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2일 토요일, 서울에만 100만이 넘는 시민이 모였습니다. 전국적으로 시민 100만 명 이상이 모인 것은 1987년 6.10항쟁과 맞먹는 규모입니다. 그만큼 대한민국 국민들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분노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100만 시민들이 모인 11월 12일의 집회가 과거 시위와 어떻게 달라졌는지, 이날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을 대상으로 조사해봤습니다. 조사는 온라인 설문조사로 11월 13일 오전 10시부터 11월 14일 새벽 4시까지 진행됐습니다. 설문조사 응답자는 총 6,768명이었고 이중 참석자는 6,721명 (99.3%)이었습니다.
’40대 아빠와 자녀들이 함께한 가족 집회’
이번 집회에 참석했다고 응답한 46.3%는 서울 거주자였고, 32.3%는 경기도였습니다. 이외 지역은 제주도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올라왔다고 답했습니다. 집회 참석을 위한 교통수단으로는 지하철이 가장 많았고, 지방 참석자 중 6.3%는 관광버스를 통해 이동했다고 응답했습니다.
응답자의 33.1%(2,239명)는 친구와 참석했고, 31.2%(2,110명)는 가족과 함께 참석했다고 밝혔습니다. 개인적으로 참석한 사람은 19.3%(1,308명)이었고 소속 단체와 함께 참여했다는 응답자는 15%에 불과했습니다.
과거 집회와 시위는 노조와 시민 단체 등의 참석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동원되거나 조직을 통한 참여라고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11월 12일 집회는 개인 혹은 친구와 가족이 함께하는 자발적인 참여라고 봐야 합니다.
집회 참석자의 나이는 40대가 42.4%로 가장 많았습니다. 뒤를 이어 30대와 20대가 각각 31.4%, 19%였습니다. 10대는 11.5%였고 0세~9세 아이들도 5%나 됐습니다. 직업은 직장인 (52.9%), 학생 (24.5%), 자영업 (16.2%), 주부 (15.7%), 공무원 (5.6%) 순이었습니다.
이번 11월 12일 집회에는 유독 가족 단위 참석자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부부는 물론이고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나온 부모도 많았습니다.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집회였지만, 폭력이나 과격한 시위 모습이 없었던 까닭은 가족 단위 집회 참석자가 많았던 이유도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CNN은 “대통령에 대한 하야 요구라는 심각한 상황에서도 시위 참가자들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라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11월 12일 집회는 성난 분노를 ‘투쟁’이라는 방식보다는 공연, 연설, 각기 개성이 담긴 피켓 등을 통해 시위를 즐기는 모습이었습니다. 새로운 집회, 시위 문화가 정착됐다고 봐야 합니다.
‘가장 필요 없는 프로그램은 ‘정당 행사’
11월 12일 집회에 참석했던 응답자의 71%(4,808명)는 ‘시민 행진’을 가장 필요한 프로그램이었다고 응답했습니다. 뒤를 이어 50.3%인 3,407명은 ‘시민자유발언’을 손꼽았습니다. 토크콘서트와 음악콘서트가 각각 35.6%와 31.6%를 차지했습니다.(중복 응답 가능했음)
응답자 중에서는 집회가 문화 공연으로 본래 목적이었던 대통령 하야를 이끌어내는 강력한 시위가 되지 못했다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시민 행진’과 ‘시민 자유 발언’을 통해 성난 민심과 분노를 표현하고, 동시에 다양한 행사를 함께즐기는 시위 문화로 바뀐 시대적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어 보입니다.
11월 12일 집회 참석자 중 응답자의 55.8%는 ‘정당 행사’를 가장 필요 없는 프로그램으로 손꼽았습니다. 시민들이 집회에서 정당 행사를 필요 없다고 응답한 가장 큰 이유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진 집회를 정치권이 이용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풀이됩니다.
집회 참석자 중에는 정당 행사마다 몰려드는 기자들의 모습을 통해 일부 대권 주자들이 지지도를 높이는 등의 정치적 홍보 수단으로 보고 있다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집회 참가자들이 꼽는 최고의 명장면은?’
응답자의 71.6%는 11월 12일 집회에 ‘만족한다’고 응답했습니다. ‘약간 미흡하다’가 10%, ‘많이 아쉬웠다’는 4.8%에 불과했습니다. ‘보통이었다’는 12.5%까지 합치면 집회 참가자들의 80% 이상이 11월 12일 집회 참가를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설문조사에 응한 참가자에게 ’11월 12일 집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은 무엇인지 물어봤더니, ‘행진’이 가장 많았고, 많은 시민들과 성숙한 시위를 주도한 ‘시민 문화’라고 답했습니다.
특히 청소년들이 교복을 입고 행진하는 모습에 ‘미안하면서도 울컥했다’는 답도 나왔습니다. 또한, 100만 시민이 모였던 집회였지만 쓰레기를 시민 스스로 치우고 정리하는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대답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이날 공식적인 행사가 끝난 11시 무렵의 광화문 광장에는 쓰레기를 치우는 학생과 시민들이 많았고, 거리에는 쓰레기를 굳이 청소할 필요조차 없었을 정도로 평소보다 더 깨끗했습니다.
‘평화시위를 막는 것은 경찰의 강경 진압이었다’
응답자의 68.6%는 11월 12일 집회가 평화적으로 끝난 가장 큰 이유는 ‘시민의 성숙한 집회 문화 때문’이라고 응답했습니다. ‘경찰의 강경 진압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응답자도 37.9%였습니다.
이 조사를 통해 ‘폭력 시위’를 유발하는 가장 큰 요인은 차벽과 물대포와 같은 ‘경찰의 강경 진압’이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참가자들과 경찰의 내자동 로터리 대치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59.2%가 ‘대부분의 시민이 평화 시위를 외쳤기 때문에 큰 사건은 아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내자동 로터리에서 버스에 오르거나 경찰 헬멧을 친 사람은 몇 명에 불과했고, 이마저도 대부분의 시민들이 제지하면서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일부 실신 시민의 구조를 경찰이 방해하거나 연행하는 모습은 여전했습니다. 시민들의 시위 문화는 바뀌었지만, 경찰이 시민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가 아직은 부족해 보였습니다.
‘100만 시민이 모인 집회, 안전과 행사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다.’
집회에 참석했던 응답자들은 ‘안전을 위한 통로 확보가 부족했다’라며 ‘안전’에 대한 걱정을 제일 많이 했었습니다. ‘지하철 무정차’ 안내 등의 정보 부족과 함께 ‘화장실 이용이 불편했다’라는 의견도 많았습니다.
오후 3시부터 서울시청 광장으로 통하는 시청역 출구는 혼잡해 지상으로 올라가기조차 힘들었습니다. 집회 주변 화장실마다 이용하려는 시민들로 줄이 길게 늘어져 있기도 했습니다.
서울시와 박원순 시장은 트위터 등을 통해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집회 주변 공공화장실 리스트를 제공하거나 구급차와 미아보호소를 운영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서울시가 안내한 화장실 중에는 문이 잠겨 있는 곳도 있었고 이에 대한 안내도 부족했습니다.
특히 집회 참가자가 몰려 광화문역이나 경복궁역 등을 무정차 하는 사태가 발생했지만, 정확한 지하철 운행 상황에 대한 정보 제공도 보기 힘들었습니다.
집회를 주최하는 측에서 참가하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정확한 행사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 광장에 도착한 시민들이 어디로 이동하고 어떤 행사에 참가할지 우왕좌왕하기도 했습니다.
국민안전처가 시민들의 안전에 손을 놓고 있는 점도 문제였습니다.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는 집회이지만 그들도 국민이라는 점을 놓고 본다면 100만 명이 모인 집회를 대응하기 위한 경찰 병력 동원만 챙길 것이 아니라 안전 대책도 함께 마련해야 했었습니다.
‘100만 집회 참가자 66%, 11월 26일에도 다시 오겠다.’
“이(데크) 쉼터에 올라가면 세종문화회관까지 불빛이 보인다. 그 너머는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무어라고 소리치는지는 알 수 없다. 함성이 아련히 들릴 뿐이다. 관저 안에서는 유리가 두꺼워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저 사람들이 밤마다 촛불을 들고 와서 나를 탄핵에서 구해줄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내게 무엇을 요구할까? 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그런 두려움이 촛불 시민들의 함성에 실려 왔다.”(<운명이다>-노무현 자서전 240쪽)
“광화문 일대가 촛불로 밝혀졌던 그날 밤에, 저는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바라보았습니다. 시위대의 함성과 함께, 제가 오래전부터 즐겨 부르던 ‘아침이슬’이라는 노랫소리도 들려 왔습니다. 캄캄한 산 중턱에 홀로 앉아 시가지를 가득 메운 촛불의 행렬을 보면서, 국민들을 편안하게 모시지 못한 저 자신을 자책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2008년 6월 18일 기자회견)
노무현 대통령에게 촛불집회는 ‘두려움’이었고, MB에게는 ‘질타’였습니다. 과연 박근혜 대통령은 무엇을 느꼈을까요?
11월 12일 집회 참가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6.4%는 ’11월 26일 집회에도 다시 참석하겠다’라고 밝혔습니다. ‘상황에 따라 결정하겠다’가 29.7%이고, ‘불참하겠다’는 2%에 불과했습니다.
설문조사가 정확히 예측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수사와 퇴진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최소 50만 명 이상이 다시 모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폭동과 민란이 일어나도 시원찮을 시국에 100만 시민들은 평화로운 시위를 통해 그들의 마음을 대통령에게 보여줬습니다. 이제 박근혜 대통령이 답해야 할 차례입니다.
노무현 탄핵은 국민이 막았지만, 박근혜 퇴진은 국민이 원하고 있습니다. 추운 겨울날, 다시 100만 시민이 거리에 나오지 않도록 한 사람만 청와대에서 나오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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