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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가꾸기 단상
정원이나 뜰을 가꾸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봄이나 여름철 이런저런 일로 바빠서 잔디에 신경을 쓰지 못하다 보면 어느 새 마당이 엉망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쑥밭이 된다’는 말이 있겠는가? 마당을 온통 쑥이 점령해버린다는 것을 두고 하는 말에서 비롯된 표현일 것이다. 여하튼 나도 마당일을 하다 보면 요즘 쑥이란 놈이 정말 번식력이 왕성하고 강인한 것임을 실감하고 있다. 웬만한 잡초는 그냥 손으로 뽑아 버리면 되는데, 쑥은 맨 아랫부분을 한 손으로 단단히 붙잡은 다음 살살 좌우로 약간 흔들고 조심스럽게 뽑아야 뿌리까지 딸려 나온다. 뽑힌 뿌리의 길이에 따라 놀라움과 만족도가 정비례한다. 그나마 이것은 운이 좋은 경우이고 보통은 뿌리는 놔둔 채 포기하기 일쑤다. 쑥 다음으로 ‘고약한’ 놈은 민들레 그리고 망초 순이다. 그 외에도 예쁘고 앙증맞은 노랑, 파랑, 하양 등 각종 색깔의 꽃이 달린 풀들이 엄청 많지만 나는 요것들에게는 비교적 관대한 편이라 운 좋은 놈들은 종종 화를 면하고 목숨을 부지한다. 뽑는 나도 일관성이 없으니 그때의 나의 시간적 여유나 몸 컨디션, 그리고 기분에 따라 그들의 운명이 좌우된다.
사실 우리 인간의 편견 때문이지 쑥, 민들레, 망초에게 무슨 잘 못이 있다고 학대하겠는가? ‘잡초’라고 분별해서 차별대우하는 것은 우리 인간들이 한 짓거리라는 생각이 들어 뽑을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고 가벼운 죄책감마저 느끼게 된다. 게다가 요즘은 몇 분 만 일을 해도 허리, 무릎까지 아파와 나이를 탓하곤 한다. 급기야 내년부터는 그나마 6년 동안 유지해 온 마당 ‘관리’를 아예 포기 하려고 ‘중대결심’을 했다. 남은 길은 두 가지 선택 밖에 없다. 하나는 온갖 풀들이 마음대로 자라도록 놔두고 생명력이 강한 놈들이 지배해도 하는 수 없다는 생각에 ‘관리’하지 않고 개입하지 않는 길이다. 다른 하나는 정말 마음이 내키기 않지만 약을 뿌리는 잔혹한 방식인데,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채택하기로 결심했다.
자연에 맡기는 전자의 방식은 경제정책으로 말하면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 하고 시장이 작동하는 원리에 맡기는 ‘자유방임주의’(laissez-faire)이다. 또 자식 키우는 일로 말하자면, 부모가 아이들 일에 사사건건 간섭하지 않고 아이들이 커서 철이 들 때까지 지켜보면서 인내로 기다리는 교육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너그러운 ‘교육 정책’이다. 실은 자신들도 젊어서는 마찬가지로 자식들에게 엄격했었겠지만 오랜 경험에서 나온 말이니 무시할 수 없다. 나도 할아버지 반열에 들고 보니 이제 좀 알 것 같고, 젊은 시절 아이들에게, 특히 맏이에게 더 많은 기대를 하면서 엄하게 했던 일이 후회되지만, 이미 지나 간 세월을 어찌하겠는가.
정원 관리, 경제 정책, 아이들 키우는 방법 사이에 유사점이 있지만, 중요한 차이점도 간과할 수 없다. 첫째, 친환경-생태주의자들은 대체로 자연계에 대해 개입을 최소화하는 불간섭주의 내지 자유방임주의를 선호하지만, 경제 정책에도 그대로 맞지는 않을 것 같다. 자연은 무한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 인간이 파괴한 질서를 – 심지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 강원도 산불 소식이 들려 우리 마음을 안타깝게 하고 있지만 – 시간이 흐르면 본래 상태로 회복시키는 놀라운 복원력이 있지만, 파괴된 경제 질서도 그럴지는 의문이다. 더군다나 인간의 탐욕은 자연계의 특정 종이 지닌 지배력과 달리 한이 없고 수많은 동료 인간들에게 극심한 피해와 고통을 안겨준다. 같이 사는 법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막강한 자본력과 기술력을 앞세워 전 세계 시장을 석권하며 심지어 자연계마저도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손상을 입히기 때문에 인간과 자연 모두의 공멸을 걱정할 정도가 되었다.
자식교육은 부모마다 다르겠지만, 역시 강온 양면 정책을 적당히 구사하는 것이 상책이 아닐까 하는 것이 나의 개인적 생각이다. 특히 어머니는 약, 아버지는 강으로 가는 것은 아마도 피해야 할 최악이 아닐까 한다. 차라리 그 반대가 나을 것 같지만 아내와 남편이 보조를 맞추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중도의 지혜를 사회정책, 경제정책에도 적용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이 있을 것이며, 이것도 물론 일리가 없지는 않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중도’라 해도 지금까지는 자유방임주의, 시장주의의 장점보다는 정경유착이나 관주도의 성장정책 같은 시정되어야 할 단점이 더 많았고 그 한계에 봉착했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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