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은 5월 18일 논평에서 북한군 개입 의혹을 진상규명을 위해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유한국당 홈페이지 캡처
어제 5.18 광주 민주화 운동 37주년 기념식이 있었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과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 유가족 포옹 등 행사를 눈물을 흘리며 봤다는 글들이 SNS에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은 논평을 통해 감동적인 기념식에 ‘북풍 공작’을 벌였습니다.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대통령의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겠다는 공약 준수”는 ‘내년 지방선거 때까지 개헌하라’며 ‘개헌’만을 강조했습니다.
“헬기 사격까지 포함해 발포의 진상과 책임을 밝히는 등 5·18 진상 규명을 위한 노력”은 ‘ 5.18유공자 선정 절차 및 대상자의 문제점, 5.18 당시 북한군 개입 의혹’까지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말할 때마다 극우세력들은 끊임없이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합니다. 그 주장이 얼마나 비이성적이며 허구인지 반박해보겠습니다.
‘간첩 이창용조차 침투하지 못했던 광주’
극우세력과 탈북자들은 북한군 특수부대가 광주에 침투했고, 5.18 시민군 대부분이 북한군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전제 조건은 북한 특수부대가 광주에 진입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광주는 그 누구도 침투하지 못할 정도로 봉쇄된 지역이었습니다.
1980년 5월 24일 신군부는 ‘학생 및 시위가 극렬한 광주시에 잠입, 이들의 시위를 무장폭동으로 유도하려는 목적으로 남파된 북괴 간첩 이창용을 검거했다’라고 밝힙니다.
이창용의 검거 소식은 광주지역 시민군들이 북한의 사주를 받았다는 뉘앙스를 풍겼고, 결국 1980년 광주 시민들은 무장 폭도로 왜곡됐습니다. 일부에서는 간첩 이창용을 근거로 5.18 시민군이 북한 특수부대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간첩 이창용이 북한군 개입설을 반박하는 증거가 됩니다.
“간첩 이창용은 지난 20일 새벽 2시 안내원 2명의 인도하 남해안으로 침투하여 21일 야간 순천에 도착, 광주 잠입을 시도했으나 군경의 검문검색이 심하고 모든 진입로가 차단되어 포기, 순천에서 1박했다.” (이창용 침투에서 검거까지. 1980년 5월 26일 경향신문)
특수훈련을 받은 남파 간첩 한 명조차 모든 진입로가 차단돼 포기할 정도였는데, 어떻게 수백 명의 북한군이 광주에서 활동할 수 있었을까요?
1980년 5월 21일 광주외곽봉쇄작전(작전지시 80-5호)이 시작됩니다. 광주로 통하는 주요 도로를 대한민국 3공수,7공수,11공수,20사단,31사단,전교사가 모두 차단했습니다.
5월 17일 비상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된 상황에서 수백 명의 북한군이 전국 곳곳에 배치된 군인과 경찰을 뚫고, 또다시 공수부대가 막고 있는 광주 외곽을 뚫고 시민군에 합류했다는 사실은 어이가 없습니다.
‘김관진 국방부장관, 5.18 북한군 개입은 허위사실’
2013년 강운태 광주시장은 김관진 국방부 장관을 만나 5.18민주화운동 당시 북한군 개입설에 대한 사실여부를 물어봤습니다. 당시 국방부 장관은 김관진으로 극우 인물 중의 한 명입니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5.18 민주화 운동 당시 북한군이 침투하거나 개입한 사실이 없음을 직접 확답했습니다.
국방부도 ‘5.18에 북한군 특수부대가 개입했다는 일부 종편의 방송내용과 탈북자 단체 주장에 대한 군의 입장’이라는 공식 문서에서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의 조사결과 보고서를 자세히 검토했으나, 5.18 당시 북한군 특수부대가 개입했다는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다’라고 밝혔습니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가 발표한 보고서에서도 ‘육군본부 정보참모부에서 신빙성 없는 것으로 판단한 대북 첩보를 신군부는 자신들의 권력 획득을 위해 5.18을 북한과 연관된 것처럼 여론조작을 하기위해 허위사실을 유포했다’고 기록했습니다.
2013년은 박근혜와 새누리당의 집권 시절입니다. 당시에도 북한군 개입이 없었다는 국방부의 공식 입장이 나왔는데도 아직도 자유한국당은 ‘ 5.18 당시 북한군 개입 의혹’이 진상규명에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있는 듯 합니다.
‘미국 CIA 기밀 문서, 5·18 당시 北 군사행동 없어’
1980년은 신군부가 군대를 동원해 쿠데타를 일으켜 미군이 북한 동향을 예민하게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수백 명의 북한군이 광주까지 왔다면, 미군이 모를 수가 없습니다.
2017년 5.18 기념재단이 분석한 CIA 극비문서를 보면 1980년 5월 9일 자 미국 국가 안전 보장회의 회의 문서에서도 “아직까지 북한은 정치 불안 상황을 빌미로 어떤 군사행동을 취하는 기미는 없다. 하지만, 12·12 사태에 대해 무척 놀라고 있다”고 기재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CIA가 공개한 1980년 6월 2일 미국 국가 정보위원회의 극비 회의 자료에서도 “현재까지 북한은 남한의 사태에 대해 합리적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기술했으며, “북한군의 눈에 띠는 어떤 행동도 전두환에게 ‘북한의 도발 위협’ 행동에 빌미를 제공하고 이는 결국 전두환을 돕는 행위라는 것을 김일성은 잘 알고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성조기를 흔들며 집회에서 미국을 추앙하는 극우세력들이 왜 미국 CIA 보고서와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 문서를 믿지 못하는지, 이 부분도 이해되기 어렵습니다.
‘매번 바뀌는 북한 탈북자의 특수부대 개입설’
극우세력과 자유한국당은 5.18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할 때 늘 탈북자들의 말을 인용합니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인물이 임천용 자유북한군인연합 대표입니다.
임천용은 언론에 나와 광주에 북한 특수부대원 수백 명이 침투해 민간인을 사살했다고 주장하지만, 그의 증언은 그리 신빙성이 높아 보이지 않습니다.
임천용은 2006년 한국논단에서는 북한군 450명이 그해 12월 기자회견에서는 1개 대대가, 2007년 뉴스한국에서는 2개 대대 600명이 2013년 TV조선에서는 1개 대대 등 침투인원수가 매번 달라집니다. 여기에 침투 방법도 배를 이용해 침투했다가 해놓고는 잠수함, 나중에는 땅굴까지 다양해집니다.
침투 인원, 침투방법, 생환자수 등이 매번 바뀌는 그의 증언을 믿기는 신빙성이 떨어지는데, 오로지 그의 주장이 진실처럼 종편과 극우단체, 자유한국당이 인용하고 활용하고 있습니다.
극우 논객 조갑제씨는 1980년 광주를 취재했던 기자 중의 한 명입니다. 만약 광주에 북한군이 있었다면 조갑제를 비롯한 기자와 신군부가 모를 리 없었고, 이제껏 그들이 말을 하지 않을 리 없습니다. 그러나 광주를 취재했던 기자 중에서 북한군 특수부대 개입을 말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증언이 바뀌는 탈북자들의 말만 믿고 1980년 광주에 수백 명의 북한 특수부대원이 침투, 민간인을 사살했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단순한 생각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팀 셔록 기자는 미국의 탐사보도 전문 기자로 1996년 ‘체로키(Cherokee) 파일’을 입수해 미국이 5.18 진압에 개입한 사실을 폭로했습니다.
현재 한국을 방문한 셔록 기자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은 광주의 항쟁을 북한의 음모라고 묘사하며, (광주 정신의) 기반을 약화시키려는 우파의 시도를 분명히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강조했습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관련 자료를 취재한 미국 기자의 말에서 자유한국당의 의도를 알 수 있습니다. 바로 광주 정신을 약화시키고 문재인 대통령을 종북으로 만들어 정권을 흔들겠다는 극우세력의 전략입니다.
자유한국당은 1980년 5월, 뜨거운 가슴으로 민주주의를 외쳤던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야 합니다. 자유한국당과 극우세력은 오로지 권력을 잡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을 흔들고 국민을 두 번 죽이는 행위를 당장 멈추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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