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북미 연락채널 끊긴 채 연초부터 군사적 긴장 점증
|
“이날 지뢰 폭발사고가 발생한 지역은 2000년 6월에도 DMZ 수색정찰작전 중 지뢰 폭발로 육군 1사단 수색대대장과 후임 대대장 등 2명이 두 다리를 잃고 중대장이 다리에 관통상을 입었던 곳이다. 이번에 폭발한 지뢰는 M14 대인지뢰로 우리가 매설한 것이다.”
지난해 8월7일자 경향신문에 <‘지뢰밭’ DMZ, 불안한 군 장병들>이란 제목으로 실린 한 민간 지뢰연구기관 책임자의 기고 일부이다. 인용한 글머리에서 일컫는 ‘이날’은 지난해 이른바 ‘DMZ목함지뢰 사건’이 터진 바로 그날, 8월4일이다. 즉 기고는 이날 사고의 원인인 “폭발한 지뢰는 M14 대인지뢰로 우리(군대)가 매설한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무슨 근거가 있기에 이렇게 잘라 말한 건지 지금도 궁금하다. 하지만 이 기고는 결국 ‘오보’가 됐다. 사건 발생 6일 뒤인 8월10일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 특별팀과 함께 조사를 벌인 국방부 합동조사단은 문제의 지뢰가 북한이 매설한 ‘목함지뢰’라고 발표한 것이다.
모두가 기억하는 지난해 ‘8월의 위기’는 이렇게 불붙기 시작했다. 대북 확성기 방송이 재개되고 8월20일엔 서부전선에서 북한이 포격(1발)을 가해와 우리 군이 대응 포격(20발)했다는 발표가 나왔다. 교전이 시작된 것이다. 말 그대로 일촉즉발이었다. 이틀 뒤 극적으로 이뤄진 남북 고위급 접촉 합의가 없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모골이 송연해진다.
1년이 흘렀다. 다시 8월4일. 1년 전 ‘DMZ목함지뢰 사건’이 발생한 그날이다. 그럼 지금 한반도의 평화지수는 어떤가? 여전히 전쟁의 먹구름은 걷히지 않고 있다. 아니 어쩌면 더 짙게 드리웠는지도 모른다.
상황이 지난해보다 나쁜 건 분명해 보인다. 긴장은 이미 연초부터 높아갔다. 마치 끝이 있는 계단을 오르는 식이다. 북한이 4차 핵시험을 하고 로켓을 발사하자 미국은 UN사상 최고 강도라는 대북 제재를 주도했다. 이에 반발한 북한이 잇따라 탄도탄미사일과 SLBM 시험 발사를 하자 이윽고 미국은 지난달 6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인권 제재’ 대상으로 공표했다.
계단 오르기로 점증하는 북미·남북 군사대치
그러자 지난달 말부터 북한은 이달 말 진행되는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한미합동군사연습을 겨눠 강한 경고를 내놓고 있다.
지난달 28일 평양발 AP통신에 따르면, 한성렬 북한 외무성 미국국 국장은 “만일 미국이 8월에 대규모 군사연습을 강행한다면 그로부터 조성되는 사태에 대한 책임은 미국이 지게 될 것”이라 밝혔다. 그는 김정은 위원장 인권 제재에 대해 “‘붉은 선(red line)’을 넘어서고 우리에게 선전포고를 해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도 같은달 26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만일 오는 8월 조선반도정세가 통제 밖으로 벗어나게 된다면 그 책임은 핵전략자산을 조선반도에 끌어들인 측, 공화국의 최고존엄을 건드려 먼저 선전포고를 한 측인 미국이 전적으로 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리 외무상은 특히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추가 핵시험을 하는가 마는가는 전적으로 미국의 태도 여하에 달렸다”고 말해 5차 핵시험을 시사했다.
올해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은 22일부터 닷새간 열린다고 한다. 지난해 12일(8.17~28) 동안 진행된 것에 비하면 기간이 절반 이상 줄었지만 북한의 반응은 더 강경하다. 우려가 더하는 이유는 미국의 ‘김정은 위원장 인권 제재’를 계기로 북미간 접촉통로마저 끊겨버렸다는 점이다. 지난달 11일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가 하루 전 미국 정부에 “조미 사이에 유일하게 존재하여온 공식접촉통로인 뉴욕 조미접촉통로를 완전히 차단한다”고 통지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또 “지금부터 조미관계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들을 우리 공화국의 전시법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미국 정부에 통지했다고 한다. ‘전시(戰時)’ 상황이란 얘기다.
북미 통로 차단, 남북은 직통전화 끊긴 지 반년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미국은 오는 6일 초음속 전략 핵폭격기 ‘B-1B 랜서’를 괌 앤더슨 공군기지에 배치한다고 밝혔다. B-1B 랜서의 괌 기지 배치는 2006년 이후 10년 만이라고 한다. B-1B 랜서는 B-52 전략폭격기에 비해 기동성과 정밀타격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반도까지 오는 데 2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북미관계만 먹구름에 휘감겨 있는 게 아니다. 남북관계 역시 날카롭게 맞서 있다. 비상시 긴급 연락통로였던 판문점 남북한 연락사무소(적십자 채널) 직통전화가 끊긴 지 6개월이 다돼간다. 연초 북한의 핵시험과 로켓 발사에 대응해 남한 정부가 지난 2월10일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을 발표하자 북한은 이튿날 개성공단 폐쇄를 발표하고 남북간 통신수단을 전면 차단했다.
이런 불통 상황에 더해 지난 5월 북한이 제안한 남북 군사회담을 박근혜 정부가 거부한 이래 군사적 대치와 신경전는 더 악화되는 양상이다.
남한 정부가 최근 중국 어선들의 불법조업에 대응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에 인공어초를 설치하자 북한은 “군사적 도발”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달 25일 해군 서해함대 보도를 통해 “첨예한 이 수역에서 군사적 도발을 감행하여 우리 군대의 자위적 대응을 유도해내고 그것을 도발과 위협으로 매도해보려는 것이 침략자, 도발자들의 간악한 흉심”이라고 비난했다.
북한은 이보다 한 달 전인 6월25일 국방위원회 정책국 상보를 통해서도 서해상 문제를 제기했다. 북한은 “만약 서남해상에서 무장충돌이 또다시 발생한다면 그것은 지난 3차의 교전규모를 벗어난 전면전으로 확전되여 우리 민족의 생사는 물론 동북아시아와 나아가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엄중히 위협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남한 정부도 최근 북한의 행보와 첩보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국내 언론들은 일제히 베이징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이 최근 중국과 동남아 지역의 우리 교민 또는 한국인 여행객을 대상으로 테러 또는 납치하려는 징후가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이에 앞서 22일엔 북한이 한강을 이용해 처음으로 대남 전단 유포를 시도했다고 합동참모본부가 27일 밝혔다. 합참은 “북한이 우리사회의 혼란과 분열을 조장하기 위해 끊임없이 통전책동차원의 도발행위를 자행하고 있는 또 하나의 증거”라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통일부는 북한이 지난 6월 한 차례, 7월 들어선 두 차례 남파 공작원 지령용 난수(亂數) 방송을 내보냈다며 지난달 15일 방송 내용을 언론에 공개했다. 언론들은 남북관계에 긴장을 조성하기 위한 교란, 기만용이란 전문가 분석을 달았다.
1년 전 ‘목함지뢰’ 하나만으로도 교전이 벌어지는 위급상황을 전 국민이 지켜봤다. 기적적으로 성사된 긴급 남북 고위급접촉의 합의로 가까스로 전면 충돌은 면했지만 되레 그때보다 더한 군사적 긴장이 감돌고 있다. 소통은 고사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대치는 예각화되고 있다.
광복 71주년을 맞는 2016년 8월. 남북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대행진이 그 어느 시기보다 절실하게 다가오는 때다.
김동원 기자 ikaros0704@gmail.net
|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