, 삵, 수달, 오소리, 두더지, 고라니 등 13종을 확인했다. 김용기 생태정보연구소 박사는 “배설물의 간격 등으로 보아 삵은 형제나 가족이 함께 생활하는 것 같다”며 “등산객이 많은데도 다양한 야생동물을 확인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 물가 갈대 줄기에 둥지를 튼 멧밭쥐. 갈대를 엮어 만든 이 둥지에서 번식한다.
일반인 참가자들은 전문가와 함께 관찰과 조사활동을 벌이는가 하면 전문가 텐트를 방문해 표본을 만들고 분류를 하는 과정을 직접 지켜보았다. 또 이야기 마당에서 전문가들로부터 생물에 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듣는가 하면 장수하늘소 애벌레와 어른벌레 기르기, 생태놀이 공작소, 자연물 장신구와 책갈피 만들기, 식물 세밀화 그리기 등 참여 프로그램을 즐겼다.
» 장수풍뎅이 애벌레와 성충을 만져보는 참가자들.
이번에 3번째로 5학년 아들과 함께 바이오블리츠에 참가한 권태희(46·인천시 남동구) 씨는 “아이가 양서·파충류를 좋아하고 과학자가 되겠다고 꿈꾸어 함께 오게 됐다”며 “전문가 곁에서 구체적인 조사과정을 보며 질문할 수 있어 좋다”라고 말했다.
고창/ 글·사진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