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배치로 한반도는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 이은 제3의 전선이 되었다. 미·중 간에 전쟁이 나면 가장 먼저 터지는 화약고가 된 것이다. 이제 우리의 국익에 부합하는 출구전략이 필요하다.
남문희 기자 | bulgot@sisain.co.kr
사드 특집
한·미 양국의 사드 배치 선언 이후 분명해진 점이 있다. ‘주장’과 ‘팩트(사실)’ 사이의 괴리다. 사드가 북한의 핵·미사일 방어용이라는 박근혜 대통령과 한민구 국방부 장관의 ‘주장’과, 경북 성주에 배치되는 사드로는 수도권은 물론 중부권의 핵심 군사기지조차 방어할 수 없다는 ‘사실’ 사이에 괴리가 있다. 또한 한반도에 배치될 사드가 여전히 미국 미사일방어체계(MD)와 무관하다는 우리 군 수뇌부의 ‘주장’과 미국 의회 회계감사원 자료 등을 통해 미국 MD의 핵심이라 할 ‘핵심지휘통제체제(C2BMC)’의 중앙컴퓨터와 연동된 최전선 국가의 레이더라는 ‘사실’ 사이에도 괴리가 있다. ‘성주에 배치될 사드가 미국 MD가 아니라면, 이는 마치 통신사에 가입되지 않은 최신형 스마트폰이라는 뜻이다’라는 연세대 최종건 교수의 지적(<한겨레> 7월27일자)처럼, 성주에 배치될 사드를 미국 MD와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한국 정부가 유일하다.
사드 배치는 한국을 넘어 동북아 정세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최근 미국이 사드 한국 배치를 서두른 이유에 대해 미·중 간 남중국해 대결의 연장선에서 파악하려는 분석이 제기됐다. 곤도 다이스케 일본 <주간 현대> 특별편집위원은 <월간중앙> 8월호에 장문의 글을 기고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해 9월 미·중 정상회담 이후 친중국 노선을 접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이 남중국해 인공섬 매립을 포기할 의사가 없음을 확인했다. 미국은 제1열도선(‘열도선’이란 중국의 대미 군사방어선으로, 제1열도선은 일본 오키나와에서 타이완-필리핀을 잇는 가상의 선을 말한다. 중국식 용어로는 도련선) 방어를 위해 한국을 반중국 전선으로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사드 배치를 서둘렀다고 곤도 다이스케 위원은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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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27일 미국 해군 구축함인 라센함(위 사진 앞쪽 배)이 남중국해를 항해하는 가운데 중국이 자국 군함을 보내 미국 군함을 뒤쫓는 위기 상황이 조성됐다. |
이보다 더 깊이 분석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를 성역화하고 반접근·지역거부(A2AD) 전략의 주력 무기인 중거리미사일의 정확도를 높이려 한다. 미국의 공해전(AirSea Battle) 전략을 무력화하기 위해서다. 실제 중국은 중거리미사일의 정밀도를 오차범위 2~3m 이내까지 끌어올림으로써 미국 공해전 전략의 핵심인 MD를 이미 무력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또 난사 군도와 시사 군도 그리고 필리핀 앞바다에 있는 스카보로초 군도를 잇는 삼각편대(아래 지도 참조)가 완성되면 중국에 의한 남중국해 공역의 성역화가 이뤄진다. 그리고 중국이 매립 중인 파이어리크로스 등의 난사 군도 인공섬은 남중국해의 진입 수로를 장악하는 위치에 있다. 인공섬 매립이 완성되면 미·일 군함의 접근이 어려워진다. 공역과 영해의 성역화가 이뤄지면 하이난 섬 잠수함 기지가 미국의 감시망에서 벗어난다. 미국 본토 타격용 SLBM(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쥐랑-2를 탑재한 중국의 전략핵잠수함이 자유롭게 서태평양을 거쳐 미국 본토 가까이 접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시사IN> 제422호 ‘제2의 닉슨 독트린 몰려온다’ 기사 참조).
사드 배치로 ‘반중국 네트워크’에 가입한 한국
이에 미국은 중국 인공섬 12해리(약 22.2㎞) 이내 해역으로 항해하는 ‘항해의 자유’ 전략을 통해 중국의 남중국해 성역화를 막고 있다. 또 군사기술 첨단화를 통한 제3차 상쇄전략(Third Offset Strategy)으로 대응한다. ‘제3차 상쇄전략’은 1차 상쇄(전략 핵무기), 2차 상쇄(위성 위치확인 시스템 활용)에 이은 것으로 드론 등 스스로 학습하는 머신러닝 개념을 적용한 군사무기 활용을 말한다. 지난 2014년 미국 전략문제연구소(CSIS)는 미국이 글로벌 파워로서 지위를 유지하려면 아시아·태평양은 이제 동맹국에 맡기고 미국은 중·러를 대상으로 한 글로벌 전략을 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바로 척 헤이글이 국방장관이던 시절 시작해 애시턴 카터 현 장관이 구체화하고 있는 ‘제3차 상쇄전략’이다. 첨단 군사기술을 통해 중국·러시아 등 경쟁국을 따돌리겠다는 구상이다. 냉전 시대 전략핵무기 등을 증강했던 두 차례 상쇄전략에 이은 세 번째 업그레이드 버전인 셈이다. 중국의 반접근·지역거부(A2AD) 전략을 무력화하기 위해 미국은 3차 상쇄전략의 일환으로 최첨단 무기들을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무인비행기(드론)나 무인잠수함 그리고 음속의 7배라는 레일건을 탑재한 구축함을 남중국해에 투입하는 방안도 그 연장선상에서 거론되고 있다.
중국의 대미 군사방어선 가운데 하나인 ‘제1열도선’(오른쪽) 방어를 위해 미국이 한국 사드 배치를 서둘렀다는 분석이 나온다. |
제3차 상쇄전략은 국방비를 군사기술 혁신에 집중 투자하겠다는 의도에서 등장했다. 그러나 달리 보면 상대적으로 소홀해질 수 있는 제1열도선 방위는 제1열도선상 국가들이 ‘반중국 네트워크’를 결성해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 언론인 곤도 다이스케의 분석은 바로 한국이 사드 배치를 통해 제1열도선의 반중국 전선 국가로 급속히 빨려들어 왔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는 제1열도선을 ‘캄차카 반도-일본 열도-한국-타이완-필리핀-대(大)순다 열도를 잇는 남북 라인’이라고 규정했다. 즉, 한국을 포함했다. 국제정치학계에서 여러 주장이 있지만 제1열도선은 대체로 미국의 딘 애치슨 국무장관이 1950년 1월 주장한 애치슨 라인과 일치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2011년 1월 일본 <교도 통신>이 보도한 용어 해설에서도 ‘제1열도선은 미국의 딘 애치슨 국무장관이 알류샨 열도-일본-필리핀을 잇는 라인을 ‘서방 측 방위선’이라고 연설에서 밝힌 것이 기원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동안 제1열도선을 설명할 때 일본을 기점으로 오키나와-타이완-필리핀을 잇는 방어선으로 봤지 한국을 기점으로 보지는 않았다. 물론 한국의 이어도가 제1열도선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한국이 제1열도선 국가인 것은 아니다. 이게 바로 국제정치의 상식이다.
사드의 X밴드 레이더를 한국에 배치하는 것은 미국 공해전의 관점에서 보자면 MD 강화다. 또 ‘상대보다 멀리서 먼저 보고 때린다’는 상쇄전략 교리와도 연결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사드 배치로 한국은 ‘반중국 네트워크’에 가입했을 뿐 아니라 졸지에 분쟁지역의 열점이 된 셈이다. 한국의 사드 배치로 한반도가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 이은 제3의 전선이 된 것이다. 미·중 간에 전쟁이 나면 가장 먼저 터지는 화약고라는 의미다.
중국이 제1열도선의 국가들로 분류한 일본·타이완·필리핀 등은 모두 중국과 영토 문제로 대립 중인 분쟁국가이다. 한국은 미국과 동맹국이지만 그 동맹은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기 위한 대북억지 동맹이지 중국에 반하는 동맹은 아니었다. 더구나 전체 수출의 25%를 차지할 만큼 중국은 한국과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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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해체의 기폭제가 된 ‘이중 결정’을 주도한 서독 헬무트 슈미트(가운데)와 헬무트 콜(왼쪽). |
“미국이 판단하고 우리는 받아들였다”는 청와대
또 한 가지 눈여겨보아야 할 지점은 아시아·태평양에 대한 미국의 전략이다. 미국 처지에서는 남중국해를 둘러싼 대중국 군사 대립만 있는 게 아니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의 급성장은 미국에도 실질적인 위협으로 다가왔다. 지난 1월 4차 핵실험 이후 미국 내에서는 북한의 핵능력이 미국-중국-러시아 다음 순위 국가들인 영국·프랑스·이스라엘 수준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6월22일 북한은 무수단 미사일 발사 실험에서 미국의 태평양 군사거점인 괌을 타격할 능력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핵탄두를 장착한 무수단 미사일 단 한 발만 떨어져도 미군 병사 8만명이 사망한다는 게 미국 군사전문가의 분석이다. 미국이 중국이나 러시아보다 북한에 대해 걱정하는 것도 사실이다. 중·러는 오랜 대화와 협상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북한은 어느 방향으로 튈지 통제 불능이기 때문이다.
남중국해에서는 중국과 대립하지만 한반도에서는 중국의 협조가 필요했던 게 지금까지 미국 아시아·태평양 전략의 얼개였다. 그런데 사드 배치 선언 이후 이런 구도가 급속하게 헝클어졌다. 북한과 대화 채널이 중단됐고, 중·러를 통한 대북 통제 역시 어려워진 상황으로 가고 있다. 남중국해에 대한 미국의 군사 압박을 분산하기 위해 중국이 북한을 군사적으로 지원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미국의 사드 배치 선언은 곤도 다이스케가 주장하듯 미국이 중국이나 북한과 더 이상 대화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충격요법을 통해 외교적 이니셔티브를 쥐기 위한 의도가 일부 작용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완전한 오판이었던 셈이다. 1년 뒤에나 배치될지 말지도 모를 사드를 배치한다고 요란하게 선언했지만, 당장 미국 역시 별로 건진 게 없다.
ⓒ연합뉴스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은 7월14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한국 사드 배치 판단은 미국이 한다”라고 말했다. |
주변국의 안보에 위협이 될 신무기 체계를 들여올 때 국제정치적으로 지켜야 할 상식이 있다. 상대 국가의 안보 우려를 해소할 조건이나 방안에 대한 메시지를 동시에 발표하는 것이다. 군비 증강 조치를 할 경우 조건부 군축 제안을 동시에 한다든지 억지력(deterrence) 강화와 관여(engagement)의 확대와 관련한 메시지를 동시에 발표한다. 안보를 위해 군비를 강화했지만 상대방의 군비도 강화돼 오히려 안보가 위태로워지는 ‘안보 딜레마’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그 대표 사례가 바로 1979년 12월12일 있었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이중 결정(Double-Track Decision)’이다. 1977년 소련이 동유럽에 배치했던 SS-4와 SS-5 중거리미사일을 최신형인 SS-20 중거리 핵미사일로 교체함으로써 유럽의 군사력 균형이 위태로워졌다. 그러자 나토는 한편으로는 미국의 크루즈 미사일과 퍼싱Ⅱ 미사일을 나토 국가에 배치할 것을 결의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양측에 배치되는 중거리 핵미사일을 최소 수준으로 하기 위해 미국과 소련 양국에 압력을 넣어 군비통제 협상을 진행시킬 것을 결의했다.
당시 이 제안을 주도한 이는 서독의 헬무트 슈미트 총리였다. 사민당 출신으로 자신의 지지 기반과는 배치되는 결단이었지만 그 결단은 냉전 해체의 기폭제가 됐다. 1982년 정권을 이어받은 기민당의 헬무트 콜 총리가 그의 정책을 계승했다. 콜 총리는 비록 보수적인 기민당 출신이지만 중거리미사일 배치와 더불어 소련에 대한 경제지원 및 동독에 대한 20억 마르크의 차관 지원을 단행하는 외교력을 발휘해 1987년 미·소의 중거리핵전력(INF)협정 타결에 일조했다. 결국 냉전의 해체와 베를린 장벽 붕괴, 독일 통일 등 20세기의 역사적 사건들은 바로 헬무트 슈미트의 이중 결정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한국에 사드 배치를 요청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판단은 미국이 한다. 미국이 (판단)하고 우리는 받아들였다.” 7월13일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이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한 말이다. 주권국가인 한국의 안보를 책임진 사람의 발언이 맞는지 귀를 의심케 하는 내용이다.
위기가 바로 기회이다. 위기의 순간에 ‘남의 판단’이 아니라 ‘우리의 판단’에 따라 해법을 찾아내야 한다. 이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해법의 내용에 ‘우리의 문제뿐 아니라 남의 문제에 대한 해법’도 함께 포함돼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 중국은 그동안 한반도를 자국 안보의 방파제로 여겨왔다. 그런데 사드 배치 이후의 한반도는 방파제가 아니라 새로운 위협으로 등장했다. 혹자는 지금 중국이, 청일전쟁 패배 이후 일본 지배하의 한반도나 한국전쟁으로 미군이 압록강까지 북진했을 때의 한반도 상황과 같은 위기의식을 갖기 시작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미국이 판단했고 우리는 받아들였다’ 같은 무책임한 말로는 중국의 보복과 대응 행동을 피해갈 수 없다. 더 이상 늪에서 허우적대지 말고 우리 국익에 부합하는 출구전략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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