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섭 2017. 05.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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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컷 추격하면 땅바닥에 추락 몸 뒤집고 꼼짝 안 해
별막이왕잠자리 암컷서 관찰…동물계 5종에서 발견
» 고산지대 습지에 서식하는 크고 아름다운 잠자리인 별박이왕잠자리. 독특한 산란행동이 발견됐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별박이왕잠자리는 고산지대 습지에서 볼 수 있는 크고 아름다운 잠자리이다. 배의 무늬가 검은 바탕에 파랗고 노란 점이 흩어져 있는 모습이 밤하늘의 별 같아 이런 이름을 얻었다. 우리나라부터 유라시아 대륙과 북아메리카까지 널리 분포하는 이 잠자리가 짝짓기 때 특별한 행동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스위스 취리히대 생물학자 라심 켈리파는 2015년 7월 알프스산맥의 고산지대에서 잠자리 조사를 하다가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동료에게 쫓기던 잠자리 한 마리가 땅바닥으로 곤두박질했다. 다가서 보니 별박이왕잠자리 암컷이 뒤집혀 꼼짝 않고 있어 죽은 모습이었다.
수컷은 암컷 위를 잠시 선회하다가 사라졌다. 암컷이 정말 죽었나 해서 접근했더니 푸드덕 날아가 버렸다. 켈리파는 이후 별박이왕잠자리 암컷이 마음에 들지 않는 수컷을 뿌리치기 위해 죽은 척하는 행동을 관찰해 과학저널 <생태학> 최근호에 보고했다.
» 별막이왕잠자리의 짝짓기 모습. 켈리파
연구자는 연못 두 곳을 정해 관찰했는데, 수컷은 주로 연못 주변을 배회하며 암컷과 짝짓기를 시도했다. 별박이왕잠자리는 산란할 때까지 교미 상태를 유지하는 다른 많은 잠자리와 달리 수컷이 떨어져 나간 뒤 암컷 홀로 물가에 알을 낳는다.
암컷 홀로 알을 낳을 곳을 찾아다니는 동안은 다른 수컷이 짝짓기를 강요할 수 있는 매우 취약한 시간이다. 암컷으로서는 한 번의 짝짓기가 모든 알을 수정하기에 충분하고, 또 추가 교미는 산란관을 손상할 수 있어 덤벼드는 수컷이 달갑지 않다.
» 별박이왕잠자리는 다른 잠자리와 달리 교미를 마친 수컷이 떨어져 나간 뒤 암컷 홀로 산란지를 찾는다. 이때가 다른 수컷이 덤벼들 취약한 시기이다. 켈리파.
수컷의 추격을 받은 암컷 35마리 가운데 31마리가 땅바닥에 추락했고 비행을 계속한 암컷은 4마리에 지나지 않았다. 땅에 떨어진 31마리 가운데 27마리가 죽은 척했는데, 21마리가 수컷의 괴롭힘을 피할 수 있었다. 이처럼 높은 회피 성공률을 보인 까닭은 수컷이 움직이지 않는 물체를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연구자는 밝혔다.
땅에 떨어진 암컷은 정신을 잃은 것일까. 연구자는 이들을 손으로 붙잡으려 시도했는데 31마리 중 27마리는 잽싸게 도망쳤다.
» 덤불에서 쉬고 있는 별박이왕잠자리 수컷. 검은 바탕에 파랗고 노란 점이 별처럼 빛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켈리파는 “이런 행동이 진화한 것은 포식자 회피를 위해 죽은 척하는 행동을 짝짓기에도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죽은 척하는 암컷이 강압적인 교미를 더 잘 피하고 생존과 번식률이 높아 이런 행동이 선택받았다”고 풀이했다.
동물 가운데 이처럼 죽은 척해 짝짓기를 회피하는 행동이 보고된 것은 거미 1종, 파리매 2종, 사마귀 1종에 이어 5번째라고 연구자는 밝혔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Rassi Khelifa, Faking death to avoid male coercion: extreme sexual conflict resolution in a dragonfly, Ecology, DOI: 10.1002/ecy.1781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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