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만에 1억 모였다, 박준영 변호사를 응원하는 이유
[게릴라 칼럼] 이 시대에 필요한 '우리 시대의 변호인'의 활약16.08.15 20:16최종 업데이트 16.08.15 20:16글: 하성태(woodyh)편집: 김지현(diediedie)
▲ 다음 스토리펀딩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파산' 변호사> 메인 화면. | |
ⓒ 다음 |
"노무현이야, 노무현. <변호인>!"
지난 4월 말,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의 김태윤 감독을 사석에서 만났다. 당시 그는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재심>의 시나리오를 탈고한 상태였다. 그에게 영화의 취재를 위해 만났다던 박준영 변호사에 관해 묻자 그는 대뜸 저리 답했다. 박 변호사의 삶 자체가 영화 <변호인> 속 송우석 변호사의 인생 궤적을 닮았다는 뜻이리라. 김 감독 역시 박준영 변호사를 직접 만나 그간의 사정을 듣고 영화에 반영했다고 한다.
꽤나 의미심장하면서도 직설적인 제목의 영화 <재심>은 지난 7월 크랭크인했다. 10년간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풀려난 현우는 배우 강하늘이 연기하고, 이 현우를 돕는 변호사 이준영은 배우 정우가 연기한다. 그리고, 한 변호사의 외롭고 긴 싸움을 정면으로 그리는 이 작품의 주인공 이름은 이준영이다. 아마도 영화(와 시나리오) 속 이준영은 현실 속 박준영 변호사의 모습을 꽤나 닮아 있을 것 같다.
<재심>이 촬영에 한창인 8월 14일 오늘, 현실의 박준영 변호사는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14일 오후, 박준영 변호사가 포털 사이트 다음에 지난 11일 시작한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파산' 변호사>가 3일 만에 당초 목표였던 모금액 1억 원을 돌파한 것이다. 지난 14일 오후 5시까지 총 2613명 후원, 1억41만8000원으 후원금이 모였다. 그 만큼 박준영 변호사가 지켜내려는 사법적 '정의'에 공감하고 응원을 보내는 이들이 그 만큼 많다는 뜻이리라.
'파산' 변호사에게 모인 1억 후원금, 이유가 있다
▲ "내가 능력이 있고, 나 혼자 잘 나서 변호사가 됐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 가족의 희생이 있었고, 사회적 관점으로 봤을 때 난 운이 좋았다. 내 가족을 돌봐야 하는 생각에 좋은 결혼과 좋은 직장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다행스럽게도, 내게 불운한 사람을 위해 일할 기회가 찾아왔다." | |
ⓒ 이희훈 |
"'파산' 변호사 박준영입니다. 11년 동안 변호사를 했는데요. 공익활동을 하지 않고 영리활동을 했다 하더라도 1억 원을 벌려면 엄청난 시간이 필요했을 겁니다. 이런 공익활동이 필요한 시점에 우리 변호사들이 저의 사례를 보고 좀 더 용기내서 이런 일에 뛰어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14일 오후, 박준영 변호사는 페이스북 라이브 영상으로 후원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재심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는 동반자 박상규 기자와 함께였다. 영상 속에서 "오늘 점심값을 저희가 샀다"라면서 웃던 박 변호사.
작년 대한변호사협회가 선정한 '변호사공익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그였지만 최근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며 경기도 수원지법 앞에 마련했던 변호사 사무실을 빼야 할 상황이 여러 기사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3일 만에 모인 1억 원의 후원금은 가뭄 속 단비와도 같았을 터.
"돈이 없다보니 박 기자도 힘들고 저도 힘든 상황인데, 다음을 기약하고 많은 일을 생각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목표액은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이 모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재심뿐만 아니라 억울한 사법피해자들이 길거리에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의 목소리를 들어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고, 그분들의 목소리를 공론화할 수 있는 언론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서 앞으로 체계적으로 사람을 모아서 일을 해볼 생각입니다. 일억이 아닌 그 열배도 기대하는 이유입니다.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지난해 5월 김신혜씨 사건 관련 특강과 뒷풀이에서 만난 박 변호사에게 "노무현을 닮았다"고 하자 그가 이내 손사레치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떤 특별함보다는 아내와 아이들의 하루하루를 걱정하면서도, 피해자들의 현재와 앞날을 더 근심하는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가장이자 변호사로서의 모습을 엿본 순간이기도 했다.
'박준영 시민 변호사 만들기 프로젝트'를 응원하는 목소리
박상규 기자는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파산' 변호사>의 아이템이 앞으로 20여 개 남아 있다고 밝혔다. 펀딩을 계속 진행하는 한편 이 내용을 묶어 책으로도 출간하고, 또 향후 박준영 변호사가 언급한 '공론화'와 같은 구체적인 상을 공개하겠다는 것이다. 이번과 같은 열띤 호응이라면 두 사람의 기대가 구체화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잘 알려진 대로, 두 사람은 2015년 11월 다음 뉴스펀딩(현 스토리펀딩)에서 연재한 무기수 김신혜씨의 이야기인 <그녀는 정말 아버지를 죽였나>를 시작으로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다룬 <그들은 왜 살인범을 풀어줬나>,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사건을 진상을 파헤친 <가짜 살인범 '3인조'의 슬픔>에 이르는 '재심 3부작'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무료 변론에 나서는 박준영 변호사의 변호에 공감한 독자들의 후원금은 총 1억3000만 원 가까이 된다).
그러는 사이, 세 사건 모두 각각 광주지방법원 해남지원과 대법원, 전주지방법원으로부터 재심 결정을 이끌어 냈다. 김신혜 사건 이후 함께 하는 동료 변호사들도 늘었고, 약촌오거리 사건의 경우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황상만 전 군산경찰서 형사반장과 함께였다.
억울한 약자의 편에 서서 사법제도의 모순점을 파헤치는 이 고졸 출신 '공익' 변호사의 활약이 사회를, 법조계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 지를 우리가 목도하고 있고, 또 누군가는 실시간으로 응원하고 있는 셈이다.
그와 함께 박준영 변호사의 이력도 관심을 모을 수밖에 없었다. '고졸 출신 인권 변호사'로 알려진 그의 이력이 곳곳에서 "노무현을 닮았다"는 이야기를 듣는 건 다 이유가 있어서다(관련기사 : 박준영 변호사 인터뷰 ① "부잣집 딸 만나 삼성 입사가 꿈" 이랬던 변호사가 어쩌다 수억 빚이... 인터뷰 ② 절도와 싸움질에 무기정학까지 '노가다'하던 고졸, 변호사 되다).
완도군 출신으로 파란만장한 학창시절을 보낸 뒤, 고졸 출신의 국선 변호사에서 재심 변호사로 거듭나기까지의 과정은 드라마틱한 영화 한 편으로 만들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그리고 그 박준영 변호사를 위한 '박준영 시민 변호사 만들기'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우리 시대의 변호인'
▲ 박준영 변호사 | |
ⓒ 이희훈 |
"박 변호사의 노력으로 억울한 사람들은 누명 벗을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이제 박 변호사가 파산 위기에 처했다. 무료 변론으로 수입이 없어 임대료를 못 내 곧 사무실도 비워줘야 한다. 사무실 운영을 넘어 생활 자체가 어려운 상태다. 이 기획으로 박준영 변호사를 지원하려고 한다. 박 변호사가 계속 사회적 약자와 억울한 사람들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후원금을 쓸 예정이다.
'박준영 시민 변호사 만들기'. 판사 출신 변호인이 100억 원대의 수임료를 받고, 현직 검사장이 친구 덕분에(?) 주식으로만 100억 원 넘는 수익을 올리는 시대. 박 변호사의 활동과 삶을 통해 변호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독자 여러분과 함께 고민하고 싶다."
글을 쓰는 박상규 기자가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파산' 변호사> 소개 글의 막바지에 적은 내용이다. 박준영 변호사의 재심 프로젝트에 쏠린 관심은 이렇게 동시대의 사법적 '정의'를 관통한다고 할 수 있다. 더 이상, 도덕 불감증에다 사적 이익만을 위해 법조계에서 승승장구했던 진경준 검사장과 같은 파렴치한들의 반대급부를 보고 싶다는 시민들의 간절한 열망 말이다.
역시나 스토리펀딩을 통해 4억 원에 가까운 후원금을 모은 <뉴스타파> 최승호 PD의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에 쏠린 관심과 응원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국정원 간첩조작 사건의 민낯을 파헤치는 이 작품이 향후 멀티플렉스에 걸리고 수많은 관객들이 관람하는 장면. 지난 대선 당시 댓글 조작 사건을 벌인 당사자임에도 이 정부 들어 꿋꿋이 그 권력을 자랑하고 있는 그 국정원에 대한 비판과 울분이야말로 <자백>이 그려나갈 저 미래를 위한 응원으로 이어졌을 터다.
'박준영 시민 변호사 만들기'는 훨씬 더 구체적이고 미시적일 수 있다. 박준영 변호사가 수시초 출연했던 SBS <그것이 알고싶다>가 경검을 비롯한 수사기관과 사법 기관의 무능력과 무책임을 줄곳 폭로하고 파헤쳐 왔다면, 박준영 변호사는 직접 그 피해자들을 위한 변론과 법정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피해자들의 얼굴을 잊지 못하겠다"고 종종 말하는 박준영 변호사에게 있어 역시나 근본은 '사람'일 테니까.
스토리펀딩의 후원금은 그간 재심 비용과 피해자들의 생활지원, 취재비 등으로 쓰였다. 수천만 원의, 1억 원을 넘긴 후원금이라고 색안경을 낄 필요가 없단 얘기다. 더욱이 이번 프로젝트는 향후 '박준영 시민 변호사 만들기' 프로젝트를 위한 구체적인 비용으로 쓰일 예정이라고 한다. 박준영 변호사가 파헤치는 진실과 억울한 피해자들을 위한 종잣돈이 돼줄 것이다.
앞으로 후원금을 모으는 석 달 간, 1억을 너머 5억 원, 10억 원까지 도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준영 변호사와 그의 팀이 밟아 가는 족적이 넓으면 넓을수록 좋다. 재심 제도에 대해 더 넓게 환기될수록, 그들을 통해 구제받는 피해자들이 늘어날수록 우리 사법체계의 변화와 약자에 대한 공감은 늘어만 갈 테니까.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변호사 박주민이 있었듯, 또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더더욱 '우리 시대의 변호인'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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